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3 / 0271 ----------------------------------------------
뜨거운 여행
체첵을 안은 다음은 사르나이였다.
“말을 타보고 싶어요?”
“뭐? 여기?”
장난스럽게 우뚝 솟은 물건을 가리키자 사르나이는 얼굴을 붉혔다. 문득 말에서 관계를 맺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라서였다.
‘해보질 못했는데.’
사르나이는 부끄러웠다. 말을 타보고 싶다고 한 것은 그냥 자유롭게 달려보고 싶어서였다. 황제의 여자로 사는 것은 가끔 답답할 때가 있었다. 언제나 사람의 눈을 의식해야 하고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무수히 많은 이들이 이리저리 휘둘리니까.
신유성의 경우에는 거침이 없었다. 남들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여자들의 경우는 달랐다. 행여나 신유성에게 걸림돌이 될까 조심해야했다.
사르나이는 답답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신유성과 관계를 맺으며 즐겁게 해주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 외에는 없었다. 조금 더 도움이 되고 싶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일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랐다.
답답한 마음은 무거웠다. 그래서 어딘가 가서 던져버리고 싶었다.
바람 속을 달려 날려버리고 싶었다.
자유로운 초원의 영혼이 꿈틀거렸다.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해라.”
신유성은 잠시 부끄러워하더니 한숨을 내쉬는 사르나이에게서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보였다.
‘단순히 말을 타고 싶은 건 아닌 것 같고. 향수병인가?’
하지만 향수병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집에 가고 싶다거나 그런 행동을 보인 적도 없고 오히려 즐거워 했으니까.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몇 번 재촉하니 사르나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쓸모없는 거 같아서요.”
품에 안긴 사르나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도움이 되고 싶지만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것에 미안해하며.
여자로서 남자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은 한 때였다.
젊을 때.
그 이상이 되면 젊음은 시든다. 보통은 자신의 짝에 안주하며 살아가지만 황제쯤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또 다른 젊은 여자를 찾으면 된다.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를 찾을 때가 가끔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권력자의 총애를 계속 받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두려운 건가?’
사르나이의 두려움을 이해한 신유성은 연민을 느꼈다.
터질 것 같은 아름다움을 품은 몸도 결국 세월과 함께 시들기 마련. 신유성은 가만히 사르나이의 몸을 쓰다듬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즐길 수 없는 아름다움이기도 했다.
“찾아보겠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폐하!”
사르나이는 신유성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가슴 속에 차오른 감동이 흘러넘쳤다.
순간 신유성이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갑작스러웠으나 사르나이는 몸을 활짝 열어 맞이해주었다.
정복자를 맞이하는 연회는 화끈하고 시끄러웠다.
다음 날, 신유성은 화진을 찾았다. 그리고 화진과 관계를 맺으면서 질문을 던졌다.
“저도 뭔가 해드리고 싶어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비슷했다. 신유성에게 뭔가 도움이 되고 싶지만 할 줄 아는 게 없어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화진도, 매화도, 레이도. 모두 뭔가 더 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권력을 나눠달라는 말로 곡해할 수도 있었으나 신유성은 그런 것을 느끼지 못했다. 주녹정 또한 여자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다.
‘일이라.’
생각해보면 정말 아이 낳는 것 외에는 신유성에게 해줄 것이 별로 없는 여자들이었다.
여행은 계속되었다.
마차에서, 그리고 방에서 쾌락의 항해는 계속 이어졌다. 나중에는 모두 모아놓고 한꺼번에 안기도 했다.
실컷 즐겼다. 즐거움을 주고 싶었던 여자들은 부끄러운 자세를 시켜도 모두 소화해냈다. 서로를 물고 빨고.
여자들 품에서 신유성의 몸은 녹아났다.
그렇게 여행을 하며 결국 항주에 도착했다.
“오셨습니까?”
항주는 활기가 넘쳤다. 명나라가 신국의 일부가 된 다음부터는 상인들이 끊이질 않았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일본의 각지와 한반도에서 찾아오는 상인들의 수가 엄청났다.
과거에는 해금령으로 인해 밀수를 하거나 해적질을 해야만 했던 이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찾아와 거래를 했다.
항주의 상인들도 신이 났다. 돈이 돌고 활기가 도니 항주에서만큼은 청교공주와 척계광을 욕하는 사람이 없어졌다. 완전히 신국에 붙어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척계광의 표정도 활짝 펴졌다.
