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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포성
때는 가을을 지나 겨울에 접어들고 있었다. 신유성은 아직 전장으로 향하지 않았다.
“북방은 어떻지?”
“여전합니다. 산해관에서 나올 생각은 없는 모양이던데요.”
“포병들 훈련은 잘 되어가고?”
“이제 1천명을 채웠다고 합니다.”
컬버린포를 계속 공급했다. 그렇게 해서 늘린 수가 20문. 하지만 신유성은 포를 더 지급해주지는 않았다. 한양에도 좀 무장시켜야 했고 대만에도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쪽 공략은 어떤가?”
“순조롭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응?”
신유성은 월족의 말을 아는 사람을 비롯해 광동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부탁하는 요청들을 보았다.
“이건 나도 모르는 건데. 아는 사람 있나?”
“없습니다.”
이지번은 딱 잘라 말했다.
“그럼 역시 내가.......”
그때였다.
“전하, 제가 가겠습니다.”
“응?”
“제가 가서 말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어차피 대만의 일도 계속 쌓이고 있으니 제가 직접 처리하도록 하죠.”
이이가 나섰다. 두 눈에는 집념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신유성을 한양 밖으로 보내지 않겠다는 집념이었다.
신유성이 전장으로 향하려 할 때마다 갈 필요가 없다면서 막아섰다. 그렇게 해서 신유성의 움직임을 최대한 막고 있던 것이었다.
최근에는 대만의 업무가 정체되고 있었다.
사략 해적의 약탈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그래서 은행 업무가 계속 쌓이는 중이었다. 이를 감시하려면 관리를 추가로 더 파견해야만 했다.
“알았다.”
결국 신유성은 전장으로 가지 못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주녹정과 여인들의 유혹이 있었으나 뿌리치고는 독방으로 들어갔다.
장삼은 많은 것을 배웠다. 배운 말은 일본어가 아닌 조선어였다. 그리고 한글도 읽고 쓰게 되었다.
대우는 병사가 아니었다. 월족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쓰고 있는 말을 설명하는 일만 하는데도 돈이 주어졌다. 아주 가끔 사략 해적들의 길잡이를 하긴 했지만 전투랄 것도 없었다. 대군은 피하고 빈틈을 찔러 털 뿐이었다. 이때 장삼과 패거리는 배당을 조금이나마 받았다.
장삼 패거리는 받은 돈을 차곡차곡 은행에 저금했다. 다른 해적들처럼 여자를 안거나 하지는 않았다. 목숨을 걸고 싸우러 나가게 되었다면 죽기 전에 돈을 다 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삼 패거리는 그냥 병사로 고용되어 계속 말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밥이 참 맛있어.”
“이게 내가 원하던 병사 생활이었어.”
“맞아. 나도.”
장삼 패거리는 낄낄 웃으며 잡담을 나누었다. 병사로 생활하면서 싸우지는 않고 밥을 배불리 먹고 잠을 푹 자는 것.
이것이 장삼 패거리가 꿈꾸던 군생활이었다.
“그때 장삼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진짜.”
“그래. 장삼. 고맙다.”
장삼은 패거리로부터 또 감사 인사를 받았다. 대만에서 말이 자유롭게 통하는 이들이 별로 없으니 패거리는 더욱 똘똘 뭉쳤다.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나저나 전쟁은 어떻게 될까?”
“그야 신국이 이기는 거지. 너 항구 가봤냐? 매일 배가 들락날락하는데 진짜 어마어마하더라.”
사략 해적들은 엄청난 양의 물품을 약탈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되어 은행에 저금되었다. 그리고 약탈품은 바로 상인들이 구매하여 한반도를 비롯한 신국 각지에 가져가 팔았다.
그리고 가끔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가 나포한 명나라 함선들이 항구로 들어왔다. 그러면 수리와 개조를 통해 다시 약탈선이나 수송선으로 팔렸다.
켄의 함대는 패배를 몰랐다. 그리고 명나라 함대는 계속해서 패배해 결국 남은 것이 없었다. 강을 오가는 함선들이 있긴 했지만 바다로 나오지는 못했다.
강을 지키는 함선들이 바다로 나오게 되면 수적들이 날뛰기 때문이었다.
특히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었다.
