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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35화 (13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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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들

신유성의 말은 금방 황실에 퍼졌다. 이를 듣고 여자들은 걱정했다.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다.”

조선 왕실에 충성하던 양반들을 다시 쓴다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신유성은 다 생각한 것이 있었다.

“신페이에게 사람을 좀 더 보내라고 해라.”

“네!”

레이는 크게 대답하고는 움직였다. 신유성은 풀어놓은 양반들에게 닌자들을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거절한다면? 그것만으로 의심의 대상이다. 신유성의 입장에서는 풀어준 것만 해도 큰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필요는 없었으나 시간을 줄이기에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쓸모가 있기도 하고.”

나츠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디에 쓰시려고요?”

“내가 자비롭다는 것을 신국 전역에 알릴 수 있으니까.”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내부 단속은 필요하다. 그들이 움직인다면 불만 세력도 함께 움직이겠지.”

중원도 그렇고 한반도도 그렇고 불만을 가진 세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권력자에서 평민으로 떨어진 사실 하나만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수없이 많았다.

신국의 힘에 눌려 가만히 기회를 보고 있는 이들은 수두룩했다. 저항 세력은 그런 이들 중에 좀 더 행동에 나선 것 뿐.

아직 완벽하게 모두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순 없는 상황이었다.

“매화. 만약 그들이 상인과 결탁해 청탁을 받는다면 바로 알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매화도 움직였다. 매화의 아버지 돌쇠는 상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매화 또한 자체적으로 여러 상인들을 움직일 수 있었으며 정보 단체까지 가지고 있었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뭔가 부정이 일어난다면 매화의 귀에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신유성은 여기 저기 명령을 내려 거미줄 같은 감시망을 쳤다. 풀어주기로 한 이들뿐 아니라 신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감시망이었다.

신페이와 후지바야시 켄 그리고 이에야스까지 참여한 감시망은 촘촘하기 그지없었다.

신문에 기사가 실렸다. 기사의 내용은 이지번의 요청을 받아들여 신유성이 자비를 베풀었다는 내용이었다.

면천의 기회를 준 것. 이를 위해 이지번은 자신의 직위를 걸고 간청한 것까지 기사로 실렸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 아닌가?”

“그러게 말일세.”

한반도에 사는 이들은 모두 이지번을 찬양했다. 자신의 영주직을 걸고 죄인들을 용서해달라고 한 것이었다. 이유는 하나, 오직 백성들의 삶을 더욱 나아지게 하는데 필요한 이들이라는 것.

민심은 단숨에 이지번에게 향했다. 또한 이지번의 요청을 들어준 신유성에 대한 찬양도 이어졌다.

“팍!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으실 텐데 용서해주셨네. 정말 폐하께서는 자비로우신 분이시지.”

이지번을 향한 찬양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우러러 나온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허나, 신유성을 향한 찬양은 약간의 선동이 가미된 것이었다.

신유성을 신격화하려는 이들에게는 이지번 혼자서 찬양 받는 것이 못 마땅했다. 이들은 신유성의 결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신유성을 찬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사태를 파악한 식자들은 속으로 아니꼬워했으나 대놓고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유성이 시켰다는 근거도 없으니까. 더구나 신유성은 황제였다.

아무리 자비로운 황제라고는 하지만 죽고 싶지 않은 이상 욕하면 안 된다. 황제를 욕하는 것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중죄에 해당되니까.

기대승은 노비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이지번을 돕는 일을 하지 않고 바로 원정군에 지원했다.

“스승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걱정 마라.”

스승으로 모신 이황 때문이었다. 이황이 백의종군을 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황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리고 남은 아들은 하나뿐이었다.

이황은 자식을 또 다시 먼저 떠나보내기 싫다며 원정에 직접 나선 것이었다. 이지번으로서는 계산 외였으나 이황을 말릴 순 없었다. 백의종군은 신유성이 내건 조건이기 때문에 각 가정에서 남자 한 명이 꼭 이행해야만 했다.