“표정이 좋군.”
“폐하의 은덕 때문이죠.”
“은덕은 무슨. 다 그대의 수완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지.”
안으로 들어가며 두 사람은 덕담을 나누었다. 황제인 신유성이 척계광을 직접 찾으니 소문은 금방 퍼졌다. 그리고 이것은 척계광의 위신을 살려주는 것이 되었다. 아직은 척계광을 중히 쓰겠다는 의지로 해석한 것이었다.
신유성이 척계광과 만나고 있을 때, 청교공주는 주녹정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자존심이 강한 청교공주였으나 주녹정에게 질투심을 품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번에 절강성을 손에 넣었기에 기뻐했다.
“상공을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거야 이를 말인가. 폐하께서도 중히 여기시네.”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절강성만 안겨주었지만 신유성이 척계광을 계속 원정에 데려갈 것임을 주녹정이 살짝 알려주었다. 그러자 청교공주의 표정이 활짝 피어났다가 금방 시들었다.
“기쁘지 않은 건가?”
“기쁘긴 하지만 전쟁을 하게 되면 또 멀리 가시니까요.”
그렇다. 전쟁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 신유성만 해도 여러 해 동안 전쟁터에서 굴렀다. 직접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군대와 함께 움직이면서 돌아오지 못한 것이었다.
“그럴 때일수록 잘 해야지.”
남자가 없을 땐 집안 단속을 잘 해야만 했다. 엉뚱한 놈들이 침을 흘리고 달려들 수 있으니까. 황궁에서 자란 두 여자는 이러한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상한 놈들은 없나?”
“불측한 소리를 하고 다니는 놈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금방 사라지더군요.”
절강성에서 신유성을 욕하던 놈들은 청교공주가 다 잡아 죽였다. 신유성을 욕할 때면 꼭 척계광도 욕했으니까.
“그런데 대체 누가 소문을 잠재우고 다니는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짚이는 구석은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북해도였다.
과거에는 신비의 섬이라고 불렸던 북해도, 지금은 신의 섬이라고 불리고 있다.
북해도의 영주인 신페이는 아주 오랫동안 신유성을 모신 인물이었다. 신유성의 여자이기도 한 레이의 오라버니로 비밀스러운 닌자 집단을 이끄는 수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닌자들을 이끄는 수장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상한 종교의 교주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렸다.
그리고 그 이상한 종교는 바로 신유성을 신격화하는 종교였다.
다음으로 의심이 가는 인물은 후지바야시 켄.
해군을 통솔하고 있는 닌자 출신의 장군이었다. 신페이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고 있으며 주로 하는 일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신념을 품고 있기도 했다.
켄 또한 열렬한 신유성의 추종자로 명령만 떨어지면 무슨 짓이든 할 인간이었다.
마지막으로 의심이 가는 인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신유성과 어릴 때 인연을 맺은 인물이었다. 신유성과의 관계는 의형제 관계라고 분석하는 이들도 많은 인물로 평소에는 무척 조용하지만 한 가지 일에서만큼은 사람이 돌변했다.
바로 신유성에게 위협이 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제일 의심이 가는 건 이에야스.’
이에야스 또한 핫토리 한조라는 걸출한 닌자 출신 가신을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산동 반도를 손에 넣은 후에도 정보 집단의 몸집을 불리며 여기 저기 손을 뻗고 있는 중이라는 보고를 매화로부터 받았었다.
‘매화는 아니고.’
신유성의 곁에서 신유성을 위한 정보 집단을 만든 매화는 내부의 인물들을 조사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누가 해도 이상하진 않아.’
높은 자리에 있는 만큼 보이는 풍경이 달랐다. 주녹정은 말해줄 수 있었으나 비밀스러운 일이라 입을 다물었다. 청교공주도 뭔가 비밀스러운 황실 조직과 연관된 일이라 생각해 더 묻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친목을 위한 소소한 잡담이 다시 이어졌다.
안남.
막복원은 행복했다. 신국의 영주로 들어갈 땐 꺼려지는 것이 참 많았다. 하지만 지배를 받아들이고 나서도 막상 크게 권위를 상하게 하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신국에서는 영지의 일은 영주가 알아서 하는 거라며 몇 가지 지켜야 할 법만 준수하라고 했다.
