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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30화 (13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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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진출

한양, 황궁.

“폐하아아아아아아아아!”

홀로 당구를 치고 있던 신유성은 갑자기 뛰어 들어오는 궁녀를 보았다.

“무슨 일이냐?”

“황후께서! 황후께서!”

숨넘어가는 표정으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궁녀.

‘설마 뭔가 안 좋은 일이라도?’

신유성은 달렸다. 바람처럼 달렸다. 그렇게 해서 주녹정의 거처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 밖의 광경을 보았다.

주녹정은 활짝 웃고 있었다. 꽃이 만개한 느낌.

“무슨 일 있었나? 궁녀가 갑자기 달려와서 말도 제대로 못해서 급한 줄 알았는데.”

“폐하! 경하 드립니다!”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주녹정이 임신한 것이었다.

“허허.”

드디어 임신한 것이었다. 애 아빠가 되는 것이었다.

기쁜 소식은 멈추지 않았다. 혹시 하는 생각에 여자들을 모두 살폈다. 그리고 모두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러자 황궁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폐하께서 여행에 데려가셨더니.......”

“여행을 하면 회임이 더 잘 되는 걸까?”

“그거야 모르지. 어쨌든.......”

궁녀들은 물론 어의들도 신유성의 여행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두 명이 임신했다면 이렇게 화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허나 함께 여행했던 여자 전체가 같이 임신했다. 이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신유성의 아이를 낳기 위해선 여행을 하며 관계를 맺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다.

신유성은 소식을 듣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적어도 여행길이 막히지는 않았구나.’

두 번 다시 한양을 떠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줄어들었다. 여자들을 데리고 여행을 간다면 신하들도 막을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전도 중요하지만 자손을 보는 것도 중요하니까.

어쨌거나 단체 임신으로 여행에 대한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도로 공사에 더욱 많은 자원이 집중되는 계기가 되었다.

수많은 건설 회사들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여자들의 임신은 분명 기쁜 일이다. 하지만 신유성은 갑자기 밤이 외로워졌다. 뱃속의 아이가 잘못될 위험이 있으니 안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여자를 침실로 끌어들이면 해결될 문제지만 신유성은 여자를 고르는 일에는 신중했다. 그렇기에 결국 외로운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으음.”

이상한 기분이었다.

‘젠장, 못한다고 생각하니 왜 이렇게 허전하지?’

일부러 여자를 멀리한 적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 그렇기에 허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허나, 못한다고 생각하니 뭔가 굉장히 아쉬우면서 허전했다.

안 된다고 하니까 더 생각이 났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폐하, 근심이 있으십니까?”

궁녀의 질문에 신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별 것 아니다.”

결국 잠이 오지 않아 하게 된 것은 일이었다.

‘아유타야 왕국이 어렵다라. 대월 놈들은 반항적이고. 술탄들은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때문에 정신이 없군.’

신유성은 보고서들을 살펴보며 세계 지도를 바라보았다.

‘아메리카로 사람을 보내다보면 전력이 갈라지는데.’

아메리카로 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에스파냐와 만나게 된다. 해안을 끼고 움직이다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아메리카 진출. 몽골 초원. 동남아시아의 포르투갈.’

동시에 공략하려면 크게 세 방향으로 갈라지게 되어 있었다.

‘아메리카는 아직 여유가 있다. 그렇다면 몽골 초원과 포르투갈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어느 쪽도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몽골 초원을 정리하면 기세를 몰아 계속 서진을 하며 박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몽골 제국이 무너진 이후 많은 칸국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들을 박살내고 다닌다면 이슬람 세력과 싸우게 될 수 있었다.

“으음.......”

신유성의 고민은 새벽이 올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새벽이 되어서야 신유성이 잠들었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을 했다. 허나, 퍼진 소문은 오직 하나였다.

“폐하께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시며 밤잠을 설치셨다.”

