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103화 (103/271)

0103 / 0271 ----------------------------------------------

전운

“돌아가지 않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선언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집을 알아보죠.”

“청계천. 거기에 집을 사라. 전하께서 사셨던 곳이다.”

중인들이 몰려 살던 청계천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었다. 신국이 세워진 이후 신유성이 중인들을 중심으로 한 조정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청계천에 벼슬을 하는 이들이 속속 나오니 주변 땅값이 치솟았다.

권력자의 근처에 살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 탓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꿈도 꾸기 힘든 가격의 부동산이 많았으나 이에야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작더라도 한 영주의 주인. 청계천에 집을 살 정도의 돈은 있었다.

집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적당히 가격을 쳐주니 내놓는 사람이 있었다. 더구나 이에야스는 신유성과 가까운 사이라고 소문이 난 상태였다.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영지는 알아서들 하도록.”

마치 어찌 되도 관심 없다는 투였다. 제 때에 세금을 내고 이에야스의 생활비만 보내면 된다는 식이었다.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다. 영주 대리라도 오랫동안 실권을 장악하고 있으면 하극상을 저질러 영주가 되는 일이 흔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 없었다.

적법한 절차에 의한 승계가 아니면 모두 불법이었다.

불법은 신유성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다.

영주의 자리를 힘으로 빼앗는 시대는 끝난 것이었다.

물론 이에야스의 가신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에야스가 한양에 머물며 신유성과 더욱 가까워지길 원했다. 그래야 미카와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난 여기서 모토나리처럼 상회를 열까 한다.”

모리 모토나리가 상회를 열었다는 사실이 이미 유명해서 일본 영주들 중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많은 이들이 상회를 열기 시작했다. 직접 상회를 운영하면 조선의 물건을 마구 들여올 수 있으니까.

이제는 일부러 요시시게의 큐슈를 거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요시시게의 수입이 줄어들긴 했지만 요시시게는 다른 방향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그것은 어선을 파는 조선소를 비롯한 물품을 만드는 생산자로 올라선 것이었다.

조선소에서 만들어지는 어선을 사겠다는 사람은 널렸다. 임거정을 따르던 패거리가 괜히 상점을 낸 것이 아니었다.

말린 생선은 그만큼 잘 팔렸다. 기근이 심해질수록 생선의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우리도 생선을 좀 팔도록 하지.”

이에야스는 일단 장사를 이유로 한양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양에 머물게 된 이에야스는 궁을 드나들었다. 신유성은 딱히 막지 않았다. 이에야스를 경계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멀리하지도 않았다.

계속 만나는 것만으로 이에야스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있었으나 내버려두었다.

“그래 상회를 만들었다고?”

“네, 영지의 가신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요.”

어차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얻게 된다. 그러한 것을 일일이 생각하며 사람을 대하면 피곤해진다.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 가서 해결해도 돼.’

어차피 주변에 감시를 하는 사람은 많았다.

“전하. 여기 이것 좀 드세요.”

바로 옆에 음료를 가지고 온 매화처럼. 매화는 결국 조선 출신들을 모아 대량의 밀정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상인들은 물론 기생들과 노비들까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뻗어나갔다.

신분이 낮은 사람만 매화의 정보 조직에 속한 것은 아니었다. 중인이었던 이들도 상당수 포함된 상태. 이들은 높은 자리는 아니지만 이미 조정의 벼슬을 받고 조정을 감시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고맙다.”

매화가 가져온 차를 마셨다. 달콤한 맛이 목을 타고 시원하게 넘어간다.

“정말 맛있군요.”

달콤한 맛에 이에야스는 눈을 빛냈다.

“설탕 좀 썼지.”

“그렇습니까?”

이에야스도 설탕을 알았다. 하지만 감히 차에 설탕을 넣어 마시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탕의 공급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가격이 상당한 소모품이었다. 때문에 신유성처럼 마구 쓸 순 없었다.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딱히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뭔가 같이 먹을 뿐.

그러다 매화가 간식을 내왔다. 이런 일은 시중드는 궁녀들이 할 일이었지만 내가 먹는 음식을 챙기는 일에 매화는 매우 민감했다.

간식으로 나온 것은 단팥빵이었다.

단팥빵을 맛 본 이에야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군요.”

“그래, 맛있지.”

세상에는 좀 더 맛있는 것이 더 많지만 아직 손에 닿지는 않았다.

