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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북경.
소환된 척계광은 조정의 대신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임무를 받았다.
“신국과 전쟁이라고요?”
“지금 산해관 밖에 여진족이 진을 치고 있으니 그들을 막아주셔야겠습니다.”
“그럼 남쪽은 어찌할 겁니까?”
“그들이 배로 온다고 얼마나 올 수 있겠습니까?”
명나라의 전략은 간단했다. 해안이 약탈당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배로 대군을 이동시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병사의 숫자라면 명나라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조정의 대신들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여진 기병들이었다. 이들이 한 번 산해관을 넘게 되면 문제가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럼 신국은 어찌 할 겁니까?”
“조금씩 지치게 만들면 되겠지요.”
명나라가 무서운 것은 여기에 있었다. 나라가 워낙 크다보니 단숨에 쓰러트릴 수 없었다. 전쟁을 치를 때의 체력이 남다른 것이었다. 조정 대신들은 신국이 세워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나라니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척계광은 조용히 물러났다.
‘참으로 한심하구나.’
자신의 거처로 돌아온 척계광은 얼마 전 받은 편지를 떠올렸다. 신유성에게서 온 편지에는 가정제가 암살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실컷 이용하다가 위협이 될 것 같으니 제거하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주녹정에게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은 청교공주는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청교공주는 가정제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궁녀들은 물론 황후까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렸다.
다른 여자였다면 척계광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교공주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와 싸우지 말아요. 그리고 아무리 열심히 싸워도 결국 싸우다 죽게 될 거고 나중에는 버려질 수도 있어요.”
신유성과 싸우다가 척계광이 죽는 것이 싫은 청교공주는 적극적으로 말렸다.
청교공주도 듣는 귀가 있기 때문에 신유성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인 척계광이 왜구 토벌에서 공을 세웠다고 하지만 신유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조선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렇기에 두려웠다. 명나라가 망하진 않더라도 척계광의 목 정도는 간단하게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청교공주는 적극적으로 말렸다.
이 때문에 척계광은 갈등하고 있었다.
‘나도 버려질까?’
가정제의 총애를 받는다고 해도 그의 사후에 어찌 될지는 알 수 없다. 높은 자리에 있다 보면 필연적으로 적이 생긴다. 딱히 원한을 사지 않아도 높은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대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자리를 원하는 사람에겐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적일뿐이니까.
척계광도 은연중에 견제를 당하고 있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상관과 척계광의 자리를 노리는 부하들에게.
더구나 척계광은 부마가 되면서 중간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위로 올라갔다. 질투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척계광은 신유성을 떠올렸다. 무서운 남자였다. 필리핀에서 한 일은 돌아온 병사들을 통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포르투갈인들을 말라카에서 모두 잡아 노예로 만든 일은 놀라웠다. 전투 자체는 척계광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내용이었다. 그리 대단하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놀라웠다.
계속 움직이면서 아군을 늘리고 결국은 머릿수에서 우위를 차지한 상태로 전투에 임했던 것이었다.
단 기간에 보여준 파격적인 행보는 척계광도 따라하기 힘든 것이었다. 더구나 외국어를 빠르게 배우며 소통하는 능력 따윈 척계광에겐 없었다.
‘차라리 그가 황제였다면.’
그랬다면 정말 즐거운 마음으로 전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지. 이래선 안 되지.’
고개를 흔들며 떠오른 불측한 마음을 털어냈다.
척계광은 부하들을 이끌고 조용히 산해관으로 향했다.
한편, 항주에서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얘기 들었어?”
“뭔데?”
“도독나리를 죽이려고 했었다는 이야기.”
항주에 사는 병사들에게 신유성은 아직도 도독나리로 불리고 있었다.
“미쳤구나.”
“그렇지. 어떻게 공을 세운 사위를 그렇게 죽이려고 해?”
“이거 미친 놈 때문에 우리만 손해 보는 거 아니야?”
병사들은 불안해했다. 신유성이 나라를 세웠다는 것 정도는 풍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유성과 함께 필리핀 원정에 참가했던 병사들이 퍼트렸던 소문에는 무시무시한 것들도 많았다.
