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9 / 0271 ----------------------------------------------
아메리카 진출
풍산개의 식욕은 엄청났다. 새끼라고는 하지만 잘 먹었다. 이 때문에 식비가 어마어마하게 들게 생겼으나 신유성 덕분에 식비 걱정은 덜 수 있었다.
황궁을 나와 북해도로 돌아가는 길에 풍산개를 데리고 놀던 빛나는화살은 밥을 주었다. 그러자 새끼들이 몰려와 꼬리를 흔들며 밥을 먹었다.
“정말 귀엽네요.”
“다 크면 무시무시하지. 늑대하고 싸워도 이길 거 같더라.”
“그 정도였나요?”
“그래, 위대한 카무이가 키우는 김백구는 강하다. 이놈들은 김백구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오오! 김백구의 피를 이은 녀석들입니까?”
김백구는 아이누 사이에서 유명 인사였다. 단순한 개가 아니었다. 늑대에 버금가는 개였다. 더구나 풍산개의 설명을 듣고는 빛나는화살은 눈을 빛낼 정도였다.
식성이 너무 좋아서 밥을 많이 먹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말 잘 듣는 풍산개가 옆에 있으면 든든할 것 같았다.
“많이 먹고 얼른 커라!”
탐험대는 풍산개를 한 마리씩 안고 귀여워해주었다.
한편, 탐험대를 돌려보낸 신유성은 야구에 필요한 용품들을 만들었다.
야구 글러브와 배트까지는 만들었다. 그런데 공이 문제였다.
‘코르크가 없네.’
야구공의 중심에는 코르크가 있었다. 그리고 코르크를 실로 감싼 다음 표면은 가죽 2장으로 감싸는 것이었다.
‘뭐 대충 만들지.’
코르크는 나중에 구할 생각을 했다.
‘언젠가 나오겠지. 설마 안 나오겠어?’
세계를 정복하다보면 나올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이었다. 어쨌거나 코르크 대신 대패로 대패밥을 만들어냈다. 잘게 부서진 대패밥을 아교로 뭉쳐서 적당히 둥글게 만든 뒤에 가는 실로 돌돌돌 감았다. 실이 적당히 감기자 이것을 소가죽 2장으로 감싼 뒤 바느질로 마무리했다.
“나쁘지는 않네.”
좋지도 않았다. 대충 만든 야구공이니까.
“자! 받아라!”
금군 호위는 신유성을 위해 보호 장비와 포수용 글러브를 끼고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흡!”
날아간 공은 빠르게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들어왔습니다!”
“그냥 편하게 말해.”
“들어옴!”
용어를 바꾸니 뭔가 맥이 빠졌다. 신유성은 살짝 흥이 식는 느낌이었다. 뭔가 강렬하지 않아서였다.
“좀 더. 좀 더 크게 외쳐보아라!”
“드러옴!”
신유성은 계속해서 금군 호위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좋아! 이번에는 자신 있는 사람이 던져라! 내가 치겠다!”
신유성은 보호 장비를 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때였다.
“폐하!”
투수로 선 금군은 머리를 땅에 박으며 외쳤다.
“소신은 던질 수 없습니다!”
“어디 아프냐?”
“아닙니다!”
지엄한 황제가 있는 방향으로 공을 던지는 불경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행여나 신유성이 공에 맞는다면?
부상은 안 당해도 공으로 몸을 맞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시달릴 수 있었다. 아니, 암살범이 아니냐며 잡혀갈 수 있었다.
‘살아야 해!’
투구 거부는 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온갖 이유를 대며 거부했다. 신유성을 향해 고하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았다.
멀리 기둥 뒤에서 고개를 내민 존재를.
레이.
그녀가 지켜보고 있었다.
‘으헉!’
금군 투수는 차라리 자신에게 벌을 내리라며 고개를 땅에 박았다. 이마에서 피가 나오도록 찧어대니 결국 신유성도 고집을 접어야 했다.
“됐다. 공이나 가져와라.”
금군에게서 공을 받은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야구도 못 하는 거냐?’
검술도 어느 샌가 혼자서만 수련했다. 상대들은 얻어맞기만 하지 때리려 들지 않으니까.
‘축고도 못하고 농구도 못하겠군.’
심심할 때 하면 즐거울 수 있는 것이 운동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잘하지 못해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유성은 즐길 수 없었다.
