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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58화 (158/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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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냐 대륙이냐

신국의 영주들의 관심이 일제히 남쪽으로 향하고 있을 때, 신유성은 한 가지 보고를 듣고는 눈을 번쩍 떴다.

‘카트만두?’

티베트에서 올라온 요청서와 보고들이었다. 자신들만의 총영주를 정해달라는 요청이 올라온 것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카트만두 계곡에 자리한 왕국들이 교역을 꾸준히 요청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카트만두. 네팔. 카트만두. 네팔.’

뭔가 번쩍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떠오르지 않았다.

‘뭐더라? 뭐였지?’

손에 든 보고를 내던지고는 지도를 노려보았다. 정확한 지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 만든 지도에는 티베트와 인도를 분리하는 거대한 산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산맥 속에 카트만두 계곡이 있었다. 신유성은 카트만두 계곡이 있는 곳을 계속 바라보며 뭔가 생각해내려 했다.

‘뭐였지? 뭐? 뭐?’

생각이 안 나니 답답했다. 결국 떠올리지 못한 신유성은 답답함을 풀고자 검을 들고 뜰로 나섰다. 그리고 검을 휘둘렀다. 가상의 적을 떠올리며 열심히 휘둘렀다.

한 동안 미친 듯이 휘두르고 나니 땀이 흘렀다.

그제야 겨우 안정을 취한 신유성은 목욕을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자 궁녀들이 조심스럽게 옷을 치워주었다. 다른 여자들이 보고 있지만 신유성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궁녀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신유성의 몸을 힐끗 훔쳐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유성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으음.”

피로가 풀리는 느낌. 상쾌함. 그리고 아직 풀지 못한 약간의 답답함.

눈을 감고 생각이 흐르는 대로 놔두었다.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긴 것처럼.

부유하던 정신은 이리저리 방황하며 여러 기억을 끄집어냈다. 검을 휘두르던 것과 전쟁의 기억 미래의 기억 등. 많은 것이 떠올랐다 지나갔다.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에 대한 것이 떠오를 때였다.

“구르카!”

신유성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신유성의 기억 속에 구르카 용병에게는 한 가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세계 최강의 용병.

구르카 용병에 관한 일화들은 상당히 유명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지금 있을까?’

구르카와 손을 잡을 기회가 왔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도 의문이 생겼다. 신유성의 기억에 구르카 용병이 유명해진 것은 영국이 인도에 진출한 이후라고 되어있었다.

‘아니야. 그 동네에서 살고 많이 싸웠으면 당연히 강할 거야.’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고산지대에서 살았잖아!’

스위스 용병도 유명하다. 그리고 스위스 또한 아주 험한 곳에 위치해 있다.

‘고산지대 사람들에겐 뭔가 있어.’

그러다 신유성은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고산지대 때문이었다.

‘무굴 제국도 만만치 않겠어.’

악바르가 엄청난 정복 군주인 이유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인도 북부를 비롯해 무굴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들 중 고산지대가 꽤 있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엄청 잘 싸우겠지.’

정면으로 싸운다면 큰 피해가 일어날 것 같았다.

‘그들이 필요하다.’

히말라야 산맥에 사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 화승총을 사용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냉병기를 잘 다루는 전사들은 가치가 있었다. 이들의 용맹으로 전투의 방향을 뒤집을 수도 있었다.

“티베트의 총영주를 정하겠다!”

신유성은 티베트의 총영주로 호조 우지야스를 임명했다.

내정과 경제 분야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허나, 신유성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진짜 최고로 무서운 자들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실론섬.

후지바야시 켄은 실론섬을 공격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바다에서 놈들을 몰아내자!”

“오우!”

페구에서 포르투갈 함대를 박살내는 것은 물론 항구 자체를 완전히 못쓰게 만든 이후, 후지바야시 켄은 함대 일부를 끌고 계속 포르투갈 함대를 추격했다.

그래서 결국 실론섬까지 오게 되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실론섬 안의 세력 간의 알력을 이용해 사이로 파고들어 요새까지 만든 상황이었다.

“박살내라!”

