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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몰락
한편, 대월에서는 조건을 내걸었다.
“막씨를 멸하게 해준다면 받아들이겠소.”
“그건 안 될 일이군요. 그쪽에도 제안이 들어간 것이라.”
“그럼 받아들일 수 없소.”
대월에서는 제안을 거절했다. 막씨 타도의 기치를 내걸고 뭉쳤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원수 같은 자들을 이웃으로 그냥 두고 지내야만 한다는 사실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신국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정씨들은 자신들의 영역에서는 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베트남 남부의 지역에 몰려있는 이들은 확실히 자신할 만 했다.
밀림은 대군이라고 해도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전쟁은 끝났다. 신유성은 중원의 강북 지역의 영주로 여진 군단을 이끈 기오창가와 부얀으로 정했다. 여진족이 상당히 큰 땅을 얻게 되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만큼 여진 군단의 기세는 맹렬했다. 노부나가조차 한 발 물러설 정도로.
노부나가 군단은 골고루 강남을 나눠가졌다. 그리고 절강성은 척계광에게 넘어갔다. 한 일에 비해 얻은 것이 적었지만 강남의 알토란같은 지역이 바로 절강성이었다. 항주가 있었으며 지금도 꾸준히 한반도를 비롯해 일본 전역에서 상인이 찾아오는 곳이었다.
신유성은 조금이라도 불만을 보인다면 산동반도라도 내줄 생각이었지만 척계광은 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모반을 일으킨 몸으로 더 많은 것을 탐한다 한들 좋은 소리 듣긴 어렵지요.”
어떻게 미화시켜도 척계광이 한 일은 배신이었다. 모반이었다.
배신을 하며 내건 명분은 바로 나라의 안정이었다. 그런데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 더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면 신유성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대에겐 더 공을 세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오점이 있으나 더 위대한 업적을 쌓으면 오점은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게 된다.”
“그래도 점은 점이죠.”
“완벽함을 추구하면 삶이 피곤해진다. 적당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지.”
“그건 그렇습니다.”
신유성은 척계광이 마음에 들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자신을 생각해주는 것도 그랬다.
“그럼 산동반도는 이에야스에게 내리겠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아도 되지만 신유성은 이에야스에게 산동반도를 내려주었다. 전쟁에서 이에야스 또한 많은 활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조그만 땅을 주어도 기뻐했을 이에야스는 산동반도를 받게 되자 크게 기뻐했다. 산동반도는 중원과 한반도를 잇는 아주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형님께서는 내게 기대하시고 있다! 이 나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이에야스는 한껏 들떴다. 그리고 이에야스를 따르던 가신들은 모두 크게 감동했다.
‘역시 통이 크시다.’
미카와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땅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미카와를 폐하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에야스는 더 이상 미카와가 필요 없어졌다. 가신들은 놀랐지만 곧 이해했다. 산동반도에 비하면 미카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라.”
나중에 이에야스가 산동 반도를 받은 것이 일본 영주들에게 알려지자 영주들은 생각했다.
‘만약 내가 주군의 곁에서 원정에 함께 했다면?’
어쩌면 지금 가진 것과 비교도 안 되는 땅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부나가 군단 또한 그랬다.
사략 허가를 받아 약탈로 얻은 부는 상당했지만 중원에 영지를 얻게 된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만약 나도 군단에 참가했었다면!’
어쩌면 엄청난 영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많이 참가한만큼 경쟁이 치열해지겠지만 얻게 되는 것은 그만큼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였다.
일본의 영주들은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리고 더더욱 신유성과 가까워지기 위해 신유성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더욱 세심하게 기울였다.
목적은 오직 하나, 신유성과 가까워지기 위해서였다.
대충 중원을 정리한 뒤, 북경에 총영주로 임명한 이이를 남겨두고 신유성은 한양으로 돌아왔다.
‘역시 고향이 편해.’
신유성에게 있어 고향은 한양이었다. 크기는 자금성이 더 크고 화려했지만 그곳에서는 불편한 동거를 해야만 했다.
가정제와 융경제를 비롯한 대부분의 황족들을 자금성에 유폐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자금성의 궁녀와 환관들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것도 이유였다.
