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139화 (139/271)

0139 / 0271 ----------------------------------------------

신군의 진격

카자흐 칸국의 칸, 카크 나자르 칸은 신음을 흘렸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허나 몰려오더라도 비나 조금 내릴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비를 내리고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폭풍이었다.

신국이라는 폭풍이 카자흐 칸국을 덮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없네. 다 떠났어.”

“그럼 이 땅을 뒤지면 되겠습니까?”

“그건 안 되네.”

통역을 통해 전해지는 말에 장거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신국의 입장에서 그들은 꼭 분쇄해야만 하는 적입니다. 그들과 손을 잡는다면 신국의 적입니다.”

“잡지 않았네.”

“하지만 이쪽으로 왔다고 하던데요. 그냥 보냈다면 손을 잡은 거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안 잡았다고! 지금 전쟁이라도 하자는 건가? 목숨이 아깝지도 않나?”

카크 나자르 칸은 장거정을 협박했다. 허나, 장거정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황제 폐하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이 한 목숨 아깝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치시지요. 하지만.”

잠시 말을 끊은 장거정의 눈빛은 무섭게 빛났다. 전쟁에 익숙한 카크 나자르 칸마저 움찔하게 만들 정도였다.

“폐하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겁니다.”

신국은 단기간에 어마어마하게 성장한 나라였다. 그래서 두려웠다. 신유성의 행보만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위대한 정복자로 알려진 칭기즈칸이었다.

신유성이 하는 짓은 칭기즈칸과 유사했다. 항복하면 자치권을 인정해주고 반항하면 정복했다. 칭기즈칸의 경우에는 사람을 다 죽여 말살할 정도였으나 신유성은 노예로 만드는 것이 달랐다.

장거정의 말 한 마디에 카크 나자르 칸은 엄청나게 흔들렸다.

‘만약 그가 대칸과 같은 자라면.’

칭기즈칸과 같은 운명을 타고 난 자라면? 저항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신유성의 정복 속도는 그야말로 쾌속이었다. 얍삽한 술수를 썼다고도 알려졌으나 술수를 쓰는 것도 능력이 없으면 못한다.

‘알탄 칸도 박살났다.’

신유성을 비하하는 자들은 얍삽한 술수를 쓴 겁쟁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신유성의 신국은 알탄 칸의 군대를 박살냈다.

알탄 칸은 명백한 몽골의 지배자였다.

그런 자를 박살낸 신유성이 약자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몽골 초원의 부족들은 신유성을 두려워해 결국 초원에서 도망쳤다. 여기에 오이라트도 함께였다. 오이라트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다.

신국이 별 거 아니라는 말은 맞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거정은 기다렸다. 적당히 생문을 열어줄 때를.

“나도 그들을 내주고 싶다. 하지만 진짜 없다. 모두 떠났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싸우자는 소린가?”

카크 나자르 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잠깐 발끈하긴 했지만 결국 처지를 이해한 것이었다.

카자흐 칸국은 여러 칸국에 둘러싸여 경쟁을 하는 상황이었다.

서쪽의 노가이 칸국, 북쪽의 시비르 칸국, 동남쪽의 모굴리스탄 칸국, 남쪽의 부하라 칸국.

4개의 칸국과 경쟁을 펼치는 것만으로도 숨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신국이 뛰어들었다.

“신국의 영주가 되시면 됩니다. 그러면 결백을 믿어드리죠.”

“나보고 신국에 항복하란 소린가?”

“항복 권유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항복 권유가 아니면 뭔가?”

카크 나자르 칸은 어이가 없었다.

“대업에 동참하실 수 있는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대업 동참의 기회?”

“그렇습니다.”

장거정은 열망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양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위대하신 신국의 황제 폐하의 서진에 동참하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과거를 뛰어넘어 더욱 먼 곳으로 향하실 황제 폐하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기회입니다!”

두근. 카크 나자르 칸의 심장이 살짝 뛰었다.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장거정의 외침을 들으니 마치 신유성이 진짜 위대한 정복자의 길을 걸을 것 같았다.

‘과거에도 굴복했다.’

과거. 칭기즈칸은 가로막는 자들을 전부 굴복시켰다. 굴복하지 않고 저항한 자들은 죽였다. 말살했다. 그리고 죽은 자들의 해골로 탑을 쌓아 공포를 안겨주기도 했다.

잔혹한 정복자였던 것이었다.

