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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흐름
신유성은 알렉산드로에게 신경을 썼다. 배신자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시 배신할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개의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모스크바의 권력자인 이반 4세와 그 신하들을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모스크바에 인맥이 없기 때문에 이간책을 쓰려면 알렉산드로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자신이 쓸모 있다고 여겨지면 배신하지 않겠지. 그리고 야망이 있다면 세력을 만들려고 하겠지. 아니라면 조용히 주어진 일만 하고. 어찌 되었든 지금은 필요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로를 견제하려는 다른 영주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벌써부터 이에야스는 알렉산드로와 친분을 쌓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친분을 쌓는 것이 꼭 사이좋게 지내자고 쌓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 친한 척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약점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이에야스 외에도 북해도에서 건너온 신페이도 무척이나 알렉산드로를 챙겨주고 있었다.
만약 두 사람이 어떤 조직을 거느렸는지 알고 있었다면 알렉산드로는 절대 헤프게 웃으며 친하게 지낼 생각을 안 했을 것이다.
아직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의 인맥은 이에야스와 신페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었다.
‘잘하면 모스크바도 손에 넣을 수 있겠지.’
생각을 정리한 신유성은 은근히 기대를 해보았다. 이간책은 잘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신유성은 즐거운 마음으로 봄을 즐기고 있었다. 허나, 안 좋은 소식 하나가 다시 날아오며 즐거움을 깨버렸다.
무굴 제국과 전쟁을 하게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유성이 바라지 않던 일이었다.
‘하필 이런 때에!’
뉴기니섬의 원정을 통해 호주까지 진출할 생각이었다. 무굴제국을 상대하는 일은 호주에 정착한 이후로 생각하고 있었다.
10년 정도만 평화롭게 힘을 비축하며 아메리카와 호주를 삼키는 일에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신유성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무굴 제국이라.’
악바르는 만만치 않은 남자였다. 인도 북부를 점령한 이후 빠르게 인도를 점령해 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티무르 제국의 후손이라 그런지 종교적인 문제도 신유성과 비슷한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악바르 본인이 무슬림이면서도 시크교는 물론 힌두교까지 인정하는 방향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종교의 순수성을 주장했다면 빠른 정복이 어렵지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며 타협점을 제시하니 하나둘 악바르의 지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왜 이렇게 잘 싸우는 거야?’
문제는 무굴 제국의 군대가 절대 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명나라의 가정제의 경우에는 간신인 엄숭을 가까이 했기에 명나라 군대가 많이 약해졌었다. 간신들이 날뛰며 군대에 써야 할 돈을 착복하니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무굴 제국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악바르는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지만 악바르가 어릴 때는 바이람 칸이 악바르를 위해 일했다. 바이람 칸이 열심히 한 덕분에 악바르는 더 강한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세력을 넓히며 손에 넣은 시크교와 라지푸트족은 강력한 지원세력으로 변모했다.
강력한 군대가 있기에 결국 끊임없는 정복이 가능했다.
신유성은 이를 알면서도 속으로 푸념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는 불리한데.’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끌게 되면 결국 전쟁 지역의 영주들이 힘들어지게 된다. 전쟁 지역의 영주들이 힘들어지면 다른 영주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특히 최근 신유성에게 복속을 신청했던 영주들은 다른 마음을 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단합해서 단체로 독립해버리면 어떻게 손을 쓰기가 어려웠다.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환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신유성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환상은 유지되어야만 했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 바로 신국의 위기였다.
‘너무 멀어.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적을 분쇄해야 한다.’
신유성은 더 이상 한양에 있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친정을 하겠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다. 무굴은 강하다. 내가 직접 싸워서 무너뜨려야한다.”
이지번은 신유성의 결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허나, 친정을 실패하시게 되면 문제가 커집니다.”
“내가 나서지 않고 패배해도 문제는 생긴다. 영주들은 날 불신하게 될 것이다.”
“그런 불측한 마음을 품는 자들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이지번을 비롯한 신하들이 모두 친정을 재고해주길 요청했다. 하지만 신유성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
“하늘의 뜻이 나에게 이어져있다면 나는 승리할 것이다. 내가 패한다면 뒤를 부탁한다.”
