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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신국의 전쟁은 겨울에 들어서도 계속 되었다.
10만에 달하는 병력에 대한 보수, 철저한 보급에 따른 막대한 군비 등 신유성의 지출은 어마어마했다. 이지번은 신유성 개인이 지출하는 내역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신유성이 마구 돈을 뿌려도 재정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단해.’
전쟁을 위한 국가가 된 것 같았다.
회사들이 내는 세금은 막대했다. 또한 신유성이 개발한 기술에 대한 특허로 들어오는 자금도 어마어마했다. 기술의 발전과 회사들의 성장은 신유성 개인의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 여기에 광산에서 얻는 수입까지 더하면 원정대를 위해 돈을 쓰고도 돈이 남아돌 지경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용병회사까지 만들었다.
용병회사 자체가 벌어들이는 액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지분에 따라 들어오는 수익이 엄청났다. 다른 영주들도 용병회사가 물어다주는 수입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용병의 활동을 지원했다.
또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모두 조금씩 세금을 내니 신국 재정도 풍부해졌다.
“화약과 무기 생산량을 더 올리도록.”
화약과 무기의 소비자는 정해져있었다.
“하지만 더 생산하기 위해선 생산 시설을 늘려야 합니다. 차후 지속적으로 소모할 수 없다면 미래에는 낭비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대량 생산의 문제점이었다.
수요가 있을 땐 대량으로 생산해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요가 줄어든다면? 공장을 계속 돌리는 만큼 적자가 쌓이게 된다.
전쟁이 줄어들어 신유성이 무기를 소비할 이유가 없어진다면 수요가 줄어든 것이나 마찬가지. 허나, 소비를 해주지 않으면 공장은 문을 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인력이 유출된다.
유출된 인력에게 일자리를 주지 못한다면 기술이 어디로 빠져나갈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수요 예측은 매우 중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신국의 무기 소비를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신유성이었다.
신유성의 의지가 수요를 정한다.
이지번은 신유성에게 어느 정도 선까지 소비하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지금의 2배 정도는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병력 훈련에도 필요하고 앞으로 수요는 더 늘어날 수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나라가 커지면 지켜야 할 곳도 많아지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그나저나 회사들의 성장은 어떻지? 문 닫는 회사가 많나?”
“문 닫는 회사는 별로 없습니다.”
“문을 닫게 된 이유는?”
“욕심쟁이들이 멍청한 짓을 해서죠.”
인간이 탐욕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그것을 제어하느냐 못하느냐 그것이 중요했다. 회사를 세운 이들 중, 탐욕을 주체하지 못해 비리를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걸렸다.
특히 탈세를 시도하는 인간들은 끝이 없었다. 횡령도 있었고 사기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모두 잡혔다. 회사 내부에 있는 이들 중 장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비리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유성을 존경하는 마음을 품은 상인의 경우에는 비리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들에게 탈세는 반역행위나 다름없었다. 장사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준 신유성에 대한 배신이었다.
신에 대한 모독이었다.
어쨌거나 비리로 신고 된 이들은 쫄딱 망했다. 북해도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비리를 저지른 이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고 범죄자와 가족들은 노예로 전락했다.
비리를 신고한 이들은 모두 회사를 싸게 사들일 자격이 주어졌다. 또한 회사를 팔았을 때 일정한 수익을 챙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에 실리니 비리 사실이 있나 눈에 불을 켜고 회사를 감시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먼저 신고하면 한몫 크게 잡으니까. 인간의 탐욕은 참으로 무섭다.
어쨌거나 아직은 수요가 모자라 경쟁 때문에 회사가 문을 닫는 경우는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정말 멍청하게 장사를 하지 않는 한 웬만해선 다 유지가 될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잘 되고 있군.’
신유성은 흐뭇하게 보고를 들었다.
‘계획대로야.’
경제를 살려서 개인의 이익을 늘린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늘어난 돈으로 원정대를 꾸린다.
이것이 신유성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계획이었다. 잉여 자금이 많이 쌓일수록 전쟁을 끌어가는 것이 유리했다. 심각하게 여기 저기 낭비를 하지만 않으면 된다.
생산 인력이 많으니 이를 소비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신유성이 소비자가 되어 소비해주니 생산력이 더욱 올라갔다.
더구나 식량 생산력이 상당히 올라갔다. 이로 인해 신국 전체에서 신유성을 향해 칭송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바다는 그야말로 풍부한 식량 저장고나 다름없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을 말리거나 훈제하거나 염장해서 팔면 돈이 된다. 식품저장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었다.
