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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냐 대륙이냐
‘덥다.’
원정대 문제를 생각한 것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휴식이 필요해.’
놀고 있지만 더욱 격렬하게 놀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한 신유성이었다.
“미끄럼틀은 어찌 되었는가?”
“거의 완성했습니다.”
3일 후, 신유성이 주문한 미끄럼틀은 완성되었다. 거대한 창고를 짓고 안에는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수영장이 만들어졌다. 한쪽에는 돌로 만든 커다란 미끄럼틀이 있었다.
미끄럼틀에서는 물이 계속 흘렀다. 증기기관을 이용해 물을 계속 퍼올리는 것이었다.
“시험은 해보았나?”
“안전합니다.”
미끄럼틀의 양 옆에는 안전망이 쳐져 있었다. 행여나 튕겨나갈 일을 우려한 것.
“그럼 가겠노라!”
미끄럼을 타니 신나게 미끄러지며 물이 튀었다. 아주 잠깐의 질주 후에 물에 풍덩 빠졌다.
“어! 시원하다!”
물 밖으로 나온 신유성은 다시 미끄럼을 탔다. 허나, 미끄럼틀을 타고 놀 나이는 한참 전에 지났기 때문에 관심은 금방 식었다. 몇 번 타고 몸이 시원해지니 금방 질린 것.
‘애들하고 같이 타야 재미있을 텐데.’
물놀이는 사랑하는 애인과 할 때 가장 즐거웠다. 아직은 자식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신유성은 일단 여자들과 노는 것을 떠올렸으나 이내 지워버렸다.
‘나중에 애들하고 놀아야지.’
아직 미끄럼틀을 타려면 좀 더 커야만 했다. 신유성은 그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나저나 냉장고가 있었으면.’
무더운 여름. 냉장고 생각이 간절해지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 시원한 탄산수, 시원한 얼음, 시원한 수박.’
기억 속의 냉장고를 떠올리자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했다. 가질 수 없는 것들이라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에라이!”
답답한 마음에 신유성은 다시 물에 몸을 던졌다.
신유성의 결정은 곧 신문에도 실렸다. 또 다른 원정이 임박했다는 사실에 신국의 백성들은 우려하면서도 자랑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원정을 가도 괜찮은 건가?”
“왜?”
“전쟁을 많이 하면 사정이 나빠질 수 있지 않나?”
“어이구. 우리 회사에서 파는 생선이 전부 군에 납품되는데 무슨 소릴.”
신기하게도 신국의 경제에는 큰 타격이 없는 소식이었다. 오히려 기사가 나간 뒤에 경제는 더욱 호황을 맞이했다.
수많은 영주들이 탐험대를 만들 것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선박은 물론 각종 물품 주문이 공장에 쇄도했다.
당연히 탐험 관련 물품은 가격이 올라갔다. 그리고 아메리카로 떠났던 북해도의 아이누 일부는 돈 방석에 앉았다.
탐험을 하면서 필요한 물품들을 만들어 섰다. 이러한 것들도 특허로 등록되었다. 주문이 쇄도하니 특허권자가 돈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대박 소식은 다시 신문에 실리고 수많은 상인들과 장인들이 신상품을 개발할 의지를 갖게 했다.
인기를 끌지 못하면 투자금과 시간만 날리는 일이 되지만 성공하게 되면 얻게 될 달콤한 보상 때문에 결국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신유성의 의도이기도 했다. 신문에 꾸준히 특허를 내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도록 한 것이었다. 실패 사례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실패 사례를 전해서 실패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신국의 경제는 살아나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면 결국 국가의 주인인 황제, 신유성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하지 않나? 폐하의 지혜는 정말 끝을 알 수가 없어.”
“하늘이 내리신 분이니까 그렇지.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늘의 뜻을 다 알겠나?”
“맞아.”
우려는 없었다. 원정대 모집을 한다면 지원할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신립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어찌해야 하는가?’
신립의 집안은 운이 좋아 노비가 되는 것은 면했다. 이후 조용히 지내면서 사태 파악에 주력했다. 금방이라도 망할 것 같던 신국은 망하지 않고 계속 승승장구했다.
매번 보는 신문의 내용은 믿기 힘든 내용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거짓말 같았다. 그러나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신국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었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립은 신국의 발전을 보면서 자랐다.
‘군에 들어갈까?’
