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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탄 칸
알탄 칸의 진격은 무시무시했다. 중간에 가로 막는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했다. 가욕관을 넘어 감숙성에 들어온 이후 몽골 군대의 진격은 거침이 없었다.
결국 장안을 점령한 알탄 칸은 주변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며 불리한 상황에 처하고 있었다.
‘이 놈들이?’
신국의 병력이 갑자기 뒤로 물러난 것. 산해관에서 빠지니 명나라에서는 명군을 추가로 더 보냈다.
알탄 칸은 장안에 갇힌 꼴이 되었다.
“돌파할까요?”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 와라.”
알탄 칸의 명령을 받은 전사들은 바로 장안성 밖으로 향했다.
“젠장!”
척계광은 이를 악물었다.
‘얌전히 기다려줄 순 없던 거냐?’
그랬다면 최상이었다. 포위를 하고 포격으로 성문을 무너뜨린 뒤에 대포로 두들겨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알탄 칸은 이미 대포 공격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방심하지 않고 먼저 치고 나왔다.
“방진!”
하지만 척계광의 군대는 쉽게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았다.
방진을 짜자 앞의 병사들은 기다란 창을 바닥에 꽂고는 앞을 향했다. 즉석에서 만들어진 목책인 셈이었다.
이어서 방진의 중앙에 선 이들은 연노를 준비했다.
“말을 노려라!”
사람은 갑주를 입는다. 하지만 말들은 무방비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연노로 말을 노리게 했다.
이후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말과 사람이 뒤엉키고 피가 흘렀다.
승자는 없었다.
척계광은 최대한 준비를 한 상태로 알탄 칸과 싸운 것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알탄 칸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명을 손에 넣을 수 없단 말인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전투는 알탄 칸이 승리했다. 하지만 피해가 적지 않았다. 척계광의 척가군은 지독하게 싸웠다. 이 때문에 몽골 기병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전투의 승리는 알탄 칸에게 돌아갔지만 상당수 기병을 잃은 것은 뼈아팠다.
‘이런 식으로 계속 전사를 잃을 순 없다.’
더구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신국이 산해관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었다. 명나라와 신국이 대립하는 사이에 명나라 땅을 차지할 생각이 틀어진 것이었다.
“돌아간다.”
“하지만!”
알탄 칸은 고개를 흔들며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부하들은 납득했다. 적이 두려운 것은 아니지만 명나라에서 주요 전력이 눕게 되면 몽골 초원을 또 다른 자에게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본진까지 다른 이에게 빼앗기고 전력도 약해지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결국 알탄 칸은 돌아가게 되었다.
알탄 칸의 후퇴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척계광이었다. 허나 명나라 조정은 척계광에게 큰 상을 내리진 않았다.
우선 전투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상대에게 큰 피해를 입혔지만 결과적으로 상당수의 병력을 잃었다.
이를 이유로 공과 과를 상쇄시켜 그냥 놔두는 것으로 논공이 끝났다.
‘빌어먹을 놈들.’
척계광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충신들은 벽보 사건으로 옥에 갇힌 상황이었다. 척계광을 편들어줄 이는 별로 없었다. 만약 청교공주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패배를 빌미로 벌을 내리라 했을 자들이 수두룩했다.
충신이 황제의 곁에 바짝 붙는 것은 간신에게는 무엇보다 꺼려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척계광의 마음은 몹시 흔들렸다.
‘빌어먹을.’
죽은 병사들이 떠올랐다. 모두 자신을 믿고 따라준 젊은이들이었다.
‘빌어먹을!’
모두 자신을 위해 죽었다. 충성을 하며. 가족을 부탁하며.
그런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알탄 칸을 물리치고도 성공하지 못했으니 죽은 병사들의 가족을 챙겨주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가진 재산을 사용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더 높은 벼슬을 할 때 조정에서 나오는 돈으로 보상하는 것에 비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썩어빠진 놈들!’