하늘의 뜻을 언급한 순간, 아무도 신유성을 말릴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원정 준비가 이뤄지는 동안 신유성은 열심히 주녹정을 비롯한 부인들을 안았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부인들이 임신했다는 소식에 원정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소신을 데려가 주십시오.”
카자흐 방면 총사령관으로 내정되었던 노부나가는 신유성의 친정에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대의 마음은 잘 안다. 하지만 지금은 그대가 총사령관에 가장 어울리는 적임자다.”
노부나가를 데리고 움직인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러다가 카자흐 쪽에서 문제가 생기면 일이 귀찮아지기 때문이었다.
“차르국의 야심을 얕보지 마라. 그들은 조만간 다시 쳐들어 올 것이다.”
그러면서 신유성은 알렉산드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를 이용해라. 그러면 공을 세울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서진 또한 내가 원하는 일임을 기억해라.”
노부나가는 결국 신유성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수많은 영주들은 갈등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신유성의 원정 때문이었다.
원정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개척을 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에 고민 중이었다.
‘원정도 좋지만 개척도 포기할 수 없다.’
각자의 판단에 따라 선택은 달라졌다. 다케다 신겐의 경우에는 개척을 선택했다. 원정도 나쁘지는 않지만 상대가 굉장히 강하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나가오 가케토라는 원정을 택했다.
여진족들은 욕심이 많았다. 원정과 개척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렇게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여진족이 차지한 영지가 굉장히 부유했기 때문이었다.
“폐하의 친정이시다. 준비해라.”
북해도의 신페이가 명령을 내리자 2만의 군대가 순식간에 집결했다. 이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상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이었다. 평소에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훈련뿐이었다.
북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사로서의 훈련을 받으며 순차적으로 돌아가며 대기 상태에서 지냈다. 대기를 하는 것은 공짜가 아니었다. 신페이는 이들에게 돈을 지급했다. 그렇기에 1년 정도 훈련을 하며 지내는 것을 휴식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2만의 병력은 곧바로 대만으로 향했다. 대만이 1차 집결지였기 때문이었다.
원정을 위한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이에야스가 찾아왔다.
“저도 가고 싶습니다.”
“너도? 개척은?”
“개척도 계속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에야스의 눈빛은 꼭 데려가 달라는 염원으로 가득했다.
“그래, 함께 싸우자.”
데려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이후 빠르게 병력을 재편한 신유성은 나머지 일을 주녹정에게 맡겼다.
“내가 없는 동안 그대가 이곳을 지켜야 한다.”
“걱정하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잘 부탁한다.”
신유성은 이지번에게 주녹정을 도울 것을 당부하고는 먼저 떠났다. 원정군 규모는 빈약했지만 순차적으로 계속 병력을 모집해 보내기로 했다.
워낙 대군이기에 단숨에 움직일 수 없어서 신유성은 먼저 전장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었다.
때는 어느 덧 7월을 지나 8월을 향하고 있었다.
실론섬으로 향하는 항해 동안 이순신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가끔 육지에 머물 땐 임거정과 가볍게 대련을 하며 근접 전투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임거정은 스스로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며 신유성의 호위직을 그만두었지만 이순신에게는 괴력을 지닌 괴물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이순신이 배운 것은 근접 전투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항해를 하면서 배에서 할 일이 없으니 항해에 대한 것들도 하나씩 배웠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항해장으로부터 항해술을 배우고 갑판장으로부터는 갑판 작업에 대해 배웠다. 이순신은 모든 것을 빠르게 습득했다. 이에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모두 이순신에게 감탄했다.
‘유익한 항해였다.’
이순신은 항해에 만족했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 항해 끝에 배는 결국 실론섬에 도착했다.
이국적인 풍경을 접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는 건가?’
사람들도 달랐다. 필리핀을 거쳐 말라카에 도착할 때도 많이 보았지만 역시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이질적인 외모의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접한 이순신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자각했다.
들려오는 말, 사람들의 의복, 건물, 먹는 음식 등 많은 것들이 익숙지 않았다.
신선하기도 했지만 두려움도 느꼈다.
그렇기에 함께하는 이들과의 유대감은 더욱 진해졌다. 뭔가 특별히 행동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 뚝 떨어지니 그냥 느끼게 된 감정이었다.
첫날밤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날.
