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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42화 (14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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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의 진격

시비르 칸국.

척계광이 보낸 기병들은 어려운 행군 끝에 시비르 칸국에 도착했다. 한 겨울에 이동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해냈다. 모두 꼼꼼한 보급 덕분이었다.

“어우 추워 뒤지겠네.”

날씨가 풀렸지만 원균은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앞서 가는 이정은 피식 웃었다.

“폐하께 감사해라.”

“그래야지요.”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신유성의 군대 보급은 엄청났다. 털옷도 그냥 털옷이 아니었다. 속에는 새털을 채워 넣은 방한복을 입을 수 있었다. 신발도 마찬가지. 모두 고급품이라고 해도 좋을 물건들뿐이었다. 몸은 좀 둔해지지만 추위는 이길 수 있었다. 또한 각종 식량과 술까지 지급되었다.

추운 곳에서 움직여야 하니 술이 허락된 것이었다.

원균은 품에서 술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독한 술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속이 화끈해졌다.

“적당히 마셔라.”

“네.”

남쪽은 포근한 봄이었지만 시베리아의 봄은 아직 썰렁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나무가 많은 곳만 찾아서 움직인 덕분에 3만의 기병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불을 피울 때 쓸 기름이 충분히 보급된 덕분에 겨울에 불을 붙이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았다.

“어, 저기 왔나보네요.”

“슬슬 시작해야지.”

이정은 전투가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야디가르 칸은 치를 떨었다. 쿠춤이 자신에게 드디어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신국을 끌어들였다.

“미친 놈!”

분노한 야디가르 칸은 방방 뛰었다. 그러나 분노를 토해내도 뾰족한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칸의 자리를 유지하면서 쿠춤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쿠춤과 신국이 함께 쳐들어온다면 필패였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야디가르 칸은 자신이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차르국에 복속할 때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우호를 증진하며 좋은 사이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차르국에서는 계속 복속을 요구할 뿐이었다.

복속만큼은 할 수 없어 곤란한 태도를 유지하며 계속 시간을 끌어왔었다. 하지만 신국이 뛰어들어 결국 야디가르 칸은 버틸 수 없게 되었다.

“차르국에 사람을 보내라.”

이판사판이었다.

쿠춤은 만족했다. 3만의 기병을 봤을 때 느낌 감정은 딱 하나였다.

‘신국은 위대하다.’

기병들의 실력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병들의 장비를 보는 순간 신국이 얼마나 부자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모두 똑같은 복장의 군복을 입은 것은 물론 장비가 엄청났다. 무엇보다 뒤에 질질 끌고 다니는 것들에 눈이 번쩍 뜨였다.

‘대포!’

이제는 차르국이고 뭐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무기였다.

모스크바 차크국이 카잔 칸국을 이긴 원동력은 바로 포병과 공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트렐치라고 불리는 사격 부대도 한 몫 거들었다. 이들에 비해 카잔 칸국의 포병 전력은 그다지 뛰어나질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신국의 기병들이 대포를 이끌고 나타났을 때 기대하는 바가 컸다. 기병들이 대포를 끌고 다니는 것이 이상할 순 있었으나 척계광은 끌고 다녔다.

전원 기병 훈련을 받았으나 때에 따라서는 총병이나 포병 역할을 수행하도록 훈련시켰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신국의 장비를 본 쿠춤은 성대하게 군대를 맞이하며 장거정에게 연신 칭찬을 날렸다.

“역시 신국은 대단하군요.”

“저것은 그저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라고요?”

“저들은 그저 지원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신병들일 뿐입니다. 폐하의 본대는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허억!’

쿠춤은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지금 나타난 병력들도 훌륭했는데 본대는 움직이지도 않았다니!

줄을 정말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며 쿠춤은 엉덩이를 실룩거렸다.

환영회는 열리지 않았다. 파견 온 신군 기병대는 바로 움직여 야디가르 칸의 영역으로 뛰어들었다.

“빨리 끝내고 쉬자!”

봄이 오기 시작하며 날씨가 풀리고 있었다. 허나, 생명의 계절은 죽음으로 얼룩졌다.

