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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몰락
알탄 칸의 군대는 빈틈을 찾아 찌르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신기전에 의한 공격은 처음 한 번으로 끝났다. 그러나 북해도의 군대는 신기전이나 쇠뇌만 쓰지는 않았다.
더구나 보병들의 경우에는 마차가 있었다.
신기전과 화차를 움직이던 마차는 비어있었다. 그래서 보병들은 마차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예전이라면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신유성이 신국을 세운 이후에는 국경에는 도로가 생겨났다. 그렇게 대단한 도로는 아니었다.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정도의 길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병력의 이동속도는 빨라졌다. 마차까지 타고 있으니 훨씬 빠르게 이동이 가능했다. 또한 함경도의 평안도의 주민들은 자진해서 방어에 나섰다. 특히 사냥꾼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저 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신유성이 나라를 세운 뒤로 살기가 좋아졌다. 먹고 사는 문제로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고 그 무섭다던 마마도 이제는 겁낼 필요가 없어졌다. 앞으로 또 뭘 해줄지 기대가 되었다. 그렇기에 다른 자들이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또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가!”
누군가의 선동 한 마디에 불이 붙었다.
과거로의 회귀는 죽어도 싫은 것이었다. 노인들까지 방구석에서 나왔다.
“내가 살면 이제 얼마나 산다고. 놔라. 가야겠다.”
노인들은 머릿수를 채우다 죽는 것이라도 좋다며 전선으로 나갔다. 이에 젊은이들도 질 수 없다며 나섰다. 그리고 여기에 야인 여진족이 동참했다.
함경도와 평안도에는 무수히 많은 야인 여진들이 들어와 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도 신국은 소중했다. 드디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땅에 안착하게 된 것이었다.
병력의 수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다만 기병이 대다수인 알탄 칸의 전력이 수에 비해 우세였을 뿐.
하지만 알탄 칸의 군대는 결국 강을 건너지 못했다.
강변에서 항상 격퇴 당했다. 강을 건넌 자들이 있긴 했지만 악착같이 달라붙는 신국의 의용병에게 당한 것이었다.
결국 알탄 칸은 돌아섰다.
‘이런 정도라니.’
군량이 떨어져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약탈을 해서 보충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요동 반도의 대련을 목표로 삼았다. 그냥 돌아가는 것은 앞으로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
‘부하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알탄 칸은 패했다. 패배를 모를 때는 모두 알탄 칸을 따랐으나 패배를 하자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하들이 생긴 것이었다.
이는 매우 작은 틈이었다. 하지만 작은 틈을 무시하다가는 붕괴에 직면하게 된다.
계속해서 패배를 하게 된다면 우두머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어렵다. 실패하는 자의 뒤를 따르다보면 불이익이 돌아오니까.
그러니 알탄 칸으로서은 조금이나마 성과를 거두어야만 했다. 성과를 거두고 적당히 잘못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었다.
“요동에 놈들의 거점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 곳을 친다.”
“괜찮겠습니까? 놈들의 무기가 만만치 않은데.”
“화약이 계속 땅에서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빈틈은 있을 것이다.”
요동 반도의 끝에 있는 대련이 바로 목표였다. 정찰 결과 대련에 신국의 병사들이 결집해있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점령할 가치가 별로 없어 한반도로 직행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승리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기에 대련을 노리게 되었다.
대련.
“놈들이 오고 있다. 우리의 힘을 보여줄 때다.”
대련의 병사들은 의용병이 아니었다.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었다. 더구나 대련에는 상당수의 포병이 남아있었다.
“놈들에게 이곳을 내줄 수는 없다.”
결사의 의지를 가진 채로 여진 군단은 알탄 칸의 군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알탄 칸은 또 다시 패배를 맛봐야만 했다.
해안을 따라 움직이면 대련에 정박해있던 군선들이 움직여 포격을 날렸다.
대포에 의한 피해가 큰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압박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해서 대련 항구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화살 세례였다.
대련에도 남아있던 신기전과 화차가 있었던 것이었다.
“젠장! 뭔 화살이 이렇게 많아!”
알탄 칸의 군대는 질려버렸다. 그래서 결국 포기하고 물러났다. 막대한 피해를 감수해가면서 점령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돌아가던 길에 알탄 칸은 결국 부하의 배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오이라트에 의해 초원이 유린당한 것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불어버린 부하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전사들은 분노했고 알탄 칸은 배신한 부하에게 목숨을 잃었다.
