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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09화 (109/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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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포성

장삼은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었다. 위로 있는 두 형은 병으로 죽었다. 운이 좋아 장삼은 살아남았다. 하지만 농부의 삶은 팍팍할 뿐이었다. 먹을 것도 별로 없고 하루 종일 일을 하다 잠든다.

장삼은 농부의 삶을 보고 다른 것을 꿈꾸고는 했다. 근사한 병사가 되어 위세를 부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하지만 삶은 만만치 않았다. 배가 고프니 허기를 채우기 위해 움직인 것이 놀이였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이를 먹었고 결국 농사일을 하게 되었다.

안 하면 정말 굶어죽게 생겼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이었다. 세상이 뒤집어졌다.

“병사를 모집한다!”

갑자기 병사를 모집한다며 서두르는 관리들이 나타났다. 장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원했다. 하지만 곧 불안을 느껴야 했다.

죽창 자루를 쥐어주고는 따라오라고 했다. 가보니 허름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 많았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대명제국의 병사들이다!”

한바탕 연설이 있었으나 장삼은 무슨 소린지 알아먹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알아들은 것은 있었다.

바로 전투에 투입될 거란 이야기였다.

‘뭐야?’

병사의 삶을 동경했지만 싸우고 싶어서 병사가 되려던 것이 아니었다. 병사가 되면 편히 놀고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동경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오히려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다.

돌아간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곧바로 실전 투입이란 말에 몇몇이 도망치려 했으나 목이 잘렸다.

탈영은 죽음.

도망치는 자의 가족들까지 처벌하겠다는 말은 족쇄가 되었다.

결국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실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장삼은 절망했다.

‘저걸 어떻게 이겨?’

적의 정체는 왜구였다. 그것도 상당히 중무장한.

죽창 하나 달랑 들고 있는 자신과는 격이 달라보였다.

‘미친놈들!’

장삼은 상급자들을 노려보았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겨우 깨달았다.

‘그냥 죽을 순 없어!’

죽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찾아야만 했다. 살기 위해선.

“오합지졸이로군.”

사략 선장은 하품을 했다. 약탈을 하다 보니 점점 깊게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해안에 털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값진 물건을 가진 이들은 다 털렸다. 남은 것은 평민들.

허나 평민들을 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평민 하나 털어봐야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평민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람 그 자체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여자.

하지만 신유성은 노예의 매입 가격을 아주 저렴하게 후려쳤다.

사람은 잡아오지 말란 소리나 마찬가지.

이러한 뜻을 거역하고 노예사냥에 나설 이들은 없었다. 신유성이 명령을 내린다면 몰라도.

“어떻게 할까요?”

“적당히 쏴서 쫓아내.”

사략 선장은 상대할 것도 없다는 투였다. 적의 머릿수가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 없었다.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보자!”

해적들은 수레에서 무기를 꺼냈다. 그것은 항상 들고 다니는 창과 검과는 다른 무기. 쇠뇌였다.

“내기 하죠? 누가 더 많이 잡나.”

“쓸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쫓아내기나 해. 놀 시간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경쟁자들은 열심히 안쪽으로 파고들어 털어먹고 있을 게 분명했다. 사략 선장의 임무는 무조건 값비싼 것들을 최대한 많이 약탈하는 것.

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돈이다.’

“오늘 안에 목적지에 도착해 약탈할 수 있게 되면 대만에서 여자를 안게 해주지.”

“오오?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서둘러라.”

해적들은 반색을 하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명나라 징집병들은 저승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갑자기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화살. 정신 차려보면 사람이 픽픽 쓰러져 있었다.

“달려들어! 돌격!”

뒤에서 독전관들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하지만 병사들은 달려가는 시늉을 하다가 화살 맞은 것처럼 엎어졌다. 그리고 죽은 척 하기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와 진짜 쓰러진 사람을 보니 두려웠던 것이었다. 앞에서 쓰러지니 뒤를 따르던 이들도 두려워서 주춤했다.

원래 돌격이란 것은 기세.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에게 돌격은 힘든 일이었다.

몇 명이 죽은 척하기 시작하자 이를 따라하거나 도망치는 이들이 늘어났다.

장삼도 대충 죽은 척했다. 하지만 운이 나빴다.

“이 자식들이!”

독전관들이라고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전장에서 잔머리 굴리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무슨 독전관을 하겠나?

검을 빼든 독전관들은 쓰러진 이들을 베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뒤에서부터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신병들은 두려워서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화살이 날아오면 맞고 쓰러졌다.

기세는 죽었고 어떻게 싸워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사기가 완전히 바닥이니 그저 혼란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이 신병들을 지배했다.

‘여기 있다가는 죽어!’

돌격이란 말이 개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어느새 독전관이 바로 등 뒤까지 온 상황.

“다리가! 다리가!”

장삼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끝에 다친 척을 했다. 하지만 독전관은 봐주는 것이 없었다.

“일어나! 아니면 죽는다!”

금방이라도 검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에 장삼은 아픈 척하며 일어났다.

“돌격!”

독전관의 외침에 장삼은 앞으로 절뚝거리며 나아갔다. 독전관이 바로 등 뒤에 있는 것이 느껴졌다.

‘개자식!’

바로 뒤에 서있다는 것은 화살이 날아오면 장삼을 방패로 쓰겠다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때 앞에서 해적들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무엇인가로 자신을 겨누는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죽는다!’

그 순간 장삼은 죽창을 뒤로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독전관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일어나면 안 돼!’

장삼은 납작 엎드렸다.

“이 개! 커헉!”

욕을 하려던 독전관의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젠장! 젠장! 젠장!’

장삼은 욕을 하며 엎드려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전투는 빠르게 정리되었다. 오합지졸인 병력 대부분은 도망치거나 죽은 척. 독전관들을 잡아버리자 지휘관은 줄행랑.