이황이 움직이니 이황의 제자였던 이들이 너도나도 원정군에 지원했다. 이황을 지키기 위해서란 명목이었다.

제자들은 많이 모였다. 잘하면 반란군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떤 이들은 은근히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황은 못을 박았다.

“쓸 데 없는 생각은 하지도 마라. 은혜를 저버리는 몰염치한 자가 되고 싶지 않다.”

이황은 단호히 말했다. 이황의 제자들은 실망했으나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허나, 사심이 있는 이들과 달리 기대승은 순수하게 이황이 걱정 되었다.

“불편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됐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황의 고집은 쇠고집이었다.

이황을 비롯한 이들이 원정군에 지원해 이동할 무렵, 이정은 살짝 갈등했다.

‘가야 하는 것일까?’

원래는 원정에 지원하는 것은 물론 출사 자체를 꺼리고 있던 이정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명종에게 치욕을 준 신유성을 모실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황이 원정군에 참전했다는 신문 기사를 읽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다.”

아들 이순신의 질문에 이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최근 들어 아들은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16세. 이팔청춘. 혈기가 왕성할 나이였다. 꿈을 갖고 질주할 시기였다. 그러나 이정의 결정으로 출사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글공부를 해도 쓸 곳이 없으니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었다.

‘내가 잘하는 건가?’

자식의 앞길까지 막은 건가 싶어 이정은 고민했다. 원래는 간신들이 물러나고 나면 출사해 조선을 바로 세우는데 힘을 보탤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식이 힘을 잃고 총명함이 빛을 잃는 모습을 보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신국은.......’

원한이 있다. 그렇지만 신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조선 때보다 훨씬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살맛나는 세상이 왔다고 떠들어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선을 따르던 양반들은 자신들이 잘못해왔던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반발심이 더욱 생기기도 했다.

허나, 시간이 지나 자식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흔들렸다.

가문을 잇는 것은 자식들이었다.

자식들의 앞날을 막는 것은 가문의 미래를 막는 것과 같았다.

‘신국은......’

이정은 이를 악물었다.

“조선은 망했다!”

이정은 결국 원한을 억눌렀다.

“아버지?”

“나는 원정에 갈 것이다.”

순간 이정의 자식들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하오나.”

“됐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백성을 보살피는 것이 우리가 원했던 일이다. 누가 다스리든 올바른 길로 간다면 막아선 안 되는 것이다.”

이정은 나름대로 명분을 내세웠다. 조선의 양반이 아닌 신국의 백성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정의 자식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이순신도 마찬가지였다.

“백성을 위하는 것이라면 사심을 버려야 할 것 아니겠느냐?”

결국 이정은 원정대에 참전했다.

이후 이정의 아들들은 무섭게 공부에 매달렸다.

원준량은 고집을 부리는 아들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그 위험한 곳에 뭐하러 가겠다는 거냐?”

“위험하다니요. 폐하의 군대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원균은 원준량에게 또박또박 반박했다.

“전쟁이 어디 애들 장난이냐? 폐하의 군대는 패하지 않아도 죽는 사람은 나온다.”

“저는 죽지 않을 겁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안 된다. 하여간 네가 왜 전쟁터냐! 넌 내 뒤를 이어야지!”

원준량은 노비가 되지 않았다. 조선이 망한 뒤 바로 상인이 되었다. 덕분에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원준량은 원래 조선 조정의 녹을 먹던 신분이었지만 신유성과의 전쟁 전에 탄핵 당해 쫓겨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벼슬을 하고 있지 않았던 덕에 조선이 신국에 먹힌 뒤에 노비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를 두고 원준량은 항상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이후 원준량은 상인이 되어 큰돈을 벌 수 있었다. 벼슬을 했던 가락이 있어 전쟁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는지 알고 있던 덕분이었다.

