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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08화 (10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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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포성

김종수가 복제한 컬버린포가 배달되었다. 배를 통해 도착한 것은 5문이었다.

“이걸 쓰는 법을 알려드리지요.”

포병은 여진 병사에게 포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컬버린포의 위력을 감상하기 위해 참관했다.

“자, 쏩니다!”

폭음과 함께 컬버린포가 불을 뿜었다. 포탄은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날개가 없으니 추락은 기정사실.

“허어!”

중요한 사실은 멀리 있는 산해관의 성벽을 때렸다는 것이었다.

“놀랍군.”

“이제부터 훈련을 받을 포병을 뽑아주셔야겠습니다. 전하의 뜻입니다.”

“하하하! 그럼 우리쪽에서.”

“어허! 무슨 소릴! 우리 쪽에서!”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서로 포병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컬버린포의 위력은 상당했다. 산해관에 설치된 대포의 사정거리 밖에서 포격을 날릴 수 있었으니까.

산해관을 뚫을 때 공성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기오창가와 타이란에게는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과 같았다.

계속 대포를 쏜다면 성벽은 몰라도 성문은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대포가 탐이 났다.

“지금은 숫자가 없지만 생산되는 대로 계속 보급될 겁니다. 싸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포만 있다면 공성전에서 피해를 확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탐내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뭐라고? 지금 그게 사실이냐?”

척계광은 깜짝 놀랐다. 갑자기 시작된 포격을 직접 보지는 못해 믿기가 힘들었다. 아군의 대포 사정거리 밖에서 날아온 포격이라니!

“직접 봐야겠다!”

확인하러 간 척계광은 신음을 흘렸다. 확실히 벽에 포격을 당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벽에 충격이 가해지는 것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위험합니다!”

신국의 포격에 척계광은 물러났다. 그리고 서둘러 장계를 올렸다.

‘위험하다. 설마 이곳을 정말 노리는 건가?’

신국이 가진 대포의 성능이 두려웠다. 이대로라면 산해관이 깨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며칠 후, 척계광의 장계를 받은 명나라 조정은 시끄러워졌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입니까!”

“서둘로 병력을 보내야 합니다!”

“적이 산해관을 넘게 해선 안 되오!”

명나라는 크다. 하지만 수도인 북경의 위치는 명나라의 정중앙에 위치하지 않았다. 산해관에서 상당히 가까운 편이었다. 즉, 산해관이 뚫리면 북경까지는 금방이었다.

알탄 칸에게 북경을 포위당한 기억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신국이 산해관을 넘으려 하고 있었다.

조정의 대신들은 충신이고 간신이고 전부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병력을 산해관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그럼 남쪽은 어찌합니까?”

“지금 남쪽이 문제요! 황도를 지켜야 할 거 아닙니까!”

“병력을 모아 일거에 무찔러야 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당해선 안 됩니다!”

많은 대신들이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포의 사정거리가 안 되니 결국 직접 가서 박살내야했다. 안 그러면 계속 얻어맞을 뿐이었다.

명나라는 병력을 산해관에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매일 같이 포격을 날렸다.

“돌아가면서 쏴라! 그리고 포술관이 가르쳐주는 걸 잊어먹지 말고! 잘 하는 놈에게는 말을 내리겠다!”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포병 양성에 기를 썼다. 컬버린포는 무거워서 기동성은 떨어지지만 성을 공격할 땐 효과적이었다. 지금도 신나게 산해관을 때리는 데 적이 공격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화약을 많이 써도 계속 보급이 이어졌다. 신유성은 화약 생산을 늘린 뒤 한 번도 줄이지 않았다. 이후 대량으로 생산된 화약이 계속 축적되어 보내지는 것.

포병을 양성하려면 화약 소모는 필수였다.

전부 다 돈이었다.

기오창가와 타이란도 자신들이 돈을 허공에 쏴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유성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우리가 언제 이런 무기를 또 만져 보나!’

두 사람은 정예 전사 중에서 최고로 머리가 좋은 이들만 골라 포병으로 삼았다.

“적들이 점점 수를 불릴 것 같은데 우리도 좀 더 모아야 하지 않나?”