알만한 이들은 신유성이 혼자 자게 돼서 잠이 안 왔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허나, 신유성을 우스개 소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금기나 마찬가지.

결국 소문에 모두 동의하니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것으로 결론이 나버렸다.

어쨌거나 늦게 잔 신유성은 늦게 일어났다. 오후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켰다.

“음.”

늦게 자고 일어나니 약간 두통이 밀려왔다.

“물.”

한 마디에 물그릇이 대령되었다.

“빵.”

잠시 기다리니 따끈따끈한 빵이 나왔다. 빵과 차로 가볍게 배를 채운 뒤 한 일은 가벼운 체조였다.

운동 삼아 이리저리 뛰고는 땀을 씻어냈다.

거대한 제국의 황제치고는 상당히 한가로운 일상이라 할 수 있었다. 남들에게 일을 맡겼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참견하며 직접 해결하려 했다면 잠 잘 시간도 부족했을 것이다.

‘어디부터 진출을 해야 하나?’

고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정할 수도 없었다. 자세한 정보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러나 직접 확인하는 것도 한계는 존재했다.

‘통신도 개발해야 하고. 할 거 많네.’

하지만 할 거 많다고 해서 모든 것이 뚝딱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만한 기술력과 기초적인 시설을 갖춰야만 했다.

‘제철소를 만들어야 하네.’

부족한 것들이 자꾸 떠올랐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음이 살짝 급해졌다. 예전에는 주녹정을 비롯한 여인들을 찾아 기분을 풀었는데 이젠 그러기가 힘들었다.

“폐하, 근심이 있으신가요?”

“아니다. 없다.”

“혹시 밤에 적적하시면 다른 여인을 안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주녹정과 식사를 하는데 난데없이 제안이 들어왔다.

“필요 없다.”

신유성은 고개를 흔들었다.

일주일이 흘렀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신유성은 괴로웠다. 매일 같이 몸에 좋은 것들을 찾아 먹어서 몸이 힘이 넘쳤다. 그렇지 않아도 힘이 넘쳐날 나이였다.

“하아아아아아압!”

검술을 연마하며 기운을 좀 빼보지만 소용없었다.

이제 21살. 자다가도 벌떡벌떡 제3의 다리가 하이킥을 날릴 나이였다.

“흐아아아아아압!”

피곤해질 때까지 육체를 혹사시켰다. 일부러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들고 사방팔방 휘저었다. 가상의 적을 떠올리며 베고 또 베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고 총탄도 검면으로 막아냈다.

상상으로는 못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난리를 치다가 지치자 신유성은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이면 하이킥을 하느라 뻐근해진 제3의 다리 때문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폐하, 이번에 최고의 건설 회사가 뽑혔습니다.”

“그래?”

한숨을 내쉬며 보고를 받는 회의를 시작하자 뜻밖의 보고가 올라와있었다.

호조 우지야스.

호조 가문의 건설 회사가 결국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었다. 자세한 보고서를 읽어본 신유성은 감탄했다.

‘약탈에는 참가 안 하고 내정에 계속 집중했다고?’

내정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루어냈다. 신유성이 한 일을 대부분 따라했다. 그렇게 해서 이뤄낸 결과물은 약탈을 했던 영주들을 앞서나가고 있었다.

약탈은 영주들에게 단숨에 많은 부를 안겨주었지만 우지야스는 신유성을 따라 부를 창조해내는 기반을 만든 것이었다.

‘그나저나 뭘 의뢰할까?’

최고의 건설 회사를 가려내라고 했으니 이제 일을 줄 차례였다. 하지만 딱히 짓게 하고 싶은 건물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제철소와 같은 건물은 공조의 장인들과 논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이기에 아무에게나 주무하고 싶지는 않았다.

“음.......”

잠시 고민하던 신유성은 학교와 야구장 사이에서 갈등했다.

‘학교가 좋을까? 야구장이 좋을까?’

