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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의 진격
샤 칸의 결정은 그의 동생인 무하마드 칸에게도 전해졌다. 두 사람의 아버지인 만수르 칸이 사망했을 때, 무하마드 칸은 독립을 선언했다. 샤 칸은 분노해서 무하마드 칸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다.
분열된 모굴리스탄의 또 다른 지배자 때문에 결국 전력이 분산된 까닭이었다. 마치 짜고 치는 것처럼 양쪽에서 괴롭히니 결국 샤 칸의 지배력은 어느 쪽도 압도하지 못하고 평행을 이루게 된 것이었다.
“멍청한 녀석이야. 그런 녀석이 내 형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백성들의 불행이었다.”
무하마드 칸은 자신의 형인 샤 칸을 비웃었다. 대세를 읽는 눈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국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라라고?’
무하마드 칸의 영역은 오이라트와 근접한 상황이었다. 명나라와도 가까웠다. 그래서 교류가 있었다. 지금도 상인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신국과 거래를 하면 막대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듣게 된 정보들은 하나같이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동원된 원정군에 대한 것도 알 수 있었다.
‘징병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있던 군대도 아니었다. 지원자들을 훈련시켜서 기병으로 만든 군대일 뿐이다.’
약졸이라면 약졸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두려웠다. 무하마드가 어렵게 생각하는 오이라트도 움직이지 않았다. 명나라를 집어삼켰던 군대는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들이 작정하고 움직이는 날이 온다면?
‘그들이 움직인다면 끝장이다.’
무하마드 칸은 이미 오래전부터 신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보를 수집해 왔었다. 그리고 영주가 되면 자치권이 주어지는 것도 알게 되었다.
‘차라리 신국의 영주가 되는 게 낫다.’
스스로 일국의 왕이라 칭할 수는 없게 되지만 대세를 거슬러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더구나 신국은 개종을 할 필요도 없었다.
각 영지의 영주는 종교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가능했다. 중요한 것은 종교를 황제의 법보다 더 위에 두지 않을 것과 다른 영주들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이었다.
영지 안에서라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을 추방해도 상관없었다. 종교 때문에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무하마드 칸은 결정을 내렸다.
언젠가 신국은 멸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신국보다 자신의 자리가 더 위태로워 보였다.
빈손으로 죽기보다는 신국의 영주가 되어 훗날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신국에 사신을 보낸다.”
무하마드 칸의 사신들은 신국을 향해 달렸다.
한양.
“말라카에서 또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말라카에서는 줄기차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적당한 이유를 붙여 거절했다.
“내 입장은 언제나 똑같다고 전해. 보호를 받고 싶으면 신국의 영주가 되면 된다고. 안남처럼.”
아주 도와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사략 해적들이 가끔 가서 도와주기는 한다. 이들이 입항하는 것을 말라카에서는 막지 않았다. 사략 해적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들은 결국 말라카와 거래하는 상인이 되기도 했으니까.
대월이 멸망한 이후, 사략 해적들은 먹잇감을 찾아서 움직였다. 허나, 신국에 우호적인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지도를 작성하는 해적이 있는가 하면 남만인들을 찾아다니며 털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필리핀의 에스파냐 거점은 이미 여러 번 털어서 털 게 없었다. 그렇다고 정복하지도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또 오면 또 털 생각으로.
신유성은 사략 해적들이 우호국이 아닌 국가의 항구를 터는 것을 막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략 해적들은 말라카를 돕게 되었다. 하지만 사략 해적들은 적극적으로 보호를 해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활약에 고무된 말라카와 인근의 술탄들은 신국에 동맹을 줄기차게 요청했다. 고작해야 해적이 남만인들과 대등하게 싸우고 있었다.
신국의 함대가 직접 움직인다면 아예 남만인들을 바다에서 밀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신국의 함대가 움직이면 근처에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 다만 해역을 수호한다는 이유로 후지바야시 켄은 함부로 함대를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대만에서 꾸준히 해군을 키우며 신유성의 명령을 기다릴 뿐이었다.
‘동맹 따위 해줘봐야.’
이젠 동맹이 필요 없었다.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고 아쉬운 소릴 할 필요도 없었다.
거래를 하겠다면 응할 생각은 있었다.
영주가 되고 싶다고 숙이고 들어온다면 받아줄 수 있었다.
싸우겠다고 덤비면 뭉개줄 수도 있었다.