병력을 무리하게 북방에 집중하다보니 허술해지는 지역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병력을 채우지 못한 빈틈을 노린 도적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강에선 수적. 산에선 산적.
이들을 처리해야 할 군대가 다수가 다른 곳에 있으니 처리가 힘들었다.
“아, 그런데 요번에 또 경쟁자가 늘어난 것 같아. 이번에는 복건성에서 왔다던데.”
“괜찮아. 우린 우리 할 일을 하면 되는 거야.”
“그래도 뭔가 더 배워야 하는 거 아닐까? 말 다 가르쳐주면 쓸모없다고 또 싸우라고 하면 어쩌지?”
“그래, 뭔가 배워서 우리도 장사를 해보자고.”
장삼은 의욕에 불탔다. 그리고 새로 온 무리를 바라보았다. 같은 남쪽 지방 출신이지만 말은 통하지 않는 이들이었다. 합류한 이들 중에는 묘족도 있었다.
합류한 이들은 전부 글을 몰랐다.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인력은 고급 인력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병사로 급하게 징병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징병한다고 해도 안전한 자리를 주었다.
그러다보니 항상 항복하는 것은 글을 모르는 이들이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온 몸으로 살고자 항복하며 애원하니 가끔 통하는 것이었다.
“장사를 해서 우리도 멋지게 살아보자고!”
장삼은 새로 들어온 신입들을 보면서 전의를 다졌다.
‘절대 뒤처지지 않을 거다!’
성공의 기회를 잡은 장삼은 온 몸이 활활 불타는 것 같았다. 쌀쌀한 날씨는 의욕을 꺼트리지 못했다.
일본과 한반도의 상황은 전쟁을 시작하고 나서 오히려 활성화 되었다. 막대한 물자가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신유성의 끝을 모르는 구매력에 상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상인과 영주들에게는 은이 풀렸으며 은행의 사용이 일상화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힘들게 은화를 수송하거나 할 필요도 없어졌다.
은행의 지점에 맡기면 장부에 표시되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은행에서 그만큼 은화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갑자기 많이 찾으면 어려우니 거금을 옮길 필요가 있을 때는 꼭 미리 얘기를 해두어야만 했다. 그래야 때에 맞춰 돈을 인출하는 것이 가능했다.
굉장히 편리해졌다. 일본 전역에 은행이 들어서고 있었다. 은행에서 일하는 것은 신유성이 예전부터 키워왔던 아이들이었다.
전쟁으로 갈 곳 없던 아이들은 이제 유능한 인재로 성장했다. 이들이 신유성이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은행으로 인해 돈의 순환 속도가 빨라졌다.
영주들은 더욱 편리해졌다. 재산을 은행에 맡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유성이 지불 보장을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임거정과 함께 했던 패거리는 크게 성장했다. 말린 생선을 팔던 점포에서 이제는 선단을 가진 상단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선단의 대부분은 어선들. 하지만 어선이라고 무시할 수 없었다.
이들이 잡아들이는 생선들은 말려져서 군대에 납품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대장은 뭐하고 있을까?”
“전하의 곁에 있겠지.”
“한 번 보고 싶네.”
임거정 패거리는 임거정이 그리웠다. 별 볼 일 없던 자신들의 미래를 열어준 남자였으니까. 임거정 밑에서 싸웠던 기억은 죽어도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임거정은 그야말로 거대한 산과 같은 존재.
“그런데 아직도 혼자 살까?”
“그러겠지.”
“그나저나 놀랍지 않아?”
“뭐가?”
“전쟁을 하는데 오히려 돈은 더 잘 벌리고 사람들이 좋다고 하잖아.”
신기했다. 보통 전쟁을 하게 되면 괴로운 사람이 굉장히 많은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대한 명나라와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부자가 여기저기 탄생하고 있었다.
“우리도 조선소 지을까?”
“그게 좋겠지?”
“그나저나 대장 혼자 살면 적적할 텐데. 여자라도 한 명 보내줘야 할까?”
“그러자.”
패거리는 다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들의 앞에는 온갖 화려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돈을 많이 벌게 되자 쓰기 시작한 것.
이러한 일은 신국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상업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조금씩 사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던 것이었다.
