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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마츠다이라 모토노부. 다케치요라는 이름을 가졌던 꼬마는 성장하여 소년 영주가 되었다.
이름을 바꾼 것은 관례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이었군.”
신유성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왕과 신하로 만나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예전처럼 돌아가진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것은 둘 다 별 다른 지위를 갖지 않은 어린 시절에나 가능한 것이었다.
“전하, 하나 허락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습니다.”
“말해라.”
“개명을 하고 싶습니다.”
“개명을?”
“이제 전하의 신하가 되었으니 이름을 새롭게 해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다케치요가 이름을 바꾸길 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관례에 받은 이름은 이마가와로부터 받은 이름. 절대 다케치요가 원하는 이름이 아니었다.
이름에 대한 사연을 들었기에 이를 이해한 신유성은 당연히 허락했다.
“그래, 정해둔 것은 있고?”
“이에야스로 할까 합니다.”
“응?”
이에야스란 이름은 굉장히 익숙했다.
“성은 도쿠가와로 바꿀까 합니다.”
“뭣이?”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케치요는 아예 이름을 몽땅 갈아치울 생각이었다. 이름을 모두 새롭게 해 자신이 씨족의 시조가 될 생각이었다. 마츠다이라라는 성씨에 미련이 없는 이유는 어린 시절 때문이었다. 모든 인연을 끊고 새롭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것이었다.
성씨를 바꾸고 이마가와의 흔적을 지워버리며 이에야스란 이름으로 개명하는 이유였다.
‘니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냐?’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멋진 이름이구나.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다케치요, 아니 이제는 이에야스라 불릴 소년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과거와의 인연을 모두 끊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름을 바꾸었으나 새로운 이름을 인정한 이가 바로 신유성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형님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이에야스를 돌려보낸 뒤 신유성은 홀로 정자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것 참.’
알 수 없는 운명이었다. 노부나가를 얻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이에야스까지 얻었다.
다케치요가 이에야스가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못한 신유성이었다.
‘그래도 다케치요는 다케치요지.’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이름을 생각하면 살짝 두려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끈기 있게 기다리며 결국 일본은 삼킨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남자. 하지만 때를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리자 갑자기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다.
같이 놀고 싶으면서도 손을 뻗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아이.
‘방심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멀리하지도 않는다.’
기쁨과 동시에 슬픔이 가슴 속에서 뒤섞였다.
군주이기에 결국 순수하게 이에야스와 만난 것을 기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특히 이름을 알게 된 순간 경계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즐거운 추억에 금이 가는 것 같아 신유성은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다음 날, 신유성은 후지바야시 켄을 불렀다.
“해줘야 할 일이 있다.”
주문한 일은 바로 대만을 접수하는 것이었다.
“가서 신국의 영주가 될 것인지 물어라. 되겠다고 하면 일본의 영주들과 동일한 대우를 해주고 거부하면 점령해라.”
대만은 필리핀으로 가는 항로에 꼭 필요한 중요한 지역이었다. 필리핀에서 에스파냐를 몰아내고 말라카를 거쳐 인도쪽으로 뻗어나가며 포르투갈과 싸우려면 중요한 항로를 개척해야만 했다.
항로를 개척한다는 것은 곧 필요한 항구를 만든다는 것.
남의 항구를 빌리게 되면 여러 가지 이유로 뜯기는 것도 많고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이 자국의 항구라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남만과의 해상 전쟁에서 싸우기 위해선 대만은 꼭 필요했다.
“주군께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켄은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는 표정으로 나갔다.
홀로 남게 된 신유성은 지도를 바라보았다.
‘유구는 이미 넘어온 상황이고.’
화진을 안게 되면서 유구 왕국의 국왕은 결국 신유성에게 넘어왔다. 예전부터 함께 할 생각을 했었으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유구는 빠르게 발전했다.
일본과 명을 이어주는 중요한 해상 교역로였기 때문이었다.
‘대만을 손에 넣고 나면.’
노부나가가 지휘하게 될 군단을 대만에 주둔시킬 생각이었다. 그것이 가장 편했다. 만약의 경우 명나라와 적대하게 될 경우 바로 해안을 털어버릴 수 있는 곳이니까.
‘아마도 좋아하겠지.’
약탈을 하면 배당을 준다. 이 때문에 신유성의 원정군에 들어가려는 이들은 줄을 섰다.
어쨌거나 대만에 군단을 주둔시키면 명나라는 물론 필리핀에 들어온 에스파냐를 압박하는 최전선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일본을 완전히 손에 넣게 되니 신경 쓸 일이 하나 줄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곧바로 다음 상대를 찾아 움직일 뿐이었다.
에스파냐.
펠리페 2세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조공?”
“그들과 동방과 교역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음.......”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향신료를 찾으라고 보낸 곳에 거점을 만들긴 했다. 그러나 향신료는 찾지 못하고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명나라에서 조공을 바치라고 한 것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신유성이 바치라고 한 것.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겐 그저 명나라의 의지로 보일 뿐이었다.
‘이런 귀한 것을 그런 이교도들이 독차지 하고 있다니.’
향신료의 경우에는 포르투갈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차의 경우에는 달랐다.
차와 도자기는 펠리페2세도 관심이 가는 것이었다. 특히 물을 끓여 다르게 마시는 차 문화는 우아하게 느껴졌다.
“우린 이런 거 못 만드나?”
“죄송합니다.”
