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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61화 (16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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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흐름

변화는 끊임없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스테인리스강에 이어 결국 강철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제철소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신유성은 강철이 생산되었다는 보고에 기뻐했다.

‘더 강한 대포와 총을 만들 수 있어. 이제 시작이다.’

강철은 산업화의 뼈대라고 할 수 있었다.

강철의 대량생산이 곧 국력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더 강한 철은 더 강한 화약의 폭발을 견뎌낼 수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더 강한 화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사정거리가 더 긴 대포와 총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전력은 좀 더 상승한다. 여기에 스테인리스강은 쉽게 녹슬지 않으니 많은 곳에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기쁜 소식은 따로 있었다.

증기기관을 연구하던 장인 하나가 동력 선반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선반을 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화승총의 부품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분업을 한다고 해도 사람의 손으로 만들다보면 부품의 크기가 다를 때가 많았다. 그러다 증기기관을 보게 된 장인이 이를 이용해 똑같은 크기의 부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발명해낸 것이었다.

“좋구나!”

보고서를 읽던 신유성은 벌떡 일어나 엉덩이춤을 췄다. 동력 선반은 매우 중요했다. 정밀한 부품 생산이야말로 후장식 대포와 소총 개발에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총알을 비롯해 총의 모든 부품을 똑같은 크기로 만들지 못하면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총알만 대량 생산한다면!’

하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었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신유성은 한양의 부호들을 황궁으로 불러 연회를 열기로 했다.

‘사치를 해줘야 해.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게 해야 해.’

국정을 살피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연회는 더 중요했다.

‘영주들과 부자들의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사치해야 한다.’

신국은 욕망 위에 세워졌다. 어려서 신유성은 그림을 팔아 자본을 마련했고 북해도를 얻은 뒤에도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돈을 벌고 욕망을 자극했다.

사람들은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신유성을 신뢰하고 따르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제는 신유성의 행동을 아예 판박이처럼 따라하려는 이들도 많았다. 황제가 즐기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한 번 쯤 해보는 것이었다.

황제가 먹은 것을 먹어보고 즐겼던 놀이를 해보는 것이다. 별 다른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물론 금방 시들해질 유행이다. 허나, 신유성의 놀이는 자극적이었다.

풍류를 즐기는 것 외에 별 다른 즐거움이 없는 상류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야구였다.

야구단의 경쟁을 통해 큰 희생 없이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내기가 가능해졌다. 또한 경마도 있었다.

더 뛰어난 야구단을 가지거나 말을 소유하는 것으로도 자신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더 많은 것을 즐기고 정복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연회는 필수였다.

“숙수를 불러라.”

신유성은 다시 주방을 찾았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온갖 요리를 만들게 했다.

수많은 요리들이 연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향신료를 이용해 만든 요리들에서부터 점령지 곳곳에서 공수해온 식재료로 만든 요리들까지 다양했다.

여기에 온갖 지방의 술들까지 곁들여졌다. 또한 신유성이 기억을 더듬어 만들게 한 요리들도 있었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그저 즐겁게 먹고 마시자!”

연회 참석자들은 공손하게 답하며 움직였다. 신유성과 대화를 먼저 해보려고 모여들긴 했지만 신유성은 무시하고 요리부터 조금씩 떠오게 했다. 그리고 하나씩 맛을 보며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일단 신유성을 따라 움직였다.

많은 이들은 음식보다 신유성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먼저 식사를 하니 연회 참석자들도 어쩔 수 없었다.

“이건 내가 만들라고 한 것인데 다들 맛은 어떤가?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맞게 만들어야 하니까.”

“맛있습니다.”

“어떻게 맛있나?”

“어머니의 미소가 보였습니다.”

“그거 다행이군.”

신유성은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말을 걸며 대화를 주도했다.

“여러 땅을 정복한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만들어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상인들의 역할은 더욱 커진다. 우리가 하나로 뭉친다면 지금 즐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즐기게 될 것이다.”

“감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아랫사람들이 상상하도록 맡기면 된다. 우린 그저 그걸 즐기면 되는 거고.”

“하하하하하.”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새로운 땅들이 또 나올 것이다. 그걸 점령해서 개발한다면 신국은 더 커질 것이다. 그러면 내가 더 즐거운 연회가 되도록 하겠다.”