카크 나자르 칸은 환상을 보았다.

신국이 계속해서 주변을 정복하는 것이었다. 반항하는 자들을 죽이고 여자를 범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자들은 비참하게 죽고 먼저 굴복했던 자들은 위대한 제국의 대업에 동참해 승승장구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으음.......”

카크 나자르 칸은 고민했다. 마음이 흔들렸다. 그때 장거정의 입에서 결정타가 튀어나왔다.

“영주가 되신다면 많은 혜택이 있습니다.”

우선 자치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신국의 법은 영주의 땅은 영주가 지배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종교의 자유도 주어졌다. 무엇을 믿건 상관없었다.

“불이익을 당하실까 두려우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또한 이제는 멸망한 명나라의 신하였습니다. 한 때 저도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했었죠. 그러나 폐하는 저 같은 이들에게도 기회를 주셨습니다.”

카크 나자르 칸의 귀가 활짝 열렸다.

“폐하께서는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자들도 영주의 요청에 따라 기회를 주실 정도로 관대하십니다. 영주들을 믿어주시는 분이시지요.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겁니다. 만약 다른 칸국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만.”

카크 나자르 칸은 이어질 말을 듣기가 두려웠다. 이미 염려하던 것이었다.

‘만약 노가이 칸국이나 어느 하나가 신국과 손을 잡는다면?’

멸망은 시간문제였다.

경쟁하는 칸국들이 카자흐 칸국을 순식간에 꿀꺽할 터였다. 신국의 군대와 함께 한다면 카크 나자르 칸은 막을 자신이 없었다. 고작해야 끝까지 저항하며 시간을 끄는 게 다였다.

“이야기는 잘 알겠네. 허나 바로 결정을 내리긴 어려워. 조금만 기다려 주겠나?”

“물론입니다.”

장거정은 귀빈 대접을 받게 되었다.

카크 나자르 칸은 족장들을 불러 모았다.

“신국이 나에게 영주가 되라고 제안했다.”

“안 됩니다! 싸워야 합니다!”

“좋은 기회입니다.”

동시에 반대되는 의견을 외친 두 족장은 서로를 노려보았다.

한쪽은 알탄 칸과 가까웠던 부족의 족장이었다. 다른 쪽은 전혀 상관없던 부족의 족장이었다.

“신뢰를 저버리자는 건가? 그들은 우리와 같은 칸국의 후예들이거늘!”

“신뢰? 무슨 신뢰? 난 그들이 처음부터 싫었어!”

싸움이 벌어졌다. 카크 나자르 칸은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날 싸움이었다. 편이 갈라진다면 어떻게 갈라지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먼저 나서서 말리다가는 누가 누구의 편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행여나 신국에 반기를 들 놈이 정체를 숨기고 붙는다면 골치 아픈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신국을 싫어하는 놈들을 쳐낸다.’

마음은 이미 정했다. 신국의 영주가 되기로.

대세가 기울었으니 따르는 것이 더 좋았다. 단순히 명나라가 항복하라고 떠들어댔다면 비웃어줬을 것이다. 명나라가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으니까.

하지만 신국은 달랐다.

진짜 군대를 보낼 힘이 있었다. 정복할 의사가 있었으며 외교적인 줄타기를 통해 칸국 하나를 멸망시키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말을 타고 도망 다니면서 산다면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다른 칸국의 약탈 대상으로 전락해 끊임없이 털리다가 결국 힘을 잃고 망하게 될 뿐이었다.

무엇보다 칭기즈칸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걷는 자라면 잔혹한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래서 명성과 소문이 중요한 것이었다.

명나라가 멸망하며 퍼진 소문에 몽골 초원을 손쉽게 정복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더구나 몽골 초원에 살던 부족들이 도망치면서 소문을 더 빨리 퍼지게 한 원인이 되었다.

강력했던 알탄 칸이 무너지고 초원이 박살났다.

그리고 그 땅에 살던 이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고 있었다.

신유성이 엄청난 정복자라는 소문이 퍼지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네 놈! 죽인다!”

족장들은 완전히 두 패로 갈라졌다.

한 쪽은 뭉쳐서 신유성에게 저항해야 한다는 자들이었다. 다른 한 쪽은 신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들이었다.

중간에 선 자들은 없었다.

오직 한 명 아직 선택하지 않은 카크 나자르 칸을 빼고는.

“칸께서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실 겁니까?”

