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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00화 (10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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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이게 대체?’

밀사들이 밀려왔다. 모두 일본의 영주들이 보낸 밀사들이었다. 영주도 있었고 영주를 배신한 가신도 있었다.

신유성에게 인정받기만 하면 자신의 구역을 확실히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나도 밀사를 보낸 것이었다.

신유성은 밀사들을 하나씩 만나기가 귀찮아 모두 한 곳에 모이게 했다.

한 곳에 모인 밀사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래, 여러 말 않겠다. 나의 요구를 말하지.”

신유성은 모토나리에게 내건 것과 같은 것을 요구했다.

“정말 그것이면 됩니까?”

“그렇다. 대신 날 기만하는 자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경고였다. 행여나 신유성과 신국을 이용해 먹고 배신을 한다면 없애버리겠다는.

이야기가 끝나자 밀사들은 돌아갔다. 그리고 이지번과 이이가 축하 인사를 했다.

“감축 드립니다.”

“내가 뭐 한 거 있나?”

“전하께서 덕망을 쌓으셨으니 그들이 무릎을 꿇은 것이지 않겠습니까?”

“재미있는 농담이었다. 율곡.”

모두 신유성의 덕망 때문이 아니란 것쯤을 알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불리해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것뿐이었다.

“나 보다는 모토나리 덕분이지. 그가 시작한 거나 다름없다. 그나저나 그는 요즘 뭘 하고 있지?”

“상인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야.”

“항상 주의 깊게 살피고 있으니 심려치 마십시오.”

이이와 이지번의 눈이 빛났다. 신유성이 경계하는 사람이니 방심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너무 차별은 하지 말도록. 차별하면 할수록 그들은 멀어지게 되니까. 시간이 지나면 그들 또한 완전히 신국의 사람이 될 것이다.”

문화의 융합은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리고 문화가 융합하지 못하면 결국 사람들은 분열하게 된다.

“강하게 누르면 누를수록 사람들은 반발할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먹이를 앞에 두고 살랑살랑 흔들면 넘어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끌고 가려 하면 물어뜯으려 한다. 반항한다.

이지번과 이이는 신유성이 아주 멀리 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영주들이 보낸 밀사를 만나고 돌아오자 주녹정이 나타났다.

“오늘은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매화는 언제 안아주실 건가요?”

“음.......”

매화는 어느새 꼬마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쑥쑥 자라 벌써부터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젠 혼자 남았잖아요. 어서 안아주세요.”

주녹정은 신유성이 매화를 안기를 원했다. 보통 여자라면 신유성이 더 많은 여자와 가까워 지는 것을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녹정은 황실에서 자랐다. 그것도 가정제의 딸이었다.

가정제가 얼마나 아들에 집착하는지는 주녹정은 아주 잘 알았다.

온갖 기괴한 일을 벌이며 불로장생을 꿈꿀 정도였으니까.

기행을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권력이었다.

후계자가 없으면 신하들이 다른 자를 알아볼까 싶어 기행을 시작하고 그것이 효과를 보자 무섭게 집착한 것이었다.

‘차라리 얼른 아이를 갖는 게 좋아.’

주녹정은 살짝 불안했다. 신국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제는 명나라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 그렇기 때문에 불안은 더욱 커졌다.

자식이 없는 신유성이 이상한 것에 집착하게 될까 싶은 불안이 자꾸 생겼다.

매화가 스스로 만든 정보 단체를 통해 신유성을 돕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드는 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다.

‘절대 그 사람처럼 되선 안 돼.’

그러니 얼른 아이를 낳고 싶었다. 누구의 자식이든 아들을 낳아서 신유성이 이상한 도사들과 만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표정이 좋지 않은데 무슨 걱정 있어?”

“전하께서 이상한 길에 빠질까 걱정했을 뿐입니다. 어서 매화를 취하세요.”

주녹정은 매화가 있는 곳으로 신유성을 이끌었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기도 했지만 매화는 항상 신유성을 생각했다. 세상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모셨던 주인.

신유성 이외에 다른 사람과 살게 되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오늘.

