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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57화 (157/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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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냐 대륙이냐

뜨거운 여름은 어느새 훌쩍 지나갔다. 가을이 왔다. 신국의 영주들은 가을만 기다렸다. 여름에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탐험대가 대만과 광동성의 광주에서 대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항구에 엄청난 수의 탐험선과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객잔을 운영하는 이들의 이익이 짭짤했다.

탐험대는 만약을 대비해 인근 산을 오르내리며 훈련을 하기도 했다. 사냥은 물론 덫을 놓거나 산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등 여러 가지 훈련을 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탐험대는 항해와 탐험에 관련된 지식을 그리고 용병들은 전투 기술을 서로에게 가르쳤다. 둘 다 못하는 초보들도 2배로 구르며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가자. 남쪽으로!”

가을이 시작되자 탐험대는 서둘러 떠났다. 먼저 발견하고 지도에 이름을 등록하는 쪽이 영지 개발권을 딸 수 있다는 규칙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한 번에 한정해서 신유성이 선언한 것.

영주들에게는 탐험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영지를 사냥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영지개발권을 따내면 해당 지역에 거대한 세력이 없는 이상 영주에게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것이었다.

개척한 자가 임자.

영주들과 수많은 부호들이 미치는 것도 당연했다. 중원에서도, 한반도에서도, 일본에서도, 몽골 초원에서도 영주가 되겠다며 탐험대를 보냈다.

한편, 아유타야와 따웅우 왕국과의 전쟁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안남과 말라카 양쪽에서 공격당하는 아유타야 왕국은 서서히 뒤로 밀렸다. 작정을 하고 덤볐다면 벌써 멸망시킬 수도 있었으나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천천히 전진했기 때문이었다.

빠르게 왕을 친다고 해도 어차피 흩어진 세력은 조만간 정리를 해야만 했다. 영지를 얻을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항복하지 않은 지역을 철저히 파괴하면서 전진했다.

숲에서 싸울 수 있는 병력과 대량의 화약과 대포가 만나니 무시무시한 효과가 일어났다. 척탄병들이 나서면 육중한 코끼리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었다.

더구나 아직도 사용되고 있는 신기전은 공성전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과시했다.

건물 안으로 숨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만 하늘에서 계속해서 쏟아지는 화살비를 보다보면 겁에 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전쟁이 치열해지는 와중에 출발한 유구와 큐슈의 원정대는 아유타야가 아닌 따웅우 왕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는 곳. 어지간한 산이 아니고서는 높다고 말하기도 힘든 산들이 즐비한 곳.

세계의 지붕이라고도 불리는 곳에도 사람은 살았다. 왕국은 존재했다.

카트만두 계곡은 히말라야 산맥 안에서 가장 번성한 곳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의 자식들이 권력을 놓고 다툼을 벌였고 현재는 3개의 왕국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여기에 각지의 부족이 독립해 수많은 토호국이 생긴 상태였다.

어쨌거나 현재 분열된 히말라야 산맥에 위기가 닥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큰 권력을 지닌 왕들에게 위기가 닥쳤다.

“놈들이 쳐들어오려는 건가?”

“아닙니다. 그들은 신국이란 나라에 복속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우리들과 거래를 할 필요가 없답니다.”

카트만두의 왕은 경악했다. 어째 티베트에서 상인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알고 봤더니 티베트의 세력들이 몽땅 신국 사람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신국과의 교역만으로도 큰 이득이 남으니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교역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티베트와 인도를 이어주는 중요한 교역로가 바로 카트만두 계곡이라 할 수 있었다.

힌두교와 불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기도 했다.

사람이 살기 힘든 땅이었으나 부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지리적 이점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쪽에서 갑자기 교역로를 이용하지 않게 되니 카트만두의 피해가 커졌다.

“어떻게 하면 좋겠나?”

“일단 저쪽에서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가서 사와야지요. 직접 교역을 해야 합니다.”

“그래, 그거야 나도 알아. 하지만 다른 왕국들이 가만히 있을까?”

단일 왕조였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분열된 상태에서는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통행료를 물어야 했다.

히말라야 산맥에 사는 다른 부족들이 저마다 통행료를 요구하게 되면 물건값은 뛰게 되어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이 비싸지는 것.

