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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64화 (16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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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밖의 흐름

대만에 도착한 신유성은 차돌과 마주했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원정에 같이 가고 싶다고?”

“거친 사람들이 좀 있어서 아무래도 원정에라도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거친 사람들의 정체는 바로 술루섬에 살던 술루족 이야기였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해적질을 하고 살아갈 정도로 굉장히 사나운 이들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만에 정착해 많이 온순해지긴 했지만 일부 거친 성격을 가진 자들은 쉽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도 과격한 행동을 종종했다.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거칠다면 전장에서 살아가는 것도 좋겠지.”

신유성은 원정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했다. 싸워줄 병력이 필요하던 참이었기에 의욕으로 가득한 이들을 되돌려 보낼 이유는 별로 없었다.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차돌 또한 원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신유성은 함대를 살폈다.

“제2함대의 반은 이곳에 남는다.”

“하오나!”

“남는다. 호위 함대는 이미 있다.”

신유성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친위함대 중 절반이 이번 원정에 참여했다.

“해역에서 함대의 수가 줄어들면 잡생각을 하는 사략 선장들이 나올 것이다. 언제나 강력한 함대가 뒤를 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서 나쁜 마음을 먹지 못하게 막아야 할 것이다.”

사략 해적을 이용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라져야 할 부류라고 신유성은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온다면 숫자를 줄일 계획이었다. 단지 지금은 적을 공격하는 것과 동시에 수익을 얻기 위해 사략 해적을 허가한 것뿐이었다.

사실 해군이 하는 일도 비슷했다. 하지만 해군과 해적을 구분한 이유는 간단했다.

해적을 해군으로 편성하게 되면 해적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해군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기 때문이었다.

함대는 필리핀 지역을 지나쳐 보르네오섬의 해안을 따라 움직였다.

함대가 움직이는 모습을 본 이들은 모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엄청난 규모의 선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앞을 가로 막았다가 큰일 날까 두려워 몇몇 어부들은 서둘러 섬으로 돌아갔다.

긴 항해 끝에 결국 말라카에 도착했다.

말라카의 술탄은 과거와는 달라진 신유성을 보며 감탄했다.

‘그때 잡을 걸!’

개종을 하는 한이 있었어도 신유성이 말라카에 왔을 때 딸을 안겼다면 지금쯤 엄청난 영지를 가진 영주가 될 수도 있었다. 술탄은 자꾸 지나간 일이 떠올라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를 한다고 해도 이제 기회는 없다고 봐야했다.

신유성이 어느 순간 여자를 더 늘리지 않고 있다는 것은 신국 전체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였다.

술탄과의 인사가 끝난 뒤, 신유성은 바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적의 상황은?”

한양에서 보고서로 확인한 뒤에 명령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한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의 허가를 내주거나 지원을 해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터와 가까운 곳에 온 이상 더욱 자세한 명령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무굴 제국의 군대와 페구에서 대치중입니다.”

바인나웅은 페구를 되찾고자 했다. 이미 항구로서의 능력을 상실한 곳이었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또한 무굴 제국의 군대가 배로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해야 신국을 빠르게 밀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해보자는 건가?’

상대가 공격하려는 지역을 보고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되었지만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페구에 전력을 다하는 건가? 아니면 다른 군대가 또 있는 건가?”

“셋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페구를 공격하는 군대가 가장 강하고 아유타야는 바인나웅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류는 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중입니다.”

“남하라면 이곳을 노리는 건가?”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해안을 타고 계속 남하한다면 말라카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견제를 하는 건가? 아니면 점령을 하려는 걸까?’

보고된 군대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무시할 수 있을 정도도 아니었다. 앞을 가로막는 존재는 닥치는 대로 박살내서 사략 해적들의 피해가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었다.

“적의 무장은?”

“총과 대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과 대포만 쓰지는 않았다. 무굴제국의 병사들은 기본적으로 전투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이들과 백병전이 벌어지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사략 해적들은 실력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충돌한 이들은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모두 패했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의 말에 의하면 피에 굶주린 악귀 같다고 했다.

“흐음.......”