신유성과 적이 되면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전쟁을 하게 되면 엄청나게 피를 볼 거라는 말도.
대신 아군이 되면 그 어떤 지휘관보다 듬직하다고. 더구나 배당에 대한 소문은 병사들에게 신유성의 부하가 되는 꿈을 꾸게 했었다.
그랬는데 가정제 때문에 싸우게 생겼다.
“미쳤어. 미쳤어.”
황제라는 주어는 빼고 말했다. 주어를 넣어서 말했다가는 밀고로 잡혀갈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얘기 들었어?”
“뭔데?”
“내가 들은 얘긴데 배를 타면 가족들하고 떠날 수 있데.”
“뭐?”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돼.”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가 풀어졌다. 어떤 신비한 상인의 호위가 되면 가족과 함께 명나라를 떠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거 뭐야? 확실한 거야?”
“그래, 상인의 호위로 따라다니는 사람이 바로 내 어릴 적 친구였다니까.”
“흠.......”
잠시 생각해보던 병사는 한 번 찾아보기로 했다. 이후 병사와 병사의 가족들은 항주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신유성은 항주의 병사들을 모병했다. 아주 은밀한 방법으로.
상인으로 위장한 이들이 돌아다니며 모병한 이들은 은밀히 한반도로 보내졌다. 병사들은 자신들의 신유성의 병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들은 모두 해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겁을 내는 이들은 없었다. 오히려 의욕을 불태울 뿐이었다.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신유성이 배당만 제대로 해준다면?
병사들은 그야말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 승리해서 신국이 명나라를 차지한다면?
병사가 아니라 대지주가 될 수도 있었다.
항주의 병사들은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명나라 조정에서 이들의 이탈을 눈치 챘을 땐 이상 상당수가 사라진 뒤였다.
대만.
대두 왕국의 왕은 후지바야시 켄의 방문을 받았다. 켄은 함대의 일부를 이끌고 대만에 상륙했다. 상륙을 저지할 전력이 없는 평포족은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신국의 신하가 되시오.”
“거절하면?”
“명나라와 함께 하는 것으로 알겠소.”
대두 왕국의 왕은 명나라와 신국이 전쟁에 돌입했다는 말에 갈등했다. 그리고 왜 신국이 찾아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젠장. 둘이 싸우지 왜 여길.’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이성은 알고 있었다. 대만을 중심으로 약탈을 시작하면 명나라 전력의 상당수를 남쪽에 잡아둘 수 있으니까. 더구나 대만은 섬이기 때문에 바다만 잘 막으면 대군을 가진 명나라를 두려워 할 필요도 없었다.
진격로에 있으니 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영주가 되면 지금까지 하던 식으로 살 수 있소. 그리고 고산족은 우리가 정리하도록 하지.”
“그 말 진짜요?”
“어차피 그들하고는 말이 안 통하니까.”
고산족은 고집이 강했다. 공격적이었다. 그래서 거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잠시 의논할 시간을 주시오.”
대두 왕국의 왕은 다른 부족들의 족장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를 전했다. 신유성이 원하는 몇 가지 규칙만 지킨다면 영주로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 모두 영주가 될 수 있다는 뜻인가?”
“그렇다고 보면 된다. 받아들이면 우리의 왕국은 사라진다.”
“받아들여서 좋은 점은?”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자유롭게 거래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신국을 둘러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처럼 설탕이나 만들어서 팔면 된다고 하더군. 항구와 고산족을 몰아내고 차지한 땅에 대한 권리를 요구했다.”
세금도 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정도야 낼 수 있었다. 상인들과의 거래로 평포족은 상당한 부를 쌓았다. 하지만 아무리 부를 쌓아도 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었다.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도 힘들었다.
대만을 찾는 상인들과 거래해서 조금씩 원하는 것을 얻는 게 고작. 하지만 신국의 일부가 된다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들이 이길 것 같나?”
“왜구가 전부 신국의 밑에 있다고 했다. 곧 있으면 그들이 이곳을 거점으로 명나라를 턴다고 하더군.”
사략 해적들이 몰려올 거라는 말이 결정타였다.
