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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모토나리의 영지에는 신국의 군대가 들어섰다.
“주군! 신국의 군대입니다! 어서 출진 준비를!”
갑자기 수많은 배들이 나타났다는 말에 모리 가문의 가신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괜찮다. 내가 요청한 거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는 오늘부터 신국의 밑으로 들어간다.”
다카모토의 선언에 가신들은 두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다. 난 신국의 영주가 되기로 했다.”
가신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자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설마!”
한 남자가 검을 뽑자 다카모토의 호위들이 검을 뽑았다.
“우릴 배신한 겁니까!”
“가신으로 남는다면 나쁘게 하진 않겠다.”
“크윽!”
검을 뽑은 남자는 부들부들 떨었다. 모리 가문이 영주 가문으로 인정받는다고 그 휘하의 가문들이 모두 제대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었다. 따로 신유성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인정을 받을 순 있었다. 하지만 다카모토가 배신자라며 중간에 가로막는다면?
신국이 다카모토의 편을 들게 되면 가신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신국의 막대한 군사력은 가신들도 알고 있었다. 이를 등에 업은 다카모토에게 가신들의 무력은 이제 별 볼 일 없는 것이기도 했다.
신국의 밑에 들어갔으니 영주의 자리도 신국의 힘을 빌려 지킬 수 있었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순식간에 사라지게 생겼다는 것을 깨달은 가신들은 부들부들 떨었다. 무엇보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정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하지만 다카모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키를 지배하고 있는 모리 가문의 정체는 사실상 호족 연합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모토나리와 달리 다카모토는 가신들이 자신을 슬쩍 무시하는 일을 많이 겪었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꼴좋군.’
앞으로 어떻게 될 진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가신들이 신국을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 이상 아키의 주인은 자신이 될 거란 것이었다.
모리 가문은 순식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우선 신국의 군대가 들어섰다. 그냥 군대도 아니었다. 연해주에 세운 신녹에 정착한 야인 여진족이었다.
이들은 끊임없이 신녹을 찾아왔다. 신유성이 정복을 하러가지 않은 곳에서도 찾아왔다. 소문이 나니 다른 부족들이 그냥 눌러앉기 위해 찾는 것이었다.
북방은 춥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추운 곳에서는 먹고 사는 모든 일이 괴롭고 힘들다. 그렇기에 독해진다. 따뜻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한다.
그것이 이들을 일본까지 오게 만들었다.
“오! 좋다!”
“따뜻하다!”
봄이라서 아직 쌀쌀한데도 야인 여진족 병사들은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들에게는 마치 여름 같았다. 이를 보고 있던 한 야인 여진 병사는 피식 웃었다.
‘진짜 여름을 겪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일찍이 신유성의 밑에서 싸우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기후를 겪어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던 병사는 그저 웃었다.
‘뭐 그래도 살기 좋은 건 맞지.’
두꺼운 옷을 벗고 얇은 옷 하나만 걸치고 돌아다녔을 때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꼈었다. 쭉쭉 뻗은 나무들은 신기했다. 특히 가을의 논은 정말로 황홀했다.
누렇게 벼가 익은 곳에 바람이 불면 황금물결이 일어났다.
그게 다 먹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땐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었다.
때문에 야인 여진족 병사들 중 상당수가 신유성을 추종했다.
‘대칸께서는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실 분!’
원정을 나가서 살아남으면 받는 배당도 좋지만 가족들이 풍족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더욱 충성하게 되었다.
“빨리 빨리 움직여! 주둔지를 정리 못하면 밥 없다!”
“헛!”
신나서 떠들던 신병들은 서둘러 움직였다.
모토나리는 감탄했다. 신유성이 보낸 군대는 무시무시하다고 알려진 여진 기병이었다.
‘저들만 있다면!’
아마고 가문 따윈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이의 용이라 불리는 다케다 신겐은 물론 군신이라 불리는 우에스기 켄신도 상대가 가능해보였다.
‘아니지. 요시시게만 나서도 그냥 끝나는 일이지.’