몽골 군대는 서둘러 초원으로 퇴각했다.
북경.
“퇴각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흠.......”
뒤를 쫓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너무 몰아세우면 안 돼. 흩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신유성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또 다른 중요한 업무가 있었다. 바로 이제 차지한 명, 중원 지역과 그 주변국과의 관계를 재설정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안남의 상황은?”
“현재 대월국과 계속 반목중입니다. 상당히 밀리고 있으니 손을 내민다면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느새 북경에 도착한 이이는 신유성을 보좌해 많은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 중에는 외교에 관한 것도 빠지지 않았다.
“그럼 얼른 사신을 보내도록. 시간이 없다.”
베트남 지역은 현재 둘로 나뉜 상태라고 볼 수 있었다. 안남국이라 할 수 있는 막왕조와 대월국이라 할 수 있는 후 레왕조였다.
레왕조에 계속 무능한 황제가 나타나자 결국 권신이었던 막등용이 제위를 찬탈했다. 그렇게 막왕조는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레왕조는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레왕조의 부흥을 꿈꾸는 이들, 혹은 막씨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뭉쳐서 대항했다. 이들 세력이 세운 나라가 바로 대월국이었다.
이후 두 국가는 계속해서 반목했다. 양쪽 다 명나라를 통해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하는 상황이었다.
“대월국은 어찌할까요?”
“그들에게도 보낸다.”
명나라는 안남과 대월이 반목하는 것을 그대로 유지시켰었다. 따로 편을 들어 한쪽이 유리해진다고 명나라에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반목해서 힘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는 편이 더 편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계속 다투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내가 먹어야지.’
필요하다면 다른 한 쪽을 아예 망하게 할 의향도 있었다. 하지만 되도록 전쟁까지는 가고 싶지 않은 신유성이었다.
‘지금 또 전쟁을 할 여유는 없다.’
조선이나 일본과 달리 명나라는 다르게 접근해야만 했다.
황제의 자리를 찬탈했다고 방심하고 계속 전쟁만 하러 다니다가는 뒤통수 맞을 수가 있었다.
이제는 정말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돌려막기로 굴러왔으나 더 전쟁을 한다면 내정이 흔들릴 위험이 컸다.
‘숨고르기를 해야 할 때다.’
하지만 그래도 베트남 지역을 포기하기는 아까웠다.
기오창가와 부얀은 각자 부대를 이끌고 갈라졌다. 그리고 경쟁이라도 하듯이 몰아쳤다. 신유성에게 반기를 든 세력들이 정비를 하고 맞서려 하기도 전에 들이닥쳤다.
“죽고 싶은 놈들은 역적의 편에 서라!”
서슬 퍼런 외침에 결집하려던 이들은 결국 흩어졌다.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을 역적으로 몰아세움으로서 전체의 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별 것 아니다! 대명의 백성들은 오랑캐를 황제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선동으로 모면하려 한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랑캐’라고 말한 것은 여진인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다.
“저 놈 죽여라!”
입을 열어 외친 자에게 여진 병사들이 돌진했다. 무서운 기세에 길이 열렸다. 그리고 오랑캐라고 외친 자들의 목은 떨어졌다. 그러자 겁을 먹은 일반 병사들과 백성들은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역적과 함께 한 놈들은 모두 포박하라!”
수많은 이들이 노예로 전락했다.
하북 하남 호북 섬서 등, 신유성이 보낸 기오창가와 부얀은 차례로 지역 세력들을 박살냈다. 약탈은 하지 않았다.
신유성의 약속 때문이었다. 여진의 땅이 될 거라고.
영주가 되면 민심을 살펴야 하니 저항하는 자들만 철저하게 박살내고 공포를 심어준 뒤 움직일 뿐이었다. 무엇보다 약탈하면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에 서두르고 있었다.
차례차례 각 지역이 박살나자 결국 사천을 비롯해 남은 지역에서는 신유성의 지배를 받아들였다. 박살나느니 빌붙어서 한 자리 차지하기로 한 것이었다.
충신들이라면 하지 않을 짓. 끝까지 싸우거나 목숨을 던졌겠으나 정덕제에 이어 가정제로 이어지며 간신들이 득세한 상황이라 벼슬을 한 이들도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무엇보다 동창을 이용해 배신을 허용하지 않던 황실이 무너진 것이 컸다. 동창도 박살나서 유명무실해졌으니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이들은 이런 상황에 한탄하며 은둔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살났던 동창의 하부 조직은 새로운 목적을 내세웠다.
