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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남명 조식은 탄식을 내뱉었다.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이.......’
조선이 망했다. 아무리 한숨을 내쉬며 외면해보아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꿈이 아니다. 망연자실한 상황에 빠졌던 조식은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관심을 끄는 소식을 접했다.
“조정 대신들을 모두 집현전에 가두었다고 합니다.”
명종을 모시던 조정 대신들은 대부분 노비가 되었다. 예외는 없었다. 충신이고 간신이고 할 것 없이 전부 노비로 삼았다. 그리고 집현전에 몰아넣고 일을 하게 만들었다.
“어찌 그런 일을.......”
조식으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조선에서는 죄인이 되면 죄인에 대한 기록을 전부 불태우고 없애버렸다. 조정 대신이라고 해도 역모로 걸려들면 그가 썼던 책들은 모두 불살랐다. 그런데 신유성은 오히려 반대였다.
죄인에게 책을 쓰게 만들고 있었다. 더구나 죄인들이 썼던 책을 없애라는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다.
한 명의 학자로서 조식은 호감을 느꼈다. 아무리 대역 죄인이 되어도 그가 썼던 책들을 모두 없애는 것은 아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상과 관련된 것이라면 없애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으나 조선의 선비들이 쓴 책이 꼭 사상과 관련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나봐야겠구나.”
껄끄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신유성은 역관의 자식이었다.
‘그때는 내가 어른이었는데.’
이젠 신유성을 윗사람으로 모셔야 할 판이었다.
“허허.”
그저 신동이라고 생각했던 신유성. 역관의 자식이기에 조정에 발을 들인다 해도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신유성은 어느 날 갑자기 명나라 황제의 부마 겸 정1품 도독이 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여기서 멈추지 않고 왕으로 봉해진 뒤 결국 조선을 삼켰다.
조식도 듣는 귀가 있기에 신유성을 마냥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윤원형 그자가 결국 나라를 망쳤어.’
문정왕후도 빼놓을 수 없었다. 어린 왕을 앉혀놓고 권력을 쥐고는 흔들었다. 백성의 삶을 살펴야 함에도 자신들의 권력만을 생각했다. 그러다 다급해지니 결국 전쟁으로 해결하려 했다.
‘어려서부터 전쟁을 해온 사람이거늘.’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결국 신하가 될 그릇은 아니었던 거야.’
어렸을 때의 행보가 그랬다. 일본으로 건너가더니 갑자기 계속 위로 치고 올라간 것이었다. 조용히 학문에 정진하며 누군가를 섬기는 성정은 절대 아닌 것이었다.
조식은 자존심을 접고 만나기로 했다.
제자인 정인홍을 이끌고 조식은 한양으로 향했다.
한양.
모리 모토나리는 아들 다카모토에게 영지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이제 가보아라. 신국의 영주로서 영지를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겠습니까?”
“어허. 여긴 내게 맡기고 가거라. 대신 아이들은 이곳으로 보내고.”
모토나리는 다카모토를 돌려보기로 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가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젠 네가 영주다. 그리고 가서 얼른 해야 할 것이 있다.”
한양에서 산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모토나리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상인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한양의 발전 양상을 보며 느낀 것이었다. 무엇보다 조선을 삼킨 과정을 자세히 알게 되자 소름이 돋았다.
‘발전하지 않으면 먹힌다.’
영지가 발전하지 못하고 낙후된다? 그렇다면 허울뿐이 몰락 영주가 되는 길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저 땅을 좀 많이 가진 대지주가 되는 것이었다.
신유성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요구한 이유는 그래서 치명적이었다.
조선을 비롯한 신유성의 입김이 직접 닿은 곳들은 모두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홀로 낙후된 영지로 남는다면? 인구가 감소한다.
인구 감소는 생산력 감소로 이어지고 곧 권력 약화를 의미했다.
그러니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발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신유성은 영주에게 각자 알아서 영지를 꾸리라고 했지만 결국 자신의 방식을 스스로 따르게 만든 것이었다.
신유성이 만든 법들에 백성들이 환호하면 영주들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안 따르면 결국 영지민들이 이탈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모토나리는 다카모토를 다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상인들을 키울 것을 명했다.