황제라서.
‘역시 황제는 외로운 직업이야.’
다시 한숨을 내쉰 신유성은 공을 살짝 던졌다. 그리고 들고 있는 배트로 있는 힘껏 때렸다.
공을 멀리 날아가 담장을 넘겼다.
‘홈런!’
허나 마음은 허전했다.
결국 신유성은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신유성이 공을 던질 땐 아무도 치지 않았다. 이유? 간단했다. 친 공에 신유성이 맞을까봐서.
더구나 공 세 개가 들어가서 떨어져나가는 것이 투수에게 좋은 것이니 아예 엉뚱한 곳에 휘두르며 못 친 척 하기도 했다.
공이 들어온 다음에 배트를 휘두르기도 했고 아예 미리 휘둘러버리는 자들도 있었다.
이러니 제대로 된 시합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혼자 노는 편이 더 마음 편할 정도였다.
“그대들끼리 한 번 붙어봐라. 이기는 편과 오늘은 함께 식사를 하겠다.”
밥을 준다고 하니 금군들의 표정이 변했다. 황제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은 아무 때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열성을 다해 시합에 임했다. 시합은 정말 치열했다.
허나, 지켜보는 신유성은 한숨을 푹푹 내쉴 뿐이었다.
‘이게 왕따라는 거구나.’
소외감을 느낀 신유성은 다른 놀이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야구는 금방 정착했다. 신유성이 만들었다는 사실하나만으로도 한양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 야구라는 거 한 번 보고 싶습니다.”
“준비하도록 하죠.”
야구를 경험한 금군이 규칙을 설명해주었고 장비를 만들었던 장인이 새롭게 장비를 만들어주었다.
한양 근처의 넓은 공터에서 시합이 벌어졌다. 많은 갑부들이 시합을 보기 위해 자리했다. 황제가 만든 놀이니 구경하려는 것이었다.
시합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을 들은 신유성은 팀을 만들어서 붙자고 했다.
“내 야구단을 이기는 야구단의 단장과 식사를 하도록 하지.”
금군 최고의 고수들로 이루어진 야구단이었다. 그만큼 신체능력이 어마어마했다. 날아오는 화살도 쳐내는 자들이었다.
이들을 이기는 야구단은 없었다. 신유성의 야구단은 그야말로 황제처럼 한양에서 군림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서서히 야구의 재미에 눈을 떴다.
야구단이 신국 전역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은 좀 더 나중의 일이었다.
‘뭔가 또 즐길 건 없나.’
야구단을 이용해 다른 야구단을 묵사발로 만드는 것은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흥미가 식은 신유성은 야구단 운영을 레이에게 넘겼다.
레이가 야구에 흥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하고 경쟁할 수 있는 놀이는 또 뭐가 있나?’
운동 중에는 신유성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탁구나 테니스 같은 경우에는 공을 만들 재료와 기술이 없었다.
축구나 럭비 같은 건 아예 논외였다.
결국 신유성은 당구에 도달했다.
‘그래, 당구 정도가 내가 남과 경쟁할 수 있는 놀이구나.’
신유성은 나무와 돌을 가공해 당구공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공조에서는 신유성이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쥐어짰다.
미래의 기억 속에 있는 당구공은 당연히 나무나 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구공이 정확히 무엇으로 만들어진지는 알 수 없었다.
‘공 하나 만드는 것도 참.’
공을 만드는 것도 과학이다. 시대에 따라 재질이 달라지며 기술력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기술도 다 돈이긴 하지.’
나무 공은 금방 만들어졌다. 완전한 원형의 공을 만들어내느라 여러 명의 목수가 경쟁을 한 덕분이었다. 나무가 돌보다 상대적으로 가공하기 쉽기 때문에 석공은 그만 돌로 된 당구공을 만들지 못하고 뒤쳐졌다.
만들어진 당구대를 놓고 공에 칠을 했다. 붉은 색 2개. 하얀 색 2개. 그리고 당구의 규칙을 간단히 알려준 뒤 당구를 치기 시작했다.
당구는 너무나 손쉬운 놀이라서 주녹정을 비롯한 여자들도 흥미를 보이며 참여했다. 그리고 이후 여자들끼리 당구에 열을 올리는 일이 벌어졌다.
잠자리 순서를 걸고 내기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나쁘지 않아.’
