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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36화 (136/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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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들

이황이 원정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한반도의 사림 인사들 사이에 금방 퍼졌다. 이어서 이황 효과가 일어났다. 사림에서 이황과 함께 하기 위해 원정에 지원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었다.

신유성은 이들을 다 받아주도록 했다. 그리고 모두 한 부대에 몰아넣고 감시하도록 했다. 신유성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감시하기 편한 방법이 없었다.

허나, 원정에 참여하고 싶은 이들은 한반도에서만 나오지는 않았다.

일본, 난부 영지.

난부 하루마사는 막대한 영지를 얻었다. 신유성과 일찍이 손을 잡은 덕분에 인근의 가문들을 몰락시키고 영지를 넓혔다. 명나라와의 전쟁에서는 사략 해적을 대량으로 등록해 부를 쌓았다. 허나, 이후 노부나가 군단이 얻은 것을 보고 땅을 치며 후회했다.

‘원정에 참여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그래서 기다렸다. 전쟁이 다시 일어나기만을. 그런데 이번에 신유성은 원정을 한다고 했다. 원정의 주체가 되는 것은 감숙성의 오이라트. 공을 세우면 이들에게 일차적으로 영지가 배분된다는 이야기를 총영주인 조식에게 문의한 결과 알게 되었다.

노부나가처럼 좋은 땅을 영지로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루마사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원정에 참여하겠다.”

“영주님! 영지를 받기 어렵다 하시지 않습니까?”

“지금 영지를 받지는 못하겠지. 허나, 폐하께서 과연 그냥 지나치시겠나?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폐하의 눈에 드는 공을 세워야 나중에 좋은 곳을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주전파 가신들은 하루마사의 이야기에 적극 동의했다. 노부나가와 신겐 그리고 가케토라가 얻은 영지는 너무나 광대했다. 일본에 있는 영지와는 차이가 엄청났다. 그야말로 하나의 거대한 왕국과 같았다.

이를 보고 부러워하지 않은 일본의 영주는 없었다. 호조 가문의 우지야스조차 영지 문제에서는 살짝 부러워 할 정도였으니까.

“우리는 지금부터 공을 세운다. 난부 가문의 힘을 폐하께 인정 받는 것이다!”

“우오오오오오!”

하루마사는 눈빛은 먹이를 노리는 늑대의 것을 닮아 있었다.

중원, 북경.

‘폐하께서 이리 도움을 주시는 군.’

중원의 총영주가 된 이이는 신문을 접으며 웃었다. 신유성의 행동은 이이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거대한 중원에서 명나라의 그림자를 지우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 식자 계층의 저항은 상당했다. 노골적인 저항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출사를 거부하며 조용히 은둔할 뿐.

은둔하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낼 순 없었다.

허나 모든 식자들이 신국에 원한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차별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는 것을 이이는 알고 있었다. 이런 이들을 하나하나 찾아 설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신유성이 한 일은 바로 식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이제 민심이 더더욱 폐하에게 쏠리겠지.’

명나라에서 신유성은 찬탈자로 알려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안 좋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신유성이 이황을 비롯한 이들에게 기회를 주었다는 사실이 신문을 통해 알려진다면 인식을 조금 바꿀 수 있었다.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으로.

신하를 함부로 하지 않고 식자들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신문이 시중에 깔린 뒤 상인들은 신유성을 더욱 옹호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해금령이 풀려서 살맛나는 세상이 되었으니 신유성이 뭐든 하면 무조건 좋게 말하고 보는 것이 상인들이었다.

이번 기사로 인해 상인들의 옹호가 이어지자 일반 평민들 사이에서 신유성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쩌면 차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었다.

오랑캐라고 여겼던 여진인과 일본인들이 영주로 있는 시대에서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만 같았다.

‘폐하께서 주신 기회. 잘 쓰겠습니다.’

이이는 바로 공고문을 냈다. 원정군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향후 지원자들은 총영주의 추천을 받을 것이란 말과 함께.

총영주의 공고문으로 은둔했던 식자들이 하나둘 원정대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많은 수의 상인의 자식들이 대거 지원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장거정은 공고문을 보고는 결심을 굳혔다.

‘정말 놀랍구나. 아직도 전쟁을 하겠다는 건가?’

명나라를 꿀꺽하고도 힘이 남는다는 뜻이었다. 장거정은 신국의 저력에 질려버렸다. 그리고 신국이 뒤집어질 거란 희망을 접었다. 몽골초원까지 지배하에 두게 된다면 주변에 신국을 위협할 존재는 없었다.