쿠춤의 안내를 받은 신군 기병대는 시비르 칸국의 전역을 휩쓸기 시작했다. 야디가르 칸이 모스크바 차르국으로 복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강력한 기병들이 나타나자 시비르 칸국의 부족들은 쿠춤에게 복속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부족들의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직 야디가르 칸에게 충성하는 부족들만이 맹렬하게 저항할 뿐이었다.

이때 카잔 지역을 꿀꺽했던 모스크바 차르국의 병력이 서둘러 움직였다.

신국과 모스크바 차르국의 충돌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정리 끝났으면 움직이자.”

이정의 명령에 원균은 투덜거렸다.

“좀 쉬었다 가면 안 됩니까?”

“떠들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라.”

이정은 매몰차게 굴었다.

“폐하께서 승전을 기다리신다.”

전쟁에 임한 이정이 생각하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빠른 승리.

얼른 승리해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복무 기간이 따로 정해진 원정군이 아니었다. 원정이 끝나야 돌아가는 원정군이었다. 그러니 원정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는 것이 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입대는 자유지만 제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군대였다.

‘재수 없으면 10년 정도 싸우게 되겠지.’

전쟁이 1년 정도 이어지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 이상도 많았다. 규모가 큰 전쟁일수록 더 오래 간다.

그러니 이정은 꾸물거리고 싶지 않았다.

꾸물거리다 승기를 놓치면 그만큼 시간을 낭비하게 되니까. 전쟁터에서 더 오래 구를수록 사망 확률은 높아질 뿐이다.

이정은 꼭 살아서 돌아가고 싶었다.

시비르 칸국이 내전에 휩싸였을 때, 카자흐 칸국의 남쪽 상황도 변하고 있었다.

특히 모굴리스탄의 압둘 카림 칸은 척계광으로부터 긍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무하마드 칸이 복속 신청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해진 압둘 카림 칸의 요청도 결국 신유성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이후, 압둘 카림 칸이 원한 부하라 칸국의 정벌이 받아들여졌다.

원래는 사이가 나빴었다. 그러다 카자흐 칸국을 견제하기 위해 손을 잡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었다. 하지만 이젠 또 다시 배신을 때리려 하고 있었다.

애초에 손을 잡은 것 자체가 살아남기 위한 궁여지책일 뿐이었다. 그러니 다른 수단을 손에 넣게 된 압둘 카림 칸은 더 이상 부하라 칸국과 공존할 생각이 없어졌다. 아예 정벌해서 손에 넣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혼인을 통해 우호까지 다졌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다 뒤집고 있는 것이었다.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니.”

샤 칸이 걱정이라 샤 칸부터 처리하고 움직이길 요청했었으나 이는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무하마드 칸이 오이라트와 함께 샤 칸을 처리하기로 되었기 때문이었다.

위구르스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보다 많은 전력을 투입하는 게 가능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부하라 녀석들을 쳐부수자! 전쟁을 준비하라!”

“우와아아아아아!”

압둘 카림 칸의 부하들은 환호했다.

척계광은 다시 4만의 병력을 부하라로 진격시켰다. 부하라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기에 척계광은 거침이 없었다. 사실 부하라 칸국에는 많은 초원의 도망자들이 숨어있었다.

부하라 칸국은 이들을 통해 세력을 키워 일거에 주변을 휩쓸 계획을 세웠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척계광이 사신을 보냈을 때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고 시간만 끌었었다.

척계광은 시간을 끈다고 대답을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때마침 모굴리스탄 칸국의 압둘 카림 칸의 요청도 있었기에 부담 없이 병력을 파견했다.

“남은 것은 노가이 칸국 정도군.”

“언제 칠까요?”

“그거야 카자흐 영주가 가자고 하면 가야지. 더 이상 움직이는 것은 사실 무리다.”

이제 척계광의 밑에 남은 것은 3만의 병력이 다였다. 이 병력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잃을 수 없는 병력이었다. 가장 훈련이 덜 된 병력이었기 때문에 전투에 투입해봐야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훈련이나 더 시키도록. 그리고 본국에 대포를 더 요청해. 아무래도 모스크바 차르국과 전면전을 치르게 될지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척계광은 어쩌면 힘든 원정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자들은 만만치 않다.’