약관도 되지 않은 신립은 공을 세우는 장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요즘처럼 계속 정복 얘기가 나오니 들뜨는 것도 있었다. 어머니의 가문인 파평 윤씨가 몰락한 것에 대한 원한은 뒤로 했다.
원한을 품으면 행실에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신립의 아버지 신화국은 누누이 원한을 버릴 것을 아들들에게 강조했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이야기겠지만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선 꼭 잊어야만 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원한을 품었다고 알려지게 되면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먼 친척 중에는 과거 명나라였던 중원의 총영주가 된 이이가 있었다.
신립의 아버지 신화국이 바로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의 8촌 동생이었다.
남이라면 남이지만 핏줄이 이어진 친척이라고 하면 친척이었다.
때문에 신립은 원한보다는 신국을 받아들이라고 배우며 자라게 되었다.
신국이 되고 신립은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이 문보다는 무에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흥미도 그쪽에 더 쏠렸다. 장군이 되고 싶기도 했고 먼 친척인 이이처럼 총영주나 영주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한 상점에서 신문을 읽고 돌아온 신립은 신화국을 찾았다.
“아버지, 소자 군문에 들고 싶습니다.”
“무관이 되겠다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네 뜻이 그렇다면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무관이 되는 것이 더 이상 쉬운 일은 아니다.”
한반도에서 무관이 되는 것은 이제 매우 어려워졌다. 1차 원정군을 모집한 이후로 지원자가 넘쳐나니 경쟁률이 높아졌다. 힘 좀 쓴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지원하기 때문이었다.
무관의 자질을 평가할 때 먼저 충성심을 확인하고 그 다음이 힘이었다. 무술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평가하지도 않았다. 이후 교육이 시작되면 모든 교육을 통과한 사람이 무관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교육 과정을 수료해도 빈자리가 없으면 무관이 되질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지번은 무분별하게 사람을 늘리지 않았다. 사람을 채용하고 그대로 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금 낭비를 극도로 경계하는 사람이 바로 이지번이었다.
“차라리 탐험대나 용병에 지원해서 공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면 좀 더 쉽지 않겠습니까?”
실제로도 그랬다. 교육을 수료한 이들 중에는 대기를 참지 못하고 용병이 된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경험을 쌓다가 실력이 알려지면 우선순위로 무관이 되는 일이 꽤 많았다.
“그래, 네 뜻대로 해라.”
다음 날, 신립은 바로 무관 교육을 받기 위해 신청했다. 한반도를 비롯해 신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신립은 육군학교에 입교했다. 탐험대에 지원한다면 바로 갈 수도 있었으나 일단 교육을 받고 가는 편이 후일 더 유리하기 때문에 미리 교육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기숙사 방에 도착하니 책상 앞에 앉아있던 소년이 고개만 돌려 인사했다.
“반갑다.”
무관을 키우는 학교는 모두 기숙사 제도였다. 시험과 면접을 통과하면 입학이었다. 모든 것은 무료였다. 입학만 하면 몸과 신분패만 가지고 학교에 가면 졸업할 때까지 먹고 살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은 학교에서 지급하고 해결해주었다. 이 때문에 불행하게 부모를 잃은 이들이 지원하기도 했다. 일자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국 분위기가 군인을 우대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성공과 명예를 얻기 위해 지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한 번이라도 원정군에 소속된다면 크게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기대감 때문에 무관학교의 역사가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자는 넘쳐났다.
“반갑습니다.”
신립은 눈앞의 또래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자는 여해, 이름은 이순신이었다.
“책상 위에 있는 책자를 전부 암기해라. 교칙을 어기면 벌점이 늘어난다. 벌점을 많이 먹으면 퇴학이다.”
이순신은 신입인 신립으로부터 눈을 떼고 다시 책에 몰두했다. 책은 화약 무기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
이정이 원정군에 지원한 뒤, 이순신은 바로 육군학교에 지원했다. 이정이 어떤 마음으로 원정군에 지원했는지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무관이 되고자 한 선택이었다.
신립은 묵묵히 책만 읽는 이순신을 보고 살짝 갑갑함을 느꼈지만 이내 책상 앞에 앉아 안내책자를 읽기 시작했다.
규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벌점을 먹고 퇴학당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했으니까.
한편, 어린 소년 김시민은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학교로 뛰어갔다. 조선이 망하고 난 뒤 집안은 노비로 추락했었으나 이지번의 구제안 덕분에 김시민의 집안도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김시민은 항상 열심히 노력하란 이야기를 들었다.
