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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31화 (13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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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진출

한양, 공조의 건물.

공조에 소속된 장인들은 연신 증기기관에 매달려 있었다.

“더 큰 것을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아직 안 됩니다. 크게만 해서는 소용없습니다. 좀 더 단단한 철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장인들이 설전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쪽으로 예산을 주십시오!”

“아닙니다! 우리 쪽으로!”

장인들은 두 패로 갈라진 상황이었다. 예산이야 넘쳐나지만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허락되지는 않았다.

이산해는 장인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지번의 일을 돕는 이산해는 이번에는 호조의 일을 맡고 있었다. 이지함이 의조를 잡고 있지만 이지번은 전반적인 업무를 살폈다. 그리고 돈줄은 이산해가 맡아서 관리하게 되었다.

‘힘들다.’

의조도 그렇고 공조도 그렇고 만날 때마다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의조에서는 매번 약초 구입비로 상당한 돈을 지출했다. 여기까지는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당연한 것. 하지만 의조에서 여기 저기 병을 확인한다며 여행을 떠나게 되면 지출이 상당했다. 이 또한 당연한 것이니 받아줘야만 한다.

문제는 일이 겹치는 경우가 상당히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불필요한 예산의 낭비였다.

이산해는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의조는 이지함이 알아서 잘 이끌어나가기 때문에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조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우선 공조에서 돌아가는 일은 파악이 어려웠다.

비슷한 것 같은 일인데 다르다고 우기며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많았다.

실패로 끝나는 일도 많았다. 무의미해 보이는 일도 많았다.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산해는 몇 번이고 이지번을 찾아가 물었다. 이대로 공조를 내버려둬도 되는지. 하지만 이지번은 고개를 저으며 정해진 예산 안에서 최대한 편의를 봐주라고 했다.

“폐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들의 실패는 언젠가 더 큰 성공으로 되돌아 올 거라고 하셨으니 믿어야지.”

낭비라고 생각되는 일이지만 결국 해야만 했다. 한반도의 백성들이 잘 살게 된 이유가 바로 신유성 덕분이니까.

신유성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낭비가 심했다.

그렇기에 힘들었다. 누군가 좀 더 잘 아는 사람이 이들을 이끌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정해진 작업만을 수행하는 공조에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이것저것 할 때는 자금 투입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다.

지금처럼 의견이 갈라졌을 경우 어느 쪽이 옳은지 이산해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산해에게도 증기기관은 미지의 영역이니까. 대략적인 것은 이해하지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무엇이 옳은지 결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스스로 공조를 이끌었을 것이다.

‘사람이 더 필요해.’

계속 결단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말을 들으며 이산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눈을 가리고 길을 찾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공조의 일을 아주 잘 이해하는 사람이 호조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하하하하하! 여기 와서 보십시오! 제가 만든 것을!”

장인 중 한 명이 외쳤다.

‘김종수?’

이산해는 금방 김종수를 알아봤다. 황제인 신유성의 소꿉친구. 이제는 공조에서 일하고 있는 몸이었다. 자유롭게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특별 허가를 받은 인물 중 하나였다.

‘돈 많이 쓰는 사람.’

그러나 이산해에게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잡아먹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김종수에게 악감정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황제의 소꿉친구라서가 아니라 김종수가 보인 성과 때문이었다.

김종수가 복제한 컬버린포는 신국 전체에 보급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특히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컬버린포가 보인 위력은 엄청났다.

김종수 덕분에 전쟁을 수월하게 빨리 끝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많은 생명을 구했으며 많은 피해를 줄였다. 이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김종수가 지금까지 쓴 돈은 푼돈으로 봐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이산해는 김종수에게만큼은 너그러웠다.

“무슨 일이십니까?”

“와서 보시면 됩니다.”

김종수는 이산해를 이끌었다. 그리고 간 곳에서는 동그란 통 같은 것을 보았다.

“이건?”

“잘 보십시오.”

김종수가 시범을 보였다. 발판을 밟으니 통이 돌아갔다. 그리고 그 위에 오래된 짚을 올렸다. 이미 탈곡이 끝난 짚이었으나 이산해는 보는 순간 이해했다.

“이건!”

“올해 추수하게 되면 한 번 써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잘만 한다면 농사에 필요한 손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하하하! 수고 하셨습니다.”

기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신분 차별이 많이 없어진 덕분에 상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농사를 지으려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심각해지면 외국에서 잡아온 노예를 시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일손이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탈곡기는 일손 부족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수 있었다.

‘이런 게 정말 쓸 만한 물건이지.’

“하하, 그러면 예산 좀 주시죠. 증기기관을 연구하게요.”

순간 이산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도?’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중복해서 예산을 지원할 순 없습니까요.”

김종수는 좀 더 강한 철을 만들기를 원했다. 이를 위한 시설과 지원을 요구했다. 그러자 비슷한 방향으로 연구하려던 장인들이 김종수에게 붙었다. 그리고 더 거대한 증기기관을 만들겠다고 한 이들은 외쳤다.

“어차피 저쪽은 줄 예산이니까 이제 남은 예산은 우리한테 주십시오!”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산해는 더 이상 막을 명분이 없었다. 결국 줄다리를 하던 예산 토론회는 결론이 나버렸다.

둘 다 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이산해는 한숨을 내쉬었다.

족답식 탈곡기 이야기를 들은 신유성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탈곡기의 등장으로 추수철에 필요한 인력이 많이 줄어드는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있네.’

신유성이 흐뭇한 이유는 바로 김종수가 장인들 사이에서 상당히 앞서 나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최고의 장인이 되겠다는 약속을 잊지 않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김종수에게 지원금을 더 늘리라고 명령한 신유성은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흠.”