카잔 칸국이 모스크바 차르국에게 먹혔을 때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본 척계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황은 할 일이 많아졌다. 계속해서 이동을 하며 이황은 점점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원정군의 보급을 책임지는 막강한 위치에 올랐다.

보급품을 받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허나, 원정대의 보급품 관리 정도로는 이황과 그를 따르는 이들을 더 바쁘게 하기는 어려웠다.

이황과 허엽 그리고 기대승이 나서면 웬만한 일은 금방 끝났다. 복잡한 계산 따윈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정확했다.

일을 자주하다보니 요령도 생겨서 업무처리 속도가 더욱 올라갔다.

“이번 원정을 어떻게 보십니까?”

“별 다른 일이 없다면 승리로 끝나겠지.”

보급은 원활했다. 적어도 무기가 없어서 전쟁에서 졌다는 소리는 나올 수가 없었다. 더구나 척계광은 명장이었다.

척계광을 떠올린 이황은 패배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세상은 참으로 넓구나.”

한반도를 벗어나 카자흐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여정이었다. 수많은 이들을 보고 사람 사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종교와 생활 풍습을 접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면들도 있었으나 꾹 참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황의 심상 세계는 더욱 넓어졌다.

이러한 영향은 제자들을 비롯해 함께 하는 이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울러 이황은 외국어를 배우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앞으로 여러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대접 받을 것이다. 관심 있는 말 하나 정도는 배워두면 더 편할 것이다.”

이미 여러 말을 할 줄 알았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간단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집현전에서 했던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남으면 이황은 예전에 집현전에서 했던 일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책들은 중요한 자료가 되어 군대에서 사용되었다.

신유성의 기행은 봄이 되어도 멈추질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자! 이제 입수하겠다!”

한 겨울에 물안경을 쓰고 연못에 뛰어들었던 신유성. 이제는 무쇠를 이용해 작은 잠수함을 만들었다.

아니, 잠수함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물건이었다. 이것은 그냥 쇠로된 통이었다. 유리로 된 창이 달린 쇠통.

위에는 기다란 통이 물 밖으로 나오게 된 물건이었다.

신유성은 서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통을 내리게 했다.

“어서 내려라.”

“폐하! 고정하여주십시오!”

막상 신유성이 물속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일을 돕던 이들이 갑자기 머리를 땅에 박으며 거부했다.

신유성이 새롭게 판 연못은 상당히 깊었다. 물이 쉽게 빠지지 않도록 바위로 벽을 만들어 물도 빠지지 않았다.

연못이라고는 하지만 심심해진 신유성이 만든 야외 수영장 같은 곳이었다.

“어허! 내리래도!”

“아니 됩니다!”

신유성이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하게 되면 일을 도왔던 이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시키는 대로 했으나 마지막에 와서는 거부한 것.

“에이! 그럼 네가 들어가라!”

호위 하나를 지목하니 호위는 냉큼 쇠통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물속으로 잠수했다.

꽤 오랫동안 통은 올라오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마 죽었을 시간.

허나, 쇠통을 꺼냈을 때 안에서 호위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어땠나?”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고정하십시오!”

결국 신유성은 연못 바닥을 구경하는 일은 하지 못했다. 답답해진 신유성은 목욕탕에 가서 물안경을 쓰고 아주 오랫동안 잠수하며 궁녀들의 속을 타게 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니 한양에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다뤄졌다.

“폐하께서 무척 무료하신 모양이십니다.”

“그러시겠지. 싸우러 가지도 못하게 막고. 여인도 멀리하시니.”

“얼른 야구장을 지으라고 지원을 좀 해줘야겠습니다.”

“나도 하겠네.”

호조 우지야스가 짓고 있는 한양 야구장은 아직도 건설 중이었다. 허나, 신유성이 자꾸 기행을 벌이니 한양의 부자들이 돕기 위해 나서기 시작했다. 덕분에 야구장 건설 속도는 매우 올라갔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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