‘이에야스가 잘 해주겠지.’
신유성은 이에야스와 그의 가신인 핫토리 한조를 떠올렸다.
핫토리 한조는 정말 유능한 닌자 출신 가신이었다. 싸움도 잘했고 정보 수집도 기가 막혔다.
‘신페이도 있고. 켄도 있고.’
유능한 닌자들이 전부 휘하에 있는 셈이었다. 이들은 현재 동창 못지않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다.
제물포에서 내린 신유성은 천천히 한양으로 움직였다. 한양까지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것은 없었다.
조금씩 한양이 가까워지자 신유성은 문득 여자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오래 떠나 있었군.’
지금은 1560년 4월이었다.
오랫동안 전쟁을 하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었다.
‘아무래도 많이 달래주어야 할 것 같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유성은 각오를 단단히 했다.
궁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맞이해준 것은 신겸혁이었다.
“허허, 장하구나.”
오래 전, 명나라로 유학 보낼 생각을 했던 아니는 커서 명나라를 집어삼켰다.
보통 인간이라면 하기 힘든 일들을 하나씩 해낸 것이었다. 천운이 뒤따랐다고 해도 엄청난 일은 엄청난 일이었다.
아니, 천운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신유성이 하늘의 선택을 받은 인간이란 소리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니 능력이든 운이든 신유성이 대단한 뿐이었다.
명나라를 집어삼킨 것은 그런 대단한 일이었다.
“이제 아버지도 황제입니다.”
“하하하하! 그래, 우리 집안도 황족이구나!”
아들이 황제가 되니 신겸혁도 황제가 되었다. 신겸혁의 할아버지까지 황제로 추존되었다.
신주성도 활짝 웃었다. 동생 덕분에 이제는 황족이 되었으니까.
“얼른 들어가 봐라. 기다리고 있다.”
신유성은 천천히 궁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폐하.”
신유성이 처소로 향하자 안에서 주녹정이 달려 나왔다. 뒤를 이어 신유성의 여자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따라왔다.
가슴에 안긴 주녹정은 눈물을 흘렸다.
‘오셨구나!’
드디어 신유성이 돌아왔다. 전쟁을 하겠다고 나가서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자신이 만류해서 그랬나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그렇다고 볼 순 없었다.
신유성은 정말 싸워야 했다.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전쟁이었다.
‘오셨으니까 됐어.’
어찌 되었든 살아서 돌아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가슴에 안겨 눈물을 흘리던 주녹정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추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신유성과의 잠자리는 그리 쉽게 성사되지는 않았다.
여행을 하고 왔으니 신유성은 목욕부터 했다. 사람들을 내보내고 홀로 목욕을 하며 뭉쳤던 근육을 풀었다.
주녹정과 여인들이 안으로 들어오겠다는 것도 말렸다.
그 뒤에는 식사를 하고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그냥 수면을 취했다.
집으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린 것이었다.
전쟁에서 딱히 큰 위험을 겪은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심력을 상당히 소모한 순간은 있었다.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반응을 고려해 명령을 직접 내려야 했다. 계속 올라오는 정보를 통해 판단을 내려야 했다.
전투 자체는 부하들이 한다고 해도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선 신유성이 빠르게 결정을 내려줘야만 했다. 그 덕분에 빠르게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알탄 칸을 물리칠 수 있었다.
계속 한양에 앉아서 일을 도모했더라면 일이 어떻게 꼬였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집에 돌아오자 긴장이 탁 풀렸다.
그냥 편히 자고 싶었다.
이러한 의지에 반할 수 없기에, 주녹정을 비롯한 여인들은 기다려야만 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잤다. 초저녁부터 아침까지 잔 뒤에도 물만 마시고 다시 잤다. 늘어져라 잠만 잤으나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이제 일어나야 하나.’
정신은 깨어있었다. 그러나 몸은 늘어졌다. 긴장이 풀리니 나른할 뿐이었다. 그러다 배에서 밥달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것은 영혼의 외침.
무시할 수 없으니 신유성은 오랜만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해보았다.
전쟁을 할 때는 주로 고기를 구워먹거나 만두를 먹었다.