신유성은 당구를 치며 그럭저럭 즐겁고 싶다는 욕구를 달래주었다.
야구 이후에 시작한 놀이, 당구.
이에야스는 바로 자신의 회관에 당구대를 여러 개 설치했다. 그리고 당구를 쳐본 회원들은 다들 즐거워했다.
간단한 놀이였으나 나름 기술과 정확도가 필요했다. 힘이 강하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바둑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사교의 장에서 당구는 금방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구에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은 금방 돈방석에 올랐다.
돈 많은 갑부들이 집집마다 하나씩 당구대를 놓길 원한 탓이었다. 집에서 연습 좀 한 뒤에 회관에서 실력을 발휘해 콧대를 꺾어주려는 것이었다.
부자들의 수요가 많으니 당연히 가격은 비싸질 수밖에. 대충 만들 수 없는 물건들이라 생산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쨌거나 당구는 고급 놀이로 금방 자리를 잡았다. 이 여파로 인해 수많은 목수들은 당구공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부자들의 놀이다. 더 좋은 공을 원할 게 분명해.”
부자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 당구공과 당구대를 만드는 장인들은 좀 더 고급스러운 것을 만들기 위해 연구에 들어갔다. 좀 더 고급스럽고 비싼 것을 만들면 돈이 되니까.
당구 문화는 금방 영주들 사이에 파다하게 퍼졌다.
호조 우지야스는 당구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당구대다.”
영주들 사이에 당구 문화가 퍼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신문에 당구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기 때문이었다.
신문을 본 영주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신유성이 시작한 놀이였다. 그러니 일단 해본다. 황제가 한 것이면 될 수 있는 한 경험해보고 싶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욕구였다.
우지야스도 당구대를 마련했다. 호조 가문의 영지에는 수많은 장인들이 있었다. 전쟁 때 약탈에 나선 것과 달리 호조 가문은 총영주인 조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영지의 내정에 힘썼다.
상인들을 규합하고 이들 중 뛰어난 이들을 가신으로 받아들였다. 장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유성이 그렇게 했기에 우지야스도 똑같이 했다.
공조와 의조와 비슷한 기구를 만들어 시행했다. 그러자 영지민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모리 모토나리가 한양에서 상회와 회사를 운영했다면 우지야스는 자신의 영지에서 한반도 조정을 따라했다. 또 하나의 작은 나라가 세워진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조식은 이러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우지야스에게 더 도움을 주었다. 특히 법적인 문제에 대한 조언을 많이 했다. 조식의 제자인 정인홍이 직접 영지를 방문해 호조 가문의 가신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폐하의 지혜는 정말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유로운 분이시지.”
당구를 치며 우지야스는 가신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가신들이 즐거워 하는 것을 보며 우지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폐하의 지혜는 깊구나.’
사실 가신들이 다도에 서툴렀다. 다도 자체를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다만 영주들이 즐기는 고급문화이기에 맞추려고 안간힘을 쓸 뿐. 허나 당구는 좀 더 활동적이었다. 재미가 있었다.
당구대 근처에 모여 편을 갈라 시합을 할 때는 열기가 후끈해질 정도였다.
가신들이 당구에 푹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런데 야구단은 어찌 하실 겁니까?”
“그것도 계속 해야지.”
“좀 더 뛰어난 이들을 모집해보겠습니다.”
“그래.”
우지야스는 신유성과 만나고 싶었다. 예전이라면 만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나 지금은 길이 있었다. 신유성이 금군 야구단을 이기면 식사에 초대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아직도 유효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 다시 건설 경쟁에서 이겼습니다.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신국 최고의 자리는 영주님의 회사가 자치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최고의 건설 회사는 아니다.”
탑을 쌓는 경쟁으로 최고의 건설 회사를 가리는 경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그 한양의 건설 회사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대단하다. 그곳과 경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우리가 최고라고 말할 수 없다.”
한양의 건설 회사. 그것은 매화의 아버지인 돌쇠가 만든 건설회사였다.
돌쇠의 건설 회사는 매화가 주문한 건물을 짓느라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경쟁 같은 것을 해서 1등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보다 매화의 주문을 소화하는 것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호조 우지야스는 당구 큐대를 강하게 밀었다. 톡하는 소리와 하얀공은 이리저리 벽에 부딪히더니 끝에는 붉은 공 2개를 맞췄다.
쓰리쿠션 성공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