무장 상태도 나쁘지 않은 군대였다. 겉보기에는 신국과 비슷한 수준의 무장을 했다고 봐도 좋았다.

‘아무래도 천천히 적을 지치게 하는 게 낫겠군.’

빠르게 잡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일본 출신 병사들이 독하긴 하지만 무굴 제국 병사들은 더 독했다. 그리고 숲이 많은 지역에서는 기병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진족 병사들도 큰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워보였다.

‘공병. 공병으로 승부를 봐야한다.’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거점을 만들어 상대의 목을 서서히 조이는 방식만이 신유성이 내놓은 해답이었다.

“지금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공사요?”

“그렇다. 우린 적의 목을 서서히 조인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벽은 코끼리들이 박살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우회해버리면 감당이 되질 않습니다.”

“작은 요새 따윈 짓지 않는다. 중요한 곳만 지키고 나머지는 잠시 피신시킨다. 땅은 도로 되찾으면 될 뿐이다. 아울러 우리는 적의 거점을 약탈한다.”

신유성은 다시 지도를 보았다.

지도에는 인도 아래에 있는 섬이 그러져 있었다.

‘스리랑카.’

실론섬을 이용한다면 무굴제국의 전력을 분산시킬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터였다.

작전 회의 끝에 차돌에게는 적의 거점을 되는대로 털어먹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명령이 떨어지자 술루족 병사들은 배를 타고 허겁지겁 항구에서 튀어나갔다.

“털자! 털어도 된다!”

“으하하하하하!”

해적이었던 자들이 상당했다. 이들은 이름만 병사였지 마음은 아직도 해적질을 하고 있었다. 다만 강력한 황제인 신유성 때문에 숨을 죽이고 살았을 뿐.

허나,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예전에 하던 일을 해도 된다는 소리.

“돈을 벌자! 돈을!”

“고기빵도 사고! 사탕도 사고!”

“설탕은 백포대! 술은 백통!”

저마다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흥얼거렸다. 해적질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이지만 자신 있는 술루족이었다. 이미 신유성에게 호되게 당한 뒤로 신국의 무기 사용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이들은 신국과 전쟁하는 것만 아니라면 누구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신유성이 말라카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는 실론섬에도 전해졌다.

“폐하의 친정.”

소식을 들은 임거정은 피가 끓는 느낌이었다. 나이가 들었으나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었다. 무엇인가 물려줄 사람이 없기에 하루하루 아래에 있는 부하들을 챙기며 지냈다. 허나, 신유성의 친정 이야기를 들으니 옛 생각이 떠올랐다.

신유성 덕분에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 또한 살릴 수 있었다. 부와 명성도 얻었다. 도적으로 살다 죽을 운명을 바꿔준 것이 신유성이었다.

충성심만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신유성을 생각했다.

“용병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설마 뭔가 섭섭하신 일이라도?”

임거정을 고용했던 상인은 펄쩍 뛰었다. 임거정을 고용하는 비용이 비싸긴 하지만 임거정과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더 안전하다는 인상을 다른 이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폐하를 위해 싸울 생각입니다.”

상인은 말문이 막혔다.

‘이건 말릴 수 없다.’

허나 그냥 보내주기는 무척 아쉬웠다.

‘어쩌면 기회가.......’

문득 스쳐가는 생각 하나. 그것은 바로 사략으로의 전환이었다.

‘폐하의 적은 무굴제국 그렇다면 이곳이 아마도 해군의 새로운 거점이 될 것이다.’

“그러시면 다시 군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군으로 다시 들어가긴 어렵고 사략선을 탈 생각입니다.”

“그러시면 굳이 그만두실 필요 없지 않으실까요? 제가 사략 등록을 하죠.”

“저 때문이시라면 부담스럽습니다.”

자신을 잡으려는 상인의 행동에 임거정은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이곳은 중요한 거점이 될 겁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장사하는 것만으로도 큰돈을 벌겠죠. 하지만 적선을 나포해 더 큰 것을 얻고 싶기도 합니다.”

“혹시 영주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될 수 있다면 되고 싶습니다.”