그래도 지금까지 유지된 이유는 티베트의 입장에서는 히말라야만 넘으면 인도 지역의 상품을 사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신국의 물건이 더 좋았으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합니다. 어쩌면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르죠.”

“선택?”

“신국이냐 무굴제국이냐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선택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게 있을까?”

권력만 날아가고 착취만 당할 수 있었다.

교역로로서의 역할을 상실하게 된 카트만두 계곡에서는 직접 생산해서 팔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결국 가난한 지역으로 남게 될 뿐이었다.

엄청나게 험한 히말라야 산맥 안에 갇힌 가난한 왕국으로 전락하는 미래가 왕과 신하들의 눈에 훤히 보였다.

“어떻게 해서든 살아봐야 한다. 차라리 우리가 직접 움직여서 교역을 하자. 다른 부족들도 모두 함께 공동으로 상행을 하자고 하면 통행료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모두 같은 길을 이용하게 될 테니까.”

“해보겠습니다.”

카트만두의 왕은 형제국이라 할 수 있는 박타푸르와 파탄을 비롯해 교역로에 있는 부족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동시에 신국과 무굴제국 중 어느 쪽에 붙는 편이 더 이득인지 파악하기 위해 사람을 보내 정보를 수집하게 했다.

‘늦어선 안 돼.’

카트만두 계곡에 가난의 구름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선택이라.’

척계광에게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계속해서 지역에 주둔하며 총영주의 역할까지 하는 것과 잠시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쉬었다가 다른 원정에 참여하는 것.

갈등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앞으로 전쟁은 그리 쉬워질 것 같지는 않았다.

‘공을 세우기에는 어렵겠지.’

또한 신유성의 요구가 하나의 시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계속 자리에 있겠다고 한다면 견제가 들어올까?’

척계광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예로부터 황제들은 의심이 많았다.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막강한 권력을 조금이라도 나눠가지려고 달라붙는 신하가 많으니까. 외척이라고 방심하고 있다가 나라를 홀라당 빼앗기기도 한다. 그렇다고 환관들을 중용하다가 환관들의 꼭두각시가 되는 일도 벌어졌다.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빼앗은 일은 무수히 많았다.

‘토사구팽이 아닌 걸 다행으로 알아야겠지.’

척계광은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였다. 신유성의 시험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혈연으로 이어졌다고, 친분이 있다고 시험이 멈추는 것은 아니었다.

서운하긴 했지만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폐하의 뜻이라면 물러나야지.’

묻는다는 것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 것. 만약 현재 주둔한 곳을 선택하게 된다면 척계광은 입지를 더욱 다질 수 있었다. 원정군 총사령관이라는 직책으로 주변에서 징병을 해 병력을 더 늘리는 일도 가능했다. 신국에 대놓고 반란은 못 일으켜도 신유성이 무시 못 할 세력을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척계광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신유성에게 반기를 드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후임을 정할 선택권을 주셨으니.’

영향력을 아주 포기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장거정을 불러오라.”

척계광과 마주한 장거정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이곳의 책임자를 정하라 하셨다. 그대의 공이 작지 않고 능력이 출중하니 추천하려고 한다. 할 생각이 있는가?”

대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말 제게 총사령관직을 주시는 겁니까?”

“아니, 총사령관과 총영주는 다르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

결국 장거정은 총영주의 자리를 선택했다. 병력을 운용하는 일에는 그리 밝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곳을 잘 부탁한다. 최전방이나 다름없는 이곳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폐하께서 그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실지 모른다는 것을 명심하고.”

척계광은 장거정의 출세욕을 알아보았다. 능력도 뛰어났다. 정치적인 식견이 뛰어났기에 주저하지 않고 장거정을 택한 것이었다.

이황을 비롯해 그와 함께하는 이들의 능력이 뛰어나긴 했으나 그래도 역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장거정이기에 그를 택한 것이었다.

한편, 알렉산드로에게는 한 번 한양에 입조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직접 만나서 충성맹세를 받겠다는 것이었다.

“의도가 과연 뭘까요? 가도 될까요?”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을 순 없다. 기왕이면 너도 같이 가자.”

“네?”

알렉산드로는 아들 피터도 함께 가길 원했다.

“함정 같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알렉산드로는 전쟁 중에 전향한 고위인사였다. 아무리 좋게 봐준다고 해도 가까이 두기에는 껄끄러울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런데 영지를 준 이후에는 알아서 살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날 이용해 차르를 흔들어 보려는 것일 터.’

