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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탄 칸
“왔구나.”
이에야스는 막대한 양의 약탈품을 가지고 바로 신유성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건 여기서 처분하는 게 좋겠다.”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신이 나서 바로 약탈품들을 사들였다. 신유성을 따라다니는 은행원이 모두 계산해서 장부에 기록하자 현금이 오고가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가 끝났다.
“은행이란 것은 정말 편리한 것이로군요.”
“전하의 혜안은 그 끝을 모르겠습니다.”
은행원이 일하는 모습을 보며 기오창가와 타이란은 연신 감탄했다. 신용만으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일은 그야말로 하나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신유성이라는 사실에 더욱 감탄했다.
‘역시 대칸의 자리는 이분의 것!’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왕이 이룬 업적은 어마어마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을 굴복하고 따르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이에야스 또한 은행이 하는 일을 볼 때마다 감탄했다. 은행의 이용자들은 신유성이 만든 은행의 수혜를 받아 모두 감탄하고 또 감탄할 뿐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알탄 칸이 움직였다. 모두 이 자를 어찌 해야 할지 말해보라.”
신유성은 일단 명나라의 땅을 점령하게 되면 그때 가서 공격할 생각이었다. 성 안에 가둔 뒤 포격으로 성을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더 좋은 방법을 제안한다면 수용할 의지가 있었다.
“명나라와 손을 잡는 것도 있습니다. 일단 물러난 뒤 명나라가 직접 알탄 칸과 싸우게 하는 것이죠. 그리고 힘이 빠졌을 때 다시 산해관을 공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에야스의 대답은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유성의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제안은?”
“음.......”
잠시 생각하던 기오창가는 알탄 칸에게 감정이 나쁠만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투멘 자사그트 칸이었다.
다라이손 구덴 칸의 장남이자 후계자인 남자.
북원의 대칸.
그리고 알탄 칸에게 원한이 있기도 한 자였다.
“투멘 자사그트 칸을 자극한다면 어느 정도 압박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투멘 자사그트 칸이 알탄 칸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아버지인 다라이손 구덴 칸을 동쪽으로 쫓아낸 것이 바로 알탄 칸이었다. 후일 알탄 칸에게 게게엔 칸이라는 직위를 주어 타협했으나 수치는 수치였다.
북원의 대칸이 아랫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나 다름 없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투멘 자사그트 칸은 절치부심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북원의 대칸으로서 언젠가 다시 영광을 재현할 생각이었다.
허나, 알탄 칸은 강했다.
숙적인 명나라를 털어먹고 다니며 세력을 더욱 늘렸다. 민심이 북원의 대칸이 아닌 자신이 아닌 알탄 칸에게 쏠리고 있었지만 어찌하진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들은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진 않다. 그리고 또 다른 제안은?”
신유성은 일단 선택을 뒤로 미루고 의견부터 종합하려고 했다. 먼저 하나를 선택해버리면 나중에 나올 의견을 들을 수 없으니까.
여러 의견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타이란이 나섰다.
“오이라트와 사이가 나쁘니 그들과 손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오이라트는 ‘숲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서몽골 지역의 산림 지대에 살던 부족이었다. 한 때는 엄청난 위세를 떨쳤다. 과거 칭기즈칸의 집권 시절, 산림 부족 중 가장 강력했던 오이라트부의 수령은 원에 귀순했다. 그리고 타이시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다. 타이시는 몽골제국어로 사령관을 의미했다. 이후 수많은 오이라트의 인물들이 원나라의 권신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차별 받았다.
원 멸망 이후, 오이라트부 실권을 가지고 있어도 몽골 유민들은 ‘칸’이란 칭호로 이들을 부르지 않았다. 칭기즈칸의 통치 원리를 그대로 이어갔기 때문이었다.
결국 차별은 후일 비극을 낳게 했다.
오이라트부의 타이시인 에센이 결국 몽골 초원의 패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리고 대칸의 자리는 허수아비로 타이슨 칸이 계승했다.
에센은 자신의 여동생을 타이슨 칸의 부인으로 삼게 했다. 에센은 자신의 여동생이 낳은 아이를 칸으로 옹립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타이슨 칸이 격렬히 반대하자 결국 다툼 끝에 타이슨 칸을 죽이기까지 했다.
에센은 타이슨 칸을 죽인 이후 동몽골의 황족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황족 중 어머니가 오이라트 출신이 아닌 이들을 죽인 것이었다. 에센은 문서와 족보까지도 소각해버렸다.
