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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의 진격
대련에서 훈련을 받은 신병들에게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이동하게 된 곳은 산해관.
산해관에서 명나라에서 온 지원자들과 합류한 뒤에는 북상하며 몽골 부족을 하나씩 처리하는 일이 주어졌다.
아직 떠나지 않은 몽골 부족민들은 결국 빠르게 토벌되었다. 십만에 달하는 기병들이 움직이면서 사방을 털어대는데 버틸 수가 없던 것이었다. 주력이라 할 만한 대부족은 이미 서쪽으로 도망쳐서 저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빠르게 항복한 이들은 그나마 평민으로 살 기회가 주어졌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반항한 이들은 모조리 노예가 되었다.
부족이 가졌던 가축과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다. 이는 신유성을 공격했던 것에 대한 징벌이었다.
감숙성에 자리를 잡았던 오이라트 부족들도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은 신유성이 보낸 원정군보다 더 지독했다.
오이라트 부족에게 걸리면 평민으로 살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모조리 노예가 되어 신유성에게 팔렸다.
신유성이 노예를 무한 매입해주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이라트 부족에게는 몽골 부족에 대한 한이 있었다. 에센 타이시 때부터 오이라트를 지배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원망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몽골 초원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신국의 손에 떨어졌다.
“약속대로 오이라트에서 알아서 영주를 내도록 하라. 어떻게 초원을 나눠먹든 알아서 하고. 대신 총영주는 음....... 그래, 적당한 인물이 나타날 때까지 난부 하루마사로 하지.”
신유성은 몽골 초원의 총영주로 난부 하루마사를 선택했다. 계속 한반도 출신들만 총영주로 내세우면 차별한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몽골 초원은 척박한 곳. 거친 사람이 총영주를 하는 편이 더 나은 곳이었다.
일본 영주들 중에서 가장 앞서서 원정에 참여한 영주가 난부 하루마사이기에 신유성은 총영주로 임명해주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본의 영주들은 감격하면서도 아쉬워했다.
‘조금만 더 빨리 갈 걸!’
‘한 걸음! 단 한 걸음이었는데!’
일본의 총영주인 조식에게 원정 참여 신청에서 단 한 걸음 늦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늙었어!’
판단이 느려서 중요한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이마가와는 영주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고는 한양으로 향했다. 한양으로 가서 이에야스가 가진 회관을 뛰어넘을 고급 회관을 짓기 위해서였다.
가을.
추수의 계절에 신유성은 자식을 얻게 되었다. 임신했던 여자들이 엎치락뒤치락 아이를 낳았다.
가장 먼저 아이를 낳은 것은 주녹정이었다. 그것도 아들이었다.
“수고했다.”
“폐하! 흐흑.”
아들을 낳은 주녹정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드디어 안심했다.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신유성이 삐뚤어질까 싶어 고민했다. 가정제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갖게 된 당연한 불안이었다.
허나, 이제 아이를 낳았다. 그것도 아들이었다.
“정말 수고했다.”
신유성은 아이보다는 주녹정을 살짝 안아주며 격려해주었다. 그러자 주녹정은 아이를 더 봐달라고 했다.
“그 녀석 잘 생겼구나.”
아이를 본 신유성은 요상한 감정을 느꼈다. 눈앞의 아이가 자신과 주녹정의 아이라고 생각하니 분신과 같이 느껴졌다.
이상하게 막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쉬어라.”
이후, 신유성은 바빠졌다. 나머지 부인들이 계속 아이를 낳았다.
일곱명의 부인이 일곱명의 아이를 낳았다.
삼남 사녀.
주녹정과 매화 그리고 화진이 아들을 낳았고 나츠와 레이 체첵 그리고 사르나이가 딸을 낳았다.
황실에서 신유성의 아이가 일곱이나 갑자기 태어나자 신국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허허, 경사로구나.”
“그렇습니다.”
일본의 총영주로 있는 조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성의 아이가 태어남으로서 신국은 미래가 더욱 밝아졌다.
신유성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뒤를 이을 후계자가 있으니 권력의 중심이 크게 흔들릴 일은 없었다.
“우리가 좀 더 힘을 써야 할 것이다. 폐하를 보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조식의 이야기를 듣는 정인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신유성이 보여준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었다. 허나, 신유성의 정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바로 폐하에게 힘이 된다.’
