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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탄 칸
명령을 받은 척계광은 미적거렸다. 패전으로 인해 병력이 모자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허! 설마 황명을 거부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찌 사람도 없이 그들을 물리칩니까?”
“그거야 거기에 가면 병력이 있다 하질 않았습니까?”
“그들이 무슨 병력입니까? 무지렁이 농민들에게 창을 쥐어주었다고 다 같은 병사는 아닙니다.”
척계광은 일단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며 시간을 벌었다. 툭하면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며 아직 갈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조정에서도 척계광을 어찌하진 못했다.
실제로 패전이라고 칭할 정도로 척계광의 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었다. 그런데 곧바로 싸우러가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른 자였다면 강압적으로 나갔겠지만 청교공주의 남편이기 때문에 너무 노골적으로 박대할 순 없었다.
“최대한 서둘러주셔야겠습니다. 황상께서는 하루속히 신국을 정벌하길 원하십니다.”
산해관을 지키는 정예병 중에서 차출을 하려했으나 쉽지 않았다. 대신 금방 징병한 신입들을 잔뜩 받았을 뿐이었다.
‘흥!’
척계광은 속으로 비웃었다.
‘곧 다 쓸어주지.’
간신들의 편에 서서 자신을 박대하는 도독을 보는 것이 가장 짜증이었다. 그리고 무능한 가정제의 소문도 척계광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명운이 다했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하겠다!’
원래는 품지 않을 야심이었다. 하지만 청교공주로부터 은밀히 전해들은 이야기는 기울어진 마음을 꽉 움켜쥐었다.
신국의 영주가 될 수 있다면 그 편이 더 나아보였다. 그렇지 않아도 신유성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고 있는 척계광이었다.
첫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결국 큰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신유성 또한 자신과 같은 부마의 신분이었다. 그리고 신유성은 명목상이지만 명나라의 도독이기도 했다.
조선 출신이란 것은 그리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함께 이 나라를 엎어버리는 것이다!’
기울어진 마음은 적당한 명분을 만들어냈다. 가정제가 성군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황제이기만 했어도 척계광은 배신할 마음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상황이 척계광에게 배신을 종용했다.
한 달 후, 신유성은 척계광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드디어 거사일이 정해졌다.”
신유성과 척계광은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거사일을 조율했다.
나라를 뒤집기 위한 계략이었다.
날짜를 맞춰서 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다들 준비 됐나?”
“문제없습니다!”
여진 군단은 흥분했다. 드디어 명나라로 들어갈 때가 왔기 때문이었다.
“산해관은 내버려둔다. 우린 바로 천진으로 향한다.”
천진은 항구이면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했다. 전혀 허술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유성에게는 그저 먹기 좋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지금까지 산해관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배를 통해 직접 천진으로 상륙하면 베이징은 금방이었다. 산해관을 넘는 것보다 더 빨랐다.
하지만 그러지 않은 것이 산해관에 많은 병력을 묶어두는 결과로 이어졌다.
“때가 왔습니다.”
신유성의 편지를 받은 후지바야시 켄은 함대를 움직여야만 했다. 대련으로 가서 신유성의 군대를 천진까지 옮겨야 했다.
엄청난 상륙작전이었다. 지금까지 만든 배들을 상당수 동원해야만 했다.
“이제부터 마음대로 싸우셔도 됩니다. 마음껏 점령하십시오.”
신유성의 공격이 시작되면 병력은 확실히 북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겠다.”
노부나가는 웃었다.
다음 날, 다케다 신겐과 나가오 가케토라는 군을 움직였다. 두 사람이 받은 약속은 한결 같았다.
“으하하하하! 이때만 기다렸다!”
다케다 신겐은 신이 났다. 그 동안 가만히 웅크리고 있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 명나라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걱정이 들 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며 명나라가 신국에 아무것도 못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니 욕심이 생겼다.
인내의 시간은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젠 끝이었다.
‘이제부터 점령하는 땅이 다 내 영지가 된다 그 말이지?’
신유성의 허락이 있었다. 다시 연락을 받을 때까지 차지한 땅은 몽땅 영지로 허락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운이 샘솟는 격려였다.
다케다 신겐의 가신들 또한 신겐처럼 들떴다. 신겐이 엄청난 크기의 영지를 가지게 된다면 가신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가오 가케토라의 가신들도 비슷했다. 하지만 가케토라는 신겐처럼 들뜨지는 않았다.