이들은 좀 더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대만. 함대 하나가 도착했다. 함대가 수송한 것은 단 한 사람, 이이였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환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이는 항구를 둘러보며 생동감을 느꼈다. 과거에는 적이라 할 수 있던 해적들. 하지만 이제는 신유성의 허가를 받은 사략 해적이었다.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약탈이란 것에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결정에 반대하긴 어려웠다. 명분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신유성은 규칙을 정해 무분별한 약탈을 금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국 경제의 활성화였다.
조선을 꿀꺽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신국 경제가 갑자기 활발해지고 있었다. 상인들이 돌아다니고 물품이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은행의 진출로 세금을 걷는 것도 더욱 쉬워졌다.
사치품은 돈이 많은 자들에게 팔리고 그렇게 팔아서 얻은 돈은 여기 저기 투자했다. 그리고 돈이 투자되니 노비였다가 풀려난 이들은 일자리를 얻었다. 먹고 살 길이 열렸다.
바다로 진출해 잡아들이는 막대한 양의 생선들이 말려지고 훈제되어 전국에 팔려나가며 식량 사정이 안정되었다.
이이에겐 그야말로 기적 같은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계속 되면 좋지 않다.’
현재의 호경기는 약탈이 둔화되는 순간 점점 하락세를 타게 되어 있었다. 약탈은 영원할 순 없었다. 지금은 전쟁 초기라 털어먹을 것이 많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털 곳이 없어지면 결국 비용만 증가하게 된다.
그때부턴 적자였다.
그렇기에 전쟁을 빨리 끝낼 필요가 있었다.
‘모두 신국을 위해! 백성을 위해!’
이이는 독한 마음을 품고 움직였다.
이이와 만난 장삼은 뻣뻣하게 굳었다.
‘이 분이 조정의 대신!’
바로 옆에는 후지바야시 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개 병사가 높으신 분들 앞에 서니 돌처럼 경직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조선어를 배웠다고?” “그렇습니다!”
“잘 하는군.”
“열심히 배웠습니다!”
장삼의 조선어 수준은 상당했다. 이이는 이를 금방 간파했다.
‘상당한 재능이군.’
다른 것은 몰라도 말을 빨리 배우는 것은 재능이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알려주지.”
이이는 장삼에게 월족의 말을 위한 사전을 만들게 했다.
“사전이 완성되면 은 10관을 주겠다.”
“네?”
“부족한가?”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사전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알고 있는 단어들을 한글로 적은 뒤 뜻을 뒤에 달아놓는 정도였다.
이이는 이러한 일을 장삼을 비롯해 대만에 모여 있는 모든 소수민족 병사들에게 시켰다.
‘선동을 해야 한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면 결국 땅은 넘어오기 마련.’
이이는 직접 말을 배울 생각이었다.
이이가 대만에 도착하자 대만의 업무 처리 속도가 올라갔다. 여러 개의 언어를 공부하면서도 수많은 업무를 처리하는 이이는 그저 놀랍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정말 무시무시하군.’
후지바야시 켄을 비롯해 대만에 도착해 병사들에게 훈련을 시키는 노부나가도 경외심을 품을 정도였다.
“잘 오셨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합니다.”
“말씀하시죠.”
“군사 작전에 대해 제가 말하는 것은 월권이지만 한 가지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이는 신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손해가 늘어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빠르게 적을 분쇄할 필요가 있습니다.”
켄과 노부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점령을 시작하면 명군이 집중될 겁니다.”
“그러니 동시 다발적으로 해야지요. 그리고 본국의 사람을 병사로 차출하기만 해서는 힘듭니다. 현지인을 병사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이이는 장삼을 비롯한 소수민족 병사들을 이용한 계획을 말했다.
“이들을 이용해 각 지의 유지들과 접촉할 겁니다. 그리고 병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을 늘릴 계획입니다. 다만 이들의 편제를 정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니 지금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켄은 힐끗 노부나가를 보았다.
두 사람 중 하나가 맡게 될 일이었다.
‘아쉽지만 난 바다를 맡아야 한다.’
“저보다는 노부나가님이 적격이군요.”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켄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자세한 계획을 말씀 드리죠.”
이이의 계획을 다 들은 노부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선 명군의 핵심을 파괴해야겠군요.”
“그것만 성공한다면 남부는 혼란에 휩싸일 것입니다. 그리고 명군이 남하하는 순간 북방의 여진 군단이 산해관을 넘게 되겠죠.”
이이의 눈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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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