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신의 유희-153화 (15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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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1563년이 시작되었다. 시작과 함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들.

“허락한다. 안남의 영주에게 아유타야를 돕도록 한다.”

복속을 하겠다는 청은 무조건 받아들였다. 또한 아유타야 왕국에서 복속하길 원하는 자들은 모두 영주로 인정해주었다. 물론 이들이 군사적으로 도움을 받게 된다면 안남의 영중에게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신유성은 흐뭇하게 웃었다.

‘이거 횡재했네.’

바인나웅 덕분에 아유타야 일부가 굴러들어왔다. 물론 무조건 좋아만 할 수 없었다.

‘이제 승질 내겠지?’

왜 아니겠는가? 성질 날 것이다. 밥을 했는데 딴 사람이 먹은 격이니까.

만약을 대비해야만 했다. 하지만 아직은 대량으로 군대를 일으킬 때가 아니었다.

‘조금 더 참자. 조금만 더.’

원정대를 만들고자 하면 할 순 있었다. 하지만 한참 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였다. 이런 때에 원정대를 다시 꾸리면 많은 인력이 빠져나가게 된다. 이는 발전 속도를 느리게 한다.

때문에 신유성은 할 수 있다면 분쟁지역 근처의 영주들의 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도 버티기라도 하려는 것이었다.

시간을 조금만 더 끌면 엄청나게 발전할 테니까.

공장이 계속 생기면 실직자가 대량으로 생긴다. 인간의 힘으로 하던 일을 기계가 대체하니까. 이렇게 잉여 노동력이 된 남자들이 많아지면 군대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퍼펙트지만.......’

하지만 공장들이 생기고 발전하면 기술 인력이 된 이들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또 마련한다. 이런 이들을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신유성은 갈등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싸우고자 하는 영주들도 많고.’

신유성은 2차 원정대를 만들 생각을 일단 뒤로 미뤘다.

중요한 결정을 내린 뒤, 강렬한 허기를 느낀 신유성은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최근에는 요리에 취미를 붙였다. 재료가 풍부해지니 이것저것 실험해볼 수 있었다.

“요리는 역사이며 과학이다.”

문화를 계승하며 역사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요리는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원형만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 끝에 새로운 요리가 되기도 한다. 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연구하기도 하지만 먹을 것이 없어서 어떻게 해서든 먹어보려고 하다가 식용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어쨌거나 신유성은 자신의 생각을 의조를 불러다놓고 횡설수설했다.

이지함은 곁에서 들으며 자꾸 뭔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드디어 기행의 시작이구나. 이번에는 요리인가?’

결연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신유성이 가끔 맛이 갈 때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판단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독수공방의 문제로 알려진 것이기에 이것을 두고 흠이니 뭐니 떠드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기회로 여기며 신유성의 주변에 미녀들을 포진시키기도 했다.

어쨌거나 신유성의 기행은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가끔 하는 말이 이치에 맞지 않고 좀 모자랄 뿐이지 결과물 자체는 훌륭했다. 그렇기에 기행 자체를 욕할 수도 없었다. 명나라의 가정제처럼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라면 몰라도 신유성은 국정 운영에 있어서 큰 문제를 만들지 않았다. 문제가 없었으니 욕을 할 수도 없다.

물론 문제가 있다고 욕해도 무사하긴 힘들지만.

버터 설탕 계란 밀가루 그리고 이것저것을 이용해 신유성은 쿠키를 만들었다. 신유성이 만들어낸 쿠키는 매우 달짝지근했다.

언제나 무엇이든 먼저 맛보는 궁녀는 한 입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맛있지?”

“예, 폐하.”

“그래, 이건 차하고 먹으면 더 맛있지.”

신유성은 자신이 만든 쿠키를 먹고는 또 다른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기름을 사용하던 요리에 버터를 사용했다.

버터 볶음밥, 버터 볶음면, 버터차 등등.

버터로 만든 요리는 풍미가 달랐다. 신유성은 실컷 먹고서는 배를 두드렸다.

“아, 잘 먹었다.”

“참으로 깊이가 다른 음식입니다.”

“그렇다. 그리고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쁘기도 하지.”

“네?”

‘뭐라굽쇼?’ 하는 이지함의 표정이 보였다.

“기름은 차가우면 굳지 않나? 사람의 혈행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거지.”

