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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말라카의 술탄이 사신을 보내자 얼마 안가 후지바야시 켄은 정보를 입수했다. 말라카에는 신유성이 심어놓은 정보조직이 있었다. 이들을 통해 소식을 얻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빠르게 정보를 입수한 후지바야시 켄은 웃으며 부하들을 찾았다.
“드디어 제1함대가 움직일 시간이 왔다.”
“제2함대는요?”
“당연히 이곳을 지켜야지. 폐하가 계시는 곳에 불순한 무리들이 배를 타고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황실 친위함대가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나서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황실 친위함대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황실의 보호.
때문에 이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황실이 그만한 위험에 처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 꼴 못 본다.’
위험이 황실 근처에 가는 것을 상상하는 만으로도 엄청난 죄를 짓는 기분이 드는 켄이었다.
부하들은 좀 더 효율적인 함대 운용을 말했으나 후지바야시 켄은 막무가내였다.
‘어휴, 어쩔 수 없지.’
함대를 항구에 박아놓고 가끔 훈련만 하는 것은 굉장한 낭비 같았지만 해군을 총괄하는 권력을 가진 후지바야시 켄의 결정을 어떻게 바꿀 순 없었다.
결국 대만에서 신국 해군의 1함대가 움직였다.
갤리온 100척 외 다수의 보조함들.
이것이 1함대의 전력이었다.
이변은 말라카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따웅우 왕국의 왕, 바인나웅은 지속적으로 아유타야 왕국을 압박했다. 틈만나면 쳐들어가서 약탈도 해오고 전력도 약화 시켰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에 들어섰지만 병력을 움직이기에 나쁘지 않았다. 워낙 더운 곳이라 오히려 겨울이 싸우기에는 더 좋을 정도.
“놈들을 박살내자!”
“우와아아아아!”
바인나웅의 외침에 병사들의 사기가 치솟았다. 바인나웅을 따른 뒤로 따웅우 왕국은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병사들에게 있어 바인나웅은 신이나 다름없었다.
영광으로 이끄는 전신.
바인나웅은 흐뭇하게 웃으며 군사들의 진격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한 가지 근심이 그를 괴롭혔다.
‘놈들이 자존심이 부디 계속 살아있어야 할 텐데.’
아유타야 왕국은 심각하게 밀리면서도 신국에 복속하지 않았다. 동맹을 요구하는 사신을 보냈다는 이야기만 몇 번 들었다. 때문에 정벌군을 서둘러 일으킨 것이었다.
‘빠르게 정복하면 좋으련만.’
하지만 아유타야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역사가 있는 왕국이기 때문에 자존심도 그만큼 강했다.
만약 신국에 복속을 신청한다면 위험해지는 것은 따웅우 왕국이었다.
‘하지 않을 것이다.’
바인나웅은 자신의 힘을 믿었다. 왕국의 힘을 믿었다. 아무리 신국이 강하다고는 하나 우거진 열대의 숲에서 싸우는 것까지 능숙하진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온다면 모두 시체로 만든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바인나웅은 신국의 위세에도 겁먹지 않고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
아유타야 왕국은 결국 따웅우 왕국의 침략에 다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지키는 자의 입장에서는 모든 곳을 지킬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이 한 곳에 전력을 집중시켜 밀고 들어오면 처음에는 밀리는 게 보통이었다. 여기서 공격하는 자의 군대가 강하면 아주 깊숙이 파고들어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이었다.
“허허, 이를 어찌할까?”
아유타야 왕국의 왕인 마하 차크라파트는 근심에 사로잡혔다. 바인나웅을 어떻게 할 수단이 남아있지 않았다. 강력한 바인나웅의 군대는 막을 수 없는 불패의 군단과 같아보였다. 군대를 보내도 약간 시간을 끄는 게 전부였다. 이 때문에 아유타야 왕국군의 사기는 더욱 떨어졌다.
‘어리석은 것들.’
신하들의 움직임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하 차크라파트는 얼마 안가 아유타야 왕국이 패배로 인해 멸망의 길을 걸을 것 같았다.
‘불명예.’
생각만 해도 가슴에 불길이 치솟는 느낌의 단어. 왕이라는 자부심에 치명적인 상처가 남는 기분이었다.
마하 차크라파트 또한 전쟁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바인나웅의 군대가 올 것에 대비해 수판부리, 롭부리, 그리고 나콘나욕의 수비를 완전히 허물고 다른 도시들의 수비를 강화했다. 세 도시의 수비를 약화시킨 것은 바인나웅의 군대가 차지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싸울 수 있는 모든 인구를 병력으로 만들고 코끼리를 준비했다.