‘바닐라가 있었다면 더 맛있는 걸 만들 수도 있는데.’

향신료 바닐라. 신유성은 이게 어디 있는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이제는 시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항상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것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새로운 조합으로 요리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신유성이 기억을 더듬어 주문하기도 하지만 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만들기도 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마다 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모든 시도는 전부 기록으로 남겼다. 실패작을 만들어도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실패했다면 적당히 상금을 주었다.

“이건 정말.”

부드럽고 달콤한 단팥빵에 이에야스는 푹 빠졌다.

“그것도 설탕을 좀 썼지.”

“그렇군요.”

이 시대의 평민은 구경하기 힘든 것이 바로 단팥빵이다. 단팥빵 하나를 만들기 위해 들어간 설탕의 양은 엄청나게 비쌌으니까.

‘이걸 판다면?’

이에야스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기왕 장사를 한다면 영주들을 상대로 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단팥빵은 차와 매우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전하, 이걸 제가 팔아봐도 되겠습니까?”

“응? 이걸?”

“네, 이 빵이란 것을 팔아보고 싶습니다.”

“이건 설탕이 많이 들어가서 비쌀 텐데?”

비싸니 수요가 별로 없지 않겠느냐는 것.

“그래도 허락해주십시오.”

이에야스는 허락을 구했다.

“뭐 나쁘지 않겠지. 해봐.”

“감사합니다.”

다음 날, 단팥빵을 만드는 법은 이에야스의 요리사에게 전해졌다. 이후 이에야스는 빵을 팔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고급 자재를 사용한 고급스러운 건물이라 짓는데 시간과 돈이 꽤나 많이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필리핀.

차돌은 신유성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울러 조만간 대만을 접수할 것이란 소식도.

“역시 주군은.......”

순식간에 조선을 꿀꺽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도독이 된지 얼마나 됐다고 왕인가?

차돌은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빠르게 위로 올라가는 신유성을 따라가려면 그만큼 더 강해져야만 했다.

‘대만이라고 했지?’

개인적인 무력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세력. 차돌은 대만을 곧 정복하려한다는 것에 한 가지를 생각했다.

‘잘하면 이곳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필리핀은 정말 자연 재해가 많은 곳이었다. 생활하면서 얘기를 들어보니 태풍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진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 화산이 터질지 모른다고도 했다.

섬으로 잘게 쪼개진 곳이라 하나로 뭉치기도 어려운데 자연 재해가 심했다.

차돌은 바로 대만 정벌군 책임자로 내정된 후지바야시 켄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필리핀군도 대만 정벌에 합류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연락을 받은 켄은 흔쾌히 허락했다. 하지만 대만의 평포족이 순순히 지배를 받아들이면 전쟁을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차돌은 대만 정복이 완료되면 필리핀의 원주민들이 살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다. 이에 켄은 이견을 달지 않았다. 필리핀 원주민이라면 신국에 우호적이니 대만 원주민들을 견제하기에도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뭐라고요?”

필리핀 원주민들은 깜짝 놀랐다. 좀 더 북쪽의 큰 섬으로 가서 살게 해준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여길 버리는 건가요?”

“이곳은 종종 들릴 거다. 하지만 여자들과 아이들이 살기에는 힘들지 않나?”

원주민 남자들을 고개를 끄덕였다. 열대성 기후라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살기 좋다고만 하기도 어려웠다.

언제 터질지 모를 자연 재해는 그만큼 무서웠다. 자신들이 뭔가 잘못해서 계속 신의 분노를 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른 땅으로 갈 수 있다고 하니 귀가 솔깃해졌다.

“가보자. 최소한 이곳에서 겁에 질려 사는 것보다 좋지 않겠나?”

차돌은 모두를 이끄는 입장이었지만 강압적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이런 면이 원주민들에게는 좋게 받아들여졌다.

차돌은 섬을 돌아다니며 마을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모이고 필리핀 북부에 있는 루손섬을 중심으로 뭉쳤다.

그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대만 원주민들과의 전쟁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의욕이 넘치는 필리핀 지방군은 훈련에 적극적이었다.

유구는 그 어느 때보다 번성하고 있었다. 쇼세이의 뒤를 이어 유구의 왕이 되었던 티다, 쇼겐은 결국 신국의 영주가 되었다. 왕의 지위를 버리는 것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야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유성의 성장을 보고는 곱게 접었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부디 화진이 신유성의 아이를 갖길 염원했다. 왕위를 이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유구의 피와 신국의 피가 하나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원할 뿐이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영주들이 유구를 함부로 못할 테니까.