모두 신국 홀로 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동맹은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 사략 해적들도 그렇고 신국의 힘이 차오르는 중이었다. 어설픈 동맹 따윌 맺어 명분 때문에 꾹꾹 누르는 자충수를 둘 순 없었다.
“그나저나 안남은 어떻지?”
“현재 안정적입니다.”
“좋아. 더 할 말 있나?”
“오늘은 끝입니다.”
“그래, 수고했다.”
회의가 끝나자 신유성은 달렸다. 이제는 놀 시간이었다.
독수공방은 계속 되고 있었다.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만큼 몸이 회복되긴 했지만 부인들이 거부하니 결국 신유성은 가끔 포옹이나 입맞춤이나 하는 정도로 애정 표현을 할 뿐이었다.
거부하는 이유가 못난 모습을 보여서 싫어하게 될까봐 그런다니 억지로 안기도 그랬다.
때문에 신유성은 최근 기행을 벌이고 있었다.
“이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떻겠나?”
공조에 들려 이것저것 만들어대고 있었다. 아이디어를 주면 공조의 장인들은 무조건 이를 만들려고 기를 썼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쓸모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거중기였다.
무거운 것을 힘을 덜 들이고 들어 올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부탁한 건 어찌 되었지?”
“만들었습니다.”
“오오.”
이번에는 또 다른 물건이었다. 거중기보다는 만들기 쉬운 것이라 하루만에 뚝딱 만든 물건이었다. 그것은 바로 유리로 된 커다란 병이었다.
병은 사람 머리만한 크기였다. 동그란 병의 끄트머리에 달린 작은 주둥이는 밀랍으로 막혀 있었다.
“이제 보자! 이게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
모여 있던 공조의 장인들은 그제야 신유성이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장인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나무는 뜨지만 유리 조각은 가라앉는다. 그래서 유리병도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뜬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이번에는 많은 이들이 손을 들었다. 소신이 없는 자들은 신유성이 분명 생각이 있어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좋다! 어디 시험해보자!”
연못을 향해 걸어간 신유성은 물에 들어갔다. 그러자 호위들이 물가에 함께 뛰어들어 신유성의 곁에 섰다.
병을 놓았다.
커다란 병은 가라앉지 않고 둥둥 떴다.
“떴다!”
“오오오오.”
흥미로운 광경에 장인들은 눈을 빛냈다.
“유리가 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쇠를 뜨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뜨게 하는 이치는 무엇인가?”
신유성은 미래의 기억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니 금방 실험으로 증명했다. 하지만 이것을 과학적으로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면 하기가 싫었다. 어설프게 아는 척하다가는 날카로운 질문을 받아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냥 조금 아는 것을 보여주고 알아보라며 잘난 척 하는 것이 제일 편했다. 설명은 나머지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공조의 장인들은 흩어지더니 부지런히 이것저것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유성의 실험은 금방 황궁 밖으로 퍼져나갔다. 얼마 안가서 신문에 실려 신국 전체에 알려지게 되어 있었다.
“으음.”
실험을 하고 나자 신유성은 다시 심심해졌다. 그래서 검술 수련을 하고는 다시 물건을 만들게 했다.
이번에는 물안경이었다.
안경은 이미 존재했다. 렌즈를 만들어 현미경까지 만들었기에 안경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돋보기와 안경은 그야말로 지식인의 상징과 같은 물건이 되었다. 나이가 든 학자들은 안경을 찬양했다.
나이가 들어 잘 안 보이게 되었는데 안경 덕분에 다시금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안경의 끝에는 물개 가죽을 붙였다. 그리고 꽉 조이자 물이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실험한 신유성은 또 다시 연못이 뛰어들었다.
“하하하하! 보인다! 보여!”
물 밖으로 나온 신유성은 호위에게 물안경을 주며 들어가라고 했다. 황송하다는 듯 허리를 굽힌 호위는 조심스럽게 물안경을 착용하고는 물속에 들어갔다.
이유 따윈 묻지 않았다. 중요하지도 않았다. 황제가 시키면 한다. 이것이 신유성을 따라다니는 호위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죽으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죽을 인간들이었다.
“오오오오! 보입니다!”
“그렇지? 보이지?”
물안경은 단숨에 화제가 되었다. 물속에서는 눈을 뜨기 힘들다. 그런데 볼 수 있는 물건을 만들었다.
“그런데 너무 깊이는 들어가면 안 될 거 같다.”
“왜 그렇습니까?”
“유리가 깨질지도 모르거든. 그럼 눈을 다치겠지.”
신유성은 주의 사항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잠수함을 만들어볼까?’