“앞으로는 상인들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러니 네가 직접 챙겨야 한다. 남에게 맡긴다면 네가 영주라고 해도 결국 뒤처지게 될 것이다.”
가신들이 실의에 빠져 있는 지금이 적기였다. 지금 상인들을 키워 크게 앞서나가야 했다.
설명을 들은 다카모토는 이해했다. 그리고 슬쩍 다른 생각도 품었다.
‘만약 내가 더 나은 영지를 만든다면?’
사람들이 반대로 자신의 영지로 몰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슬쩍 미소 지었다. 하지만 모토나리는 아들의 미소를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미련한 놈.’
속이 보였다.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신유성을 앞지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신유성도 결국 좋은 것을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그럼 다시 신유성이 앞서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신유성에게는 채굴권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꿈을 꾸는 것은 좋은 것이지. 경쟁을 하겠다는 마음이라도 있으면 더 앞으로 나아갈 테니까.’
모토나리는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다음 날, 아들을 영지로 돌려보낸 모토나리는 주변의 상인들을 초대해 대접했다.
이후 모토나리는 영세 상인들을 모아 하나의 상회를 만들었다.
한편, 일본은 난리가 났다. 모토나리의 선택 때문이었다.
특히 바로 옆에서 이와미의 은광을 노리던 아마고 하루히사는 기겁을 했다.
‘큰일 났다!’
이와미의 은광은 막대한 부를 보장해주는 보물단지. 모리 모토나리의 세력을 강화시켜주는 보약을 가로채려고 노리고 있었는데 이것이 신유성에 넘어갔다.
은광은 이제 신유성의 소유였다. 그리고 모리 가문은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신국의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국이라니!’
하극상이 수도 없이 일어나는 전국시대. 모토나리는 아예 나라까지 갈아타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으로 일본의 영주는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국을 받아들이면?’
지금의 영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세력이 약한 영주들은 엉뚱한 생각을 했다. 영주들 밑에 있는 봉토를 가진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절호의 기회!’
신국이 된다면 다른 영주의 공격을 무서워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영지는 대리인에게 맡기고 모토나리처럼 한양으로 가서 살면 될 일이었다.
아마고 하루히사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가신들이 배신하고 신국에 붙으면 가신들과 같은 영주의 입장에 서게 될 뿐이었다.
하극상이 판치던 전국시대의 가신들이니 야심 있는 자가 없을 리가 없었다.
‘기선을 제압해야 해!’
이젠 모리 가문이 문제가 아니었다. 모리 가문은 건드릴 수도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남은 것은 가진 것만이라도 지키는 것.
하루히사는 신국으로 밀사를 보냈다.
하지만 밀사를 보낸 것은 하루히사만이 아니었다. 소문을 들은 일본의 수많은 가문들이 은밀히 신국으로 밀사를 보낸 것이었다.
소문은 오다 노부나가에게도 들어갔다.
“이런.”
일의 심각성을 파악한 노부나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렇게 지는 것인가?’
노부나가는 쉬지 않고 노력했다. 하지만 노부나가가 한걸음씩 나아갈 때 신유성은 천리를 날아갔다.
약속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되는 날 더 큰 세력을 가진 사람을 모시기로.
어린 시절 장난처럼 했던 약속이었으나 신유성의 성장 소식을 들을 때마다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하지만 신유성과 달리 노부나가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가신들을 정리하고 외부와의 싸움도 신경 써야만 했다.
철포를 사들이고 훈련시키느라 쓴 돈은 어마어마했다. 처음에는 철포 가격이 많이 들었지만 나중에는 화약 값이 더 들어갔다.
그래도 노부나가는 차근차근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모든 것이 무너지게 생겼다.
‘가신들이 떠나겠지.’
지금까지는 외부와의 경쟁 때문에 노부나가를 따랐다고 하지만 이젠 규칙이 달라졌다.
신국의 영주가 되면 무조건 자신의 영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 어떤 영주도 신국에 대항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조선이었다면 겁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북해도와 큐슈를 지배하고 있는 신국은 두려웠다.
모든 영주들이 연합해 싸우려고 든다면 이길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단합할 것 같았으면 영주들이 서로 싸울 일도 없었다.