오이라트를 진정한 지배자로 만들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타이시가 아닌 칸이 되기 위해서.
하지만 타이시는 부하에게 살해되었고 오이라트는 급속히 몰락해 서쪽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이것이 몽골의 패자로 우뚝 선 알탄 칸이 복수를 하게 만든 원인이기도 했다.
알탄 칸 또한 칸이란 지위를 가진 자.
오이라트는 감히 칸의 자리를 넘본 무도한 것들.
이 때문에 알탄 칸은 오이라트를 마구 습격하고 잡은 이들은 노예로 삼아버렸다.
오이라트와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사정을 들은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흡수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오이라트는 현재 힘든 상황이었다.
“오이라트를 비롯해 알탄 칸과 사이가 나쁜 모든 곳에 사신을 보내라. 신국의 영주가 되겠다고 맹세하면 칸의 칭호를 허락하겠다고.”
신유성은 일단 타이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칸의 칭호를 허락하는 것은 대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유성은 공식적으로 북원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허락 없이 대칸을 자칭하는 것이었다.
허나, 힘이 있으면 스스로 대칸이라고 하면 될 뿐이었다. 과거 몽골제국이 정복을 했듯이 사람들을 정복하면 될 뿐이었다.
“우린 투멘 자사그트 칸을 친다.”
“네?”
“기오창가. 그대가 해줘야겠다. 투멘 자사그트 칸을 없애고 날 진정한 대칸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
순간 기오창가의 표정은 환희에 물들었다.
마지막으로 신유성은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에야스를 바라보았다.
“이에야스는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명군이 산해관 밖으로 기어 나오면 그들을 분쇄해야 한다.”
오이라트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신유성은 명나라와의 전쟁을 살짝 늦추기로 결정했다.
‘초원과 기병들을 손에 넣는다면 더욱 빠르게 명나라를 먹을 수 있지.’
그냥 산해관에서 물러나 명나라 군대를 유인해 싸우는 것은 시간 낭비였으나 잠시 물러나면서 다른 곳을 먼저 공략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바꾼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에는 여러 위험이 존재했다. 그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신유성의 목숨이 미끼로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산해관.
갑자기 포성이 멎었다. 그리고 신국의 군대가 점점 뒤로 물러났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분주히 움직이더니 물러나고 있습니다.”
“음, 함정일지도 모르니 일단 더 두고 본다.”
산해관의 지휘관은 장계를 올렸다. 이후 명나라 조정은 또 다시 시끄러워졌다.
“알탄 칸. 그 자를 막아야 합니다.”
“신국을 쳐야 합니다!”
의견이 분분했다. 가정제는 심각한 두통을 느끼며 결국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뒷일을 엄숭에게 맡겨버린 채.
“신국이 위험하다고는 하나 알탄 칸 그자는 더 위험하오.”
경술의 변이 준 충격은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만리장성을 넘은 알탄 칸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신국은 더 위험합니다!”
강직한 충신들은 신국을 치길 원했다. 알탄 칸이 무섭지만 그렇다고 못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급이 달랐다.
지금까지 알아낸 정보만 해도 그랬다.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엄청났다. 명나라 남부에서는 신국의 백성이 되길 자청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대로 사람들을 빼앗기게 되면 결국 전쟁은 어렵게 된다.
점령지의 백성들이 어느 정도 저항을 해주어야 상대의 힘을 뺄 수 있는데 오히려 점령지의 백성들이 힘을 보태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면 알탄 칸은 그저 점령할 뿐이었다. 그리고 찍어 눌렀다. 이로 인한 반발이 알탄 칸의 발목을 조금씩 잡고 있었다. 때문에 충신들은 알탄 칸은 언젠가 다시 쫓아낼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하지만 신유성은 아니었다.
역관의 자식으로 태어나 나라를 세웠다.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는 명나라에서 준 도움도 상당했다.
능력뿐만 아니라 천운도 타고난 것으로 보일 정도. 마치 하늘이 내린 진정한 천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더욱 격렬하게 부정하는 것이었다.
명나라가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는 꼭 없어져야 할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엄숭은 달리 생각했다.
신국은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나라. 전쟁 초반에 잠깐 반짝 하는 것뿐이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반면 알탄 칸은 계속 강해졌으니 더 강해져서 돌아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분석의 근거가 다르고 대처가 다르다보니 격렬한 대립이 일어났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황제의 선택이었다.
황제가 올바른 선택을 한다면 더 나아질 수 있는 것.