‘아, 감자. 감자가 있으면 더 좋은데.’
감자가 있다면 아직은 부족한 곡물 생산량으로 인한 탄수화물 부족을 채워줄 수 있었다. 허나, 감자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남사고는 아직 아메리카 북부를 오가는 수준이었다. 용기를 낸다면 더 내려갈 수도 있으나 신유성은 서두르지 않았다.
‘감자는 도망가지 않아. 아직 없어도 버틸 수 있어.’
“폐하, 마지막으로 오스만 제국의 사신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신유성이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기다렸던 이지번은 계속 기다리다 정신을 차리자 마지막 보고를 올렸다.
“사신들은 내일 만나겠다.”
일이 끝나자 신유성은 달렸다.
“우리 혁이, 아빠 보고 싶었쪄요?”
“아부! 아부부!”
“그래, 내가 니 아빠다. 까꿍!”
“꺄륵!”
일이 끝나자마자 목욕을 해서 몸을 깨끗이 한 뒤에는 바로 아이들을 찾아갔다. 하루에 한 번 정도 아이들을 만나 안아주고 놀아주는 것이 신유성의 일과 중 하나로 굳어졌다.
주녹정은 흐뭇한 눈으로 신유성과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를 안고 놀아주는 모습은 자상하기만 했다.
‘폐하!’
아이를 아껴주는 모습에 주녹정의 마음은 흐물흐물해졌다.
한참 놀아주다보니 피곤해진 아기는 금방 잠들려 하고 있었다. 신유성은 조용히 아기를 유모에게 넘겼다. 풍만한 가슴을 가진 유모의 품에 넘어간 아기는 꿈지럭거리더니 다시 조용해졌다.
유모가 조용히 물러나자 주녹정과 신유성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많이 심심했지?”
“아닙니다.”
주녹정은 웃으며 신유성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차를 따랐다.
조용히 차를 음미하던 신유성은 주녹정의 허벅지를 슬쩍 만졌다. 그러자 주녹정은 허리를 틀며 몸을 뺐다.
“왜?”
“폐하, 아기가.......”
배를 살살 만져주는 자세에서 신유성은 또 아이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오오! 아기가!”
이어서 주녹정을 안고 마구 여기저기 입을 맞춰주었다. 주녹정은 웃으면서도 신유성을 밀어내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이 전해졌다.
다른 부인들도 모두 임신했다는 것이었다.
한 번 임신하기 시작하니 계속하는 것. 이를 두고 뭐라고 할 순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 새로 후궁을 들이시면 어떨까요?”
“후궁이라.”
신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가 임신했다고 계속 후궁을 들이다가는 끝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조금만 참으면 된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그때 들이도록 하겠다.”
주녹정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빛만큼은 포기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겨울이 시작되자 남사고는 한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수많은 부호들이 서로 남사고와 만나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아메리카로 진출한 탐험대를 이끄는 총 책임자가 바로 남사고였다. 그러니 그와 인연을 맺으면 탐험대에 지급되는 보급품 계약을 따낼 수도 있었다. 또한 아메리카의 상품을 먼저 들여와 팔 가능성도 높아진다.
상업에 눈을 뜬 부호들과 영주들은 이제는 신대륙이라 불리는 아메리카의 가치를 알아보고 있었다.
짜증이 날 정도로 요청이 쇄도하니 남사고는 고급 회관에서 한 번에 만나기로 했다. 장소로 잡힌 곳은 이에야스의 회관이었다.
“거기 생선이 그렇게 잘 잡힌다면서요?”
“어머나, 이렇게 큰 게라니!”
몇 가지 물건을 가지고 회관에 가니 순식간에 관심이 쏠렸다. 남사고는 수많은 질문에 시달렸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 녹초가 되었다.
“냉수 좀 가져오너라.”
산해진미를 먹었지만 어떤 맛이었는지 별로 기억에 남지도 않았다. 사람들 질문을 받다보니 정신이 없던 탓이었다.
시원하게 냉수를 들이키자 정신이 돌아온다.
‘이제 일 해야지.’
겨울에는 탐험이 멈춘다. 날씨가 추워져서 선원들이 일하기 힘든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무리를 한다면 갈 수는 있다. 그러나 막대한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다고 신유성은 말았다.
안전과 건강을 우선시하라고 했기에 따른다.
덕분에 탐험대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사기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계속해서 만드는 항구는 점점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사고가 하는 일은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었다. 얼마 뒤, 남사고는 황궁으로 향했다.
“몸은 좀 어떤가?”