“오우!”

항구에서 배가 나오기도 전에 포격이 쏟아졌다. 예전이라면 배를 나포했겠지만 이제는 나포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포하는 쪽이 경제적이긴 하지만 잘못하다가는 해병 피해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전하게 배를 못 쓰게 만들고 적을 무력화 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한 켄이었다.

‘갈 길이 멀다. 이런 놈들에게 병력을 낭비할 순 없어.’

켄의 함대는 하루 종일 포격을 쏟아냈다.

며칠 후, 요새의 포격이 닿지 않는 곳에 함대는 정박했다. 그리고 일부 병력이 섬에 상륙했다.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섬에 상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무리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온통 무장을 한 병력이라 긴장했지만 무리의 수장은 적대적이지 않았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위기를 읽은 켄은 일단 대화를 시도했다.

먹을 것을 나눠먹었다. 서로의 이름을 교환했다. 그리고 적을 확인했다.

실론섬의 주민 중에 포르투갈에 악감정을 가진 이들이었던 것이었다.

‘공동의 적이라 이거지?’

함께 적을 치자는 이야기였다. 실론섬의 주민들은 포르투갈 함대가 정박한 항구를 하루만에 박살낸 신국의 힘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빨리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섬을 정복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기에 함께 싸우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좋다. 같이 싸우자!”

무기를 교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방법은 간단했다. 신국이 먼저 화약 무기로 적들의 혼을 빼놓은 뒤 실론섬 전사들이 돌격하는 것이었다.

작전 실행에 이변은 없었다.

배에서 내린 신기전으로 요새 포대의 사각지대에서 신기전을 대량으로 날렸다. 당연히 요새 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더 무서운 것은 화살이 떨어진 뒤였다.

“다 죽여!”

실론섬의 전사들은 가차 없었다. 요새 안으로 난입한 전사들은 눈에 보이는 포르투갈 사람을 모조리 도륙했다.

비명과 공포가 피와 함께 흘렀다.

실론섬의 전사들은 악귀가 되어 요새를 휩쓸었다.

전투가 끝난 뒤, 켄은 좀 더 조심스럽게 실론섬의 전사들을 맞이했다.

“대단한 전사들이었군요. 몰라봐서 미안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켄은 정중하게 의사를 표현했다. 고개까지 살짝 숙이는 모습에 전사들은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을 존중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흡족해진 것이었다.

실론섬 전사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었다. 켄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섬을 정복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이후 켄은 실론섬 주민들에게 말을 배울 병사를 몇 붙였다. 해군 총사령관이기도 하지만 신국의 정보를 다루는 정보기관을 움직이기도 하는 입장이기에 주변에는 항상 첩보에 능한 이들이 있었다. 첩보를 위해서 언어에 재능이 있는 인재 다수를 항상 데리고 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뭐 좀 알아냈나?”

“자신들을 ‘싱할라’라고 하던데요.”

“싱할라?”

“네.”

“폐하께 보고를 드려야겠군.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배우고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도록. 할 일 없어서 포르투갈인들을 공격한 것은 아닐 테니까.”

“알겠습니다.”

싱할라족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보고서는 정기 연락선을 타고 열심히 바다를 갈랐다.

한편, 악바르는 인도에 대한 공략을 하면서도 신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보고를 받고는 눈을 빛냈다.

“카트만두 계곡에서 상인들이 더 이상 오지 않고 있다고?”

“얘기로는 산맥 건너편과의 거래가 끊긴 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지도를 잠시 살펴본 악바르의 눈이 빛났다.

‘이곳을 넘으면 신국으로 가는 다른 길을 열 수 있다.’

진격로를 여러 개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특히 진격로 중 하나로 쓸 만한 카트만두 계곡을 손에 넣는다면 신국과 전쟁을 할 경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카트만두의 상황은 어떻지?”

“그야말로 이리저리 분열된 상황입니다. 아마 손을 내민다면 잡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 싸우지 않고 얻을 수 있다면 최고겠지.”

악바르는 바로 사신을 보냈다.

카트만두 왕실.

“알아봤나?”

