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107화 (107/271)

0107 / 0271 ----------------------------------------------

진격의 포성

쾌락. 그것은 분명 좋은 것이다. 인간을 타락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하지만 여기, 한 인간은 쾌락의 늪을 벗어나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러다가는 쓰러지겠다.’

과도한 정사는 노동이다. 체력을 빼앗는다. 그리고 지나친 쾌락은 오히려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벗어나겠다고 다짐하다가도 사랑스러운 여인들의 유혹에 결국 넘어가버린다. 신유성의 몸 또한 아직은 혈기가 넘치는 젊은 몸. 더구나 여인들은 하나같이 신유성이 좋아할 법한 모습을 하고 유혹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쾌락이었다. 허나, 신유성은 점점 밤이 무서워졌다.

체력 고갈 때문이었다.

“전하, 이것 한 번 드셔보시지요.”

의조의 판서인 이지함이 슬쩍 건네는 것을 본다.

“뭔가?”

“산삼으로 만든 탕약입니다.”

“그냥 쉬면 안 될까?”

“모두 사직을 위한 일입니다.”

맞다. 사직을 위한 일이었다. 왕이 된 이상 신유성에게는 자식을 낳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신하들이 보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

어느 누구도 신유성이 여자들을 잔뜩 안는다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아무나 주변 여자를 안아서 아이를 갖게 하길 바랄 뿐이었다.

출신 성분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신유성의 힘이 강해지고 신국이 더 강해질수록 신하들의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이지번과 이이도 의무라며 좀 더 시간을 할애하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유성은 아무나 안지 않았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구만.’

여자가 늘어나면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진다. 그러니 아주 중요한, 정말 받아들여야 하는 여자가 아니면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괜히 여색을 탐하다가 궁중 혈투가 벌어지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제2의 문정왕후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피곤할 땐 쉬는 것이 최고다. 당분간 수련에 들어가겠다.”

“아니 됩니다. 차라리 소신을 밟고 가십시오.”

이지함이 가로막았지만 소용없었다. 신유성은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몇 걸음 걷자 어느새 이지함의 등 뒤에 서게 된 신유성은 그대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마음은 알지만 이젠 한계야.’

신하들이 신유성을 지치게 만드는 이유. 그것은 자식을 낳지도 못한 상태에서 전쟁터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더 어울려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정말 힘들다.’

그렇게 신유성은 쾌락으로부터 한걸음 물러섰다.

오다 노부나가는 신음을 흘렸다.

“이거 우리도 차라리 사략 허가를 받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

다케다 신겐의 말에 신음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나가오 가케토라는 고개를 저었다.

“가려면 혼자 가시지.”

“끙.”

가케토라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사략 허가를 받고 명나라를 약탈하게 되면 얻게 될 막대한 부가 엉덩이를 흔들어도 손을 뻗지 않았다.

신겐은 답답했다. 이익이 바로 코앞에서 살랑거리는데 참으려니 좀이 쑤셨다. 하지만 신겐이 사략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바로 군단에 소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략이란 건 어차피 임시야. 기한이 정해져 있어.’

신유성은 무제한 사략을 허락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해군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자국 선박을 건드리는 것은 물론 금지였으며 오히려 보호 의무까지 부여되었다.

해군이라 해도 좋지만 다른 점은 해군보다는 자유롭다는 것.

열심히 털고 다니면 그만큼 더 버는 구조였다.

이 시대에 배를 타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고된 일이었다. 여기에 전쟁까지 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바다로 자발적으로 가게 하려면 그만한 보상을 해주어야만 했다.

“다들 조급한 것은 알지만 우리에겐 주어진 사명이 있다.”

이제는 완전히 상급자로 자리 잡은 노부나가는 하대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영지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사략을 하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아라. 내가 직접 전하를 뵙고 오겠다.”

“마음대로.”

반색을 하는 신겐과 달리 가케토라는 관심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같이 먹지.”

