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4 / 0271 ----------------------------------------------
뜨거운 여행
여인들은 엎드려있었다.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잎들이 활짝 벌어졌다. 꽃밭을 감상하던 신유성은 천천히 매화에게 다가갔다.
현재 여성들 중에 매화의 키가 제일 컸다. 예전에는 어렸지만 영양 상태가 좋아지자 쑥쑥 자랐다. 여인들 중에서도 가장 어렸지만 가장 성숙했다. 그리고 이젠 더 이상 어리다고 할 나이도 아니었다.
“훌륭하구나.”
꽃을 품고 있는 엉덩이를 쓰다듬으니 파르르 떨렸다.
꿈틀거리는 꽃잎을 감상하던 신유성은 사공으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노질을 시작했다. 매화는 꽃배가 되어 신유성을 태우고 항해를 시작했다.
철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항해가 시작되었으나 사공의 손길은 분주했다. 양 옆에 다른 배들도 이끌었다. 그러자 아름다운 배들은 훌륭한 사공을 향해 모여들었다.
쾌락의 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은 노련한 사공에게 매달렸다.
그렇게 한 명씩 쓰러졌다.
“으응! 으응! 나! 나!”
매화는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마구 떠들다 혼절했다. 쾌락의 바다에 침몰하자 사공은 다른 배로 얼른 갈아탔다.
격렬한 노질에 배는 하나씩 침몰했다.
“임신해라!”
사공은 어느 새 농부로 전직해 씨를 뿌렸다. 그렇게 여기저기 씨를 열심히 뿌린 농부는 결국 힘을 잃고 쓰러졌다.
항주에 머물게 된 이후 신유성은 바로 떠나지 않았다. 긴 여행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려 한 것이었다. 아울러 척계광과 오래 시간을 보내며 다음 일을 의논하는 중이기도 했다. 하지만 항주에는 척계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야스는 물론 노부나가와 신겐 그리고 가케토라까지 모였다.
“향항의 남만인들을 어쩔까요?”
“우리가 남만인들과 앞으로 싸우게 되겠지만 상인들을 무작정 적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관리는 철저히 해야겠지.”
전부다 잡아서 노예로 만들고자 한다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그러지 않았다. 알아서 좀 더 많은 물건들을 가져오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말씀만 하신다면 언제든 놈들을 바치겠습니다.”
다케다 신겐은 몸이 근질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원정을 끝내고 얻은 영지는 너무나 광대했다. 그 땅의 크기에 압도되어 숨이 넘어갈 것만 같았다.
행복했다. 짜릿했다. 그렇기에 신겐은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싶었다. 좀 더 거대한 세계로 나아가 족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래, 필요하면 얘기하겠다.”
이후 신유성은 조선소를 더욱 많이 지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이번에 각 지역에 고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어찌합니까?”
고아. 내버려둘 수 있는 문제였다. 영주들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허나, 신유성은 이들을 모두 북해도로 보내도록 했다.
북해도가 신의 섬이 된 또 다른 이유.
그것은 바로 교육에 있었다. 신유성은 북해도를 얻을 때부터 고아를 비롯해 사람을 구해 교육 시켜왔었다. 그리고 이 교육에는 신유성에 대한 존경심을 심는 교육이 포함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존경심을 심는 교육이 신앙심을 심는 교육으로 변한 것이 신의 섬이 탄생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매일 같이 굶주리고 죽을 고생을 하다가 갑자기 편한 잠자리에 맛있는 음식을 맛보게 되니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은 바로 신국의 폐하께서 내려주신 은혜니 모두 감사하도록.’하고 말을 하면 그냥 넘어가게 된다.
아이들을 딱히 정보원이나 닌자로 키우지 않아도 알아서 신유성을 위해 움직였다. 신유성을 조금이라도 욕하면 바로 밀고할 정도였다.
‘더 많이 필요해.’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신국 전역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상인에서 관리까지 발붙인 영역이 엄청나게 넓었다. 하지만 수는 언제나 모자랐다.
그것을 이제는 중원의 아이들까지 동원해 늘리려는 것이었다.
“북해도로 보내면 된다. 대만으로 보내면 다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대만에서 유구를 거쳐 큐슈 그리고 여러 항구들을 거쳐 북해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면 죄인들은 어찌할까요? 요즘 들어 토벌해서 잡은 도적들 수가 상당합니다.”