“설탕! 설탕을 더 만들어라!”

사탕수수를 재배해서 설탕을 만드는 것은 이제 유구의 중심 산업이었다. 설탕만 만들어도 유구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유구의 수입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본과 대만을 잇는 중요한 거점이었기 때문에 많은 배들이 들락거렸다. 이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보급하고 휴식처를 제공하는 것으로도 크게 벌어들이고 있었다.

여기에 직접 교역까지 했다. 무엇보다 유구에도 교역소가 생겼다. 설탕을 비롯해 명나라에서 가져온 물품을 유구에서 팔면 유구까지 왔던 일본과 조선의 상인들이 물건을 사가는 형식이었다.

덕분에 유구 영지민들의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 탄탄했다.

쇼겐은 행복했다. 앞으로 신국이 더 커질수록 번영을 더 누릴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보급 물품을 최대한 확보하라! 창고를 더 만들어라!”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가 곧 온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함대가 직접 보급물자를 직접 수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유구에서 어느 정도 준비해야만 했다. 켄이 끌고 오게 될 함대는 그저 그런 함대가 아니었다.

함대들로 이뤄진 대함대였다.

대만을 일시에 점령하기 위한 전력은 한꺼번에 이동시키는 것이 어려웠다. 켄은 결집 명령을 내렸고 결집하게 될 장소는 유구로 정해졌다.

그러니 군대를 위한 보급 물자를 확보해야만 했다.

‘전부 결집하면 300척이라니.’

아주 작정을 하고 모은 것이었다. 300척이란 말을 떠올리며 쇼겐은 침을 꿀꺽 삼켰다.

후지바야시 켄은 굉장히 주의를 기울였다. 함대에 철저하게 시간을 들여 안전한 항로로 움직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꺼번에 움직였다가 날씨가 나쁘면 순식간에 날아간다.’

일본에서 자란 켄은 신풍이란 말을 알고 있었다. 한 마디로 신의 바람. 신이 일본을 지켜준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떠들던 말이었다.

예전에는 켄도 신풍을 믿었다. 하지만 더 이상 믿지 않았다. 이유는 신유성 때문이었다.

설득당한 켄은 더 이상 신풍을 믿지 않았다. 다만 날이 더워지면 남쪽 바다에서 태풍이 북상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계절이 어중간하니 조심하는 게 좋겠어.’

그래서 함대별로 각자 움직이게 한 것이었다. 어차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함대이기에 조선으로 모였다가 다시 유구를 거쳐 대만으로 가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그러니 아예 유구에 결집하게 한 것이었다.

‘만약의 경우에는 필리핀 영주의 지방군을 이용할 수도 있다.’

차돌은 필리핀의 영주였다. 제대로 된 군대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나 무기를 쥐어주면 병사가 되는 것은 다 같았다. 무엇보다 필리핀 지방군은 배에 상당히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나중에 그들의 협조를 받으면 해전이 더 쉬워지겠어.’

켄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일에 몰두했다.

한편, 신국이 대만 원정을 위해 준비하는 동안 명나라 사신이 산해관을 넘었다.

“정말 여진족을 끌어들였군.”

중간에 만나게 된 여진족 전사들은 겉에 모두 붉은 천을 걸쳤다. 기다란 천 가운데에 구멍을 내서 머리를 넣으면 양 끝이 앞뒤로 드리워진다. 그것을 허리띠로 묶어서 군복처럼 사용하는 것이었다.

복장이 완전히 다르니 적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이 훨씬 쉬워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수의 전사들이 같은 복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일체감을 느끼게 했다.

“살아 돌아가긴 힘들겠군요.”

“살 생각은 버려라.”

명나라 사신들은 사실 제대로 된 사신들이 아니었다. 신유성의 업적을 축하한다는 것은 표면적인 이유, 사실은 암살하기 위한 자객들로 구성된 집단이었다.

“이제부턴 말을 조심한다. 우린 죽을 때까지 사신인 것이다.”

“예.”

죽음을 각오한 암살자들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러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선 산해관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두 번 다시 못 보겠지.’

암살자들은 천천히 하늘과 땅을 눈에 새겼다.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될 풍경을 마음에 담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