둘 사이에 고민하던 신유성은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엄청난 크기의 궁전 같은 느낌의 학교와 웅장한 느낌의 야구장.

둘 다 신국에는 필요한 건물이었다.

학교는 교육적인 공간이었다. 수많은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장소였다. 반면 야구장은 즐거움을 위한 장소였다. 문화적인 공간이었다.

고민하던 신유성은 결국 야구장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한양의 사람들이 즐길 것이 필요하다. 웅장한 건물이 필요해.’

고대 로마에는 콜로세움이 있었다. 허나, 로마인들이 했던 것처럼 검투경기를 열 순 없었다. 하지만 야구는 검투경기보다는 훨씬 안전했다.

야구를 통해 사람들이 가슴에 쌓아둔 정신적인 피로를 풀 수 있을 거라 신유성은 믿었다.

‘한양이 최초다. 그리고 각 영지에 야구장 하나씩 생기면 볼만하겠군.’

리그를 만들 생각으로 신유성은 가득했다.

생각을 마친 신유성은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들었다.

여러 개의 나무판을 이어붙인 곳 위에 신유성은 야구장을 그렸다. 거대한 야구장의 모습은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신국의 건축 기술에 맞는 크기의 야구장일 뿐이었다.

‘관중석은 더 크게.’

신유성은 귀빈이 사용하는 관중석과 일반 관중석을 분리했다. 그렇게 원형 야구장을 그려냈다.

“이 그림을 토대로 야구장을 짓게 하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보고를 올리게 하고.”

신유성은 자신의 도안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일을 맡긴 신유성은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다시 넘치는 정력과 싸워야만 했다.

‘으음, 이번에 또 뭘 하지?’

잠시 생각하던 신유성은 갑자기 요의를 느꼈다. 차를 많이 마신 탓이었다.

‘우웃! 급하다!’

생각에 잠겨있다 갑자기 밀려오는 요의에 얼른 허리춤을 풀며 볼 일을 보려했다. 그러나 복잡한 의복 때문에 푸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젠장!’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요강에 볼 일을 보던 신유성은 다음 목표를 정했다.

‘이번에는 옷이나 바꿔야지.’

예전에는 신경 쓰지도 않던 일이었다. 그러나 잠이 잘 안 오니 하는 생각이었다.

다음날부터 신유성은 의복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였다.

한편, 김백구의 자식들은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에 있는 어촌 하나에 내려 신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강아지라고는 하지만 힘이 무척 좋았다. 많이 먹고 많이 쌌다.

빛나는화살과 탐험대는 흐뭇한 눈으로 김백구의 자식들을 바라보았다.

“얼른 컸으면 좋겠네요.”

“그러게.”

강아지들이 기운차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흥겨워 보였다. 원래 개란 움직이는데 특화된 동물.

좁은 선실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하루에 한 번 땅을 디딜 때마다 강아지들은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이러한 모습을 보던 선원들 중 하나가 다가와 물었다.

“저 개들은 뭡니까?”

선원은 야인 여진 출신이었다. 탐험대와 함께 하며 조선어를 익혀 의사소통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폐하께서 하사해주신 강아지.”

“폐하께서! 오오오오!”

신유성이 줬다고 하니 눈빛이 바뀌었다.

“나도 한 마리 갖고 싶은데. 나중에 어떻게 안 될까요?”

“그거야 봐서.”

“꼭 부탁드립니다. 나중에 사례하죠.”

“그래, 생각해볼게.”

나중에 커서 새끼를 낳게 되면 한 마리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이후, 빛나는화살은 수많은 이들이 제발 한 마리만 달라고 부탁하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강아지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달리고 던져주는 것을 먹었다.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었다.

훗날, 아메리카에서 풍산개의 혈통을 퍼트릴 김백구의 자식들은 빛나는화살의 보호 아래 조금씩 아메리카로 전진하는 중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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