“앞으로 금지입니다.”

“그럼 고기도 금지인가? 고기에도 기름이 있지 않나?”

“다 발라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콩은? 무침은? 기름기가 너무 없는 음식도 몸에 좋을 것 없지 않나? 뭐든지 적당해야 하는 법이다.”

“으으으음!”

이지함은 버터를 노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드셔야 합니다.”

“알았다. 조금만 먹도록 하지.”

이후 의조로 돌아간 이지함은 의원들을 모아놓고 외쳤다.

“지금부터 요리에 대한 연구를 한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요리가 사람의 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알아야 한다.”

신유성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자 의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졌다. 일리가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은 부유한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리고 최근에는 사정이 좋아진 이들이 기름진 음식을 많이 찾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몸에 이상이 생길 위험이 클지도 모른다.”

“그럼 그들에게서 비슷한 증상이 나온다면 확인해봐야겠군요.”

“앞으로 이런 점을 중심으로 자료를 정리하도록 한다. 또한 동물을 통해 실험도 하고!”

의원들이 물러나자 이지함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시는 분이라니까.’

신유성을 떠올린 이지함은 어디 들어온 산삼은 없나 살펴보았다. 신유성이 오래오래 살길 바라는 마음은 백성들이나 이지함이나 똑같았다.

어쨌거나 이렇게 의조에서는 요리에 대한 연구도 시작하게 되었다.

신유성이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는 것에 비해 전선의 병사들은 힘겨운 나날을 보내야했다.

특히 북방 원정을 떠난 원정대는 원활한 보급에도 불구하고 고생해야만 했다. 겨울이 춥기 때문이었다.

“아, 이놈의 눈.”

요새 안에서 눈을 치우며 병사들은 투덜거렸다. 눈을 치워두지 않으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대응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놈들 거점을 겨우 찾았는데. 아, 지랄 맞은 놈들.”

정찰대가 코사크의 거점을 찾기는 했다. 하지만 코사크는 발각된 것을 깨닫고 이동해버렸다. 그래서 추적을 했었으나 갑자기 대량의 눈이 쏟아졌다. 그리고 모든 작전은 중단되었고 눈을 퍼내는 일만 계속 했다.

눈이 오니 정찰이고 뭐고 다 소용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적의 뒤를 쫓으려고 해도 눈 때문에 흔적이 다 지워졌으니 모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에이! 지랄 맞은 눈구름!”

누군가 하늘에 대고 욕설을 하자 눈을 치우던 병사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욕하기 시작했다.

“시끄러워! 떠들 힘 있으면 눈이나 치워!”

“지랄 맞은 눈! 개 같은 눈!”

욕으로 구호를 통일 시킨 병사들은 계속 욕을 내뱉으며 눈을 치웠다.

멀리서 이정은 이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옆에서 원균이 뭐라고 하려는 것이 보이자 말렸다.

“그냥 내버려둬라.”

병사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적을 분쇄할 기회가 왔는데 아깝게 놓쳤으니 분할만도 했다.

막사로 돌아온 이정은 럼주를 한모금 마셨다. 화끈한 느낌이 목을 타고 내려가 배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후우.”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좀 가시는 느낌에 손바닥을 비비고는 먹을 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편지를 썼다.

‘이곳은 매우 춥다. 눈이 오면 모든 것이 뒤덮인다. 마치 전혀 다른 세상이 된 풍경이다. 눈 아래 버려져 있을 부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봄이 되어 그들을 만난다면 알아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편지라고는 하지만 단순한 편지는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느낀 고통이 적혀있었다. 만약 당장 죽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미리 알려두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하염없이 편지에 적었다.

편지를 다 적자 이정은 보내야할지 갈등했다.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찢어버리자니 망설여졌다.

결국 이정은 편지를 가방에 넣어두었다.

눈이 오다 안 오다 반복하며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혹독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척계광이 보낸 예비대는 결국 요새 건설에 성공했다. 모스크바 차르국이 차지하려던 지역은 쿠춤의 손에 들어온 것이었다.

척계광은 새로운 요새에 포병을 두었고 쿠춤은 포병이 될 병력을 지원했다. 포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 알기에 애원하다시피 했다. 그렇게 포병 훈련이 새로운 요새에서 계속되며 모스크바 차르국은 한발도 전진하지 못하고 막혀있었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로가 받는 압박은 상상을 초월했다.