하지만 두 사람은 포병만 신경 쓰지 않았다. 위협이 가해졌으니 적이 어떻게 나올지 훤했다.

대포 공격이 닿지 않으면 결국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병력이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후퇴할 땐 대포가지고 가기 힘드니 숫자를 더 늘리는 게 좋겠지.”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좀 더 많은 증원을 각 부족에 요구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명나라 군대는 점점 산해관에 모였지만 좀처럼 뛰쳐나가지 못했다. 여진 병력이 계속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숫자가 부족하니 공격하러 나갈 엄두나 나질 않았다. 공격하러 나갔다가 패하면 다시 병력을 모으는 게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 사이에 산해관이 깨지면 북경은 끝이었다.

척계광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전쟁을 하게 되다니.’

무작정 덤벼드는 적이라면 꾸준히 죽여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신국의 전술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전술이었다.

매일 같이 포격을 날렸다. 심지어는 밤에도 쏘곤 했다.

경계를 서는 병사들은 서서히 포격에 무뎌지고 있었다. 지나치게 긴장하다가 끈이 끊어진 것이었다.

‘무섭구나.’

신유성이 직접 와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그러나 겁에 질려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나는 대명제국의 참장이다.’

자부심으로 두려움을 억눌렀다. 사명감으로 버텼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을 떠올린 척계광의 가슴은 다시 걱정으로 물들었다.

산해관에 병력이 계속 모이고 있으니 든든하긴 하다. 최악의 경우 성문이 깨지더라도 적을 쉽게 통과시켜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산해관에 병력이 모일수록 항주가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북경에 가있으라고 해야겠군.’

척계광은 편지를 썼다.

하지만 청교공주는 척계광의 예상과는 다른 행동을 했다.

항주.

청교공주는 탁자 위에 놓인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단팥빵이 들어있었다. 최근 들어 항주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차와 함께 즐기기 좋은 간식.

당연히 청교공주도 단팥빵을 즐겼다. 하지만 단순히 맛있는 것을 즐기기 위해 단팥빵을 사먹는 것이 아니었다.

빵을 담은 상자 안에는 기다란 통이 들어있었다. 통을 여니 편지가 나왔다.

‘항주의 영주로 그이를?’

항주는 중요한 곳이라 지키는 이들이 많았다. 다른 곳의 군대를 다 빼가도 항주의 군대는 빼가지 않고 있는 명나라 조정이었다. 하지만 항주의 거부들은 재산을 정리해 북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신국이 쳐들어오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었다.

청교공주는 고민했다.

주녹정은 끊임없이 청교공주를 유혹했다. 함께하자고. 함께해서 황실을 차지하자고.

명분은 있었다.

미친 황제를 몰아내고 썩은 가지를 쳐낸다는 것. 그러면서 신국과 하나가 되는 것.

‘도독이 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정된 것.’

청교공주는 도독이라는 자리보다 주녹정이 보장하는 항주의 영주라는 자리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영주에게는 몇 가지 제약 빼고는 영지에서 왕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제국 안에 자신만의 왕국을 가지는 셈.

청교공주는 척계광의 편지를 나중에 받았으나 북경으로 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그 인간을 봐야 한다고?’

청교공주가 보기에 가정제는 미쳤다. 아버지이지만 정이 가질 않는 남자였다.

‘차라리 이곳을 가진다면?’

주녹정은 약속했다. 항주를 지키는 척하고 있다가 나중에 중요한 순간에 신국으로 넘어온다면 모든 것을 보장하겠다.

결국 청교공주는 주녹정의 손을 잡기로 했다. 위험한 모험이었으나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항주도 지키지 못할 정도면 좀 더 오래 사는 정도 밖에 안 돼.’

항주를 빼앗길 정도로 명나라가 약하다면 신국을 이길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척계광의 편지는 청교공주의 결정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상공이 걱정할 정도라면 결국 못 막는다.’

청교공주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지금부터 의병을 모집한다. 항주를 지킬 뜻이 있는 자들을 모아라!”

항주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출진이다.”

명의 병력이 북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자 후지바야시 켄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느꼈다.

“영주들은 항주와 향항을 제외하고 어디든 털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털다가 배를 잃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시죠!”