막복원의 입장에서는 못 들어줄 것도 없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상인들이 자유롭게 오간다는 것이었다.
또한 대월의 침략에 대한 걱정도 줄어들었다.
대월과 맞닿은 지역에 약탈 허가를 받은 사략 선장들의 주둔지를 만들어주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명나라가 무너지고 중원 지역에서의 교역이 자유로워졌음에도 몇몇 영주들은 약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월은 좋은 상대였다. 신유성은 이를 허락해주었다. 그러자 사략 선장들은 대월을 털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라면 명나라를 털 때는 귀금속을 비롯한 가치 있는 물건 위주로 털었다면 이번에는 사람을 중심으로 털기 시작했다.
명나라와는 달리 그리 부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이들로 인해 걱정 없이 즐겁게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독립할 필요도 없겠어.’
신국의 일부가 되자 쏟아져 들어오는 부.
막복원의 눈이 돌아가기에는 충분했다. 상인들과의 거래는 막대한 이득을 남겼다. 때문에 막복원은 더더욱 많은 이들을 농사를 비롯한 식량 생산에 투입했다. 신유성을 비롯한 이들이 엄청난 양의 식량을 사주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생산을 하고도 그냥 내버리던 것들도 이제는 소금에 절이거나 잘 말려서 저장 기간을 늘려 팔아먹기 시작했다. 더구나 새로 시작한 염전도 효과를 발휘했다.
안남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안남이 매일 같이 발전할 때, 대월은 매일 같이 추락했다.
사략 해적들은 지독하게 덤벼들었다. 사람들을 잡아갔다. 약탈하고 또 약탈했다. 마치 사람이 없는 곳으로 만들려 하는 것처럼 약탈해버렸다.
“이대로 가다가는 못 버팁니다.”
“그럼 어찌하나?”
“차라리 술탄이 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게 쉽게 되나?”
“시도라도 해보죠.”
대월은 난감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수로 여러 곳의 술탄들에게 사신을 보냈다.
한편, 동남아 지역의 술탄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그것은 바로 남만인들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이 놈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죽어라!”
특히 말라카 해협은 죽음의 해협으로 명성을 떨칠 정도였다. 과거 신유성의 도움으로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낸 말라카는 함대를 구성했다. 더 뛰어난 선박과 대포를 다수 보유하게 된 말라카 함대는 쉽게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향신료를 향한 포르투갈의 탐욕은 쉽게 그치질 않았다. 그리고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고 에스파냐까지 경쟁에 끼어들었다.
강력한 함선과 대포를 가진 두 유럽 국가를 상대하다보니 말라카는 계속 밀렸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향신료의 힘.
향신료를 팔아 얻게 되는 막대한 부 덕분에 말라카는 계속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한계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됩니다.”
“동맹을!”
“신국을 불러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과연 동맹을 맺을까 싶은데.”
신유성의 신국이 명나라를 꿀꺽한 사실은 이미 파다하게 퍼졌다. 거대한 국가의 주인이 바뀐 일이니까. 명을 오가던 상인들에 의해 소식은 이미 알려졌었다.
“대월에서 사신이 왔습니다.”
회의를 하는 도중에 대월의 사신이 도착했다. 동맹이 필요했던 참이라 사신을 만났지만 내용은 별로 기쁜 것이 아니었다.
신국을 견제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러가라.”
신국과 손을 잡을까 고민하던 말라카의 술탄에겐 기가 막히는 소리였다.
“일단 신국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다. 그들이 자랑하는 사략 선단이라면 우릴 대신해 바다를 지켜주겠지.”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말라카의 술탄은 오히려 신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냈다.
한편, 말라카 왕국의 위에 있는 태국, 아유타야 왕국은 대월의 요청에 회의에 들어갔다.
“저들과 힘을 합한다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입니다.”
아유타야 왕국은 결국 대월의 사신에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아유타야 왕국 또한 따웅우 왕국으로부터 줄기차게 침략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국과 척을 지는 것은 오히려 큰 부담이었다.
결국 대월은 찾아간 모든 곳에서 거절당했다.
국제 관계란 것도 이득을 보고 맺는 것. 대월이 제공할 것이 없다보니 결국 모두 거절당한 것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