“네, 한 마디로 우린 신국에 붙는 게 유리합니다.”

“왜 그렇지?”

왕의 질문에 보고를 하는 신하는 티베트에 가서 수집한 정보를 떠올리고는 미소 지었다.

“신국의 황제는 자치권을 인정하니까요. 영주로 들어가도 이곳의 지배권은 오롯이 전하의 것입니다. 몇 가지 제약 사항이 있긴 하지만 그리 나쁜 건 아니라고 봅니다.”

“그래? 말해보라.”

거주지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과 세금을 내는 일들은 그리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거래가 허락되며 돈을 벌 기회가 많다는 것에 솔깃했다.

“탐험대나 용병으로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장사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정에 참여하면 다른 지역의 땅을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신국은 대단히 거대한 나라입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신하는 자신이 들은 이야기들을 몽땅 풀었다. 신국의 황제가 젊으며 고귀한 혈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카트만두의 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얘기가 전부 사실이라면 놀라운 얘기군.”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사실이라면 정말 대단했다.

‘무굴의 황제보다 더 뛰어나다.’

무굴제국의 악바르 이야기는 카트만두의 왕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신유성과 나이차이도 얼마 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젊었다. 그리고 악바르 또한 엄청난 크기로 제국을 키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이 둘 사이의 평가를 갈랐다.

악바르는 티무르 제국의 피를 이었으며 황제인 후마윤의 뒤를 이었지만 신유성은 역관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시작점을 생각하면 신유성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더 큰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주들이 배신하면 금방 줄어들 나라이긴 하지만.’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카트만두의 왕 입장에서는 지배력이 약한 쪽이 더 매력적이었다.

‘무굴과 교류를 하게 된다면 그는 분명 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빼앗기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부르르 떨렸다.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이런 감정은 영주로 있으면서 자치권을 인정받고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는 신국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신국에 사신을 보낸다. 서둘러라.”

카트만두 계곡에 자리하는 왕국들은 전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소문은 곧 주변의 부족에게도 퍼졌다. 그리고 소문이 퍼지자 부족에서도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고자 신국으로 사람을 보냈다.

따웅우 왕국.

신국과 분쟁이 생겨 전쟁을 하게 된 이후 따웅우 왕국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빌어먹을!”

바인나웅은 치를 떨었다. 신국만 아니었어도 아유타야 왕국을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거푸 술을 마신 바인나웅은 화가 나서 주변 기물들을 마구 박살냈다. 허나, 아무리 기물을 박살내도 마음이 풀리진 않았다.

쌓였던 분노가 터졌다가 다시 차갑게 가라앉을 뿐. 분노 자체가 풀리지는 않았다.

힘이 빠진 바인나웅은 암울한 상황에 절망했다.

페구가 박살난 뒤로 바인나웅에게 해상 전력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신국의 사략 해적들은 해안선을 들락거리며 연일 약탈했다. 물건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까지 끌고 갔다.

또한 연이어 상륙한 쇼겐과 요시시게의 군대는 착실하게 점령하게 숨통을 조여 왔다.

요새를 만들고 요새를 중심으로 방어를 펼치며 천천히 진격해왔다.

전쟁은 점점 바인나웅에게 어렵게 흘렀다.

무엇보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신하들이 바인나웅을 배신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망국의 충신으로 남기보다 신국의 영주로 남는 것에 더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행동은 바인나웅에게 포착되었다.

‘그렇게 되게 둘 순 없지.’

바인나웅은 최근 들어 신국에 항복하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는 신하를 불렀다.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나?”

“신국에 항복하면 최소한 지금의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것을 잃을 뿐입니다.”

“아직도 생각에 변함이 없는 건가?”

“모두 대왕을 위한 것입니다.”

“시끄럽다!”

바인나웅은 충언을 올리는 신하의 목을 베었다.

“적국에 항복하는 일 따위는 없다! 차라리 대제의 밑으로 들어가겠다!”

전쟁의 흐름이 미묘하게 바뀌는 결정이 내려졌다.

바인나웅은 악바르가 다스리는 무굴 제국으로 사신을 보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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