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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흐름
볶음밥전문요리점.
강한 불에 볶아진 볶음만의 향기가 가득한 곳은 매우 시끄러웠다.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수입이 적은 이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신립과 이순신은 열심히 볶음밥을 먹었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일 뿐. 허기를 달래줄 뿐 아니라 즐거움까지 주는 음식은 그야말로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명약이었다.
식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신립은 차를 마시며 하고 싶던 질문을 던졌다.
“용병으로 가시는 겁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원정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데.”
이순신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무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한 이순신은 조금만 대기하면 원정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즈흐 방면으로 갔던 원정대가 순차적으로 해산하게 되면 새롭게 무관이 필요하게 된다. 많은 무관들이 그대로 남을 수 있겠지만 크게 돈을 번 이들이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거나 기존의 원정대가 돌아오게 되면 대기하고 있던 무관들이 빈자리를 채울 확률은 매우 높았다. 그런데 이순신이 갑자기 용병으로 간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원정대는 순차적으로 돌아올 거다. 난 이제 막 졸업한 신참이고. 나까지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는 몰라. 그러니 그 사이에 조금 더 경험을 쌓아두고 싶다. 용병은 계약 기간만 일하면 되니까 딱 좋지. 한 1-2년 정도 일하고 나면 내 차례가 올 거다.”
“그런 거였습니까? 난 또 돈이 급하게 필요하신 줄 알고.”
“고맙다.”
후배의 걱정에 이순신은 웃으며 밥값을 계산했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불러놓고.”
“나중에 더 비싼 걸로 얻어먹을 거니까. 돈 많이 벌어놔라.”
“네.”
이순신은 신립과 식사를 마치고 배를 타기 위해 제물포로 향했다.
제물포.
활발한 활기로 가득한 제물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갔다. 한반도의 사람들과는 차이가 확연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찾던 이순신은 자신이 탈 배를 겨우 찾았다.
‘정신없군.’
짐꾼과 각자 목적을 가진 이들의 움직임에 갈 길을 제대로 찾지 못했던 이순신은 진땀을 흘려야만 했었다. 그리고 겨우 목적지에 다다르니 또 다른 곳으로 찾아가라는 말만 들었다.
“지금 배를 탈 순 없습니다. 저기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주점이 하나 있습니다. 거기로 가서 용병대장을 찾으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이순신은 다시 길을 헤매며 주점을 찾아갔다. 주점 근처에는 드러누운 주정뱅이들과 주점의 문을 지키는 남자 하나가 보였다. 남자는 주정뱅이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지키는 남자였다.
‘대낮부터.’
절로 인상이 구겨졌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었다. 오랜 항해를 마치고 항구로 들어온 선원들이 마구 술을 마시고 뻗어버리는 일은 다반사였다.
좁은 배안에서의 생활은 힘들다. 아무리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래봐야 배에서 먹는 음식이었다. 엄청난 부자가 아닌 이상 저렴한 저장식품을 먹게 된다. 그러다보면 신선한 음식이 그리워진다.
항해는 마음을 지치게 한다. 음식과 힘든 노동도 문제지만 가장 큰 것은 바로 공포다.
바다에서 배가 표류하게 되면 그것으로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바다는 냉혹한 곳이었다.
바다에 삼켜지는 사고를 언제나 의식하며 날씨를 살피고 무사히 항해가 끝내길 기원하던 선원들에게 땅은 그야말로 최고의 안식처.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 퍼져서 낮잠을 자는 것은 안식을 위한 의식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누워있는 주정뱅이 선원들을 지나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술냄새가 확 풍겼다.
“으하하하하! 술 더 가져와!”
“마셔! 마셔! 마셔!”
광란의 도가니였다. 주점 안은 그야말로 술판. 마시고 또 마시고. 술 대결을 하는가 하면 음식을 마구 입에 쑤셔 넣기도 하고. 별 인간이 다 있었다. 한쪽에서는 술에게 패배한 패배자들을 주점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움직이는 종업원들도 있었다.
술 취해 잠든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자리만 차지하니 밖으로 치워버리고 손님을 받는 것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임에도 이순신은 내부를 살펴 종업원에게 바로 다가갔다.
“저기 저분입니다.”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풍채가 너무나 좋았다. 몸만 본다면 이십대 전사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신입인가?”
곁에 다가가기만 했는데도 노인은 이순신의 용건을 맞추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가 끝나자 이순신은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이 임거정?’