“아직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신유성으로서는 남사고의 나이가 살짝 걸렸다. 탐험이란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나이 든 노인에게는 버거울 수 있었다. 그래서 항상 안전과 건강을 먼저 생각하라고 했다. 덕분인지 남사고의 건강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이것들은?”
“이번에 만난 이들과 거래해서 가져온 물품들입니다.”
물품들은 그리 대단하다고 할 수 없었다. 애초에 기술력에 기대하는 것이 없었으니 실망할 것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언어와 의술을 비롯한 지식이었다.
신유성은 먼저 책을 집어 들었다.
세계에서 입수된 책들은 차곡차곡 서고에 쌓이게 되어 있었다. 그중 새로운 문화의 것은 언제나 신유성이 조금이나마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그리 대단한 것은 없군. 수고했네.”
“황공합니다.”
“그건 그렇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
그저 그런 결과라 하더라도 탐험의 결과. 신유성은 언제나 남사고에게 상을 주었다.
“그저 탐험대를 더 챙겨주셨으면 합니다.”
“그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남사고는 탐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행운으로 여겼다. 몸이 좀 힘들긴 하지만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부분 얻게 되는 지식은 별 볼 일 없었지만 자연에 대한 지식은 아니었다.
식기한 풀이나 약초들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동물들도 접할 수 있었다.
지도도 만들고 해보고 싶은 것은 뭐든 할 수 있었다.
‘십 년만 더 젊었으면.’
최근 들어 남사고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는 신유성이라 해도 들어줄 순 없는 일이었다.
황궁에서 돌아온 남사고는 보약을 먹고 간단하게 운동을 시작했다.
탐험을 좀 더 하려면 몸이 건강해야만 했다.
북방에는 혹독한 겨울이 찾아왔다고 하지만 남해의 겨울은 그리 춥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살던 이들은 쌀쌀함을 느꼈겠지만 북쪽에서 온 이들에게는 움직이기 딱 좋은 날씨.
“쏴!”
사략 해적으로 등록한 해서 여진인들은 신이 났다. 중원에 정착한 이후, 많은 전사들은 실업자 같은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장사를 하면 돈을 벌 수 있으나 장사에 적응한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장사는 신용이 생명 그렇기에 성실함은 기본이었다.
허나, 전사 생활에 물든 이들은 성실하게 매일 같이 일하는 것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탕 크게 해서 신나게 먹고 놀다 부족하면 털러가던 생활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들은 조금씩 문제를 일으켰다.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여기저기서 싸움을 하고 다녔다. 그러던 차에 부얀이 해결책으로 사략 해적 모집을 했다. 배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전사들은 싸운다는 이야기에 일단 지원부터 했다.
그리고 결국 말라카까지 오게 되었다.
말라카는 정말 좋은 곳이었다. 싸우면 돈을 주고 약탈해오면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가끔 포르투갈 선박이 나타나면 서로 경쟁을 하며 달려들었다.
나포하기 위해서였다.
여진 해적이 나타나니 일본 해적들은 영업 구역을 좀 더 넓혔다. 여진 해적들은 항해술이 그리 좋지 않아서 해안선을 따라 움직였다.
그러나 항해를 오래해 경험이 쌓인 일본 해적들은 망망대해를 그냥 막 건너기도 했다.
“저 배를 따라 잡으면 여자 세 명씩 안겨주겠다!”
“우오!”
바다에서 배를 발견하면 정말 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해적 선원들이었다.
그야말로 해적들의 영업장으로 난장판인 곳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영업을 하는 해적들이 언제나 말라카를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한바탕 크게 하면 다시 돌아갔다. 그러면 한 동안 모습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귀신 같이 포르투갈 함대가 나타나 말라카를 괴롭혔다.
“이대로는 더 안 됩니다.”
“두 번 다시 이곳을 포기할 수 없다. 저 놈들에게 주느니 차라리 신국에 줘버리겠다!”
말라카의 술탄은 결국 폭발했다.
동맹을 거절하는 신국이 얄밉기는 했다. 하지만 신국은 최소한의 도리는 지켰다. 그냥 알아서 하라는 것을 섭섭하다고 원망만 할 순 없었다. 그러나 포르투갈 함대는 원수였다.
이미 한 번 말라카를 빼앗겼던 말라카의 술탄은 그냥 내주기가 싫었다.
“신국에 복속한다! 신국의 영주가 되겠다!”
말라카는 정말 돈 벌기 좋은 땅이었다. 이런 곳을 남에게 주기는 더 아까웠다.
남해의 사정이 변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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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