큐슈의 요시시게 또한 유명했다. 신유성의 도움을 받기는 했으나 큐슈를 순식간에 제압한 것을 전해들은 영주들은 모두 요시시게를 두려워했다.
끊임없이 약탈해 너덜너덜하게 만든 다음에 밀어버린 탓이었다.
요시시게에게 걸리면 제대로 된 전투는 하지도 못하고 힘이 빠지게 되는 것이었다.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한 약탈을 버텨낼 수 있는 영주는 없었다.
‘걱정 할 것 없겠군.’
적이라면 두려운 존재들이다. 허나 이젠 아군이었다.
모토나리는 다카모토와 함께 한양으로 향했다. 영지에는 대리인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전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굳이 영지에서 살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신유성이 한양에서 살아도 된다고 허락을 내렸기에 아예 한양에 자리 잡기로 한 것이었다.
‘이곳이 신국의 심장.’
권력의 중심에 가까이 있어야 더 큰 권력을 얻기가 쉬워진다. 이를 알기에 모토나리는 과감하게 한양으로 옮겼다.
만약 일본의 쇼군이 부른 것이었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모토나리는 신유성을 믿었다. 요시시게는 물론 신페이에게도 영지를 맡기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적에게는 잔인하지만 아군은 확실히 챙기는 것은 소문이 났다. 원정을 하거나 약탈을 하면 꼭 병사들에게 배당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을 잘 지켰고 이것이 소문이 났기 때문에 모토나리가 밑으로 들어갈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했다.
“주군, 신 모리 모토나리입니다.”
궁에 도착한 모토나리는 공식적으로 신유성에게 인사를 올렸다.
모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인사였다.
“그래, 앞으로 한양에서 지내겠다고?”
“주군을 보필하고 싶습니다.”
“영지는 어쩌고?”
“영지는 이제 주군의 군대가 있지 않습니까?”
“날 너무 믿는 것 아닌가?”
“주군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모토나리의 아부에 신유성은 웃었다. 속이 다 보이지만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 마음 변치 않았으면 좋겠군.”
이후 모토나리는 한양에 거대한 집을 샀다. 그리고 많은 것을 즐길 수 있었다. 특히 도자기를 사서 모으기 시작했다.
한편, 모토나리가 한양에서 살게 되자 이를 불편하게 여긴 이들이 있었다. 조선의 양반들이었다.
아래로 내려다보던 존재가 바로 옆에 들어와 떵떵거리며 살게 되니 아니꼬웠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조선 사람이 왜인과 붙어먹다니!”
“그러게 말일세.”
아직도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양반들은 은근히 신유성을 욕했다. 욕을 하는 자리는 한 양반의 집에서 벌어진 술판이었다.
“더구나 여진족까지! 에이 더러워서!”
불만이 있는 이들은 연신 신유성을 욕했다. 오랑캐의 힘을 빌려 나라를 뒤집은 역신이라면서.
허나, 자리에 모인 모든 이들이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다.
“난 그만 가봐야겠소.”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율곡이 우릴 이끌어주지 않으면 누가 이끌어주겠소?”
“소생은 이끌 생각이 없소이다.”
율곡 이이는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절에 들어가 생활하다 나왔더니 세상이 변했다. 신유성의 밑에 들어가길 거부했는데 신유성의 나라에 사는 백성이 되어버렸다.
‘거 참.’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신유성의 손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
더구나 신유성이 하는 일들은 이이가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신유성은 서자도 차별하지 않고 등용했다. 가장 많이 바뀐 것은 바로 조정이었다.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바꾸었다.
전문 분야의 관청을 만들고 책임자는 무조건 해당 지식을 가진 이에게 맡겼다.
예전에는 대신들이 중인들에게 일을 시켰지만 이제는 달랐다. 중인들에게 직접 벼슬을 내렸다.
이 때문에 한양을 비롯한 조선 전체에서 신유성에 대한 지지가 올라갔다. 각 지방의 관청에 있는 아전들을 비롯해 중인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다. 이들이 없으면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신유성이었다.
중인이니 뭐니 하는 차별 같은 것도 없었다. 천민이라고 차별하는 것도 없앴다.