노비가 되었어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글공부를 쉬지 않았다. 덕분에 노비에서 풀려난 뒤 학교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김시민은 학교 생활이 그래도 즐거웠다.
신국에 대한 원한을 품기에는 너무나 어렸다. 또한 김시민의 아버지 김충갑 또한 원한을 자식에게 심어주지는 않았다. 신분은 노비였지만 신국의 황제 신유성은 그래도 박대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비에서 풀려나게 해준 이지번을 어렵게 하고 싶지 않아서 원한을 접었다.
이지번이 신유성을 모신 신하라 하지만 그래도 은혜를 베푼 것은 틀림없었다. 그냥 평생 노비로 썩게 될 수 있었으나 벗어날 기회를 주었으니까.
원한과 은혜를 생각해 그냥 조용히 신국의 사람으로 살기로 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김시민은 신국에 대해 그 어떤 나쁜 생각도 품지 않고 자라났다.
“아침 주세요!”
“그래, 많이 먹어라.”
김시민은 학교 밥이 좋았다. 집에서 먹는 밥이 싫은 것은 아니나 매번 같은 음식만 나오니 어린 김시민에게는 약간 질리는 감이 있었다. 반면 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다른 음식이 나왔다. 대량으로 요리를 만들고 소비를 하다 보니 같은 음식을 계속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것은 돈이 들지 않았다. 김시민처럼 어린 아이를 가진 집에서는 밥 때문에라도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에서 해결하는 아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지번이 아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방하는 것이 최고라는 이지함의 강력한 건의로 시행된 정책이었다.
‘카레! 밥!’
김시민은 아침으로 나온 음식을 보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주 가끔 카레가 나온다. 카레가 나오면 하루 종일 카레만 나온다. 하지만 김시민은 불평하지 않았다.
‘1년 동안 계속 먹고 싶은 카레!’
1년 365일 동안 카레만 먹으라고 준다면 기꺼이 먹을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카레는 아무 때나 나오는 음식이 아니었다. 매우 귀해서 아주 가끔 나올 뿐이었다.
‘아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카레를 매일 먹어야지.’
맛있는 것을 맛보지 못했다면 그냥 모르고 살 순 있다. 하지만 한 번 맛보면 그것을 잊기란 쉽지 않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돈을 벌면 가끔 먹게 되는 맛있는 음식들을 사먹을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리고 이러한 욕망은 성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다.
무엇인가 해서 자신만의 특기로 돈을 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실컷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아이들이 가지게 되는 꿈 중 하나였다.
김시민은 매우 천천히 카레밥을 음미했다. 맛을 뼛속에 각인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 음미했다.
다른 때에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친구들과 놀았으나 오늘은 달랐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는 행복하지만 다 먹고 나면 허전했다. 그러니 최대한 천천히 먹으며 맛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즐기려는 것이었다.
사람이 아무리 먹더라도 먹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결국 먹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 최고였다. 빨리 먹으면 그만큼 짧은 시간만 즐길 수 있었으니까.
어린 김시민이 나름 머리를 굴려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그렇게 다 먹고 나자 김시민은 움직이기가 싫어졌다. 혀끝에 남아있는 카레의 맛을 계속 음미하고 싶어서였다.
“야구하자.”
그러나 훼방꾼이 나타났다. 이름은 곽재우. 김시민보다 두 살 많은 형이었다.
“방해하지 마요. 난 지금 카레의 맛을 느껴야 해요.”
“아, 사람 모자라. 일어나.”
“나중에 카레 한 입 더 주면.”
“알았다. 밥만 빼고 카레 다 줄 테니까.”
곽재우는 김시민과 입맛이 살짝 달라서 카레는 별로였다.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취향이 제각각이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합시다!”
김시민은 벌떡 일어났다.
신국에 퍼진 소식 때문에 모든 영주들이 시끄러울 때, 큐슈의 요시시게는 원정에 참가하기 위한 준비에 한창이었다.
‘드디어 원정인가?’
원정의 기회를 잡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츠로부터 받은 편지를 토대로 내정에 집중한 결과 영지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덕분에 대규모 원정군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요시시게의 재정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아직도 은행에는 돈이 남아돌고 있었다.
‘그래, 이거야. 이 맛이야.’
재정 압박을 느끼지 않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유구의 쇼겐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 동안에는 성장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엄청난 경제력을 거머쥐게 되었다.
신국의 공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이들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을까지 10만을 목표로 모병을 시작한 큐슈와 유구는 의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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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