임거정의 일화는 꽤 유명했다. 황제의 호위였으니까. 특히 백의종군하면서 보여줬던 무위는 학교의 교관들이 언급할 정도로 유명했다.
“술 좋아하나?”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좋지도 않지만 싫지도 않았다. 아직 젊기 때문에 제대로 술을 즐길 기회는 적었다. 취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취함으로써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술에 대한 이순신의 평가는 어중간했다.
“즐기지 않는다면 억지로 마실 필요는 없지.”
“그래도 주시면 마실 순 있습니다.”
“그런가?”
임거정이 따라주는 술을 마신 이순신은 조용히 안주 하나를 집어먹었다. 이후 임거정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래에 둘 부하이니 어느 정도 성격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럼 무관이 되기 전에 잠깐 일하는 것이겠군. 이거 귀한 분이시구만.”
임거정이 슬쩍 놀리자 이순신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폐하의 호위셨던 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다 지난 일이야. 폐하의 은혜로 그 자리에 오른 것뿐이다.”
“네.”
“그런데 자네가 무관이 될 생각이라고 해도 편히 지낼 생각은 하지 말게나. 난 그런 거 안 봐주니까.”
“저도 편히 지낼 생각은 없습니다. 마음껏 부려주십시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임거정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며칠 후, 임거정과 이순신은 실론섬으로 향하는 배에 탔다.
한양, 황궁.
긴 여행 끝에 알렉산드로는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행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움직이고 또 움직이면서 지루함에 돌아버릴 것 같은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편히 쉬면서 움직일 순 없었다. 황제인 신유성이 얼굴 보자고 불렀는데 놀면서 갈 순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알렉산드로는 전향자로서 입지가 매우 좁은 상태. 느긋하게 움직인 사실이 소문이라도 나면 좋지 않을 수 있었다.
“참으로 놀랍습니다.”
알렉산드로는 더듬더듬 조선어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동하는 동안 조선어를 열심히 공부한 덕분이었다. 이동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말을 배울 생각에 귀향하는 무관들을 불러 말을 배운 것이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이거 놀랍군요. 통역이 필요 없으시겠습니다.”
“하하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알렉산드로를 맞이하는 관리는 흐뭇하게 웃었다. 생김새가 전혀 다른 이국적인 알렉산드로가 조선어를 열심히 배웠다는 사실이 좋게 보였다.
무관심에서 약간 호감이 생기니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알렉산드로를 박대하지 말라는 신유성의 명령이 있었다. 그러니 호의가 생겨 좀 더 챙겨주는 것은 일도 되지 않았다.
“우선 쉬시죠.”
긴 여행을 했으니 배려하는 차원에서 며칠 간 푹 쉬도록 시간이 주어졌다.
황궁에 들어선 알렉산드로는 씻은 뒤에는 식사도 거르고 침상에서 곯아떨어졌다.
푹 자고 일어난 알렉산드로는 허기를 느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마치 속마음을 읽은 것 같은 궁녀의 질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할 수 있는 건가?”
“따로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대한 맞춰드릴 것입니다.”
궁녀의 대답에 알렉산드로는 문득 스프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황궁에 왔으니 황궁 요리를 먹어봐야지.’
여행을 하면서 알렉산드로는 많은 요리를 먹어볼 수 있었다. 여러 칸국의 요리는 물론 중원 북부의 요리와 신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요리들까지 모두 먹어 보았다.
하나 같이 엄청난 맛이었다. 다채롭고 화려했다.
“그냥 알아서 차려주면 된다.”
“알겠습니다.”
알렉산드로는 금방이라도 뭔가 입에 넣고 싶은 욕망을 꾹 참았다. 엉뚱한 것으로 배를 채워 황궁 요리를 처음 먹어보는 감동을 줄어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시간이 좀 지나자 식사가 준비되었다.
알렉산드로는 물론 가족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기다리자 가장 먼저 전채가 나왔다.
바삭하게 구워진 비스킷 위에 여러 가지 재료가 간단하게 올라간 것들로 모두 한 입에 넣을 수 있는 크기였다.
양은 무척이나 적었다.
허나 입에 들어간 순간 비스킷이 사르르 부러지며 위에 올라간 재료들과 뒤섞였다. 침샘을 자극 당하니 허기가 더욱 강렬해졌다.
이어서 요리들이 하나씩 나왔다. 스프에 이어 나온 것은 슈니첼과 카레였다.