허나 모두 허사가 되었다.
바인나웅은 북부를 통해 진격해왔다. 군대를 밀집시킨 지역을 우회한 것이었다. 아유타야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신국에 도움을 요청합시다.”
마하 차크라파트에게도 귀가 솔깃하는 이야기였지만 아직 군대가 다 쓸려간 것은 아니었다.
“무슨 소릴! 그대들은 서둘러 바인나웅을 막을 군대를 동원하라!”
마하 차크라파트는 불명예를 각오하고 일전을 벌일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허나 이러한 결정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더 이상 왕을 따를 순 없는 일 아닙니까?”
“그렇다. 이대로라면 우린 모든 것을 빼앗길 것이다.”
아유타야 왕국의 각 지역을 지배하는 지배자들, 영주들의 생각은 대동소이했다. 이대로 바인나웅에게 저항한다면 남을 것이 없었다.
바인나웅이 예상대로 병력을 집결한 쪽으로 들어왔다면 전쟁을 통해 피해를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북부로 우회해 들어오면서 완전히 허를 찔린 상황이었다.
패배가 보이는 상황.
지역의 지배자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충성 혹은 배신.
마음은 점점 배신으로 기울었다. 마하 차크라파트의 지도력으로는 바인나웅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 바인나웅에게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다. 우린 안남으로 사람을 보낸다.”
“안남이요? 설마?”
“그래, 차라리 대국의 영주가 되는 것이 더 낫다. 너도 알지 않느냐? 안남이 얼마나 잘살게 되었는지.”
신국에 복속한 안남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안남의 모든 사람들은 신국에 복속한 막복원의 선택을 칭송하기에 바빴다. 안남에서 막복원의 인기는 신유성 다음이었다.
최근에는 막복원의 뒤를 이은 막무습이 인기였다.
안남은 살기 좋았다. 영주인 막무습을 따르기 시작한 가신들은 모두 만족하고 있었다. 영지는 발전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더구나 자신들은 신유성이란 위대한 군주를 모신 신하들이었다.
다른 사람을 모시라고 했다면 자존심 상할 일이었으나 신유성의 업적이 너무나 어마어마하다보니 경쟁심이 생기지도 않았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저런 회사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도 쏠쏠했다.
신유성 찬양이 더더욱 심해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발전을 지켜보는 옆나라 사람들의 기분은? 그냥 부러울 뿐이었다.
아유타야 왕국에 속해 있던 권력자들은 내심 이를 부러워했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신국에 복속하지는 않았다. 자칫하다가 왕이 알게 되면 반역으로 모가지가 날아가니까.
그런데 아주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바인나웅으로 인해 왕국이 흔들리는 순간, 왕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제게 맡겨주십시오. 잽싸게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빨리 가거라.”
아직 바인나웅에게 휩쓸리지 않은 지역의 지배자들은 서둘러 안남으로 사신을 보냈다.
안남의 막무습은 행복했다.
드디어 영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었다. 막복원의 선택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신국의 영주가 됨으로써 대월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막씨 왕조는 끝이 났다고 하지만 막씨의 안남 지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막복원은 자리에서 물러나 남은여생을 즐기겠다며 향락을 즐기고 있었다. 이 또한 좋은 일이었다.
막무습은 권력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야심차게 회사들을 만들었다.
‘언젠가 폐하께서 돌아보실 수 있게!’
더 넓은 영지를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신유성의 해외 원정에 따라가는 것이 유일한 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영지를 더욱 발전시켜야 했다. 건설회사는 필수였다. 염전을 더욱 늘리고 조선소를 늘려 어선도 많이 만들어야 했다.
지금도 많았지만 더 늘릴 생각으로 가득했다.
‘언제까지 북부 원정만을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그러니 해상 원정에 대비해야 한다.’
항해술이 뛰어난 인원을 많이 키워야 해상 원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막무습은 해상 운송업을 하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거친 성격을 가진 이들을 설득해 사략 해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영지가 발전할수록 막무습은 즐거웠다. 정말 할 수 있는 게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영주님, 사신이 왔습니다.”
“어디서?”
“아유타야 쪽입니다. 아마도 전쟁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어서 보자.”
막무습은 살짝 가슴이 두근거렸다.
‘또 무슨 좋은 일이 생기는 거냐?’
심장 박동과 함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신국에 복속하고자 하니 받아주십시오. 이대로라면 바인나웅에게 사람들이 학살당할 겁니다.”