‘드디어 나의 능력을 시험할 때가 왔다. 명나라라면 부족함이 없는 상대!’
비사문천의 환생이라 믿는 가케토라는 웃었다.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일본처럼 좁은 곳이 아닌 거대한 명나라를 상대로 싸운다고 생각하니 힘이 용솟음쳤다.
“나를 따르라.”
한 마디 말과 함께 가케토라는 진군 명령을 내렸다.
신겐과 가케토라는 빠르게 진격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
광동성의 주민들 중에서 희망하는 이들은 병사로 받아주었다. 그리고 신병들은 직접 싸우는 일에서는 제외되었다. 하는 일이라고는 나중에 전장에 도착해 뒷정리를 하는 것뿐.
본진은 싸우러 다니기에 바빴다.
수많은 명군과 마주쳤고 두 남자의 군대는 그야말로 적을 쓸어버렸다.
마주치는 명군들은 대군이었으나 문제가 있었다. 과하게 징병한 신입들로 인해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겼던 것이었다. 우선 식량 보급에서 문제가 있었고 두 번째로는 무기 공급이 문제였다.
워낙에 수가 많다보니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빠르게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명나라의 사정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었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도적들이 떼를 지어 다녔다. 더구나 신유성은 몰래 소문까지 퍼트렸다. 모두 남부의 소수민족들을 자극할만한 내용들이었다.
노부나가 군단이 본격적으로 싸우러 가게 되자 해남도의 묘적은 바로 독립을 외쳤다.
신국과 교감이 있었던 것이었다.
묘적뿐만이 아니었다. 운남 지방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감숙성과 사천 방면에서도 들고 난 자들이 있었다.
신겐과 가케토라가 호남성으로 들어간 동안 노부나가는 군대를 이끌고 강서성으로 진격했다.
가로 막을 수 있는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노련한 용병술과 뛰어난 무기로 군사적 거점들은 허무하리만치 빠르게 무너졌다. 컬버린포로 멀리서 포격하는 것으로 성문을 부쉈다. 성문이 부서진 성을 함락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성문이 부서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키는 자들의 사기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오합지졸을 앞세워 저항하려 했던 시도는 보기 좋게 막혔다.
처음부터 강군이 아니었기에 저항도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알탄 칸이 물러난 이후에는 가욕관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뽑아 보낸 탓도 있었다. 더구나 산해관을 비롯한 북경 근처에는 아직도 대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황. 이들이 진짜 명나라의 정예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명나라 남부에는 허수아비들이 지키고 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남쪽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러지 말고 진격해야 합니다! 신국의 땅을 밟으면 저들도 결국 물러날 겁니다!”
명나라 조정은 연일 시끄러웠다. 이제 알탄 칸이 물러났으니 신유성을 잡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다만 일의 우선순위가 서로 다를 뿐이었다.
“조용.”
엄숭은 쾌감을 느꼈다. 나라의 일이 골치 아파지자 가정제는 모든 것을 엄숭에게 떠넘기고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골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두통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머리가 아픈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랫동안 좋지 않은 약을 계속 먹다보니 몸이 점점 버티질 못하는 것이었다.
“이제 무도한 대역죄인을 벌할 때가 되었소.”
엄숭은 남쪽의 일에는 신경을 껐다. 남쪽에서 계속 북상을 하려면 강을 건너야 했다. 대규모로 도강하지 않는 이상 결국 발목을 잡힐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국에 배가 많지만 강을 따라 올라오진 않았기에 결국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강에 있는 수군 전력도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아무리 대군이 있어도 강을 건널 배가 없다면 시간이 걸린다. 도강을 하려는 곳만 잡아내 방해만 해도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신유성을 잡으면 나머지는 조무래기다.’
신유성은 아직도 자식이 없었다. 그러니 신유성만 잡으면 신국이란 나라는 분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엄숭은 신유성을 잡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척 장군은 어찌 하실 겁니까?”
“그에겐 이미 내려진 황명이 있으니 되는대로 그것을 지키게 하면 되겠죠.”
남쪽으로 내려가는 일이 바로 척계광이 할 일.