상인으로서는 모험이었다. 하지만 위기 속에 있는 큰 기회를 보았기에 물러나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임거정 같은 무력이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더욱 수월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함께하도록 하죠. 대신 다른 사람들이 그만둬서 사람이 부족해지면 다른 배를 타겠습니다.”

“이곳 전사들이라도 태울 테니 제발 다른 곳에 간다는 말은 하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임거정은 상인과 손을 잡았다.

“자네, 사략선 선장 해볼 생각 없나?”

싱할라족의 젊은 전사와 함께 공부하던 중, 임거정이 갑자기 찾아왔다. 이순신은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말입니까?”

“그래, 배에 대해서 잘 알지 않나?”

“그래도 제가 무슨 사략 선장입니까?”

“이번에 우리 고용주가 사략 등록을 한다고 했네. 그런데 배의 선장과 항해장이 전투는 곤란해 해서 새로운 선장과 항해장을 찾고 있다.”

“그래서 제대로 배를 운용해본 적도 없는 제게 일을 맡기는 겁니까?”

“하겠다면 운용에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할 시간을 준다던데. 어떤가?”

이순신은 갈등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상인으로서도 큰 모험이었다. 원래라면 좀 더 능숙한 해군 출신을 고용하는 편이 안전하지만 언제 고용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용병 중에 항해술을 익힌 고급 인력이 있었다.

바로 이순신이었다.

임거정을 붙잡고 싶은 상인은 무리수를 던진 것이었다. 상인의 욕망이 결국 모험을 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 분은 망하는 게 두렵지도 않다고 합니까?”

“배 하나 잃는 정도로 망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네.”

돈 좀 있다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하도록 하죠. 어차피 싸워야 할 적이니까요.”

이순신은 사양하지 않았다. 부담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기회를 차버릴 생각은 없었다.

“잘 생각했네. 그럼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임거정이 나가자 함께 공부하던 전사가 질문을 던졌다.

“여해. 무슨 일?”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전쟁? 누구랑 싸우는데?”

“섬 밖에 있는 사람들하고.”

이순신은 차분하게 자신이 하게 될 일을 설명해주었다.

“그래? 나도 가도 될까?”

전사는 흥미를 보였다. 섬밖에서 배를 타고 싸우게 된다는 설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맡게 된 역할이 적지에 들어가 약탈하거나 적들의 배를 나포하는 일이라고 하니 궁금해졌다.

“그건 나한테 물어봐도 대답해주긴 어려운데? 고용주한테 물어봐야지.”

“알았어. 기다려.”

전사는 냉큼 달려 나갔다. 그리고 다른 전사들에게 소문을 퍼트렸다.

싱할라 전사들은 신국의 전쟁 소식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항구에 갑자기 많은 수의 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긴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바다 건너 거대한 땅의 거대한 제국과 싸우기 위해 왔다는 말에 신국이 그저 그런 작은 나라가 아님을 확실히 깨달았다.

포르투갈 함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였다.

전사들은 맞붙어 싸운다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신국의 무기들은 그래도 조금 두려웠다. 특히 신기전이 가장 인상적인 무기였다. 총이나 대포를 접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맞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하늘이 화살로 뒤덮이는 상황은 조금 무서웠다.

산으로 도망가면 신기전도 쓰기 힘들어지겠으나 탁 트인 곳에서 싸우게 된다면 신국을 어떻게 하긴 어려웠다.

“차라리 그들과 동맹을 맺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럴까?”

“일단 이 섬의 다른 녀석들을 정리하는데 힘을 보태준다면 우리도 그들의 전쟁에 힘을 보태주는 것으로 하죠.”

신국과 손을 잡은 싱할라족은 빠르게 섬을 정복하고 싶었다. 특히 북부에 정착한 타밀족을 밀어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결정이 나자 이제는 거대한 부족으로 성장한 대족장은 바로 사람을 보내 의견을 타진했다. 때마침 실론섬에 머물고 있던 해군에서는 이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해군의 결정은 금방 사략 등록을 한 상인에게도 전해졌다.

“저도 거들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력이 많으면 더 좋죠. 부탁합니다.”

소식을 들은 임거정은 웃었다.

“연습하기 딱 좋겠는 걸?”

“놀리지 마십시오.”

이순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파악하기 위해 움직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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