만남을 요청한 노부나가는 식사에 초대되었다. 신유성은 넓은 정원에 탁자를 두고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다.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한 식사는 노부나가에게는 특이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맛있군요.”

잘 익은 스테이크를 소스에 찍어 먹으니 별미였다. 무척이나 간단한 요리였으나 먹는 방식이 남달랐다.

“온 것은 사략 때문이겠지?”

“그렇습니다.”

고기를 썰어가던 신유성은 김치를 한 조각 찍어 먹었다. 멋모르고 신유성을 따라한 노부나가는 인상을 썼다.

“맵군요. 이게 뭡니까?”

“김치. 내가 좋아하는 고추를 넣어서 만든 거지.”

“무척 맵군요.”

고추는 아직 제대로 개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하얀색이었다. 하지만 매운 맛이 스며들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자극적이지 않나?”

“그렇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노부나가는 얼른 고기를 더 먹었다. 신유성은 웃으며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새로 만든 군단은 원래 남만과 싸우게 할 예정이었지만 일정을 바꿀 생각이다.”

“그럼 명나라를 공격하면 되는 겁니까?”

노부나가는 예상했다는 표정이었다. 명나라와 전쟁을 하게 된 이상 전력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남만은 아직 먼 곳에 있었다.

“그렇다. 그리고 원한다면 군단에 소속된 영주들에게 새 영지를 내릴 수도 있다. 공적에 따라서 말이지.”

순간 노부나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조건은 알고 있겠지?”

영주가 되면 해야 할 일. 그것은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지만 세금을 내는 것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니 잘 다독이라고.”

“다독이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명나라의 문화를 동경하던 것이 일본의 영주들이었다. 그래서 명나라의 다기나 차는 일본에서 엄청나게 고가에 거래되었다.

하지만 이제 동경에서 그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신유성의 뜻이 전해지자 다케다 신겐은 크게 웃었다. 사략 따윈 정말 아무 것도 아닌 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가오 가케토라는 신문을 읽다 말고 닌자를 불렀다.

“그래, 그 분에 대한 이야기가 또 있나?”

“그렇습니다. 북해도에서는 완전히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케토라는 신유성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으음. 역시 그런가?”

술잔이 기울여졌다. 어둠 속에 빛나는 별들이 더욱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가케토라는 눈을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비사문천의 환생. 하지만 그가 정말 신인 것일까? 어떻게 나조차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을 만들어 낸 것인가?’

가케토라는 혼란스러웠다. 영지와 가신들을 혼란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는 않고 있었지만 엄청나게 혼란스러웠다.

그것은 바로 신유성 때문이었다.

신유성이 만들어낸 운명의 흐름은 가케토라도 거스를 수 없었다. 거스른다면 종말을 맞이할 뿐이었다. 스스로를 비사문천의 환생이라 믿는 가케토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였다. 흐름을 거스른다면 돌아오는 것은 명백한 패배뿐.

패배한다면 비사문천이 아니었다. 그러니 일단 잠시 물러난다는 생각으로 흐름을 받아들인 것뿐이었다.

그리고 신유성에 대해 조사했다. 알아낸 것은 꽤 있었다.

출신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결국 신국을 세웠다.

이쯤 되면 스스로 신을 자처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천자가 된다면.......’

천자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뜻.

신유성이 진짜 천자가 된다면 비사문천의 환생인 자신이 굴복한 것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새롭게 얻은 정보.

북해도에서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는 사실은 가케토라에게 더욱 확신을 심어주었다.

‘신이 땅에 강림한 것이다. 그는 아수라인가? 아니면 제석천인가?’

가케토라의 망상은 폭주했다.

‘상관없다. 지금은 사람의 몸을 빌어 살고 있는 상황. 하늘의 뜻을 잇는 천자다. 그렇다면 명나라는 그 기운을 다해 지고 있으니 신국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새로운 천자가 세상의 흐름을 정하는 것이다!’

벌떡 일어난 가케토라는 밤하늘을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선봉에 선다!’

“내가 바로 비사문천의 환생이다!”