사략선의 선장들은 표정이 활짝 펴졌다. 드디어 약탈 명령이 떨어진 것이었다.

켄은 함대를 나누어 움직였다. 워낙에 수가 많다보니 나눠서 움직여도 문제가 없었다.

명나라 해안을 털기 위한 대규모 선단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광동성.

대만에서 가까운 이곳에 갑자기 대규모의 선단이 나타났다.

“어?”

어선의 어부들은 깜짝 놀랐다.

“왜구?”

“아닌 것 같은데? 남만?”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어부들은 서로 떠들었다. 그러면서 방향을 바꿔 선단에게서 최대한 멀어지려 노력했다. 걸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까. 최대한 모른 척 지나가줬으면 하는 것이 어선을 탄 어부들의 마음이었다.

선단은 어부들의 마음의 외침을 들었는지 그냥 지나쳤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였다.

“지금부터 복건까지 올라가면서 적 함대를 박살내는 게 우리의 임무다! 약탈 따윈 신경 쓰지 마라! 알았나!”

“네!”

“좋아! 대신 전하께서 약속하셨다. 전함 한 척 침몰시키면 그 배의 가격만큼 배당을 해주신다고!”

“우와아아아아아아!”

“그러니 나포하기 위해 기를 쓸 것 없다!”

“네!”

켄의 함대는 대포를 이용해 명나라 군선을 박살내고 다녔다. 항구에 있는 것들은 나포해서 빼내고 바다로 나온 것들은 그냥 침몰시켜버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해안을 따라 복건성까지 올라갔다.

이들을 막을 함대는 없었다.

이에 광동성과 복건성에는 비상이 걸렸다.

“적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얼른 배를 더!”

“병력이 별로 없습니다! 차라리 뒤로 물리시는 게!”

명나라 관리들은 당황했다. 다수의 병력이 차출되어 북상한 상황에서 갑자기 공격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징병을 하고 있는 중이었으나 완벽하지 않았다.

병력의 공백이 생겼을 때 허를 찔린 것이었다.

“더 빨리 징병하라! 가리지 말고!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해!”

“네!”

하지만 징병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재앙이 들이닥쳤다.

“덤비면 죽여라! 하지만 안 덤비면 놔둬라! 그리고 꼭 털고 나면 품에 넣은 종이를 뿌려라!”

사략 해적들이 광동성 곳곳에 상륙했다. 겹치는 일이 없도록 서로 동선까지 맞춰서 상륙했다.

이들이 대만에서 대기하면서 한 일이 이거였다. 어딜 누가 털어갈 것인가 하는 것.

정보는 계속 들어오니 서로 더 부유한 지역을 털겠다고 경쟁이 붙었다. 하지만 싸움은 할 수 없으니 내기를 통해 정해야만 했다.

“부자부터 털어! 야! 거기! 그딴 집에 들어가서 뭐하게?”

“저기 여기 여자가 예뻐서!”

“죽고 싶으면 들어가라!”

사략선의 간부는 시간이 없다고 독촉했다. 약탈 경쟁이 시작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탈탈 털고 대만에 다녀와야 했다.

신유성이 노예의 가격을 낮게 책정했기 때문에 사람을 잡는 것은 손해였다.

부잣집만 골라선 턴 해적들은 재빨리 빠졌다. 배가 만선이었다. 더 털어봐야 싣지도 못한다.

“빨리 갔다가 다시 온다!”

대만에 도착한 사략 선장은 약탈품을 내렸다. 그리고 재빨리 정산을 마쳤다. 대부분의 품목에는 가격이 정해져 있었다.

“돈으로 드릴까요?”

“아니! 은행에 일단 넣어둬!”

대만에는 은행까지 세워졌다. 약탈한 해적들을 위해 세워진 은행이었다. 약탈품을 판 돈을 영주의 명의로 보관해주는 것이었다.

“하루만 쉬고 다시 간다! 이것들아!”

“그냥 갑시다! 가면서 쉬면 되요!”

“술하고 고기나 좀 사줘요!”

사략 해적들은 쉬지 않고 광동성과 복건성을 털기 위해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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