“빌어먹을.”

이제 대놓고 알렉산드로를 욕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아무도 알렉산드로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곧 있으면 실각할 거란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충성의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인가?’

알렉산드로는 허무했다.

이반 4세에게 충성하며 전쟁에 임했으며 승리를 바쳤다. 전쟁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 전진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완전한 패배라고 할 수 없건만 이반 4세는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이반 4세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막대한 자원을 소모하고도 결과를 내지 못했으니 무능해 보인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러나 권력을 박탈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다녔다. 조금이라도 아끼는 마음이 있었다면 이럴 순 없었다.

‘반기를 들면 안 된다.’

반기를 드는 순간 끝이었다. 이반 4세는 신하의 항의를 받고도 가만히 있을 군주는 아니었다. 잔혹한 숙청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알렉산드로는 어쩌면 자신을 갈아치우기 위해 이반 4세가 수를 쓰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의심은 더더욱 깊어졌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알렉산드로의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이대로 간다면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얼마 후, 척계광은 한 명의 포로를 잡을 수 있었다.

허나, 포로는 단순한 포로가 아니었다.

포로로 가장한 밀사였다.

“이걸 전하려고 왔다고? 내용은 아나?”

“중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용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온갖 주어가 다 빠져있었으나 결국 얘기하는 바는 하나였다. 적장인 알렉산드로가 항복할 테니 살려줄 수 있겠느냐는 소리였다.

‘뭐야 이건? 속임수인가?’

가끔 있다. 항복하는 척하면서 뒤통수 때리는 작전이.

척계광의 입장에선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걸 전해라.”

그래서 진심을 알기 위해 하나를 요구했다.

북부의 알비강 유역을 휘젓는 코사크에게 지정한 곳에 전력을 투입해 점령할 것을 요구하는 명령을 내리라고.

‘코사크만 치워버려도 병력에 여유가 생긴다.’

이정을 비롯한 많은 부대가 코사크 때문에 묶여서 제대로 싸우질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때문에 모스크바 차르국이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척계광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알렉산드로는 편지를 받고 바로 명령을 내렸다. 마음은 이미 굳힌 상황이었다.

“가족을 모두 전선으로 부른다. 이제 실패한다면 모두 적과 싸우다 죽는 것이다.”

교묘하게 위장을 하며 알렉산드로는 가족을 전선으로 불러들이려 했다. 예르마크에게는 총 공격 명령을 내린 뒤였다.

허나, 이런 알렉산드로의 행동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당연히 존재했다. 이반 4세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가족들을 잡아라. 그리고 알렉산드로에게 소환 명령을 내려라.”

하지만 이반 4세는 알렉산드로의 가족을 잡을 수 없었다. 알렉산드로가 일을 벌이기도 전에 이미 이야기를 해놓은 탓이었다.

이미 영지를 떠난 알렉산드로의 가족은 전선에 거의 도착했다. 그리고 소환 명령서를 가진 전령은 뒤늦게 모스크바에서 출발했다.

알렉산드로의 작전을 막기에는 너무나 늦었다.

“뭐야? 왜 이런 명령을?”

“우리보고 죽으라는 건가?”

“이건 미친 짓이야!”

예르마크의 부하들은 저마다 고개를 저었다. 새로 내려온 명령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대장! 이대로 할 건가?”

“맞아! 이건 너무 무모해! 알렉산드로 자식 우릴 다 죽일 셈이야!”

“그 놈 소문도 안 좋다고! 자기 실패를 덮으려고 우릴 이용하려는 게 분명해!”

코사크는 알렉산드로가 자신의 실패를 덮기 위해 내린 작전이라고 생각했다. 예르마크도 이에 동의했다.

‘우리가 점령에 실패하면 전부 약해빠진 코사크 탓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큰 문제였다. 만약 명령에 불복한다면 모스크바 차르국의 군대보다는 도적 무리로 계속 취급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지 않아도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데 명령 불복종을 한다면 더 심해질 수 있었다.

“받아들인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

“대장!”

“우린 명령에 따라야 한다. 하지만 적당히 싸우는 척만 하고 후퇴한다. 이딴 작전 때문에 죽는다면 가족을 누가 지키나?”

예르마크는 결정을 내렸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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