대답을 들은 도독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신유성을 잡는 공을 자신이 세운다면 구국의 영웅이 된다. 반면 척계광에게는 귀찮은 잔당 처리를 맡길 셈이었다.
얼마 후, 산해관에 모였던 병력들은 일제히 진격을 시작했다.
“빌어먹을 놈들.”
알탄 칸은 산해관으로 향하던 중 명군이 산해관을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때문에 진격을 멈추고 말았다. 복수를 생각하고 있지만 이대로 진격한다면 명군과 겹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난다면 싸워야 했다. 평화롭게 함께 신국을 치자는 이야기가 통할 상대는 아니었다. 그러려면 우선 명나라를 털었던 것을 사과해야했다.
“그들의 전쟁을 살핀다.”
“명을 치는 건 어떤가요?”
“지난 번 같은 꼴이 나는 건 싫다.”
알탄 칸의 군대는 진격을 멈췄다.
산해관에서 명군이 떠난 뒤, 북경의 군사 중 일부가 산해관을 지키기 위해 파견되었다.
‘운이 좋군.’
척계광은 운이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다. 명군이 산해관을 떠난 뒤 북경의 병력 일부가 나갔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내일인가?’
거사를 앞두고 척계광의 심장은 흥분으로 벌렁거렸다.
명나라의 주인이 바뀔 날이 머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천진.
북경과 붙어있는 이 항구 도시에는 많은 병력이 밀집해 있었다. 행여나 신국의 군대가 상륙을 시도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적이다! 적이 나타났다!”
신국의 함대는 새벽과 함께 찾아왔다.
수평선을 가득 채우는 선단의 움직임에 항구를 지키던 병사들은 숨을 들이켰다.
‘젠장!’
항구에 전선 몇 척이 있었으나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나가봐야 순식간에 전멸할 테니까.
결국 수군들은 배를 버리고 모두 항구에 진을 쳤다.
“예상대로군.”
직접 천진까지 함대를 끌고 온 후지바야시 켄은 흐뭇하게 웃었다.
켄의 함대는 항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컬버린 포로 무장한 갤리온들은 줄을 섰다.
일자로 늘어선 이들은 동시에 포격을 가했다. 항구 근처에서 포격을 하자 병사들이 있던 곳 바로 앞에 포탄이 떨어졌다. 이후 상륙까지는 노부나가 군단에서 한 것과 유사했다. 다만 다른 것은 지휘관의 반응.
수많은 수송선들이 배를 대고 병력을 토해내기 시작하자 명나라 장수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돌격!”
포탄이 날아왔지만 상관하지 않고 병사들은 달렸다. 기병들도 앞을 다투며 상륙한 병사들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이들은 어느 정도 다가가자 끔찍한 일을 당해야만 했다.
“쏴!”
상륙하면서 먼저 내렸던 것은 화차였다. 그리고 신기전을 장전했다.
이후 신국의 병사들은 넓게 포진하면서 적을 맞이할 준비를 해왔던 것이었다.
화차 하나가 쏘는 화살은 100발.
무려 100대의 화차가 소신기전을 토해냈다.
단숨에 1만발의 화살이 하늘을 날았다. 사거리는 150미터.
“으아아아아악!”
사거리 안에 들어갔던 병력들은 고슴도치가 되었다.
궁병도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갑자기 대량의 화살이 하늘에서 쏟아지니 명군은 깜짝 놀랐다. 이는 사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돌격! 돌격하란 말이다!”
지휘관은 목이 터져라 돌격을 외쳤으나 한 번 멈춘 돌격이 다시 시작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또 다시 100대의 화차에서 소신기전이 발사 되었다.
천진 상륙군이 가져온 화차는 총 500대.
이들은 순차적으로 소신기전을 쏘아댔다. 결국 두려움에 질린 명군은 진격하지 못하고 잠시 뒤로 퇴각했다. 하지만 퇴각한 명군이 천진을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북경으로 가는 관문을 틀어막았다.
천진에 상륙군이 나타났다는 소리에 조정 대신들은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재빠르게 추가로 병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때 척계광은 북경을 지키겠다며 병력을 자금성 주위로 모았다. 이러한 행동에 다른 이들은 별 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경계했을 일이나 워낙 상황이 다급하다보니 결국 용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명나라 조정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었다.
척계광은 황족은 물론 조정 대신들까지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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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