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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06화 (10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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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

한양은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술집의 술은 동이 났다. 사람들은 말린 생선을 씹으며 명나라를 욕하기 바빴다. 축하 사절단이라고 해놓고 암살을 시도했다. 물론 이와 같은 일을 따져봐야 명나라에서 부정하면 어떻게 해볼 수 없었다.

국가 간의 관계란 것이 그렇다.

대놓고 무시하고 약속을 어겨도 상대를 벌할 힘이 없으면 무시당한다. 오히려 역사에는 반대로 적힐 수도 있었다.

신국이 명나라에게 시비를 걸었다고.

시비를 가리기 위해선 결국 싸워야 한다. 싸워서 이긴 쪽이 정의가 된다. 그래서 진실과 기록은 전혀 다른 경우도 생긴다.

승자의 역사만이 남기 때문이다.

악행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것을 벌할 힘이 없으면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한양의 젊은 청년들은 온통 싸우겠다며 난리였다. 신국이 지배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삶은 나아졌다. 기후가 더 좋아진 것도 아니고 농사가 더 잘 되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적어도 굶어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대량의 생선 덕분이었다. 그리고 생선이 전국 방방곡곡 전해지도록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인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이제 좀 살만하다 싶어 숨을 고르던 차에 공격이 들어왔다.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신유성은 전국에 자신의 뜻을 알렸다.

“자신의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라. 그것이 나를 돕는 길이다. 전쟁은 내가 한다.”

‘다 전쟁터로 가면 생선은 누가 잡고? 소는 누가 키우고?’

능력도 되지 않은 이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는 것은 낭비였다. 싸울 이들은 많았다. 갑작스러운 평화로 실직자 상태에 놓였던 일본의 무사들을 비롯해 신분 상승을 노리는 병사들까지 사략 해적으로 지원했다.

이들만 해도 명나라 남부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었다. 모두 탈탈 털 의욕으로 가득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지금까지 신유성 때문에 약탈을 하지 못하고 계속 억눌려 있었으니까.

또한 북쪽에서는 여진족들이 공을 세울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야인 여진족은 전쟁에 소극적이었지만 해서와 건주는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누가 더 공을 세울지 내기하는 분위기였다.

허나, 이들은 산해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신유성이 아직 진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유성은 지도를 분석하며 명나라 군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기에 바빴다.

한편, 궁 깊은 곳에서는 여인들의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려요.”

“가슴이 답답해서 힘들어요.”

주녹정을 비롯한 여인들은 화가 풀리지 않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그게 문제죠.”

이미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체첵과 사르나이는 기오창가와 타이란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레이는 신페이에게 알렸다. 그래서 신페이는 최근 광분하는 중이었다.

나츠 또한 요시시게에게 알려 대규모의 사략 해적단이 탄생했다.

매화는 여기 저기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전부였다.

화진은 유구에 알린 것이 전부.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신분이 높지만 외부 활동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때 주녹정은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잘 들어라.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뭐죠?”

“전하께서 전쟁터에 가시지 못하게 말려야 한다.”

“네? 설마?”

신유성이 전쟁터로 가려고 하느냐는 의미의 질문. 주녹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녹정은 며칠 전에 보았다. 바쁘게 명령을 내리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신유성을.

그것은 예전에 한 번 보았었다.

필리핀으로 원정을 갈 때와 비슷한 분위기.

“전하를 이대로 보내선 안 된다. 여인이 앞을 막는 것은 해선 안 될 일이지만 그래도 전하를 발걸음을 잠시 늦추기라도 해야 한다.”

주녹정과 여인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토론에 들어갔다.

한양,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집.

“죽어라아아아아아!”

며칠 째 이에야스는 발광을 하고 있었다.

검을 들고 사정없이 휘두르며 가구고 뭐고 다 베어버렸다. 핫토리 한조는 이에야스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항상 조용하고 인내하는 남자가 바로 이에야스였다. 크게 분노하는 경우는 별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크게 분노했을 때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그 분이 역린이신 건가?’

신유성이 이에야스에게 어떤 의미인지 한조는 깨달았다.