같이 즐겁게 놀자는 약속이었다. 신유성의 말은 연회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신유성이 직접 챙겨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참가자들은 일제히 외쳤다.

즐거운 것은 딱 4월까지였다.

모든 준비가 원활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몇 가지 소식이 신국을 강타했다. 첫 번째는 바로 뉴기니섬의 식인종 이야기.

상당히 큰 섬이라는 것은 확인되었으나 섬에 사람을 먹는 식인종이 산다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인상을 썼다.

“무척 호전적인가보군.”

“그런 모양입니다. 일부만 그런 것이라고 해도 탐험대에 계속 대화를 시도하라고 강요할 순 없는 일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지?”

“모두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식인까지 했다고 하니 사람들은 뉴기니섬의 원주민들이 지나치게 공격적이라고 생각했다.

호전적이니 평화로운 협상이나 거래 같은 것은 건너뛰고 전쟁으로 들어가자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는 원주민들이 너무나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으음.’

이대로 개척을 허락한다면 학살로 이어질 터였다.

잠시 고민하던 신유성은 피식 웃었다.

‘내가 언제부터 착했다고.’

학살이란 단어에 잠깐 주춤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피를 부르는지 깨닫고 웃어넘겼다.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일, 경제 발전은 결국 수많은 이들이 흘린 피로 이루어진 것.’

신유성은 과감하게 명령을 내렸다.

“개척을 허락한다. 단, 섬이 상당히 크니 한 영주가 모두 차지하는 것은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니다. 우선권을 가진 영주에게 어느 지역을 가질 것인지 선택하게 하도록.”

신국의 땅이 아님에도 마치 자신의 땅을 나눠주는 것처럼 떠드는 신유성이었다.

카트만두 계곡은 결국 신국의 편에 섰다. 이후 티베트를 통해 수많은 신국의 상인들과 거래를 할 수 있었다. 거래 품목은 없어도 상관없었다.

히말라야 사람들 중 상당수의 중년 전사들이 용병으로 등록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젊은 청년들도 용병이 되고자 했지만 중년 전사들이 말렸다.

“집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무굴 제국이 심상치 않으니 지킬 사람은 꼭 필요했다. 그래서 소수의 중년 전사들만이 용병이 되기로 했다.

등록은 간단했다. 전사들은 등록을 하자마자 신용으로 은행의 돈을 빌렸다.

죽으면 받게 될 사망 보상금을 미리 받기도 했다. 이들은 이것으로 신국 상인들이 파는 상품들을 샀다. 대부분이 생필품이거나 식품들이었다.

‘돈은 더 벌면 된다. 그리고 원정대에 끼게 되면 엄청나게 번다고 했다.’

전사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원정대 참여였다.

“돈을 더 벌고 싶으면 조선어를 배우는 게 좋아. 간단하게 할 줄만 알아도 일감이 몇 배로 늘어나니까.”

티베트 출신 용병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그럼 100명 베면 돈은 얼마?”

“100명씩이나 죽이면 원정군으로 가도 되겠네. 그 정도면 작전이고 뭐고 필요 없을 테니까.”

“그래?”

히말라야 산맥을 뛰어다니며 단련한 카트만두의 중년 전사는 슬쩍 웃었다.

이후 대화가 멈추지 않게 중년 전사는 조선어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다.

한편, 같은 시각.

시크교의 전사들은 히말라야 산맥 초입에 들어섰다. 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길 거부하고 적에게 붙은 자들을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전진은 쉽지 않았다.

산맥에 무단으로 들어선 순간 근처의 부족들은 시크교 전사들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시크교 전사들은 엄청나게 무서운 존재들이었지만 히말라야 산맥의 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숨을 건 전투가 시작되었다.

숫자는 시크교 전사들이 더 많았지만 싸우는 곳은 히말라야 산맥. 부족들이 조금 더 유리한 입장이었다.

익숙한 곳이기에 지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인해서 함정에 빠트리는 일도 가능했다.

전투는 치열해졌다.

쿠크리를 든 히말라야 부족의 전사들은 용맹하게 싸웠다. 병력 숫자에서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밀리지 않았다.