각자의 이해관계. 욕망에 의해 붙었다 떨어졌다 할 뿐이었다.
“음.......”
노부나가는 고민했다.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절대 굽힐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세는 어쩔 수 없었다. 굽히지 않는다면 홀로 남게 된다. 가신들이 배신하지 말란 법은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나?’
노부나가는 피식 웃었다.
“밀사를 보낸다.”
결국 노부나가도 대세에 합류했다.
마쓰다이라 모토노부. 한 때 마쓰다이라 다케치요란 이름을 가졌던 소년은 한 가지를 계획했다.
‘밀사를 보낸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미카와로 돌아왔을 때, 이마가와 가문에서 보낸 대리 영주가 미카와를 수탈한 것을 보고 울분을 삼켜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여동생이 낳은 딸과 결혼까지 하게 생겼다.
하지만 벗어날 길이 보이고 있었다.
“한조.”
“네!”
“네가 가라.”
이제는 그림자와 같은 수족인 핫토리 한조를 밀사로 신유성에게 보내는 모토노부였다.
‘받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릴 때 헤어진 이후 다시 만나지 못했던 신유성을 떠올리던 모토노부는 어릴 적 신유성이 그려주었던 그림을 꺼내보았다.
다케다 신겐도 나가오 가케토라도 모토나리의 소식을 들었다. 신유성의 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한 것을. 어떻게 보면 바보 같은 짓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얼마 뒤 모리 가문은 엄청난 수의 상인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나가사키는 물론 한반도와의 교역이 활발해지며 자유롭게 교역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었다.
“밀사를 보낸다.”
뒤쳐질 수 없었다. 신국의 군대는 무시무시했다. 특히 엄청난 수의 기병은 영주들을 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가이의 용이라 불리며 무적의 기마 군단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다케다 신겐도 두려워하는 것이 신국의 여진 기병이었다.
후일 우에스기 켄신이라 불릴 군신 나가오 가케토라도 마찬가지였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신국의 군대였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나가오 가케토라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투도 그렇고 망설이는 사람들은 쉽게 죽었다. 망설이는 순간 죽음의 칼날이 몸을 훑고 지나가기 때문이었다.
전쟁터에서 산다는 것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았다.
가케토라는 기회다 싶은 생각이 들자 바로 실행에 옮겼다.
밀사를 보내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호조 가문도 다테 가문도 그리고 난부 가문도.
일본의 모든 영주들이 신유성에게 밀사를 보내고 있었다.
한편, 신유성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곁에는 화진이 알몸으로 안겨있었다.
“이렇게 하면 좋아요?”
주녹정의 허락을 받고 여러 번 관계를 맺었던 화진의 손길은 무척이나 음란했다.
“응. 하지만 손보다는 다른 것이 좋겠는데?”
화진은 활짝 웃으며 신유성의 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엉덩이를 내렸다.
“흐응!”
신유성은 여유를 즐겼다. 사실 즐길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사에 더욱 치중하는 면도 있었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는 것도 한계는 있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신하들이 원정을 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특히 배를 타고 어디 가는 것은 절대 안 된다며 반대했다. 병에 안 걸렸었지만 소용없었다.
조선을 꿀꺽한 왕이 되었으니 이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가려면 자신을 죽이고 가라는 말에 신유성도 고집을 부릴 순 없었다.
문제는 아이가 없는 것. 그래서 신유성은 틈이 날 때마자 질펀하게 정사를 벌였다.
“하아아아앙!”
화진은 몸을 들썩이더니 늘어졌다. 신유성의 씨가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자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나갈까요?”
“아냐. 그냥 있어.”
지나친 정사는 오히려 고통스럽다. 그러니 적당히 하는 것이 좋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신유성은 대충 옷을 입고 궁 안을 거닐었다. 주변에는 온통 여자뿐이었다.
신페이가 여자 닌자들을 보내준 덕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은 이미 세계로 향하고 있었다. 신하들이 원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신유성이 직접 가면 안 된다고 잡고 있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주녹정과 여자들이 아이를 갖게 하는 것.
하지만 아이를 갖게 해도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내야 하나.’
갈등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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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