멀고 먼 천축국과 전쟁을 한다면 모를까. 하지만 천축국과는 거리가 너무 멀어 소식조차 제대로 주고받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니 장거정은 신국의 지배가 앞으로 더욱 견고해질 거라고 판단했다.

‘명을 잊어야 한다.’

한 때 명나라에 충성했으나 장거정은 명 황실에 대한 마음을 곱게 접기로 했다.

‘황제는 미치광이였다. 부마를 죽이려 한. 다 인과응보야.’

나름 명분을 찾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신유성이 황제가 되었지만 주녹정과 결혼한 몸.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황실을 잇는다면 명 황실의 피가 아주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난 더 높이 올라갈 것이다.’

장거정에게는 출사해 성공하겠다는 꿈이 있었다.

주저앉아 있을 순 없었다.

장거정은 원정군에 지원했다.

수많은 이들이 원정군에 지원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은 첩자에 의해 은밀하게 몽골 초원에 전달되었다.

소식을 들은 몽골 초원의 족장들은 대항할 수단이 없음에 한탄했다.

“어찌 해야 합니까?”

“으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지 않나?”

“차라리 떠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알탄 칸의 사후, 몽골 초원은 갈라졌다. 지도자가 사라지고 분열된 상태.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몽골 초원의 부족들은 단결하는 것이 아닌 떠나는 것을 택했다.

수많은 부족들이 초원을 버리고 서쪽으로 향했다. 신국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뭉쳐보려 했으나 자신들의 세력이 너무 초라한 것을 깨닫고 결국 서진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감숙성의 오이라트 부족들은 추격대를 보냈다.

“그냥 보내지 마라! 한 놈이라도 더 잡아!”

초원을 차지했다고 끝이 아니다. 언젠가 강력한 힘을 키워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하나라도 더 줄이려는 것이었다.

몽골 초원의 움직임에 신유성은 웃음을 터트렸다.

“위험한 일입니다. 그들이 전력을 유지한 채 움직였다면 언젠가 되돌아오지 않겠습니까?”

“되돌아올 때쯤이면 신국은 더욱 강해져 있을 것이다. 지금은 추격을 계속 하라 전해라.”

“허면 원정대는 어찌하시겠습니까?”

“해산할 필요 없다. 도망간 놈들의 뒤를 쫓는다.”

“그럼 다른 칸국과 충돌할 우려가 있습니다.”

“꿩 대신 닭이다.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어야겠다.”

신유성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실 이대로 원정대를 해산하는 것도 문제였다. 원정대를 구성하기위해 들인 돈이 있었다. 그런데 전쟁을 통해 약탈하지 않는다면? 원금 회수가 어렵다.

또한 많은 기대를 품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원정에 참여한 이들에게 신국의 강력함을 선보일 기회이기도 했다.

‘함께 싸우다보면 가까워질 것이다.’

이번에는 여러 곳에서 원정대에 지원했다. 한반도, 중원, 일본, 안남, 그리고 대만까지.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참여하기도 했다. 때문에 포기하기가 아까웠다. 함께 구르다보면 가까워질 테니까.

다른 나라 사람이 아닌 같은 동료라는 의식이 생겨날 테니까.

해서 원정은 그대로 이뤄지게 되었다.

이황을 비롯한 원정군은 배를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거대한 갤리온에 탄 이황은 감탄했다.

배의 크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곳이 제물포라니.”

“정말 믿기 힘든 광경입니다.”

제물포 앞바다는 그야말로 배로 가득했다. 항구의 부두가 세 부류로 나뉠 정도였다. 우선 가장 넓은 곳은 어선을 비롯한 소형 선박으로 가득했다. 제물포의 어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었다. 다음으로 중간 크기의 부두는 인근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상선들이었다. 다음으로 가장 작은 곳에는 대형 선박들이 정박되어 있었다.

가장 좁은 곳이라고 해도 엄청나게 넓었다.

부두에는 인부들로 가득했다. 부두 근처의 창고를 열심히 오가며 물건을 운반하느라 혼잡해 보였다.

활기로 가득 찬 모습을 보니 이황은 가슴이 살짝 두근거리기도 하고 아리기도 했다.

‘내가 틀렸던 건가?’