매화는 신유성에게 드디어 안길 예정이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일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니 매화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거렸다.

‘떨려.’

살짝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도망갈 순 없었다.

도망간다면 두 번 다시 신유성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될 테니까.

주녹정이 직접 마련한 자리였다. 거부한다면 다시 기회를 주지 않을 공산이 컸다.

잠시 기다리자 신유성이 들어섰다.

뜨거운 눈빛을 마주하자 몸이 녹아버릴 것 같았다.

그 사이 다가온 신유성은 매화의 옷을 벗기고 품에 안았다.

맨살이 닿자 정신이 없었다. 매화는 몽롱한 표정으로 신유성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매화의 몸은 흔들리고 정신은 어딘가 먼 곳에서 부유했다.

아픔 뒤에 차오르는 기쁨에 눈물이 흘렀다.

‘됐어.’

소원을 이루었다. 매화는 신유성의 품에서 여인이 되었다.

이후 며칠 동안 신유성은 다른 여인들을 돌아가면서 안아주게 되었다.

신유성의 환락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 부지런히 움직인 조식은 한양에 도착했다. 그리고 예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고 놀랐다.

“많이 변했구나.”

“그렇습니다, 스승님.”

정인홍도 살짝 놀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은 온통 시름에 잠겨있었다. 연속된 기근과 수탈에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있었다.

그런데 신유성이 조선을 점령한 뒤에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조선 곳곳에 상인들이 돌아다녔으며 떠도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길을 만드는 데 동원된 인부들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

식량 사정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말린 생선들 덕분이었다.

여기까지가 한양으로 오기 전까지 본 모습이었다. 그래서 한양이 어느 정도 변했으리란 것은 예상했지만 지금 보는 광경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한양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외치는 사람들로 거리는 온통 시끄러웠다. 활기가 돌았다.

대량의 물건이 움직였다. 사람들은 바쁘게 일했다.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양 곳곳에 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루는 좀 더 크게 만들어졌다. 한강에는 배가 잔뜩 떠있었다.

활발한 한양을 본 조식은 기분이 좋아졌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모습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얼른 가자.”

조식은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다 눈길이 가는 사람을 보았다. 복색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왜인이군.’

나이 든 남자가 사람들에게 뭐라고 떠드는 모습을 보자 관심이 생겼다.

‘여기서 저럴 정도면 보통 사람은 아닐 텐데.’

너무 궁금해서 지나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보았다.

“아, 저 사람은 얼마 전에 나랏님에게 충성 맹세한 영주라던데요.”

“그럼 저기서 뭐하는 것인지 아나?”

“듣기로는 상점을 연다고 하던데요?”

“허어.”

영주가 상점을 연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영주라면 그래도 꽤 높은 신분이었다. 그런데 직접 장사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을 보자 뭔가 달라보였다.

조식은 궁금했으나 만날 사람이 있기에 일단 이름만 기억해 두었다.

‘모리 모토나리. 나중에 얘기나 한 번 해봐야겠군.’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획하고 지나갔다.

“뭣이? 남명이 찾아왔다고?”

“그렇습니다.”

조식이 찾아왔다는 말에 신유성은 만나기로 했다. 조식은 그저 그런 학자가 아니었다. 영남의 거두였다. 조식을 끌어들이게 되면 그 밑에 있는 제자들이 줄줄이 신유성의 편에 서게 되는 것이었다.

“얼른 보자.”

잠시 기다리니 조식이 한 남자와 나타났다.

“오랜만이다.”

“격조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신유성이 조식에게 존대를 했었다. 하지만 이젠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었다. 신유성은 조식을 내려다보았고 조식은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옛날 생각했다면 찾아오기 힘들었을 텐데.’

속으로 감탄하던 신유성은 찾아온 용건을 물었다.

“노비들이 쓴 책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용건은 간단했다.

신유성이 노비로 만든 이들의 책을 어찌할지 궁금했던 것이었다.

“모두 남길 것이다.”

“그것이 삿된 내용이라 하더라도 말입니까?”

“삿된 것이라도 남길 것이다.”