이에야스는 진심으로 신유성을 형제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납치 되어 기댈 곳 없던 상황에서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신유성에게 품은 감정은 매우 특별했다.

세월이 지났다고 해서 지워질만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조! 아직 준비가 안 되었나!”

“거의 다 되었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늦어선 안 된다. 명나라 황제의 목은 내가 치겠다!”

가만히 놔두면 혼자서라도 돌격할 기세였다.

전투에 있어서도 신중하다 못해 소심하기까지 했던 이에야스는 사람이 완전히 변한 것 같았다.

조용하던 사람이 화나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더구나 이에야스는 아직 어렸다. 혈기가 왕성할 때였다.

분노에 사로잡히니 주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군,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냉정? 지금 냉정이라고 했나? 난 냉정하다. 아주 차갑다고!”

‘목소리는 너무 뜨겁습니다만.’

한조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 않고 계속 달랬다.

“지금 힘을 다 빼시면 싸울 때 어찌 하시렵니까? 적은 아직 멀리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하께서 아직 진격 명령을 내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참아야 할 때입니다.”

“후우!”

원래 예정대로라면 단팥빵을 팔기 위한 건물을 지으며 유유자적할 계획이었다. 가끔 신유성과 만나 대화도 나누고 맛있는 것도 먹고.

“으아아아아아아!”

심호흡을 하며 가라앉히려고 했던 분노가 다시 치솟았다. 신유성을 죽이기 위해 폭탄을 쓰려 했다는 사실이 떠오르니 반사적으로 화가 났다. 너무 화가 나서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현기증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날뛰었다. 치솟는 분노를 어딘가에 풀지 않으면 터질 것 같아서였다.

‘위험한데 이건.’

한조는 매우 위험한 상태라고 느꼈다. 그러나 말리기가 힘들었다.

‘어서 서둘러야겠어.’

한조는 자신의 아버지, 야스나가에게 독촉하는 편지를 전했다.

분노한 사람은 여전히 많았다.

이지번과 이이도 상당히 화가 났다. 그렇지만 화를 내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히려 분노할 힘을 업무처리에 쏟았다.

두 사람이 뭉치자 업무 처리는 상당히 빨라졌다. 전쟁 준비로 인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으나 두 사람은 묵묵히 일을 해냈다.

내정을 처리하는 것도 전쟁의 일환.

‘이건 우리들의 전쟁이다.’

꼭 전방에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에 공조판서가 찾아왔다.

“바쁩니다. 용건만 말씀해주시지요.

“대포. 대포를 개량했습니다.”

“정말입니까?”

“가서 보시면 됩니다.”

공조판서를 따라 가보니 정말 대포가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묵직한 느낌의 대포였다.

“남만인들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습니다.”

컬버린포 복제에 성공한 것이었다. 더 뛰어난 것을 만들지는 못해도 똑같은 것을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상당히 뛰어난 녀석이죠. 명나라 대포는 상대도 안 됩니다. 하하하하!”

공조판서는 컬버린포 복제에 공을 세운 이를 추켜세웠다.

“김종수라고 합니다.”

“아! 그대인가! 정말 큰일을 해주었네.”

김종수는 유명했다. 신유성의 소꿉친구로. 때문에 함부로 하는 이는 없었다. 김종수 또한 신유성의 후광을 이용하지 않고 항상 행동을 조심했다. 자기 때문에 신유성이 욕먹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몇 개나 만들 수 있습니까?”

“그거야 재료 조달과 인력이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건 걱정 마시죠. 최대한 많이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남만인들의 최신 대포는 뛰어났다. 이것을 복제해냈으니 이제 명나라를 유린할 일만 남았다.

소식을 들은 신유성은 크게 기뻐했다.

“하하하! 정말 좋구나.”

컬버린포는 신유성도 부러워하던 것이었다. 이제 신국에서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컬버린에서 계속 연구해나가면 다른 대포들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제철소를 얼른 지어야 할 텐데.’