죄인들은 문제였다. 명나라를 복원하려는 저항 세력은 물론 도적들도 상당했다. 허나, 저항 세력과 도적들이 설치는 꼴을 볼 수 없었던 이에야스는 한조와 조직을 이용해 사냥에 들어갔었다.
각 지의 영주들은 이에 협력해주었다. 저항세력과 도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는 마음은 똑같았으니까.
덕분에 이에야스는 많은 이들을 죽이거나 잡아들였다.
원래는 다 죽이고 싶었지만 그래도 살려둔 이유는 한조 때문이었다. 살려두면 노예로 살게 해서 죄 값을 치르게 할 수 있다는 말에 설득 당했다.
“마침 사람이 필요했는데 다행이군. 기가 강한 놈들은 함경도의 광산 개발에 보내도록 하고 좀 유순한 자들은 필리핀으로 보낸다.”
필리핀에 보내는 것은 농사를 짓게 하기 위함이었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차돌을 따라 대만섬에 정착했다. 그리고 뱃일을 하는 선원이 되었다. 원래부터 배를 타고 다녔던 이들이라 커다란 어선을 타고 어업에 종사하는 일에 거부감 같은 것은 없었다.
허나, 이들이 떠난 필리핀에는 많은 섬들이 공도가 되었다. 본의 아니게 필리핀에서 공도 정책이 실시된 꼴이었다.
‘그냥 내버려둘 순 없지.’
가만히 내버려두면 에스파냐가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내 땅이야. 못 넘겨.’
그러니 죄수라도 보내서 자기 땅임을 확실히 하려는 것이었다.
신유성은 슬슬 남만인들을 다시 의식하기 시작했다. 북쪽에는 아직 몽골 초원이 남아 있었으나 이쪽은 시간만 지나면 여진족과 오이라트가 정리에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완전히 신국의 상황이 다시 정리가 될 때까지는 약탈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전쟁은 힘들지 몰라도 약탈은 가능했다.
이후 회의는 몇 가지 자잘한 안건만이 나왔다. 회의가 끝나자 간단한 식사가 준비되었다.
식사로 나온 것은 햄을 넣고 만든 샌드위치였다. 마요네즈를 살짝 바른 뒤 햄을 넣고 계란을 묻혀 구워낸 것이었다.
“맛있군요.”
기름진 음식이었지만 차와 함께 먹으니 술술 넘어갔다.
“이걸 팔면 돈 좀 벌겠군요.”
“하하하. 돈이 부족하면 내가 좀 줄까?”
이에야스가 무심코 한 마디 하자 노부나가가 크게 웃었다.
“주시면 좋죠. 그래도 이건 팔고 싶네요.”
“뭐? 하하하하.”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다익선. 하지만 이에야스는 단순히 돈만 벌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하려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형님을 초대하고 그래야 하는데.’
신유성이 가끔 들리고 싶을 정도로 멋진 장소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 원래 이에야스가 품었던 계획이었다.
세웠던 계획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건물은 계속 한양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을 수 있는 최고급 자재를 잔뜩 이용해 만든 건물은 완성되어가는 중이었다.
점점 드러나는 화려한 건물은 한양의 명물이 될 거라고 한양 사람들이 얘기할 정도였다.
“한양에 짓고 있는 건물이 완성되면 불러라.”
신유성은 잊지 않고 기억해주었다. 그것이 이에야스를 더욱 기쁘게 했다. 꼬리가 있었다면 신나게 춤을 추는 꼬리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항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신유성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를 타면 빠르게 한양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나 여전히 배를 탈 수는 없었다.
결국 신유성은 다시 마차를 타고 북상하기 시작했다. 허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이에야스와 노부나가도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북상을 하던 중이었다.
장강을 만나 강을 건너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거대한 배에 올라탄 신유성은 풍경을 감상하다가 선실로 들어갔다. 선실에 들어가자 화진이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줍은 표정 아래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
신유성이 다가가자 스스로 몸을 열어 맞이해주었다. 너무나 쉬워서 정복한다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지만 화진의 순종적인 행동은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열정적이고 뜨거운 화진은 쾌락에 펄떡거렸다.
“잘 하는 일이 있느냐?”
“낚시를 조금 할 줄 압니다.”
낚시. 신유성에게 크게 도움이 되는 재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비웃거나 하지 않았다. 크게 기대한 것도 없었다. 다만 여자들이 모두 도움을 주고자 하니 적당한 일감을 안겨주려고 궁리할 뿐이었다.
‘그래, 양식장을 한 번 해보라고 할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양식장을 해볼 생각은 없느냐?”
“양식장이요?”