총영주로서 일본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조율하고 감시하는 것이 신국의 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더구나 일본의 영주들이 점점 조선어에 익숙해지니 그 밑에 있는 이들도 조선어를 빠르게 배우고 있었다. 권력자들이 조선어를 쓰니 밑에 있는 이들도 성공을 위해 기를 쓰고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조식과 정인홍에게는 무척 기쁜 일이었다. 그렇기에 총영주의 직무를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탈세하려던 놈은 잡았느냐?”
“잡았습니다.”
“고얀 놈이다. 죽여 마땅한 놈이나 좋은 일이 있으니 재산만 몰수하고 일가족은 모두 탄광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내라.”
“예, 스승님.”
경사는 경사고 업무는 업무. 예전이라면 덕을 쌓겠다며 죄인을 용서해줄 수도 있었으나 신유성은 그런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렇기에 죽이지 않는 것이 조식이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자비였다.
수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니 신유성은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가 되는 게 이런 기분인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무겁기도 했다. 아이와 가족을 먹여 살릴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대로 간다면 피가 흐르겠지.’
아이들이 싸울 것을 걱정했다.
한꺼번에 태어난 일곱명의 자식. 다행스럽게도 주녹정이 아들을 낳아주었다. 허나, 아이는 아직 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장남이라 하더라도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아이들은 불만을 품을 수 있었다.
능력이 모자란 장남이 세계를 물려받게 될 테니까. 단순히 운이 좋다는 이유로.
‘역사를 보면 황실에 골육상잔이 일어나는 것은 우연은 아니지.’
아무리 법으로 금한다고 해도 사람의 욕망은 길을 찾기 마련이었다.
‘세조도 그렇고.’
세조, 수양대군. 단종의 숙부로 김종서를 죽이고 섭정을 한 것도 모자라 결국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남자였다.
한 마디로 권력에 미쳐 조카를 죽이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였다.
한반도에 자리 잡은 조선이 이럴 정도였다.
중원과 일본 그리고 몽골 초원과 만주 필리핀 안남까지 꿀꺽한 신국에선 권력 싸움이 더 심해질 수 있었다. 아니면 아예 여럿으로 쪼개서 서로 왕을 자처할 수도 있었다.
‘살아있을 때 잘 해야 할 텐데.’
최근 들어 생기는 근심. 허나, 쉽게 풀긴 어려웠다. 그렇다고 내부 단속을 위해 정복을 멈추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끝까지 간다.’
정복은 신유성의 꿈이었다.
야망이었다.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몽골 초원은 분할되었다. 오이라트의 부족에 따라 분할된 지역에 영주가 하나씩 생겼다. 그리고 카라코룸은 총영주가 머무는 곳이 되었다. 난부 하루마사는 카라코룸에 자리를 잡고는 고민에 빠졌다.
‘총영주직을 고사할까? 아니면 계속할까?’
총영주의 권한은 해당 지역에서는 엄청난 것이었다. 영주들을 감시하는 것은 물론 제한적이지만 처벌할 권한도 가지고 있었다.
‘영주가 되면 땅을 얻는데........’
총영주는 종신직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임명되면 물러나야 했다. 물론 중재를 하는 동안 많은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얻는 것도 많았다. 허나, 영지를 갖는 것에 비하면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신국의 원정은 끝나지 않았다.
오이라트는 감숙성에 이어 몽골 초원까지 손에 넣게 되었다. 영지를 얻게 된 영주들은 지역 안정을 위해 원정에서 빠지게 되었다.
이 때문에 아주 잠깐이지만 난부 하루마사가 원정군 총사령관직을 임시로 갖고 있었다. 다음 사령관이 임명될 때까지는 난부 하루마사가 대군을 이끄는 것이었다.
“으으으으으으음!”
대군을 거느리게 되었으니 직접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유성이 허락한다면 총사령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공적에 따라 거대한 땅을 영지로 받을 수도 있었다.
허나, 하루마사는 고민했다.
‘날 염두에 두고 있었다면 그냥 임명했을 텐데. 임시야. 임시.’