사신은 바인나웅을 잔혹한 정복자로 묘사했다. 사실이건 아니건 상관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명분으로 삼기에는 더 좋기 때문이다.
“그런가? 그렇다면 일단 내가 호위할 병력을 보내겠다. 그러나 폐하의 재가가 떨어지기 전에는 신국의 영주가 된 것이 아니니 말을 아껴야 한다.”
“감사합니다!”
사신은 하나가 아니었다. 앞뒤를 다투며 하나씩 도착했다. 막무습은 이러한 경우에는 일단 군대를 보내 방어에 치중하라는 명령을 떠올렸다. 다른 국가와 국경을 맞댄 영주로 있는 경우에는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때, 영주에게 자치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타국과의 전쟁 문제는 신유성의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멀고 먼 곳에 있는 신유성에게 말을 하고 결정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그래서 신유성은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 미리 지시를 내려두었던 것이었다.
타국의 영주가 복속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를 요청하면 일단 군대를 보내 보호만 하라는 것이었다.
이후 외교적인 일은 신유성이 알아서 하게 되는 것이었다.
먼저 군대를 보내 보호만 하라는 것. 이는 쉽게 말하면 침 발라놓는 행위였다.
먹기는 먹을 거지만 조금 있다가 먹을 거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
막무습은 서둘러 용병들을 일단 보내놓았다.
수비할 수 있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명분이 중요했다.
아유타야 왕국의 사정이 묘하게 돌아가는 순간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수컷들이 있었다.
바로 김백구의 후손들이었다.
풍산개의 혈통을 이은 김백구의 후손들은 늑대보다 강했다. 늑대 무리들은 김백구의 후손들에게 하나둘 복종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암컷 늑대들은 김백구의 후손들과 짝짓기에 들어갔다.
개와 늑대의 혼혈이 가능했다. 얼마 안 가 암컷 늑대들은 김백구의 후손들의 자식을 잉태했다.
함경도 풍산개의 혈통이 아메리카에 마구 퍼지고 있었다.
겨울이라 할 일이 없어진 탐험대는 개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인근의 늑대들은 모조리 김가의 부하가 되었다.
“어휴, 저 녀석들 봐.”
“신났네.”
풍산개들은 사냥도 잘했다. 맹수와 싸움도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충성심 또한 뛰어나서 탐험대를 지켜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덕분에 늑대들의 습격을 걱정할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늑대들이 풍산개를 따르기 시작하면서 사람을 습격하는 일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탐험대를 습격하려한 늑대는 살아있는 것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탐험대에 의해 키워진 풍산개들은 탐험대를 가족처럼 생각했다.
아메리카로 넘어오며 생고기를 많이 먹어 야생성이 많이 살아나긴 했지만 탐험대에 대한 기억마저 완전히 흐려진 것은 아니었다.
탐험대는 여전히 맛있는 고기를 주는 가족이었다.
풍산개와 늑대들의 혼혈로 태어난 새끼들은 귀여웠다. 탐험대는 새끼들의 어미에게 고기를 주었다. 그러자 어미들은 이를 받아먹었다. 탐험대의 접근을 허락했다.
덕분에 탐험대는 새끼들과 잠시 놀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사람들은 어때?”
“틀링기트족?”
“그래.”
탐험대는 알라스카를 거쳐 계속 해안에 항구를 만들며 전진했다. 그리고 틀링기트족이 사는 영역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긴장되는 일이기도 했다. 절대 얕보여선 안 된다. 얕보이면 우습게 보고 덤비는 일이 벌어지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거칠게 굴면 그건 그것대로 적대적으로 변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부족의 성향이나 만날 당시 상황에 따라 분위기는 항상 달라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탐험대는 항상 사람을 만날 때 조심해야 했다.
“별 일 없겠지. 공구 주니까 좋아하면서 돌아갔잖아.”
“좋아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빼앗으려 들면 또 피봐야 하잖아.”
“왜? 싸우기 싫어? 그럼 빠지던가.”
“누가 싫데? 그냥 불쌍해서 그러지.”
탐험대 남자 하나는 늑대의 등 위에 올라탄 김백구의 후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냥 뭐에 죽는지도 모르고 죽는 사람들 보면 안쓰럽긴 해.”
얘기를 하던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고기 조각을 던져주었다. 그러자 근처를 맴돌던 늑대들이 모여들었다. 고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몇몇 늑대는 다가와 배를 보여주며 애교를 부렸다. 굴복한 늑대들에게 고기가 좀 더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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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