반 신국 결사를 조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상황이 점점 정리되어가자 신유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감축 드립니다.”
“율곡. 앞으로 그대가 많은 일을 해주어야 한다. 믿겠다.”
이이는 등골이 짜릿해졌다. 신유성이 믿고 맡기겠다고 한 것은 다름 아닌 명, 중원의 총영주 자리였다.
북경은 총영주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북경의 옆에 붙어있는 천진은 황실 소유. 또한 북쪽에서 산해관까지 땅까지도 모두 신유성의 소유였다.
여기에 신유성은 요동을 비롯한 만주를 손에 넣기 위해 궁리하는 중이었다. 원래 여진이 살던 땅이었으나 이들은 대거 중원으로 이주할 계획이었다. 그러니 신유성은 만주를 여진의 영역이 아닌 자신의 영역으로 삼으려는 것이었다.
‘세금을 줄여주는 것으로 되겠지.’
장기간 면세 조건을 걸어 사들이려는 속셈이었다. 신유성은 황제가 되었음에도 그냥 내놓으라고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는 거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상호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기오창가와 부얀은 돌아왔다. 그리고 곧 협상에 들어갔다.
“그러니 그 땅을 사시겠다는 건가요?”
“그렇다. 팔아라. 사겠다. 얼마면 되나?”
기오창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가지셔도 되는데.”
기오창가의 입장에서는 그냥 살기 힘든 땅이었다. 신유성 덕분에 더 살기 좋은 곳을 얻었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살던 땅이라고 하지만 새로 얻은 곳에 비하면 너무나 척박한 곳이었다.
“내 어찌 그 땅을 그냥 받겠나? 정 받을 생각이 없다면 이제 영지가 될 곳에서 향후 10년간 세금을 면제해주지.”
10년간 세금 면제!
이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만주에서 했어도 굉장한 일이었지만 강북의 알토란같은 곳에서 10년간 세금 면제라니!
어마어마한 액수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신유성의 입장에서는 그리 손해 보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세금을 적게 걷을수록 빨리 안정 되니까.
중원이 빨리 안정 되어야 신유성도 좋았다. 중원을 꿀꺽한 것으로 만족하고 움직이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영주로 만들어주거나 할 필요도 없었지만 신유성의 야망은 중원 정도로 채울 수는 없었다.
‘아직 배고프다.’
세상은 넓었다. 먹을 곳은 많았다. 전부 다 먹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허기였다.
‘더 빨리 안정되어야 다시 원정을 갈 수 있다.’
그리고 만주에 영주를 두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훗날 엄청난 땅이 되기 때문이었다.
‘좀 더 북쪽에 내 땅이라고 영역 표시도 해야겠군.’
만주의 더 위쪽 땅에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나 세력이라 부를만한 존재들은 없었다. 그냥 가서 비석을 박아두고 신국의 영역이라고 해도 될 판이었다.
“목숨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신유성이 바쁘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할 때, 기오창가와 부얀은 감명을 받아 고개를 숙였다.
안남.
베트남 북부에 자리 잡은 안남국은 막등용이 세웠다. 그리고 지금은 막복원이 다스리고 있었다.
“뭐라고? 명이 무너져?”
“그렇습니다. 그리고 신국의 사신이 왔습니다.”
“으음!”
명나라가 무너졌다는 말에 막복원은 현기증이 났다.
‘정씨 놈들을 막으려면 명의 힘이 필요하거늘!’
반 막왕조 세력의 구심점은 현재 정씨 일족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맹공은 상당히 거셌다. 막복원은 명나라의 도움을 받으며 이들을 힘겹게 물리치고 있었다. 그런데 명이 망했다고 하니 충격이 컸다.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던 막복원은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얼른 사신을 모시도록.”
막복원은 그래도 희망을 접지 않았다.
‘하늘이시여! 막씨를 버리지 마소서!’
간절한 기도를 하며 사신을 만난 막복원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군.”
결정을 내리기 힘든 제안 때문이었다.
‘영주가 되라고?’
조건을 받아들이고 신국의 영주가 되면 군대를 통해 보호해주겠다는 것이었다. 황제를 자처하고 있던 막복원의 입장에서는 미묘한 얘기였다.
‘어찌해야 하나?’
갈등하던 막복원은 결국 받아들였다. 사신이 대월에도 갔을 거라고 나중에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