총영주직을 주고 임시로 잠깐 겸임하는 것뿐이었다. 하루마사는 신유성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본인의 의사보다는 황제의 의사가 더욱 중요했다. 권력자의 의사를 거스르다가는 팽 당하기 쉬우니까.
‘아무래도 힘들겠군.’
고민을 하던 하루마사는 결국 총영주직을 잠시 맡기로 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얼마 후, 신유성에게 총사령관직을 달라고 하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하는 명령이 떨어졌다.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척계광이 내정된 것이었다.
척계광은 감격하며 신유성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원정군 총사령관직이란 막대한 권한을 가진 자리였다.
더구나 신유성은 원정지에서는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하라며 위임장까지 보내주었다.
즉, 원정지에서 척계광은 황제 대리란 소리였다.
어지간한 심복이 아닌 이상 이런 권한을 내주지 않는다.
신유성이 황제가 된 이후 그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척계광은 여겼다. 신유성을 믿지만 또한 불안하기도 했다. 명나라 태조가 그랬듯이 건국 이후 위협이 되는 충신들을 쳐낼 수도 있었으니까.
허나 신유성은 쳐내기는커녕 오히려 중용했다.
불안이 한 방에 날아갔다.
척계광은 감격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명령서를 바라보았다.
‘몽골 잔당을 토벌하라.’
말이 몽골 잔당 토벌이었다. 이는 어디든 가고 싶은 대로 가라는 백지 명령서나 다름없었다.
적당히 아무나라나 붙잡고 ‘너네 나라에 몽골 잔당이 있다고 들었다. 내놔라.’이러고 시비를 걸 수도 있었다.
신국 밖의 어느 나라든 몽골 잔당 토벌이란 명분아래 싸움을 걸어도 좋다는 소리였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신유성도 발뺌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그렇기에 척계광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남용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신유성이 자신을 시험하는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권력자의 의심은 끝이 없다.’
언제나 아래를 살피는 것이 권력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어느 하나가 튀어나와 자리를 위협할 것 같으면 도로 원상 복구하거나 뽑아냈다.
그러니 황제의 총애에 취해 함부로 날뛰면 결국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도를 넘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갈아치워지는 것이다.
해서 척계광은 원정대 참모가 알려주는 대로 카자흐 칸국으로 진격할 생각이었다.
“카자흐 칸국에 사신을 보낸다. 신국을 적대한 몽골 잔당을 내놓으라고.”
“없다고 하면 어찌 합니까?”
“그럼 신국의 통치를 받아들여 영주가 되거나 전쟁뿐이라고 전해라.”
순 억지였다. 그러나 직접 수색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니 전국을 수색하겠다!’ 이러고 군대가 들어가겠다고 하면 순순히 받아들일 나라는 없었다.
사신은 기마병들로 이뤄져 있었다. 말을 탄 사신들은 빠르게 달렸다. 천지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사신들의 맨 앞에는 장거정이 이를 악물고 말을 달렸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장거정은 척계광의 부하가 될 수 있었다. 워낙에 수완이 좋기 때문에 군에 들어가서 바로 두각을 나타냈고 행정관을 하며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선했다. 결국 척계광의 눈에 들었고 바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척계광의 입장에서 명나라 조정에서 잠시 일했었다는 경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척계광 또한 명나라 조정에서 일했었기 때문이었다. 서계의 파벌이기는 했으나 신유성이 자비를 보였기에 척계광은 장거정에게도 똑같이 공을 세워 과오를 지우라고 했다.
그렇기에 장거정은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리고 목이 잘릴지도 모르는 사신 임무에 응했다.
좋은 일로 상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니 목숨을 걸어야 했다.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어떻습니까?”
장거정을 호위하는 호위대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문신이었던 장거정의 체력이 떨어진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몸 때문에 폐하의 걸음을 늦출 순 없다!”
“알겠습니다!”
호위는 감탄하며 물러났다.
‘공을 세워야 한다! 못난 모습을 보일 순 없어!’
장거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흐르자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렇게 계속 달린 사신 행렬이 멈춘 것은 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할 시간이 되어서였다.
질주가 멈추자 장거정은 그대로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땅에 눕는 순간 곯아떨어졌다.
“참 독한 분이시네.”
“그러면 어떤가? 폐하를 위해 일하시겠다는데.”
호위들은 웃으며 장거정을 챙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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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