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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축하 사절이라고?”
“그렇습니다.”
보고를 받은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명나라에서 또 뭔 짓을 할지 모르겠군.’
신유성은 자연스럽게 경계했다. 가정제가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신을 보내 축하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해 보였다.
‘귀찮게.’
어차피 충돌은 기정사실이었다. 명나라 입장에선 급속도로 성장하는 신국을 견제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신유성 또한 명나라를 두고 다른 곳으로 뻗어나가기는 어려웠다.
뒤통수에 거대한 적을 두고 어딜 간단 말인가?
필리핀으로 향할 때만 해도 도독이었기 때문에 명나라를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왕이 되었고 여진족까지 복속시켰다.
명나라에서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 그리고 알게 되었다면 방해할 것이 틀림없었다. 신유성은 이미 동창을 통해 가정제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도 축하 사절이라니. 너무 이상한 일이었다.
“사절을 감시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
수상했다. 그러니 대비한다.
사절 소식은 주녹정에게도 전해졌다.
‘축하할 사람이 아닌데!’
가정제는 자기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축하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사절은 분명 뭔가 있다.”
주녹정은 여자들을 모아놓고 말을 꺼냈다.
“염탐이 목적일까요?”
나츠의 질문에 주녹정은 고개를 저었다.
“염탐이라면 동창으로 충분해. 그들은 그럴 힘이 있으니까.”
“그럼 어떤 속셈이 있을까요?”
“축하를 빙자해 전하를 입조하게 만들려고 왔거나 아니면 축하를 빌미로 와서 시비를 걸 수 있겠지.”
그러자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레이가 나섰다.
“그럼 죽이죠?”
“안 돼. 전하께서도 죽이라 하시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죽이죠?”
레이는 상당히 흥분한 상태였다. 신유성의 적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감히 이곳을 더럽히려고!’
신유성이 있는 곳이 곧 성지였다. 신의 땅이었다.
레이에게 신유성은 신이었다.
그렇기에 신유성에게 안 좋은 마음을 품은 이들이 다가온다니 과격하게 반응했다.
“그래선 안 돼.”
주녹정은 단호하게 말렸다.
“대신 지금부터 모든 명나라 출신들과 명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감시를 시작해야 한다. 어떤 수상한 조짐이 없는지 알아야 해.”
주녹정은 암살을 걱정했다.
신국은 매우 강력한 나라다. 하지만 신유성이 없으면 모래처럼 흩어질 나라이기도 했다.
모두의 머릿속에 암살이란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체첵과 사르나이가 벌떡 일어났다.
“어디가?”
“아버지에게 부탁하려고요.”
부탁 내용은 안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안 된다고 했지?”
“하지만!”
“전하께 누가 되는 행동은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
결국 체첵과 사르나이는 뜻을 꺾어야 했다. 기오창가와 타이란에게 알린다면 사절 따윈 순식간에 척살할 수 있었다. 아니, 사절만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산해관으로 몰려갈 것이다.
산해관만 열린다면 그 다음부터는 여진족이 마음대로 명나라를 유린할 수도 있었다.
“불측한 행동을 할 놈들이니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우려는 여인들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절단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다. 천천히 대접을 받으며 조선을 방문했던 다른 사신들처럼 거들먹거리면서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에 소식은 북해도에 전해졌다.
“불측한 무리들이군요.”
북해도의 닌자들은 분노했다.
“가라. 그리고 지켜라. 목숨을 다해서.”
신페이의 허락이 떨어지자 대규모의 이동이 일어났다. 북해도는 신국의 닌자 양성소의 역할을 하는 중이었다. 이가와 코가 닌자들이 다수 자리 잡은 뒤 계속해서 인구가 유입되었다. 큐슈의 닌자들이 합류한 뒤에는 여기저기서 닌자들이 북해도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북해도의 주민들도 닌자로 성장해 나갔다.
신유성을 신처럼 떠받들다보니 닌자들의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휩쓸린 것이었다.
여기에 조선에서 온 이들도 상당수 교육을 받고 정보원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닌자의 수가 어마어마했다.
분노한 닌자들은 신유성을 지키기 위해 한양으로 몰려갔다.
“전하를 뵙고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가 전할 테니 꺼내시죠.”
“안 됩니다. 황상께서 직접 전하라 하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순 없습니다.”
한양에 도착한 사절단은 신유성을 직접 만나길 청했다. 하지만 이지번과 이이는 이를 거절했다. 좋은 의도로 오지 않은 이들이었다. 굳이 신유성을 만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대명의 천자를 능멸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예전, 조선의 신하였다면 이렇게 꼿꼿하게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신국은 명나라의 눈치를 볼만큼 약한 나라가 아니었다.
신국의 전력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명나라에 머리를 숙인다는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버텨야 한다!’
암살자들의 수장은 끝까지 만날 것을 주장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신유성이 불러들였다. 안 된다고 하니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사고를 쳤기 때문이었다.
“날 보자고 했나?”
신유성과 암살자들의 사이에는 30장이라는 거리가 있었다.
‘멀다.’
멀어도 너무 멀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가까이 부르기 전에는 다가갈 수 없었다. 바로 옆에서 병사들이 암살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황상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암살자들의 수장은 태연하게 상자를 옆의 병사에게 넘겼다.
병사는 상자를 가지고 신유성에게 향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암살자들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잠깐.”
15장을 갔을 때였다. 신유성의 목소리가 울리자 병사는 멈췄다.
“상자를 놓고 물러나라.”
“전하! 어찌 황상이 보내신 것을!”
“조용히 해라.”