가케토라의 외침은 어둠 속에 흩어졌다.

호죠 가문의 당주, 호죠 우지야스는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참으로 좋구나.”

차향을 음미하는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다케다 신겐도 나가오 가케토라도 상대할 일이 없어지니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략은 안 합니까?”

“사략? 그런 것을 해서 무엇을 하겠느냐. 사람은 더 크게 봐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일부 무사들이.”

“쯧쯧.”

우지야스는 아들 우지마사를 책망했다.

“네 놈은 아직도 전하의 뜻을 모르고 있구나.”

“네?”

“잘 들어라. 전하께서는 영지민들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요구하셨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그것은 영지민들이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정말 떠날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전하께서 조선을 어떻게 무너트렸는지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우지야스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평화롭던 얼굴은 어느새 굳어 있었다.

“멍청한 소리 하고 있으면 결국 영지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우지야스는 자세히 설명했다. 신유성이 영지민을 빼간 뒤에는 세금이 줄어들고 그렇게 되면 영주로서의 삶이 팍팍해진다고. 그러면 결국 사람들에게 외면 받기 시작할 것이라고. 이것 막아보겠다고 거금을 들여 뭔가 하다가 망하면 결국 영지를 팔게 될 거라는 것까지.

“사략 따위를 생각해선 안 된다. 털 수 있는 땅은 무궁무진하겠지만 안정적이진 않다. 우린 철저하게 상인을 규합해 다른 영지를 압도해야 한다.”

우지야스의 계획은 간단했다. 사략 보다는 상업에 종사해 좀 더 앞서가는 것이었다.

“둘 다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일 할 사람들이 다 약탈에 참가하면 일은 누가 하고? 돈 주고 사람을 고용하란 것이냐? 그러다 손해가 나면? 사략을 나갔던 배가 침몰하면? 계약서는 읽어 보았느냐? 사략하다 배를 잃으면 배 값을 내야 한다. 그리고 선원들의 피해도 보상해야 한다. 위험하단 말이다.”

우지마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 정도 위험이야 감수해야지요.’

하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우지야스의 성향이 안전을 선호하는 것일 뿐이었다. 우지야스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지를 이끌어왔다. 그러니 우지마사는 이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욕심은 안다. 하지만 기회는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전하께서 명나라로 만족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략은 곧 끝나는 것이고 계속 지금처럼 전쟁을 하신다면 기회는 또 올 것이다. 그때까지 우린 다른 영지들보다 탄탄한 영지를 만들어야 한다.”

우지야스는 찻잔 옆에 놓인 사탕을 집어 먹었다.

“으음! 달구나!”

행복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넌 지금 사략 따윈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바로 쿄토로 가라.”

“교토요?”

“그래, 전하께서 보내신 총영주와 가까이 지내며 일을 배워라. 그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우지마사는 우지야스를 거스를 수 없었다.

아들을 조식에게 보낸 우지야스는 편안한 표정으로 사탕과 차를 즐겼다.

산해관.

“적들의 움직임은?”

“오늘도 아무런 움직임은 없습니다.”

“이것 참.”

여진 군대는 미묘한 위치에 주둔했다. 산해관에서 공격하러 나가면 충분히 반응할 수 있는 거리였다.

여진 군대는 알짱거리면서 긴장감을 조성했다. 가끔 산해관 바로 앞까지 말을 타고 지나가는 이들이 있었다. 자신의 담력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산해관 병사가 활을 쐈으나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척계광은 적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럴 때 남쪽으로 오면 당할 텐데.’

신유성의 의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산해관보다는 해안 방어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를 오렸지만 무시당했다.

도독이 무시한 것이었다. 산해관을 지키는 것만 신경 쓰라면서 계속 병력을 산해관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나라의 해안은 길었다. 전부 다 방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도 척계광은 불만이 생겼다.

‘항주가 털린다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

항주에는 아내인 청교공주가 있었다. 무서운 아내였지만 그래도 아내였다. 잃을 순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