수많은 배들은 곧 신국이 얼마나 바다에서 영향력이 있는지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항구의 모습은 활기로 가득했다. 그야말로 싱싱한 물고기가 펄떡거리는 것 같았다.

이황은 조선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신유성은 단 몇년만에 이를 이루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이황은 입맛이 썼다. 그래도 이제는 신유성과 함께 길을 가기로 한 상황이었다.

잘못된 길로 가려한다면 가로 막는 장벽이 될 생각도 있었다. 이황은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주변에 알리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성공하고 싶다면 자신의 주변에 있지 말라는 충고였다. 허나, 함께 생활해온 이들 대부분은 이황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구경은 그만하고 그만 들어가지. 이제 곧 출항할 것 같으니.”

“네, 스승님.”

허엽은 이황을 모시고 선실로 들어갔다.

이황과 원정군 지원자들이 탄 배는 얼마 안가 대련에 도착했다. 대련은 군사 목적으로 세워진 항구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업적인 항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유는 요동에서 거래를 하기 위해선 대련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었다.

배에서 내린 지원자들은 곧 인근에 있는 군영에 도착했다.

“여기가 군영이라니.”

군영의 모습은 지원자들을 압도했다.

거대한 숙소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한쪽에 있는 거대한 마사와 말들 때문이었다. 끝이 안 보였다.

수만에 달하는 말들이 군영 소속이었다.

“죽어도 말을 못 타겠다는 사람은 먼저 나오도록. 불이익은 없다. 다만 나중에 말을 제대로 못 타면 그땐 불이익이 있을 것이다. 피곤하게 하지 말고 빨리 나서라.”

기병으로 만들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황을 따르는 이들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기병은 굉장히 유지비가 많이 드는 정예였다.

‘차별하지 않는 건가?’

알게 모르게 차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중요한 병종으로 쓴다니 혼란스러웠다.

“저는 말을 타기 어렵겠습니다.”

“좋다. 그럼 다음은?”

이황이 손을 들고 나서자 군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는 묻지도 않았다. 그러자 나이든 이들이 저마다 나섰다. 그리고 이황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이들도 말을 못 타겠다고 했다.

“좋다. 그대들은 남고 나머지는 따라오도록.”

군관의 말에 나머지 지원자들은 웃으면서 뒤를 따랐다. 보병으로 쓰거나 할 줄 알았는데 기병이 된다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던 것이었다.

원균은 히죽거리며 군관의 뒤를 따랐다.

한편, 뒤에 남게 된 이들은 결국 보병이 되었다.

“너희들이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보조하는 것도 병사의 일. 자신의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너희들의 전장은 바로 이곳이다.”

보병이라고 하지만 결국 다른 이들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물품을 정리하거나 보급품을 챙기거나 하는 등 여러 가지 잡다한 온갖 일이 주어진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이황을 비롯한 지원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죽을 곳으로 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안전한 후방에서 일하게 되니 적의 기습을 받지 않는 이상 죽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나, 후방의 일은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우선 쉴 틈도 없이 바쁘다는 것이었다.

특히 식사를 준비하는 취사병의 경우에는 하루 종일 식재료와 설거지에 파묻혀 산다.

새벽에 눈을 뜨면 식재료를 다듬어야 하고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를 하고 다시 다음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한두 사람이 먹을 것은 하는 것이 아니다. 100명? 200명? 아니다.

군영에 있는 동안에는 만 단위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취사병의 지옥이었다.

이황 일행은 말만 보병이었다.

취사병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신유성이 의도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을 못 탄다고 하지 않았다면 전원 기병이 될 수 있었으니까.

결국 기병이 되길 거절했기에 주어진 일.

“스승님. 제가 하겠습니다.”

허엽은 이황이 씻고 있는 쌀을 받으려 했다.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이황은 묵묵히 쌀을 씻었다. 다른 이들도 모두 일을 하느라 바빴다.

한편, 권율과 류성룡도 쌀을 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을 하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다행 아닙니까? 아버지 대신 왔으니.”

“그래, 하지만 저 분이 쌀을 씻었다는 소릴 들으면 우리 아버지 마음이 편치는 않을 거야.”

멀리 이황이 쌀을 씻는 모습을 보며 이황의 제자들은 탄식했다. 하지만 일을 해야 했다. 먼저 있던 취사병은 열심히 돌아다니며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했다. 신참들이 제대로 일을 못하면 깨지는 건 고참이니까.

여기저기서 고성이 오고가기도 했다.

그렇게 원정군 지원자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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