“가자. 챙길 것도 없다.”

비용을 아끼겠다고 신병들에게 죽창을 쥐어서 끌고 온 것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략 선장은 명령을 내리며 강행군을 지시했다. 해적들은 순식간에 떠나버렸다.

여기저기 죽은 척했던 신병들은 고민했다.

“이제 어쩌지? 돌아가면 또 저들하고 싸워야 할 텐데.”

“도망칠까?”

“어디로?”

모여든 신병들은 갈등했다. 정신 교육이 덜 된 신병들은 그저 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임무 완수 같은 것은 딴 나라 이야기였다.

“차라리 우리도 해적이 될까?”

“뭐?”

“그렇잖아! 이대로 저 놈들하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할 텐데! 우린 결국 이렇게 버려질 뿐이잖아!”

지휘관도 불리하니 도망쳐버렸다. 애초에 제대로 된 병사로 키울 생각도 없었다는 소리.

책임감도 없었다.

“그러면 가족은?”

“어차피 우린 다 죽었다고 보고했을 걸? 찾아보기나 하겠어? 우리 같은 무지렁이를?”

“그래도.......”

“그럼 넌 돌아가라.”

장삼은 가족을 걱정하는 이들과 떨어졌다. 장삼의 주변에는 차라리 해적이 되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모였다.

“그럼 어떻게 하지? 말도 안 통할 텐데. 우리 죽이는 거 아냐?”

“뭐라도 챙겨서 바치면 되지 않겠어?”

“그럴까? 그럼 일단 저 무기들부터 챙기자.”

죽은 독전관의 무기와 사람들을 뒤져 뭔가 쓸만한 것을 모은 장삼의 무리는 그대로 해적들이 움직인 방향으로 향했다.

“음? 추적이라고?”

“그렇습니다.”

“가서 처리해.”

움직이는 와중에 꼬리가 붙자 사략 선장은 명령을 내렸다. 꼬리가 붙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 발목을 잡히는 것과 같았다. 괜히 뒤통수를 맞으면 피해가 커지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응?”

선장의 명령에 따라 따라붙은 자들을 죽이려고 접근하던 해적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따라 온 자들이 해적들의 모습을 보이자 일제히 엎드렸기 때문이었다.

“산개!”

뭔가 공격이 날아오나 싶어서 피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함정인가 싶어 주변을 살피게 했지만 없었다.

해적들은 엎드려서 일어나지 않는 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너희들은 뭐냐?”

말이 안 통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장삼이 고개를 들었다.

‘뭘까? 일단 잘 보여야 해!’

전혀 모르는 말이니 대답을 해봐야 소용없음을 느낀 장삼은 준비한 물건들을 내밀었다. 죽은 독전관들의 무기를 조심스럽게 내밀고는 뒤로 물러났다.

“뭐야 이 녀석?”

장삼은 연신 절을 하면서 따라가고 싶다고 몸으로 표현했다.

“데려가 주십시오! 저도 같이 싸우고 싶습니다!”

“이 자식 이거 뭐라는 거지?”

“이거 우리 준다는 거 아닌가요?”

“뭐야? 이 녀석들 아까 우리한테 덤비던 놈들 아니었나?”

“일단 묶어서 끌고 가죠.”

“선장이 화낼 텐데?”

“그래도 일단 말이라도 해보죠. 뭔가 있는 모양인데. 혹시 압니까? 이 놈들이 길잡이 해줄지.”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지도가 있지만 자세한 지도는 아니다. 근방의 지리를 미리 돌아다녔던 상인들에게 들었다. 하지만 설명만 들은 것 가지고 목적지를 찾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어긋나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으니까.

해적은 장삼과 패거리를 모두 포박해서 끌고 갔다.

“뭐냐?”

“이 놈들 이상해서요. 다가가니까 싸우지 않고 그냥 항복하던데요?”

설명을 들은 사략 선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 안내도 말이 통해야 시키지. 무식한 놈.”

“헤헤헤. 그럼 죽일까요?”

장삼은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도 몰랐다. 자신의 목숨이 금방 사라질 처지라는 것도. 하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것만은 깨달았다.

‘저 사람이 책임자 같은데.’

눈빛이 차가웠다. 장삼은 큰일 나겠다 싶어 바로 무릎을 꿇고는 땅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절했다.

“뭐야? 갑자기.”

“눈치가 빠른 놈 같은데요?”

“그렇긴 하네. 알았다. 그럼 일단 끌고 간다.”

죽일 마음이 사라졌다. 사람의 가격은 낮아서 팔아봤자 손해지만 잘하면 좋은 길잡이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넌 옆에서 말이나 좀 가르쳐 봐.”

“그럼 뭐 생깁니까?”

“여자 두 명 안겨줄게.”

“헤헤헤, 맡겨주십시오.”

이후 장삼은 해적들을 따라 움직이다 대만섬까지 가게 되었다.

“음? 사람이라고?”

“네, 광동성에서 잡아왔는데 이쪽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있냐고 부탁했습니다.”

“이거 참.”

후지바야시 켄은 인상을 찌푸렸다. 켄도 명나라 말을 배우긴 했었다. 하지만 배운 것은 수도인 북경에서나 통하지 남부에서 통하지는 않았다.

명나라 안에 사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은 각자 따로 쓰는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배 계층이 쓰는 말은 거의 통일 되어 있었으나 아래로 내려가면 사정이 달라졌다. 광동성에만 해도 월족을 비롯해 여러 소수 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한족들이 끊임없이 내려오면서 명나라 남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언어 문제만큼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일단 보고를 올려보지.”

싸우는 거야 자신 있었으나 언어 문제는 자신 없는 켄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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