윤원형을 직접 칼로 죽인 일은 조선의 망나니들에게는 구원이 된 사건이었다. 백정 중에서도 인간을 죽이는 백정이라며 온갖 천대를 받았었지만 신유성이 직접 윤원형을 죽인 일이 퍼지자 아무도 망나니를 대놓고 욕하지 못했다.
망나니를 무시하게 되면 신유성을 욕하게 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모르겠구나.’
이이가 보기에 신유성은 성인군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이 옳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라의 주인이 바뀐 뒤 백성들의 삶은 빠르게 개선되었다. 더불어 신유성을 향한 지지는 한없이 올라갔다.
‘진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고 있다.’
이이가 생각했던 문제였다. 신분의 차별을 없애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것은 이이가 가장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이루기 무척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것.
허나, 신유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니 너무나 쉽게 해결 되었다.
‘좋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이이의 마음은 조금씩 신유성에게 기울었다.
‘다음에는 또 무엇을 보여줄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생각은 끊임없이 신유성이 보여줄 미래를 예측하느라 바빴다.
‘천하를 얻으려는 걸까?’
일본의 영주를 휘하에 받아들이고 한양에 살게 한 일도 파격적이었다.
‘만약 이번에 벌어졌던 일이 계속 된다면.......’
신유성은 일본을 더 토벌하지 않고도 일본을 발아래 둘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왜인마저 받아들이겠다는 건가?’
성인군자는 아니지만 통이 크다는 것은 확실했다.
‘여진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은?’
명나라.
수순이 그랬다. 명나라를 거치지 않고는 그 건너에 있는 나라들을 굴복시키기는 어려웠다.
‘너무 섞으면 혼란스럽게 될 텐데.’
이이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양반들과 교류를 하며 무엇인가 시도해보려 했으나 포기했다.
신유성을 몰아낼 생각을 하는 양반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들과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조선이 멸망한 과정을 조금 들어본 이이는 신유성이 반란 때문에 무너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조선에서 벌어지는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지 않은 이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이는 결국 신유성을 찾아갔다.
“전하. 소신을 꾸짖어주십시오.”
“흠.......”
이이가 직접 찾아왔다는 말에 신유성은 만나주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이가 등용을 해달라며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날 위해 일할 건가?”
“맡겨 주시면 분골쇄신하겠습니다.”
“그건 안 되지. 아파도 안 되고 죽어도 안 돼. 살아 있어야 날 위해 일 할 것 아닌가? 인재는 얻기 힘들다. 무리해서 죽는다면 내 손해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이는 뭔가 기분 좋으면서도 나빴다. 마치 자신을 물건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였다. 허나 이런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성인군자도 아니고 탐욕스러우며 거칠었다. 하지만 그런 주제에 백성들은 또 잘 챙겼다. 물론 잘 챙기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도움이 되니까.’
백성들을 통해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룰 힘을 얻고 있는 것이었다.
철저한 계산에 의한 거래 관계였다.
이런 관계는 이이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했던 일을 현실로 이끌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곁에서 지켜볼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사실을 보고 기록해 후대에 남겨야 한다.’
학자로서의 사명감이었다.
“우선은 이지번을 돕도록 하라.”
신유성은 이이를 이지번에게 붙여주었다. 며칠 후 이지번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과도한 업무로 항상 피곤한 얼굴을 했던 이지번이었다. 그러나 이이가 합류한 이후 업무로 시달리는 일이 확 줄어들었다.
이이는 이지번은 물론 이산해도 아득히 능가하는 업무 처리 능력을 가진 천재였던 것이었다.
여기에는 물론 신국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천재의 호기심도 한몫했다.
천재가 열을 내면서 업무를 처리하니 이지번이 오히려 한가할 지경이었다. 하나를 명령하면 열을 알아서 해버리니 정말 편했다.
“주군,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
이지번은 자신의 자리를 이이에게 넘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리에 욕심은 없나?”
“그라면 저보다 더 잘 할 것입니다.”
“아니, 이 땅은 그대가 계속 맡아야 한다. 율곡은 더 큰 곳을 맡길 생각이니까.”
‘대체 어딜까? 설마?’
이지번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거대한 명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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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