“음.”

카크 나자르 칸은 자신의 호위들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선언했다.

“신국에 저항하자는 자들을 잡아라.”

한 마디에 호위들이 나섰다. 이미 약속된 일이었다. 신호를 보내면 죽이라는 명령을 미리 내려두었었다.

호위들은 순식간에 저항하자고 주장한 족장들을 죽였다.

“저들의 부족을 빨리 정리해라.”

마음을 굳힌 이상 시간을 끌 것은 없었다. 카크 나자르 칸의 결정에 신국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이들은 환희에 찬 표정으로 서둘러 나갔다. 저항하자는 자들의 부족은 아직 그대로였다. 제 정신 차리기 전에 빨리 정리해버리지 않으면 나중에 골치 아플 수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장거정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카자흐 칸국의 카크 나자르 칸은 신국의 영주가 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정말 결백하셨군요. 믿어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몽골 초원의 도망자들을 알려달라고 말. 허나, 이것은 다르게 이용할 수도 있는 대화였다.

“내가 말하는 곳에 도망자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가서 얘기를 해봐야겠죠. 그들이 결백하다면 폐하의 지배를 받아들일 것이고 결백하지 않다면 싸우게 되겠죠.”

한 마디로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으면 말하나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신국이 가서 뭉개놓겠다는 소리였다.

‘흐흐흐흐흐. 그래 이래야지.’

카크 나자르 칸은 속으로 웃었다.

“그 놈들이 사방으로 퍼져서 확실히 말해주기가 어렵군.”

“저런. 그거 정말 알기 힘들겠군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그들은 폐하의 분노를 피하지 못할 겁니다.”

“나도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

“영주의 책무는 영지를 발전시키는 데 있죠. 아, 조선어를 배워두시면 좋을 겁니다. 폐하께서 주로 쓰시는 말이니까요.”

“고맙군.”

카자흐 칸국은 신국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카자흐 칸국이 영주로 편입되었다는 소식은 빠르게 신유성에게 전해졌다.

“좋군.”

안 좋을 리가 없었다. 싸우지 않고도 굴복시켰으니까.

“보았나? 나의 힘을?”

“보았습니다.”

신유성은 이지번을 불러다놓고 장난쳤다. 경박한 행동이었으나 이지번은 이를 탓하지 않았다. 경박한 행동을 한 황제라고는 하나 나라 하나를 또 꿀꺽한 황제였다.

그만큼 신국은 강해졌다.

‘정말 서쪽 끝까지 가겠어.’

이지번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현재 위치한 곳은 대륙의 동쪽의 반도였다. 그런데 신유성은 계속 서진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정말로 서쪽 바다 끝까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

좀 더 효과적인 지배를 위해 중간 어딘가로 옮겨야 하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신유성에게 이를 언급했다.

“그럴 필요 없다. 세계는 둥글다. 결국 어디에 있든 반대편은 멀다. 아무리 천도를 해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움직이지 않고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가까워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라고 공조에 투자하는 것이다.”

공조에 퍼붓는 자금은 정말 장난 아니었다. 낭비되는 것도 많았다. 실패작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신유성은 멈추지 않았다.

“말이 나온 김에 효율을 더 높여야겠다. 특허권을 관리하는 기관을 만들겠다.”

신유성이 말하는 특허관리 기관은 한반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신국 전체의 영주들에게 전하라. 새로운 법이다.”

특허관리법.

새로운 것을 개발한 자에게 기술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개발자에 대한 보상 개념이었다. 기술을 통해 크게 돈을 벌어도 결국 영주를 비롯한 이들이 과실을 차지하고 개발자는 부스러기나 좀 먹는 것이 보통이었다. 허나, 신유성은 이를 고치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의욕을 높이겠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에 적용한다. 특허관리는 중요하다. 나라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특허를 관리하는 기관의 수장으로는 나츠를 앉혔다.

상징적인 의미로 나츠가 있고 그 밑에서 다른 이들이 이를 보조하게 되어 있었다.

공조를 비롯한 신국 전역의 장인들은 이러한 결정에 크게 환호했다. 지금도 돈을 많이 벌게 되었지만 앞으로 돈을 더 벌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장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기분에 황송해했다. 특허라는 것을 결국 장인 역사에 이름이 남는 일이기도 하니까.

“황제 폐하 만세!”

신문 기사를 읽은 장인들은 신유성의 광신도가 되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