하지만 황제인 가정제는 머리 아프다고 엄숭에게 맡기고 사라졌다.
결국 국정은 엄숭이 대신 움직이게 되었다.
신국이 물러나는 모습에 잠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빠르게 알탄 칸을 물리치기 위해 추가로 병력을 더 보냈다.
알탄 칸의 움직임에 오이라트 부족 연맹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놈이 명나라로 갔다.”
“그렇군. 하지만 명나라가 당해낼 수 있을까?”
오이라트는 명나라가 힘을 내주길 원했다. 할 수 있다면 알탄 칸을 죽여줬으면 싶었다.
부족 국가의 특성상 부족을 이끌던 강력한 우두머리가 사망하면 분열되어 흩어지는 경향이 심했다. 오이라트도 마찬가지였다. 오이라트를 몽골 초원의 패자로 만들었던 에센이 죽고 나자 힘이 빠졌다. 그리고 결국 알탄 칸에게 추월 당했고 카라코룸을 빼앗겼다.
“그럼 우리가 돕는 건 어떤가?”
“우리의 전력으로 돕다가 피해를 입으면 돌이킬 수 없다.”
적은 알탄 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알탄 칸이 심심하면 병력을 보내 오이라트의 사람들을 잡아가 노예로 만들었지만 오이라트 전체가 망할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알탄 칸이 강하기에 피해 다니고 있을 뿐.
그렇게 자꾸 움직이다보니 결국 다른 세력들과 자주 충돌했다. 때문에 전력을 다한 전쟁은 할 때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명나라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소식을 들어보니 요즘 많이 힘들다고 하더군. 동쪽에 있는 녀석들이 들고 일어난 모양이던데.”
“젠장. 알탄 칸하고 싸우지 왜 명나라하고.”
“어쨌든 자세한 사정을 아는 것이 좋겠지. 알탄 칸의 움직임도 그렇고. 사람을 한 번 보내보자.”
“그래.”
오이라트에서는 전쟁이 정확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아내기 위해 사람을 파견했다.
한편, 투멘 자사그트 칸은 인상을 썼다.
“뭐야? 그 놈들이 우리 쪽으로 온다고?”
“그렇습니다.”
기오창가의 군대가 자신의 세력권 안으로 점점 다가온다는 말에 자사그트 칸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감히.”
분노가 치밀었다. 여진은 아래로 내려다보던 부족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세력권에 군대를 보내고 있었다.
명백한 도전.
“전사를 소집해라. 놈들에게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한물갔다고 한들 자존심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이는 몽골 초원의 사람들도 비슷했다.
한 때 세계를 지배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이들이었다. 지금은 비록 몰락했지만 언젠가 다시 일어서 세계를 다시 한 번 누빌 거라고 믿는 사람은 많았다.
그렇기에 대칸의 이름 아래 모여 있는 이들은 상당했다.
알탄 칸에게 미치지 못할 뿐이지 허약해서 지리멸렬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전사들이 건주여진을 향해 이를 드러냈다.
기마 민족의 자부심을 건 일전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신유성은 일단 물러났다. 산해관에서 떨어져 나와 열흘 정도 떨어진 곳의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별 볼 일 없는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검술 연습에 매진했다.
검술은 이제 거의 쓸 일이 없어졌다. 신유성이 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하들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의미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신유성은 검술을 연마했다.
아까운 것도 있었으나 몸이 약해지면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지금 있는 여자들이 한 번에 덤벼들면 삼일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늘어나면 버거웠다.
이제는 아예 아무나 한 명 임신시켜 달라는 식으로 덤벼들었다.
주녹정과 여자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힘든 것은 힘든 것.
검을 수련하며 욕정을 베어낸 뒤에는 고기를 구워먹었다.
“하하! 이거 참 맛있군요.”
식사에는 타이란과 이에야스도 함께였다. 굳이 밥을 따로 먹으며 거리감을 만들 생각은 없었다.
고추로 만들어진 양념을 발라 구운 고기는 상당히 자극적이었다.
어찌 보면 고통스러운 맛.
하지만 타이란의 입맛에는 딱 맞았다. 먹으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좋았다.
“이건 내가 배타고 멀리 원정을 갔을 때 구해온 건데.”
신유성은 원정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향신료에 대한 갈증을 토해냈다.
“명나라를 얼른 정리해야 더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의 좋은 것을 한 곳에 모아놓고 즐겨보고 싶지 않나?”
욕망을 자극하는 말에 타이란과 이에야스는 흠뻑 빠져들었다.
‘형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이에야스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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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