‘스테이크는 됐고. 만두도 됐고.’
먹을 것을 떠올리며 몸을 일으킨 신유성은 4월의 오후 햇살을 받으며 밖을 바라보았다.
“기침하셨습니까?”
“그래, 출출하다.”
“드시고 싶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냉면이 먹고 싶다.”
“곧 올리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말한 순간, 주문은 순식간에 주방에 전달되었다. 대기하고 있던 황궁 숙수는 잽싸게 움직였다. 주방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었다.
오직 한 그릇의 냉면을 위해.
“서둘러라!”
“폐하를 얼마나 기다리시게 할 셈이냐!”
하지만 조리에는 필수로 들어가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만큼은 숙수들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재료를 가져와서 다듬는 데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했다.
그렇게 뚝딱 만들어진 냉면은 신유성에게 바쳐졌다.
정원을 바라보며 상을 받은 신유성은 물냉면을 바라보았다.
먹기 좋게 담겨있는 냉면이었다. 그릇을 들어 국물을 들이키자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제대로 된 육수군.”
육수는 항상 준비되어 있었다. 매일 새로 끓이며 만약의 상황에 준비하는 것이 육수였다.
진한 고기 육수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면 감칠맛이 더해지기 때문이었다.
육수를 즐긴 뒤, 고명으로 올라온 삶은 계란과 고기를 먹었다. 반숙의 계란은 매끄럽게 혀를 감쌌고 두툼한 고기는 씹는 맛이 있었다.
이어서 면을 후루룩 들이키며 씹으니 면에 스민 감칠맛이 가득 퍼졌다.
면을 다 먹고 국물까지 다 마시자 배가 빵빵해졌다.
“맛있었다고 전해라.”
그릇을 내려놓으며 한 말은 금방 황궁 숙수에게 전해졌다. 긴장하고 있던 황궁 숙수는 활짝 웃었다.
식사를 마치니 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소화도 시킬 겸 정원을 슬쩍 거닐던 신유성은 어느새 다가온 주녹정을 보았다.
“미안하게 됐다.”
“아닙니다.”
오랫동안 동침을 하지 않았으니 애가 탈만도 했으나 주녹정은 안달하지는 않았다. 신유성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그럼 들어가자.”
손을 잡고 이끌자 주녹정의 볼이 붉어졌다.
‘드디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총총 걸음으로 뒤따르며 바라본 신유성의 등이 무척이나 커보였다.
잠시 뒤, 침소에 든 주녹정은 벗겨지기 시작했다.
한 겹, 또 한 겹.
희롱하듯 움직이는 손길에 옷이 벗겨졌다. 너무나 느린 손길이 야속했으나 서두르지 않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손길을 느꼈다.
봄바람과 햇살이 느껴졌다.
문을 열어놓은 탓에 정원이 훤히 보였다. 하지만 남자가 엿 볼 일은 없었다.
신유성의 처소에는 오직 여자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으니까.
봄바람과 햇살 속에서 결국 나신이 된 주녹정은 신유성의 몸을 보게 되었다.
안 본 사이에 더 성장한 신유성은 상당히 컸다. 넓은 가슴이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다리를 벌려 맞이했다.
“으응!”
안으로 파고드는 반려의 일부가 몸을 꽉 채웠다.
‘아아아아!’
쌓였던 쾌감에 대한 그리움이 한순간에 터졌다. 와락 끌어안은 주녹정은 깊게 파고든 신유성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신유성은 사공이 되었다.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젓는 노질에 작은 배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출렁이는 쾌락의 파도는 배를 더욱 더 심하게 흔들었다.
철썩거리는 소리가 연신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도는 부서졌지만 다음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왔다.
“하응!”
급기야 배는 뒤집어졌다. 그래도 쾌락의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사공은 배가 뒤집어졌어도 노질을 했다.
기가 막힌 노질이었다.
때로는 배가 허공에 떠있기도 했다.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옆으로 눕기도 했다. 그래도 기가 막힌 사공은 기가 막히게 노질을 했다.
쾌락의 바다를 점령한 사공은 만족스러울 때까지 노질을 했다. 그리고 노질이 끝나자 바다는 고요해졌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