평포족의 족장들은 신국의 영주가 되기로 합의를 보았다. 왜구의 악명은 평포족도 알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데 모든 왜구들이 신국의 밑에 있다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신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들을 지우는 것은 문제도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쟁 없이 평포족을 설득한 후지바야시 켄은 바로 유구에 연락을 넣었다. 그리고 함대에 대기 명령을 내렸다.
‘아직 이쪽을 신경 쓰게 할 필요는 없겠지.’
고산족을 정리해 완전히 대만을 손에 넣기 전에는 최대한 조용히 있을 생각이었다. 대신 사략 해적으로 등록한 선박들이 속속 대만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배는 모두 신유성의 배였다. 신유성은 군선과 보급을 책임지고 영주들은 약탈을 책임진다. 그리고 약탈품의 2할을 신유성에게 줘야만 했다. 원래는 5할이 신유성의 몫이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자신에게 돌아올 몫에서 3할을 선원들에게 배당하도록 했다.
영주들은 3할을 갖고 2할을 선원들에게 배당하는 것이었다.
신유성이 다소 손해를 감수하고 내민 계약은 영주들과 사략 해적으로 나설 선원들을 감동케 했다.
욕심을 부려 5할을 다 가져가도 뭐라 할 수 없는데 양보했으니까.
이 때문에 의욕이 충만했다.
영주들의 휘하에 있는 가신들은 적극적으로 사략에 나서려 했다. 자리를 보전했던 무사들도 나섰다. 다들 상인이 되어야 하나 싶은 순간 구원의 동아줄이 내려왔으니 꽉 움켜쥐었다.
“조금 더 기다려야한다. 이곳을 완전히 손에 넣지 못했다.”
“그럼 우리가 싸워도 됩니까?”
“이번 전투에 배당은 없다. 정 시간이 아까우면 설탕이라도 날라라.”
켄의 입장에서는 고산족을 몰아내고 차지할 땅을 나눠줄 순 없었다.
‘그곳은 주군의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켄의 생각이었다. 결국 사략해적들은 설탕을 나르기보단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보급은 신유성이 책임지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차돌은 함대를 거느리고 대만에 도착했다. 사실 함대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수송선을 잔뜩 거느리고 나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수송선 안에는 필리핀 전사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켄은 차돌을 무시하지 않았다. 신유성이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부터 신유성을 따른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분이 노비였다고 해도 결국 신유성의 심복. 켄이 함부로 할 사람은 절대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일이 뭡니까?”
“일단 이곳을 보십시오.”
휴식을 취할 시간 따윈 없었다. 켄은 지도를 보여주며 고산족의 영역을 알려주었다.
“이 정도면 별 문제 없겠군요.”
고산족이 꽤 사납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차돌은 피식 웃었다.
술루족의 영주는 차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었다.
“얘들아. 여기 애들이 사납다고 한다.”
“크크크크크.”
술루족의 눈빛이 무섭게 빛났다. 다른 섬에서 온 필리핀의 영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차돌이 데려온 이들은 특별히 호전적인 이들이었다. 신국의 군대에 눌려 찍소리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지만 비슷한 무장을 한 이들에게 질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다.
“얘들아 가자.”
필리핀 지방군의 영주들은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
고산족을 몰아내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면 영주들에게 나눠준다고 했기 때문에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이후 수천에 이르는 필리핀 지방군이 대만의 숲을 휘젖고 다녔다. 열대지방에서 자랐던 필리핀 지방군에게 대만의 숲은 그리 싸우기 어려운 장소가 아니었다.
숲의 지형은 잘 모르지만 더 강한 무기와 보급이 있었다. 그리고 밀림에서도 싸운 경험이 있었다.
이들 때문에 고산족은 뜻하지 않은 고난에 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족 하나가 없어지더니 연이어 작은 부족들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복수를 위해 뭉쳤으나 소용없었다.
각종 무기로 무장한 필리핀 지방군은 숲에서도 잘 싸웠다.
결국 고산족은 토벌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노예가 되었다.
고산족이 차지했던 땅은 공적에 따라 필리핀 지방군의 영주들에게 배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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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