일찍 일어난 이순신은 운동 삼아 검술을 연마했다. 날씨는 선선했으나 이순신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난다면 엄청나게 더워진다는 것을.
웃통을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결국 옷을 다 입은 채로 수련을 시작했다.
천천히 움직이다 조금씩 속도를 올리자 근육이 잠에서 깨어나며 꿈틀거렸다.
모든 것을 잊고 검에 몰입한 이순신의 움직임은 바람 같았다. 그러나 바람처럼 움직인 만큼 땀이 흘러 옷을 적셨다.
“좋군.”
“일어나셨습니까?”
수련이 대충 끝나자 어느새 지켜보고 있던 임거정이 말을 걸었다.
“그래, 얼른 씻고 밥이나 같이 먹지.”
얼른 씻은 이순신은 임거정과 함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로 나온 것은 향신료를 이용해 만든 카레와 밥이었다.
식사를 간단히 마친 뒤에는 임거정과 함께 전쟁상인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싱할라족 전사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무장이 그리 훌륭한 것은 아니었으나 전사들의 분위기는 굉장히 날카로웠다. 건드리면 물어뜯을 것 같은 야생의 기운이 느껴졌다.
“상당히 거칠어 보이는군요.”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로 거친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어쨌거나 빨리 말을 배우는 편이 좋겠지. 불편한 일 안 겪으려면.”
용병대가 할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거래가 잘 이뤄질 땐 사실 거의 쓸모없는 존재였다. 만약을 대비해 용병을 고용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시간은 많았다.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해 이순신은 싱할라족의 말을 배우기 시작했다. 임거정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임거정은 배우지 않았다.
“안 배우셔도 됩니까?”
“이 나이에 머리 아프게 다른 나라 말을 배울 생각은 없네. 폐하를 따라 나선 거라면 또 몰라도.”
게으름을 부리며 임거정은 드러누워 낮잠을 청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반면 전쟁상인을 찾은 싱할라족은 항상 피 냄새를 풍겼다. 싱할라족의 말을 배울수록 이순신은 섬의 사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북부의 타밀족을 몰아내고 섬 전체를 통일하려는 거군.’
타밀족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신국과 손을 잡은 싱할라족은 그야말로 무적의 전사들 같았다. 파죽지세로 계속 승리를 이어나간 것이었다.
승리를 거듭한 싱할라족은 신국에 우호적이었다. 특히 상인들이 가져온 작은 황금 불상들은 큰 인기를 끌었다.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의 마음을 사로잡는 선물이었다.
이 때문에 싱할라족 전사들과 교류가 더욱 쉬워졌다.
“여해. 이건?”
“이건 검. 이건 총.”
싱할라족의 말을 배우던 이순신은 반대로 조선어도 가르치게 되었다. 싱할라족이 신국에 더욱 우호적으로 변하자 교류를 위해 말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신국의 상인들은 절대 무리한 거래를 시도하지 않았고 땅을 달라는 식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신뢰를 얻었다. 만약 땅을 달라고 했다면 포르투갈 사람들과 똑같은 자들이라고 은근히 경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직 거래하는 것만을 생각하며 지정해준 지역에서 벗어나질 않으니 안심했다.
안심하게 되니 교류도 더욱 많아졌다.
“오늘은 나랑 한 판 붙자.”
교류가 많아진 만큼 대련도 많이 하게 되었다. 죽도를 들고 가볍게 하는 대련이기에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리는 싱할라족에게 넘어갔다.
‘나도 나름 잘 싸우는 편인데.’
하지만 싱할라족, 특히 고산 출신 전사들은 당해내기가 어려웠다.
“대체 어디서 힘이 나는 거냐?”
“모른다. 원래 이랬다.”
이순신은 고개를 흔들고는 다른 것으로 싸우자고 했다.
“이번에는 활솜씨를 겨루자.”
검술로 지면 꼭 활로 승부를 거는 이순신이었다.
“싫다. 안 한다.”
“하자.”
이순신은 계속 졸랐다. 아직 한 번도 활쏘기로 이순신을 이겨본 적이 없는 싱할라 전사들은 이리저리 피했지만 결국 대결에 응해야만 했다.
활쏘기 승부는 언제나 그렇듯이 이순신의 승리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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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페이스가 무너졌더니 좀 힘드네요.
다음 편은 자고 나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