신유성은 양식장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물고기를 가둬서 키운다는 생각은 못해봤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직접 하지는 말고 아랫사람을 시켜서 해라.”
“알겠습니다.”
“양식장이 성공하면 앞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슬쩍 흘린 말이었으나 화진의 눈동자는 진주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참말입니까?”
“그래, 중요한 일이다.”
정말 중요한 일이긴 했다. 식량 생산이 늘어나 공급이 원활해져야 나라가 잘 돌아가니까.
화진은 신유성을 와락 껴안았다. 그리고 다시 열풍이 불었다.
신유성이 탄 배는 천천히 움직여 반대편에 도착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바로 내리진 않았다. 화진과의 관계가 덜 끝났기 때문이었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게 되었으나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나는 대로 여자를 안는 모습이 황제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을 보낸 신유성은 배에서 내렸다. 화진은 행복에 겨운 표정을 짓고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연기가 피어올랐다.
“폐하를 보호하라!”
뭔가 일이 생기자 신유성의 곁으로 호위들이 인의 장벽을 만들었다.
신유성과 여자들은 호위들의 안내를 받아 서둘러 연기 밖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신유성은 항상 가지고 다니던 검을 뽑았다.
‘불안한데.’
예감은 적중했다. 신유성이 연기를 거의 벗어났을 때였다.
화살이 날아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감각이었으나 위험하다고 생각된 순간 발동했다. 신유성의 감각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화살을 날린 존재를 보았다.
서둘러 검을 휘둘렀다. 뒤쪽에는 화진이 서 있었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검에 의해 궤도가 변한 화살은 튕겨나갔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화살이 날아왔으나 신유성은 다 튕겨냈다.
호위들 중 몇몇은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모두 싸우지 못하는 주녹정을 비롯한 여자들을 보호하려다가 죽은 것이었다.
“이런 개놈들이!”
이에야스가 튀어나갔다. 그 뒤를 이어 한조가 부지런히 쫓아갔다.
노부나가는 서둘러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신유성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다.
“아아아아아악!”
얼마 걸리지 않아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죽이면 안 됩니다!”
한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며 안전한 장소로 피했다.
습격은 신국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저항 세력이 한 짓이었다. 이에야스는 무시무시한 얼굴로 살아있는 자들에게 직접 고문을 가하고 있었다.
“말해라. 그럼 편히 죽게 해주지. 또 누가 있지?”
“퉤!”
고문을 당하는 암살자들은 독하게 버텼다. 허나, 이에야스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하하, 이거 대망신입니다. 감히 폐하의 근처에 이런 놈들이 접근하게 하다니. 제가 죽일 놈이죠.”
이에야스의 자조 섞인 말에 옆에 있던 노부나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몇 놈 빨리 족쳐야겠군.’
가만히 놔두면 엉뚱한 사람도 마구 죽일 분위기였다.
‘대체 어떤 놈일까?’
노부나가는 서둘러 문제 파악에 나섰다.
“안타까운 일이구나.”
신유성의 여자들을 대신해 죽은 것은 궁녀로 지내던 여자 닌자들이었다.
“흑.”
몇몇은 주녹정이나 다른 여자들과 상당히 친하기도 했었다.
슬퍼하는 여자들을 두고 밖으로 나온 신유성은 노부나가를 찾았다.
“누가 일을 벌인 거지?”
“배의 선장 하나가 바뀌었습니다.”
상대는 선장을 바꿔치기 하고 호위병들 사이에 숨어든 것이었다. 그러다 신유성이 배에서 내리자 연막을 터트리며 기회를 엿 본 것이었다.
“병력 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 같군.”
“죄송합니다.”
“알아서 하도록.”
더 질책하지는 않았다. 노부나가는 이미 자존심에 금이 간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들을 꼭 잡아오겠습니다.”
주동자들은 얼마 안 가 잡혔다. 나름 머리를 쓰긴 했지만 이에야스의 혹독한 고문과 신국의 정보력 앞에 결국 꼬리가 잡힌 것이었다.
암살과 관련된 이들의 목을 모두 벤 후에 신유성은 성대하게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일은 이것으로 일단락되는 것 같았다.
허나, 신유성은 그대로 끝내지 않았다.
“신문에 이번 사건을 내보내라.”
신유성의 신문은 신국 전역에 배부된다.
그렇게 암살 소식이 순식간에 신국 전역에 퍼지자 전국 각지에서 분노한 자들이 주변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신고를 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저항 세력들이 적발 당해 목숨을 잃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