바삭한 슈니첼은 그것만으로도 맛이 있었다. 그러나 카레에 찍어먹는 순간 신세계가 보였다.
“으음! 이런 맛이!”
강렬한 향신료와 뒤섞인 슈니첼 조각은 알렉산드로가 처음 경험하는 맛이었다. 향신료 자체를 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향신료를 이용한 요리는 그리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다.
때문에 카레와 같은 요리는 구경조차 해보지도 못했었다.
“허어! 이것이 뭔가?”
“카레라고 합니다.”
말라카에서 가져온 향신료로 만들어진 카레라는 말에 알렉산드로는 아연해졌다.
‘대체 신국은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타국의 식재료를 사와서 귀족들이 맛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향신료에 대한 것은 알렉산드로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직접 맛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는 굉장히 구경하기 힘든 것이었다.
향신료를 다른 나라에서 사왔다고 했다면 크게 충격을 받을 일은 없었다.
“정말 신국의 땅에서 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어마어마하군.’
다시 생각해봐도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카자흐에서 육로로 움직였을 때 신국의 땅만을 거쳤다. 그 모든 것이 신국의 땅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사람은 별로 없더라도 어마어마한 땅 크기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중원을 지날 때는 발전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그리고 요동을 거쳐 한반도까지 왔다. 여기까지만 해도 엄청난 크기의 대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향신료가 나오는 곳까지 영토라고 하니 질릴 뿐이었다.
‘내 선택은 옳았다.’
슈니첼을 다시 한 번 카레에 찍어 먹었다. 색다른 충격이 다시 혀를 자극했다. 바삭함 속에 스며있는 카레맛이 씹을수록 입안에 가득 퍼지며 미각을 자극했다.
감동을 느꼈다. 이제 자신의 영지에서도 이런 것을 쉽게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전향을 선택했던 일이 신의 한수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수행원들과 함께 황궁을 벗어났다. 황궁 밖 세상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가장 먼저 안내된 곳은 바로 한양 야구장이었다.
처음 보는 생소한 놀이였으나 야구가 무엇인지 알게 되자 흥미를 조금 생기긴 했다. 황제가 알려준 놀이라고 하니 흥미가 안 생길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응원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응원이 어우러지자 뭔가 거대한 집단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향한 곳은 바로 신유성을 위해 만들어진 백화점이었다. 백화점에 들어선 알렉산드로는 신국의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신국에서 생산되는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구경하지도 못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고급스러워 보였다.
‘식칼까지 고급스럽구나. 은으로 만든 건가?’
수행원에게 물어보자 은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알렉산드로는 더욱 감탄했다.
향신료에서부터 모피들 그리고 보석 공예품까지, 모든 것이 모스크바에 비해 낫다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바로 이에야스의 고급회관이었다.
이에야스의 고급회관에서는 부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당구를 처음 쳐 본 알렉산드로는 한양에서 사는 게 더 즐겁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렉산드로가 원한다면 한양에서 사는 것도 가능했다.
‘피터에게 영지를 맡기고 여기서 살까?’
하지만 영지의 수입이 없으면 한양에서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어려웠다. 무엇이든 형편에 맞게 즐겨야 하는 법. 알렉산드로는 욕망을 살짝 억누르고는 다시 황궁 안에 마련된 숙소로 돌아갔다.
며칠 후.
“어땠는가? 마음에 드나?”
신유성과 마주한 알렉산드로는 감동한 표정으로 답했다.
“소신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운 건 나다. 그대가 전향을 했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신유성은 배신자라며 알렉산드로를 기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면박을 주지도 않았다. 마주 앉아 함께 식사를 하게 된 알렉산드로는 그저 감격할 뿐이었다. 더구나 자리에는 알렉산드로의 아들 피터도 함께였다. 여자들의 경우에는 주녹정이 따로 대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이 정도로 해주다니.’
온 가족을 환대해주는 대접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차르국에 대해서 좀 더 말해줄 수 있나? 차르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순간 알렉산드로는 갈등했다. 옛 주군을 욕하는 것은 안 좋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화시키자니 그러긴 또 싫었다.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신유성은 웃었다.
“딱히 그대를 평가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폭군이라면 그 밑에 자네와 같은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것뿐이니 너무 괘념치 마라.”
안심한 알렉산드로는 미주알고주알 이반 4세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자 신유성은 은근히 부탁했다.
“그들을 몰래 회유할 수 있겠는가?”
알렉산드로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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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