신유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위화감을 느꼈다. 사절단으로 보이는 자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는데 무엇인가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좋지 않아.’
신경이 예민해지니 검술을 익히며 습득한 감각이 깨어났다. 사절단의 표정을 자세히 볼 정도는 아니었으나 무엇인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평범한 환관과 다르다는 감각이었다. 그래서 경계심이 생겼다.
“갑옷을 입은 자가 멀리서 장대로 상자를 열어라.”
명령이 떨어지자 갑옷을 입고 대기하던 자가 나타났다. 그리고 기다란 장대로 상자를 열려 했다. 그러자 암살자들의 수장이 외쳤다.
“이럴 순 없는 겁니다! 어찌 이런 불측한 일을!”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이유로 따지고 들었으나 소용없었다.
“열어라.”
병사는 명령을 따랐다. 그 순간 폭음이 일었다. 상자가 폭발하면서 수많은 침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폭발 반경에는 아무도 없었다.
“쳐라!”
누군가 외쳤다.
상자가 열리기 전에 사절단을 감시하던 이들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만약 상자에 무슨 수작을 부렸다면 큰일이 벌어질 테니까.
북해도의 닌자 하나가 상자가 열리려는 순간 신유성의 앞으로 나서며 몸으로 막았다.
그리고 폭발음이 들리자 신유성의 주의로 순식간에 닌자들이 나타났다.
“쳐라!”
동시에 다른 쪽에서 외침이 들렸다.
사절단으로 위장한 암살자들이 상자가 열리는 순간 신유성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은 암살자들의 수장이 아니었다.
신유성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레이가 내린 명령이었다.
여기 저기 숨어있던 닌자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암살자들을 에워쌌다.
전투?
그런 것은 없었다. 암살자들은 순식간에 난도질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변했다.
명나라 사절단의 암살 시도로 한양은 시끄러워졌다.
그런 와중에 신유성은 조용히 단팥빵을 씹었다.
‘어휴. 진짜 방심했다가 당할 뻔했다.’
상자에 수작을 부렸을 거란 생각이 스친 것은 위화감이 느껴졌을 때였다. 미래의 기억에는 소포 폭탄에 대한 것도 있었다.
소포를 여는 순간 꽝! 하고 터지는 소포 폭탄.
의심이 생긴 순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행동했다. 그리고 살게 되었다.
‘가만히 있을 순 없는데.’
단팥빵 하나를 다 먹은 신유성은 다음 빵을 집었다. 죽다 살았다고 생각하니 엄청나게 배가 고파졌다.
‘산해관을 치는 척은 해줘야겠지.’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했다. 원래는 시간을 들여 조선을 안정시키고 기술을 발전시킨 뒤에 명나라를 확실히 밟아주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일본 영주들이 날 우습게 볼 수도 있지.’
가만히 있으면 그럴 수 있었다. 이제 막 신국에 예속을 청한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신유성이 아직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명나라 편에 붙으려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골치 아픈 내전이 또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대만 원정을 끝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발목을 잡히게된다.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유린해주지.’
신유성은 명령을 내렸다.
산해관.
아침 해가 뜨는 시각, 산해관을 지키던 병사는 깜짝 놀랐다. 멀리서 땅이 움직이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땅이 아니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엄청난 수의 말이 움직일 때 땅이 움직이는 것 같았던 광경을.
산해관에 비상이 걸렸다. 전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대규모 기병의 접근은 절대 무시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규모의 기병들은 일정한 거리까지 오자 딱 멈췄다. 산해관에서 원거리 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사정거리 밖이었다.
잠시 뒤, 기병 하나가 커다란 상자를 산해관 앞에 놓고 돌아갔다. 죽일 수도 있었으나 무엇 때문에 오는지 이야기는 들어야 했기에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기병은 상자만 놓고는 금방 돌아갔다.
“가서 가져와.”
쪽문이 열리고 상자를 확인해보았다.
상자 안에는 사절단으로 신국에 왔던 암살자들의 목과 항의서한이 들어있었다. 서한은 빠르게 명나라 조정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산해관은 긴장에 휩싸였다.
여진 기병들이 진을 치고는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일본의 영주들은 잔뜩 흥분했다. 신유성의 선언 때문이었다.
“이번에 명나라에서 날 암살하려 했다. 그러니 명나라를 약탈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략 등록을 하라.”
사략 등록. 그것은 약탈 허가였다. 등록을 한 자에게는 무기와 각종 지원이 이루어진다. 대신 일정한 양의 약탈품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었다.
다들 흥분했다. 신유성 때문에 약탈의 맛을 보지 못했던 일본의 영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약탈은 철저히 군사 작전처럼 행해지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번에 한 몫 잡으면 더 클 수 있다!’
빈 배로 가서 만선으로 돌아온다.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이런 와중에 후지바야시 켄을 비롯한 신국의 해군은 더욱 빠르게 유구로 모였다.
“다 모이지 못했지만 가야 합니다.”
대만에서 명나라는 코앞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만을 점령한 뒤에 명나라 수군을 완전히 박살내는 것이 새로 떠오른 과제였다.
‘죽일 놈들.’
궁에서 벌어진 사건을 소상하게 들은 켄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하마터면 어이없게 신유성을 잃을 뻔 했다.
“좋아. 그럼 일단 제1함대부터 간다.”
가서 먼저 협상을 시도해볼 생각이었다.
신국 전체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화산이 폭발할 것처럼 뜨거웠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고스란히 명나라에 보고 되었다.
“이거 잘못 건드린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우선 대군을 모아 저들을 혼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명나라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징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척계광은 북경으로 소환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