“다른 이들이 읽고 그릇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위험한 것은 금서로 지정해 보관할 것이다. 자격이 있는 자만 보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것은 등급을 나눠 사람들이 보게 하면 된다.”

“어이하여 그리 하시는 것입니까?”

신유성은 조식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주었다. 어찌 보면 조식이 추궁하는 모양새였으나 신유성은 이를 탓하지 않았다.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남긴 것이다. 거기에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야지. 남긴 것이 쓸모  없는 것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외면할 것이다. 하지만 모아두면 언젠가 좋게 쓰일 날이 올지 모른다.”

새옹지마가 떠오르는 말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또 다른 실천이 아닌가!’

학문의 실천을 중시하는 조식은 크게 감동했다. 그래서 땅에 머리가 닿도록 조아리고는 크게 외쳤다.

“부디 소인을 거두어주십시오!”

우렁찬 목소리로 외치는 조식은 신유성의 그릇을 느꼈다.

‘더 큰 것을 이루려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대해처럼 넓구나!’

학자로서 학문을 하다보면 가장 아쉬운 것이 바로 좋은 사람의 책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죄인이라는 이유로 아예 기록들을 말살해버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사화를 여러 번 거치며 그런 식으로 남겼던 글들이 사라진 사람들을 조식은 보았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신유성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긴 해도 글까지 없애지는 않았다. 때문에 조식은 신유성이 학문을 중시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대가 도와준다면 나의 꿈을 더 빨리 이룰 수 있겠다.”

“무엇을 이루시려 하십니까?”

“이루고자 하는 것은 많다. 하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다.”

잠시 뜸을 들인 신유성은 먼 곳을 응시했다.

“바다를 지배할 것이다.”

“바다를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천하를 아우를 것이다.”

쿵. 심장이 펄떡 뛰었다. 조식뿐만 아니라 옆에서 듣고 있던 정인홍을 비롯해 자리했던 모든 이들의 심장이 뛰었다.

예상은 했었으나 신유성이 직접 말하니 무게가 달랐다.

“하지만 배만 많이 만든다고 바다를 가질 순 없다. 만물의 이치를 끊임없이 파헤쳐 이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힘들다. 그러니 글을 아는 자들을 대우할 것이다. 온 백성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문맹을 없애겠다는 선언에 이지번과 이이의 심장은 벌렁거렸다. 학교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또 감격이 몰려왔다.

“분골쇄신하겠습니다!”

조식은 크게 외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벼슬을 계속 내치기만 했던 조식이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조식과 정인홍이 합류하자 이이는 할 일이 확 줄어들었다. 그래서 이지번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할 일이 줄어드니 좋기도 하지만 마음이 불편합니다.”

“허허, 쉴 수 있을 때 쉬는 게 좋은 것 아니겠나?”

“그렇긴 하지만.......”

이이는 얼른 보고 싶었다. 신유성이 열 새로운 세상을. 그렇기에 일중독이라고 할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 그런데 이이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조식과 정인홍이었다.

스승과 제자가 뭉치니 업무처리 속도가 엄청났다.

“곧 있으면 일이 늘어날 걸세. 왜의 영주들이 전부 넘어왔으니까.”

“그럼 그때까진 쉬는 게 좋겠군요.”

일본의 영주들이 합류한 이상 업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신경 써야 할 구역이 더 넓어지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그들과 일을 할 때 편하려면 왜어를 좀 익혀두는 것도 도움이 될지 모르겠군.”

“그렇군요. 그게 있었군요.”

이이의 눈이 번뜩였다.

‘주군께서 여러 나라의 말을 하시니 나도 그러는 게 좋겠군.’

신유성이 할 줄 아는 말은 참 많았다. 그 어떤 역관도 신유성보다 많은 종류의 말을 알지는 못했다.

‘주군과 함께 하려면 해야 한다.’

이이의 도전 정신이 불타올랐다. 신유성이 해낸 것이니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이후 이이의 외국어 학습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돌연 조식과 정인홍도 외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빠진 것은 이지함이었다. 의서를 읽겠다고 여러 나라 말을 배운 탓이었다.

“에이, 바빠 죽겠는데.”

이지함은 투덜거리면서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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