해서 큰돈을 번 원준량은 벼슬에 무리하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 벼슬을 하지 않아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니까. 이미 한 번 벼슬길에 올라 탄핵 당한 경험이 있어 무의식 중에 피하는 것도 있었다.

허나, 원준량의 아들 원균은 생각이 달랐다.

‘무명을 떨쳐 영주가 되리라!’

영주가 될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냥 부자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전 자손대대로 폐하에게 충성하는 영주 가문을 만들 겁니다.”

“어허 이놈이!”

“아버지! 폐하를 향한 소자의 충심을 헤아려주십시오!”

원균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집안사람은 물론 대문 밖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들으란 듯이.

진짜 충심은 아니었다. 사실 충심을 바칠 정도로 뭔가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충심이 있는 척 외쳤다. 모두 명분을 위해서였다. 또한 자신이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 사람들의 인망을 얻으려 하는 것이었다.

이쯤 되니 원준량도 마냥 말릴 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럼 호위를 데려가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계획대로다!’

원균은 웃었다.

허엽은 자식들을 불러놓고 당부를 했다.

“성아.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을 부탁한다.”

“예, 아버지.”

집을 떠나자니 허엽은 걱정이 앞섰다. 두 부인이 자신이 없는 동안에 싸우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허나, 믿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 싸우지 말고. 화목해야 하오.”

더 이상 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 같아 허엽은 말을 아꼈다. 그러자 첫째 부인인 한씨가 결국 눈물을 흘리더니 만류했다.

“왜 가시려는 겁니까? 안 가셔도 되지 않습니까?”

“그만.”

허엽은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면 당했었다. 이유는 재물을 탐했다는 것. 이후 모친상 때문에 관직에 나가지 않고 있다가 조선이 망한 것이었다.

이후 스승 중 하나인 이황이 노비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이제 이황이 전쟁터로 간다고 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황을 비롯한 이황의 제자들이 모두 노비에서 풀려나는 순간 한반도에 또 다른 바람이 불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폐하를 어찌 할 순 없지만.’

허나, 허엽은 신유성에게 악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허엽의 스승 중에는 서경덕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지번과 인연이 이어졌다.

명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허엽은 묵묵히 상업에만 종사했다. 벼슬로 나아가는 것은 뒤로 미루고 앞으로 어찌 될지 지켜본 것이었다. 그렇게 벼슬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 같았으나 이지번과는 계속 교류가 있었다.

이번에 원정에 참여하는 것은 이황을 모시기 위함도 있지만 감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러한 자세한 사정을 집안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감시자라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발설한다면 제대로 된 감시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모두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것이오.”

허엽은 신유성이 만든 신국이 좋았다. 신유성의 정책이 좋았다. 벼슬을 했다고 해서 돈을 벌지 못하게 하지도 않았다. 재물을 탐하는 것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다. 죄를 짓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누구나 재주껏 돈을 벌 수 있었다.

이 사실이 마치 자신을 옹호해주는 것 같아 허엽은 신유성에게 호감을 느꼈다.

“흐윽.”

황제에 대한 충성을 들먹이니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허엽은 원정대에 지원했다. 그리고 이황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예, 어머니.”

“그리고 꼭 살아 와야 한다. 알겠지?”

한호는 어머니의 신신당부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대답했다. 한호의 어머니는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이 원정에 참여 하려는 이유를 듣고는 막을 수만은 없었다.

신유성이 한반도를 차지한 이후 한호의 집안 살림도 많이 나아졌다. 일자리가 풍족하게 늘어나고 경제가 활발해지니 한호의 어머니가 일하는 것으로도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허나, 한호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글공부를 중단하고 원정대에 지원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황이라는 명사의 핑계를 대고.

처음에는 한호의 어머니는 반대했으나 시대가 변했다는 이야기에 결국 받아들이고 만 것이었다. 이황이라는 명사가 원정에 참가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명사에게 배울 기회가 없던 한호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네, 어머니. 꼭 돌아오겠습니다.”

한호는 웃으며 입대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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