대포를 많이 만들려면 제철소가 꼭 필요했다. 대량을 철을 빠르게 얻기 위해서였다. 또한 광산도 늘려야 했고 금속에 대한 연구도 계속 이어나가야 했다.

할 일은 많았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느긋하게 개발에 집중하긴 힘든 상황이었다.

적당히 싸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급한 대로 산해관은 깰 수 있겠군.’

산해관을 뚫어야 명나라를 꿀꺽하기가 편해진다. 사실 산해관만 뚫리면 지금의 명나라는 건주와 해서 두 여진 세력의 힘으로 휩쓰는 게 가능했다. 아무리 명나라에 대군이 있다고 한들 대규모의 기병들을 따라잡는 것은 어려웠다.

전투를 피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파괴 활동을 하면 명나라는 주저앉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신유성은 명나라의 기반을 파괴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해서는 나중에 복구에 시간만 잡아먹게 되니까.

‘산해관을 깨면 그 다음에는.’

컬버린포가 없을 땐 알탄 칸을 이용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후후후후후후후후.”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음침했다. 신유성은 기분이 좋아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거처로 향했다.

이젠 정말 준비가 다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만약 명나라에서 대군을 보내 넘어온다면 오히려 환영이었다.

한반도로 접근하기 전에 전멸 시킬 자신이 있었다.

“뭐가 그리 즐거우신가요?”

신유성이 거처에 들어서자 주녹정이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오늘 기쁜 일이 있었지. 어릴적 친구가 큰일을 해주었어.”

“정말요? 잘 된 일이군요.”

주녹정은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신유성을 욕실로 안내했다.

신유성은 몸을 자주 씻기 때문에 아예 욕실을 만들었다. 욕실은 사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신국의 왕인 신유성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사치였다.

옷을 벗고 탕에 물은 담그자 주녹정이 궁녀를 시켜 식혜를 가져오게 했다.

뜨끈한 물속에서 피로를 풀며 식혜를 마시니 힘이 불끈불끈 솟았다.

그때 주녹정이 조용히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신유성의 가슴을 쓰다듬었다.

“전하, 소첩 청이 있습니다.”

“뭐지?”

“당분간 전하와 함께 있고 싶습니다.”

말인즉슨, 함께 놀자는 소리였다. 다른 때였다면 흔쾌히 허락했겠지만 전쟁을 앞두고 있으니 들어주기가 힘들었다.

“힘들다.”

“소첩은 두렵습니다.”

신유성의 허리를 꼭 끌어안은 주녹정은 눈물을 흘렸다.

“전하. 전쟁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됩니까?”

주녹정이 하는 걱정이 무엇인지 그제야 신유성에게 전해졌다.

‘이거 참.’

곤란하게 됐다. 주녹정의 감정을 무시하려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식으로 맺어졌든 이제는 소중한 반려 중 한 사람이었다.

“내가 있어야 전쟁은 더 빨리 끝난다는 것을 알지 않나?”

“하오면 조금만 천천히 가시지요. 급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주녹적은 유혹을 하며 신유성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알았다. 그 정도야.”

결국 타협을 했다. 그리고 욕실에 열풍이 불었다.

“하아아아앙!”

주녹정은 뜨거웠다. 신유성은 몸의 일부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격렬한 움직임에 욕실에 거친 파도가 일어났다. 찰랑찰랑 높은 파도에 맞춰 두 사람도 흔들렸다. 바람도 한 점 없는데 흔들렸다.

격렬한 정사는 결국 끝을 맞이했다.

신유성은 나른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흐느적거리며 거처를 향했다.

하지만 거처에 들어섰다고 편히 쉴 수는 없었다.

“전하, 오늘은 모두 함께 모시기로 했습니다.”

나츠가 나서서 신유성의 손을 이끌었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츠의 몸은 매혹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널따란 침상에는 체첵과 사르나이가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화진과 매화가 있었다.

‘이, 이건?’

순간 신유성은 위험을 느꼈다. 그래서 슬쩍 물러나려 했으나 등에서 몰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전하, 기대해주셔도 좋아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탈출로는 봉쇄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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