시크교의 전사들이 아무리 두들겨도 히말라야의 전사들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편, 악바르의 명령을 받은 라지푸트족의 전사들은 따웅우 왕국에 도착했다. 바인나웅은 이들을 환영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는 됐고 어디까지 쳐들어왔지?”

“왕국의 절반을 빼앗겼습니다.”

“나쁘지 않아. 싸우러 온 보람이 생기겠어.”

라지푸트족은 지독하게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전투는 곧바로 일어났다. 라지푸트족은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는 싸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쭉쭉 밀고 들어가던 신국의 병력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라지푸트족의 용맹함에 사기가 많이 꺾인 탓이었다. 허나 신국의 군대는 서두르지 않았다.

밀리면 밀리는 대로 최고의 방어를 선보이며 시간을 질질 끌었다. 내륙에서 치열한 전투가 자주 벌어지는 동안 해안은 완벽히 신국이 장악했다고 봐야했다.

라지푸트족이 아무리 잘 싸운다고 해도 국가 전체를 지킬 순 없었다. 적을 만나지 못하면 용맹함도 소용없었다.

사략 해적들은 철저하게 털어먹으며 문명인의 그림자를 지워나갔다.

전쟁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세상은 원래 혼란스럽다. 세계 여기저기서 온갖 일이 벌어진다.

전쟁터에서는 신유성이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연락선이 빠르다고 해서 바로 소식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화기만 들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이야기 할 수 있는 문명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와중에 한 남자는 평화롭게 야구 관람을 하고 있었다.

“타자 애송이! 타자 애송이! 집어 치워라! 엄마 젖이나 더 먹지 그러냐!”

임거정은 웃어가면서 욕을 했다. 주변에 앉아있던 노인들은 저마다 크게 웃으며 야유에 동참했다.

이제는 나이가 든 임거정은 결국 신유성의 호위를 그만두었다. 잘린 것은 아니었다. 관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으나 임거정이 사양하고 물러났다.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진 탓이었다.

신유성은 영주를 시켜준다고도 했지만 영지에는 관심이 없는 임거정이었다.

‘이 정도는 나쁜 삶은 아니었다.’

야구 경기를 보며 임거정은 말린 생선을 우물거렸다. 이어서 럼주를 입에 털어 넣고는 다시 안주를 씹었다.

음주를 하면서 보는 야구.

안주를 뜯으며 날리는 야유.

사람들의 응원. 선수들의 열기.

모든 것이 한 장소에서 이리저리 뒤섞이는 중이었다.

평화로웠다. 여유로웠다.

문득 임거정은 죽은 아내를 떠올렸다.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곧 갈 테니까. 조금만 더 즐기게 해 줘.’

눈앞이 흐려졌다. 눈물을 닦아낸 임거정은 다시 말린 생선을 씹었다.

며칠이고 야구를 즐기자 조금씩 따분해졌다.

야구를 보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긴 했다. 하지만 계속 반복되면서 임거정의 마음은 다른 자극을 찾기 시작했다.

‘여자는 됐고.’

가끔 여자를 안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임거정은 이내 유혹을 뿌리쳤다. 금방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에 자식을 만드는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 뭘 할까?’

잠시 고민하던 임거정에게는 자극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뉴기니섬 공략 때문에 많은 수의 용병들이 필요해졌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개척을 위한 원정군을 모집해야 했지만 각 지의 영주들은 숫자를 늘리기 위해 용병들도 고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식인종하고 싸우는 건 별로지만 용병일이라도 한 번 해볼까?’

신유성과 함께 전쟁을 했던 기억이 떠오르자 임거정은 흐뭇하게 웃었다. 아들뻘인 신유성과 함께 했던 시간은 임거정에는 보물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네.’

임거정은 용병으로 결국 등록하고는 일을 골랐다. 하지만 뉴기니섬 원정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전쟁터로 가는 전쟁상인의 호위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임거정이 남쪽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자 많은 용병들이 어이없어 했다. 용병치고는 너무나 늙어서였다. 허나, 이름을 듣게 되자 평가는 오히려 뒤바뀌고 모두 임거정과 친해지지 못해 안달이었다.

============================ 작품 후기 ============================

두통 때문에 다음편은 한숨 자고 나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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