신유성은 궁녀들이 옷을 만드는 것을 감독하고 있었다. 기억 속의 면바지와 허리띠 그리고 셔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흘러내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으로 묶는 것 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급할 때는 이걸 푸는 것도 일이었다.

‘지퍼는 못 만드니 단추로 하자.’

볼일을 보기 쉬운 옷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여자의 경우에는 바지를 입어도 어차피 내려야 한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바지를 내리지 않고도 소변을 볼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남자 의복의 혁명!

다 그린 뒤에는 궁녀들을 시켜 옷을 만들도록 했다. 앞부분을 신경 써서 만든 신유성은 단추를 만들게 했다. 단추는 일단 나무조각을 이용해 만들었다. 겉에는 칠을 해서 반질반질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단추를 실로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꿰매었다.

궁녀들의 솜씨가 좋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만들었다. 허나 중요한 것은 바로 착용감이었다.

여러 번 만들기는 했지만 신유성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그래서 계속 다시 만들게 했다.

“이번에는 괜찮군.”

비싼 비단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싼 면포로 옷을 만들었다.

바지를 입고 허리띠를 썼다. 가죽으로 된 허리띠는 유일하게 사치품이었다. 버클 부분이 금으로 되어 있었다.

황금으로 된 봉황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황금봉황 버클이었다.

셔츠도 작은 단추로 쉽게 입고 벗을 수 있게 했다. 바지 안에 셔츠 밑단을 넣고 허리띠를 조이니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그리고 모습을 확인하려던 신유성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거울도 보지 않고 살았던 건가?’

동경이 존재하고 있긴 했으나 전신을 비추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거울이 필요해.’

새 옷을 입은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어디 물가에 가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짓 같은 것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공조 판서를 불러오라.”

신유성의 한 마디에 공조 판서가 하던 일을 내던지고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만들어줘야 할 것이 있다.”

신유성은 거울에 대해 설명하려다가 또 다른 것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온도계.’

거울을 만들기 위해선 투명한 유리 뒤에 아말감을 바르고 마지막에 습기를 막는 것을 칠하면 된다. 미래의 기억 속에서 신유성이 어릴 때 습득했던 지식의 한 조각이었다.

그런데 아말감을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온도계가 떠올랐다.

수은 때문이었다.

신유성은 수은을 이용한 온도계를 만들 것을 명하는 것과 동시에 거울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장인을 불러 거울을 만드는 것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거울이 만들어지자 다들 놀랐다.

너무나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폐하!”

다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남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신유성은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쁘지 않아. 코트까지 만들어 입으면 딱 좋겠네.’

황궁이 시끄러워졌다. 신유성의 명령으로 만든 두 개의 물건 때문이었다.

“이게 폐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요?”

“그렇다.”

주녹정은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살폈다. 동경보다 훨씬 선명하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대형으로 크게 만들어졌다. 전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을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더욱 자세히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츠 또한 거울에 반했다.

‘좀 더 예뻐져야 해.’

신유성이 좋아할만한 모습으로 남고 싶었다. 아이를 가졌지만 아이 한 명 임신했다고 신유성에게 안기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많이 안겨서 더 많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신유성의 여자들은 물론 궁녀들도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공조와 의조에서는 거울보다 온도계가 더 화제였다.

“이것 보시오! 이걸로 온도를 잴 수 있단 말이요!”

“어디까지 잴 수 있는지 해봅시다!”

“해봅시다!”

증기기관만 해도 혁명이었다. 하지만 온도계도 혁명이었다. 온도를 잰다는 발상은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리의 등장으로 더욱 정밀한 측정이 가능해졌다.

온도계는 아직 정확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조의 장인들은 온도계에 더욱 열을 올렸다. 더욱 더 정확한 온도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온도를 더욱 정밀하게 잰다는 것에 이지번과 이산해도 끼어들 정도였다. 지식이 있는 이들이라면 다들 온도계를 놓고 연구에 들어갈 정도였다. 온도계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살짝 밀리는 감이 있었던 유리 공예 장인들의 몸값은 엄청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황실에서 뭔가 나오면 정보에 민감한 상류층에서 이를 가장 먼저 입수하게 된다.

이에야스의 고급 회관의 한 방.

한쪽 벽면이 온통 거울로 도배된 방에 서서 상류층 인사들은 감탄했다.

“허허, 내가 이런 모습이었나?”

자신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게 되자 생각이 많아졌다. 남자들이 한 차례 거울을 보고 방을 나서자 여자들의 차례가 되었다.

귀부인들은 거울을 보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전신을 보며 서로 물어보기 바빴다.

“내가 정말 저래요?”

“그렇다니까요?”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동경으로 보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가끔 물에 비춰보는 정도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적었다.

그러나 전신 거울로 자신을 보게 되니 기분이 묘해졌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바꾸고 싶은 것들이 보였다.

거울이야 말로 의복계의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욕망을 부추기는 마물이었다.

‘옷을 좀 더 짧게 해볼까?’

‘색이 좀 그런데?’

‘얼굴을 어떻게 하지?’

다양한 욕망이 샘솟았다. 더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욕망이 거울을 통해 활짝 드러나게 되었다.

신경 쓸 것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집에 하나 있어야겠네요.”

“그렇죠.”

황실 여자들이 쓰는 물건이라 귀부인들도 갖고 싶다는 욕망을 당연히 가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즐거워질 것 같았다.

자신을 꾸미고 그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아서였다.

거울은 순식간에 인기 상품이 되었다.

많은 상인들이 거울을 통해 거금을 쥘 수 있게 되었다.

거울의 수요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돈 좀 있다고 하는 집들은 모두 거울을 샀다. 그리고 돈이 없는 이들은 손거울을 샀다.

거울은 점점 필수품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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