도자기의 광택을 보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차의 경우도 마찬가지.
‘조공이라니.’
하지만 귀한 것을 얻자고 자존심을 팔 순 없었다.
“젠장.”
짜증이 치밀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파산 선고를 해서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부왕인 카를로스 1세가 남긴 엄청난 빚은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래서 파산을 선언했다.
돈? 갚지 않았다.
펠리페 2세가 힘을 가진 군주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을 갚지 않으면 상황은 좋지 않게 흘러간다.
그래서 더더욱 아메리카의 착취에 열을 올렸다. 늘어나는 빚을 막고 현상 유지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아메리카 덕분이었다. 필리핀 이야기를 들었을 땐 얼른 점령해서 향신료를 마구 들여오고 싶었다.
그러면 빚을 단숨에 갚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꿈은 깨졌다.
‘나오라는 향신료는 안 나오고!’
조공을 바치라는 명나라가 나왔다.
“내가 누구에게 조공을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펠리페 2세였다. 그리고 스스로 가톨릭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기도 했다. 펠리페 2세의 입장에서 이교도라 할 수 있는 명나라에 조공을 바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런 것이다.”
펠리페 2세는 차와 도자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이교도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하라.”
“허나 오스만과의 전쟁은 어찌해야 할지?”
“젠장!”
깜빡했다.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으로 군대를 다른 곳으로 돌릴 틈이 없었다.
“이 문제는 미루기로 하지.”
‘오스만 놈들 다음에는 너다!’
명나라의 가정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이 생겼다.
한편, 가정제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뭐라고? 다시 말해보라.”
“부마께서 조선을 멸하셨습니다.”
신유성이 조선을 꿀꺽 했다. 동창에서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일은 끝난 뒤였다.
“어떻게?”
“그것은 잘.”
“뭐라고?”
가정제는 폭발 직전이었다. 동창의 책임자인 환관은 식은땀을 흘렸다.
‘잘못하면 죽는다!’
총애를 잃은 환관의 운명은 비참하다. 총애를 받을 때 만들었던 적들이 총애를 잃는 순간 물어뜯기 때문이었다.
“다만 조선의 왕에게 저자거리에서 치욕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자결을 하게 만든 뒤에는 나머지는 모두 노비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여진들의 상황이 이상합니다.”
“뭐? 여진이?”
“아무래도 부마와 결탁한 모양입니다.”
“그래?”
신유성이 조선과 싸우길 원했었다. 그런 구도를 만들기 위해 도독이란 지위까지 주었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가정제의 예상을 뛰어넘어 신유성은 단숨에 조선을 꿀꺽한 것이었다.
전쟁 중이었다면 끼어들어서 훼방을 놓거나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식을 너무 늦게 접했다. 아니, 신유성의 너무 빠르게 조선을 정리해버렸다.
‘왕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가정제는 처음으로 신유성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
“죽여라.”
“예!”
가정제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약을 먹더니 여자들을 안기 시작했다. 두려움에 질린 가정제의 행동은 평소보다 더욱 거칠어 여자들을 힘들게 했다.
신유성을 죽이라는 명이 떨어지자 명의 조정에서는 논의가 벌어졌다.
“입조하라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겠습니까? 타초경사라 했습니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좋지 않습니다.”
“그럼 어찌하자는 겁니까?”
“축하 사절을 보내지요. 그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사절로 간 이들의 목숨은요?”
“어험.”
불편한 이야기에는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눈빛으로 말할 뿐이었다. 다 알면서 뭐하러 묻냐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결정이 내려졌다. 사신으로 가장한 암살자들을 보내는 것으로.
노부나가는 두 남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다케다 신겐과 나가오 가케토라.
두 사람 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군단장에 임명된 것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우선 두 분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군요. 함께 합시다.”
노부나가는 거침없었다. 망설임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흠.......”
다케다 신겐은 잠시 머뭇거렸다. 무엇이 더 이득이 될지 따져보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겠소.”
반면 나가오 가케토라는 바로 허락했다.
‘역시 소문대로 결정이 빠르군.’
노부나가는 신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겐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키지 않지만 가케토라가 허락하니 빠지지 못한 것이었다.
“전하의 뜻을 받들어 더 큰 세상으로 나가봅시다.”
노부나가는 가슴은 열망으로 가득 차올랐다. 다케다 신겐과 나가오 가케토라를 아래에 둔다면 정말 패배 따윈 없을 것 같았다. 그만큼 두 남자의 전쟁 수행 능력은 뛰어났던 것이었다.
한편, 남사고는 다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일 때문에 미뤄두었지만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갈 때가 온 것이었다.
‘분명 새로운 땅은 있다.’
포르투갈인들로부터 얻은 항해일지와 해도에서 아메리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아메리카의 정보를 접한 남사고는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지도를 만들고 싶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고 싶었다.
특히 새로운 동식물에 대한 흥미도 최근 들어 점점 생기고 있었다. 자신이 발견하게 될 것들이 어쩌면 백성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할 거란 생각에 욕구는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준비를 서둘렀다.
“그럼 소신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자 신유성에게 인사를 올렸다.
“꼭 돌아오라. 무엇보다 목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남사고는 그렇게 떠나갔다.
사할린과 캄챠카 반도를 거쳐 베링해협까지 가는 긴 여정에 오른 것이었다.
타고 가는 배는 새롭게 만들어진 갤리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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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