그리고 가정제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가정제의 무능에 분노가 치밀었다.
죽이고 싶었다.
신유성과 가정제를 두고 저울질하던 마음은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알탄 칸은 서서히 왔던 길을 돌아가며 약탈을 자행했다. 말이고 수레고 있는 대로 털었다. 사람은 닥치는 대로 잡아 노예로 만들었다. 길에서 죽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알탄 칸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리고 가욕관에 당도했을 때였다.
“뭐라고?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여진 군단의 한축인 기오창가가 투멘 자사그트 칸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그제야 알탄 칸은 깨달았다. 신국의 의도를.
‘내가 움직였다고 이런 것인가?’
알탄 칸이 보기에는 마치 보복을 한 것으로 보였다. 명나라를 먹지도 못하게 하고 오히려 북원의 대칸을 잡아버렸다. 이제는 많이 약해진 대칸이라지만 혈통은 어디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알탄 칸도 무리하지 않고 자사그트 칸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에센의 일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리하게 대칸의 자리를 탐하다가는 부하의 칼에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분노가 치민 알탄 칸은 목표를 신국으로 조정했다.
“지금부터 우린 신국을 친다. 우리의 적은 신국이다!”
신국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노예로 만들 생각으로 충만한 알탄 칸이었다.
기오창가는 임무를 완수했다. 자사그트 칸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기오창가의 병력은 더 대단했다.
단지 그 뿐이었다.
정예 병사들은 최고의 무기를 들었다.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더구나 기오창가는 노련했다. 자사그트 칸보다 한수 위였다.
그것이 생사를 갈랐다.
자사그트 칸은 패배하며 목숨을 잃었다.
힘의 대결에서 당당히 승리한 기오창가는 약탈한 뒤에 빠르게 요동으로 돌아왔다. 행여나 명나라와의 전투에서 빠질까 싶어서.
‘피해가 좀 있었군.’
신유성은 기오창가를 탓하지 않았다. 승리한 것만으로 충분했다. 병력의 손실이 있었으나 승리했다는 사실은 자부심을 여진 군단의 병사들에게 심어주었다.
북원의 대칸을 죽인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초원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타이란은 기오창가를 부러워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시기하지는 않았다. 이미 자리에서 물러난 탓이었다.
“큰일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분노한 알탄 칸이 공격해 올 테니까. 더구나 명나라까지 가세한다면 강대한 적을 동시에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두렵지 않았다. 적을 늘린 꼴이 되었지만 어차피 언젠가 격파해야 할 적이었다.
“적이 오기 전에 준비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 신국에는 아직 비밀 무기가 있었다.
“이것 참.”
신유성이 주문한 무기를 보며 이지번은 혀를 찼다. 준비해놓으라는 바로 신기전이었다.
화차를 이용하면 소신기전은 한 번에 100발을 쏠 수 있었다. 촉에는 독약을 묻힐 수 있었다.
중신기전은 목표지점에서 약통이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통 안에는 쇳가루가 들어있어서 파편 역할을 했다. 중신기전 또한 화차를 이용하면 100발을 쏠 수 있었다.
소신기전의 사정거리가 150미터 정도인데 반해 중신기전은 250미터 정도였다.
하지만 사정거리가 가장 압권인 것은 바로 대신기전이었다.
컬버린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신기전의 사정거리는 400-500미터였다. 약통의 앞부분에는 대형 폭탄이 달려 있었다.
파괴력도 중신기전보다 훨씬 뛰어나고 사정거리도 길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가격대비 성능이었다. 화약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것에 비해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신유성은 이중 소신기전과 중시기전을 중심으로 주문했었다. 각각 1000대의 화차를 만들어내라고. 그리고 이제야 주문을 완료해 배에 싣고 있는 중이었다. 배달할 장소는 요동 반도의 끝에 있는 대련이었다.
중요한 것은 신유성은 신기전을 계속 생산하라고 주문한 것이었다.