대단한 잠수함을 만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깊은 물속을 살필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심심하니까 온갖 물건을 만들며 무료함을 달래는 신유성이었다.
기행이 이어지니 신유성의 부인들은 점점 걱정이 생겼다.
“이러다가 폐하가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안 된다. 역시 여자를 안겨드려야 해.”
“맞아요. 하지만 곁에 미녀들이 있어도 안질 않으시니.”
주녹정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지금 보이는 신유성의 기행은 가정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기행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주녹정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만약 잘못된 길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이러한 걱정을 공유하는 신유성의 부인들은 결국 여자를 더 들이게 하는 것에 공감했다.
“그렇다면 좀 더 이국적인 여자들은 어떨까요? 새로운 것에 흥미를 보이실지도 모르잖아요.”
“그래, 해보자.”
주녹정은 청교공주와 척계광에게 편지를 썼다. 나츠는 요시시게에게. 레이는 신페이에게. 모두 각자 집안에 이국의 미녀를 보내라고.
봄이 되자 한양은 시끄러워졌다. 건물이 하나 완공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신유성을 위해 지어진 상가였다.
돌쇠의 건설회사에서 지은 상가를 본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수많은 물품들이 질서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통로를 따라 걸으며 물건들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다.
화려한 실내. 곳곳에는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황제를 위해 지어진 곳이라 무척이나 화려했다.
상가를 다 돌아본 신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점이라 하면 좋겠구나.”
백화점이란 말에 따르던 이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신유성은 그냥 기억 속에 알고 있던 단어를 말한 것이지만 신유성의 주변인들은 신유성이 즉석에서 작명을 한 것으로 보았다.
“내가 쓰지 않을 땐 다른 이들이 이용해도 좋다고 해라. 단, 입장료는 받아라.”
물건을 사지 않아도 입장료를 받는 백화점. 엄청난 폭리였으나 이를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황제의 것이니 이를 돈 내고 이용할 수 있게 해준 것만 해도 성은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황제 폐하의 성은! 백화점 개방!’
신문에 기사가 떴다. 황제 전용으로 만들어졌던 황제만을 위한 시장.
“허허허, 이렇게 황송할 때가!”
신문 기사를 읽은 이들은 다들 크게 감탄했다. 그리고 잠시 뒤 모두 백화점으로 몰려갔다. 먼저 가서 황제가 보고 느낀 것을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허나, 입구에서 사람들은 들어가지 못하고 멈춰야만 했다.
“한 번에 한 명씩입니다. 그리고 여기 명부에 이름을 적고 예약을 하십시오.”
입장료는 이용 시간에 따라 더 내도록 되어 있었다. 싸지도 않았다. 엄청나게 비싸게 책정되었다. 매화가 아무나 이용하게 할 순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였으나 이미 내고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
“아아! 이런 곳이. 폐하께서 뭔가 더 찾으시는 건 없던가?”
신문 기사가 뜨기도 전에 백화점 앞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간 자의 정체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황실 소식, 특히 신유성의 소식에 엄청나게 민감한 이에야스는 신문에 기사가 실리기도 전에 백화점에 돈을 내고 들어섰다.
“한 번 둘러보시고는 곧 흥미를 잃으셨습니다.”
“그래? 그럼 더 새로운 것을 많이 채워야겠군.”
이에야스는 휘하의 상단과 사략 해적들을 더 멀리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신유성이 걸었던 걸음을 따라 걸으며 물건을 감상했다.
세계의 많은 것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눈이 즐거웠다.
백화점으로 시끄러운 상황 속에 황실에는 조용히 한 가지 소식이 전달되었다. 오이라트를 통해 전달된 무하마드 칸의 복속 신청이었다. 하지만 복속 신청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형인 샤 칸을 물리치기 위해 도와달라는 도움 요청도 함께였다.
“오이라트에 여유는 없나?”
“있습니다.”
오이라트에 여유가 없을 리가 없었다. 몽골 초원을 지배하에 넣고 안정화 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그럼 오이라트 영주들이 대가를 받고 도와주든 알아서 하도록. 어차피 내가 군대를 일으켜도 군대에 배당을 줘야 하니까.”
오이라트에서 온 전령은 크게 감동해 감사를 외쳤다.
신유성의 허락 없이는 원정 따윈 할 수 없었다. 즉, 샤 칸 한정이지만 오이라트가 직접 원정을 나갈 수 있게 허락한 것이었다. 전령은 소식을 들고 오이라트의 영주들에게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