알렉산드로는 신유성의 의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전향한 자신을 일부러 가까이 하며 크게 부각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 적대국인 모스크바 차르국의 권력자들에게 매혹적인 떡밥을 뿌리는 것이었다.

싸우다가 불만이 생기면 전향해도 괜찮다는 떡밥.

물론 이를 이용해 거짓 항복 같은 것으로 타격을 줄 순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신국에서도 이간질을 하는데 써먹을 수는 있었다.

전쟁은 꼭 무기만 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중의 마음을 돌아서게 해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그게 승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꼭 제가 갈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 가족 전부 가야지. 황궁을 한 번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지 않나요? 갔다 오는 데 긴 시간이 걸리는데 영지는 어떻게 합니까?”

“하하! 혹시 누가 빼앗아갈까 그런 것이냐?”

피터가 계속해서 남으려고 한 이유를 알게 되자 웃음이 나왔다.

“영지를 누가 가져가진 못한다. 폐하께서 인정한 것이니까. 어차피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더냐?”

“그건 그렇습니다.”

영지를 받긴 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영주로서의 권한과 분주히 오가는 신국의 상인들이 있다고 해도 영지가 하루 아침에 발전할 수는 없었다.

모스크바에 비하면 모든 게 부족한 영지였다.

“관리인들의 능력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편히 여행하면 된다. 이제 어찌되었든 우리가 살 나라다. 지금 둘러보는 게 가장 좋을 시기다.”

“예, 아버지.”

알렉산드로와 그의 아들 피터는 한양으로 가기 위한 여행 준비에 들어갔다.

한양.

신유성은 아이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한 아이들을 보면 신기한 기분이었다.

‘요 녀석들이 내 분신인가?’

자신의 유전자를 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신기하기만 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냥 행복에 젖어있을 순 없었다.

황궁은 평화로웠지만 신국은 또 다른 중대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꽤 빠른 속도로 정복을 해왔기 때문에 여기 저기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보상과 경제적 성장으로 어떻게든 봉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아유타야 왕국의 상황이 변했고 예상 외로 좀 더 빨리 원정대를 보내게 되었다.

평화롭게 쉴 수만은 없었다.

“아빠 이제 일하러 간다. 잘 놀고. 알았지?”

아이는 뭔 소린지 몰라 고개를 갸웃하다가 인사라는 것을 알아듣고는 손을 흔들었다.

“옳지. 똑똑하네.”

머리를 쓰다듬어준 신유성은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몇 년 동안 전쟁할 수 있지?”

“5년이 한계입니다.”

“5년. 별 탈이 없으면 정리되겠군.”

5년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아유타야는 물론 따웅우까지 정리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으로.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그렇지.”

따웅우 왕국을 멸망시키고 땅을 차지하게 되면 무굴제국과 국경을 마주하게 된다.

‘만만한 녀석은 아니야.’

무굴 제국을 이끄는 악바르는 만만한 남자가 아니었다. 악바르 또한 엄청나게 호전적이며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복 군주였다.

‘놈이 인도를 완전히 정복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정리해야 한다.’

강대국과의 전쟁은 쉽게 할 수 없었다. 명나라의 경우에는 꼼수를 이용해 꿀꺽 할 수 있었으나 무굴 제국과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리고 악바르가 가정제 같은 실수를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기대일 뿐이었다.

‘따웅우까지만 정복하면 당장 더 정복할 필요는 없다.’

신유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대부분 아메리카 대륙에 잠들어 있었다.

감자, 토마토 등등.

식량의 혁명을 가져올 작물들이 아메리카에 있었다. 또한 커피도 존재했다.

‘아, 커피.’

모닝커피가 문득 그리워졌다. 마음만 먹으면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커피지만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잠시 커피 생각을 하며 딴 생각에 빠져 있던 신유성은 고개를 흔들고는 업무에 집중했다.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광산 개발과 제철소였다.

철강은 강력한 산업 국가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뼈대와 같았다. 그렇기에 신유성은 이 분야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증기기관도 결국 철강 산업이 발전해야 빛을 본다.’

신유성은 바쁘게 일했다. 그리고 휴식 시간이 되자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아무도 뭐라고 말리지 않았다. 때가 되면 모두 그만두겠거니 할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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