신기전이 있다고 해서 궁수의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전쟁터에서는 궁수의 자리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무기의 발달을 보며 이지번은 그것을 느꼈다.
노부나가는 광주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자 광동성 자체가 그냥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소수민족들이었다. 이후 주변의 농민들이 결국 신국의 백성이 되었다. 명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도망치고 관리할 사람이 없다보니 무법지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보호를 요청했다.
이이는 보호를 요청한 곳에 병사를 파견해 임시로 군정을 실시했다. 방어가 목적이 아닌 오직 치안 유지만을 위한 군정이었다.
명나라와 전쟁 중이란 것을 알기에 땅에 남았던 농민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도망치려면 예전에 도망쳤어야 했으나 땅을 버리고 가면 살길이 막막하기에 남았던 사람들이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자 광동성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신국의 백성이 되었다.
그제야 광주에만 틀어박혀 있던 노부나가가 움직였다. 복건성으로 향한 것이었다.
복건성의 복주는 결국 광주와 비슷한 노선을 걸었다. 위에서 지원이 오지 않으니 복주의 병사들도 결국 후퇴했다.
그리고 전쟁에 변화가 생겼다.
명나라 조정은 척계광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남쪽으로 내려가 신국을 막으라는 것이었다.
광주와 복주를 탈환하라는 임무가 떨어진 것이었다.
척계광은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청교공주에게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냈다.
“하! 나쁜 놈들!”
사정을 알게 된 청교공주는 명나라 조정 대신들을 욕했다. 알탄 칸과 싸워서 물리친 척계광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청교공주로서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고 화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을 세웠어도 패전했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알탄 칸이 입은 피해가 큰데다 신국의 일이 겹쳐서 후퇴한 것 뿐이었다.
‘정말 그분이 없었다면.’
청교공주는 신유성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마치 척계광을 구하기 위해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물러나 북원을 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신유성은 이러한 것은 고려치 않았다. 사실도 많이 달랐다. 그러나 좋게 생각하니 그럴싸하게 보였다.
호감이란 감정의 무서움이었다.
“상공께서 하시는 일이 잘 되길 빌어야겠구나.”
청교공주는 호들갑을 떨며 절을 찾았다. 그리고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척하면서 신국의 정보원과 접촉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의심하지 못했다.
정보는 곧바로 신유성이 받아보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정보원들이 물어다주는 정보 덕에 주변의 움직임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신유성은 명나라의 사정을 파악했다.
‘남쪽으로 군대를 보낸다고?’
피식 웃었다.
척계광이 지휘하는 군대는 척계광에게 충성했다. 명나라가 아니었다. 알탄 칸과 싸운 이후로 병사들은 재산을 털어 죽은 병사들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보내고 살아남은 이들에게 상을 내렸다.
이 일로 병사들은 척계광에게 더욱 충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정에 대한 불만이 깊어졌다.
자신들의 공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였다.
목숨을 걸고 싸웠건만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하다못해 척계광이라도 약간의 상을 받았다면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패전의 책임을 지라고 했다는 소문을 듣고는 분개했다.
전장에서 직접 싸운 자신들이 모욕을 받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병사들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병사들에게 들어간 돈은 모두 신유성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는 것이었다.
신유성의 돈이 청교공주를 통해 척계광에게 전달된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미 척계광이 신유성과 손을 잡았다는 것도 몰랐다.
어두운 밤.
척계광의 막사 안에 부하 장수들이 보였다.
“이 자리에서 할 말이 있다. 듣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부하들은 굳은 표정을 지은 척계광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어지러운 나라. 혼란. 그리고 쌓여가는 불만. 부하들은 짐작되는 것이 있으나 쉽게 말하지 않고 갈등했다. 하지만 결국 척계광을 따르던 이들.
“듣겠습니다.”
모두 하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 번 들으면 모두 같은 배를 탄 처지가 되는 위험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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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