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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
나가오 가케토라의 전투는 어둠과 함께 시작되었다. 밤이 되자 라지푸트족은 전방에 만들어지고 있던 요새를 급습했다.
익숙하지 않은 지형이기에 경계에서 실패해서 생겨난 문제.
어찌 되었든 적을 막아야 하는 상황. 어둡기 때문에 함부로 쇠뇌를 쓰는 것도 어려웠고 총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조금만 떨어져도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군끼리 칼질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때문에 방패진을 이용한 전술을 사용했다. 하지만 라지푸트족은 강했다. 동료의 시체를 이용해 결국 방패벽을 뚫은 것이었다.
이후 가게토라가 직접 나섰고 난전이 시작되었다.
“죽어라!”
희미한 불빛을 반사시키는 검이 번뜩이는 순간 피가 튀었다. 광기가 지배하는 밤은 계속 흘렀다.
가게토라는 지쳤다. 라지푸트족 전사들도 지쳤다.
“후퇴!”
결국 라지푸트족의 전사들은 후퇴했다. 보통 후퇴하는 적을 추격할 때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고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후퇴하는 적을 쫓다가 매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어둡기 때문에 어떤 함정이 도사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적이 후퇴하자 가케토라는 함성을 내질렀다.
‘난 비사문천의 환생이다!’
야간 기습으로 인한 피해는 막대했다. 나름 잘 대응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예상과는 다른 결과에 가케토라는 이를 갈았다.
‘이 놈들이.’
병력의 피해가 예상보다 컸다. 적의 시체보다 아군의 시체가 더 많았다. 어둠 속에서 싸웠기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과 전투에 지휘관이 직접 뛰어들어서 중요한 순간에 적절한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정찰대를 편성한다. 그리고 추격대도.”
피해를 입은 가케토라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만회한다!’
이대로 물러날 순 없었다.
전쟁의 신이 패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가케토라의 생각이었다.
이에야스의 부대는 천천히 전진했다. 이에야스에게 내려진 명령은 바인나웅의 뒤를 치는 것이었다. 이에야스는 서둘러 움직이지 않았다.
“철저히 정찰하라. 하나라도 놓치지 마라.”
핫토리 한조는 정찰대를 바짝 조였다.
“긴장을 풀지 마라.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사실은 잊어라.”
정찰을 하며 움직이는데 오랫동안 적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긴장이 풀릴 수 있었다. 적이 없다고 무의식적으로 여기고 형식적으로 수색을 하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날 수 있었다.
이런 순간을 노려 적이 기습한다면 피해가 급증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야스는 전진을 서두르지 않았고 핫토리 한조는 정찰대를 달달 들볶았다.
계속해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이에야스의 부대는 오랫동안 계속 이동했다. 그리고 바인나웅의 부대를 찾아냈다.
바인나웅의 부대는 아유타야에 속했다가 신국으로 전향한 지역의 도시를 공격하느라 정신없었다.
“척탄병 준비.”
멀리서 하는 기습이라면 쇠뇌가 확실하다. 하지만 바인나웅의 부대에는 코끼리도 있었다.
코끼리의 활약으로 도시의 수비군은 벌써 뚫린 상황.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뒤쪽에서는 무너진 곳을 통해 안으로 침투하기 위해 보병들이 밀집해 있었다.
“가라.”
척탄병들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은밀한 기동도 척탄병이 받는 훈련 중 하나였다. 몰래 다가가 폭탄을 던지고 도망치는 것이었다.
지척까지 다가간 척탄병들은 마지막으로 남은 거리를 계산했다.
‘뛰어간다면 좁힐 수 있다. 궁병도 없다.’
폭탄을 던져서는 닿지 않지만 뛰어간다면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상황.
폭탄의 심지를 약간 길게 한 뒤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 명이 뛰어나갔다.
척탄병을 이끄는 조장이 뛰어나가자 나머지도 불을 붙이고는 뒤를 따랐다.
“적이다!”
후방에서 전투를 지켜보는 바인나웅을 보호하던 친위대는 우연히 뒤쪽에서 접근하는 적들을 보았다.
“왕을 지켜라!”
친위대장의 명령에 친위대는 모여서 적의 접근에 대비했다. 허나, 이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좋다!’
“폐하를 위하여!”
지척에 이른 척탄병은 있는 힘껏 폭탄을 던졌다. 유유히 날아간 폭탄은 친위대 사이에 떨어지려 했다. 이것을 한 병사가 창으로 쳐내려했다. 하지만 그 순간.
“으아아아악!”
폭탄이 터지며 쇳가루가 비산했다. 폭탄을 바라보던 자들의 눈에 쇳가루가 박혔다. 고통 속에 친위대는 뒹굴었다.
“폐하를 위하여!”
척탄병들은 연신 외치며 폭탄을 던졌다. 수많은 폭탄들이 바인나웅이 있는 곳을 비롯해 후방에 떨어지자 바인나웅의 친위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아아아아악!”
척탄병들은 서둘러 퇴각했다. 어물쩡거리다가 죽을 수 있으니까.
“저 놈들을 잡아라!”
수많은 폭발 속에서도 살아남은 바인나웅은 악을 써댔다. 아직 멀쩡한 친위대 병사들은 등을 보이며 달리는 척탄병들을 잡기 위해 뛰었다.
분노에 지배된 이성은 오직 목표를 잡는 것에만 몰두했다. 허나, 그것이 또 패착이었다.
“쏴!”
척탄병들을 따르던 바인나웅의 친위대 병사들의 가슴에 화살이 박혔다. 후퇴하는 척탄병을 엄호하기 위해 쏘아진 화살들은 정확하게 가슴에 박혔다. 머리를 노린 화살은 하나도 없었다.
“방패 앞으로!”
“방패 앞으로!”
“창병은 2열이다! 3열은 쇠뇌 재장전!”
이에야스의 부대가 숨어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순간 바인나웅을 불태우던 분노는 차갑게 식었다.
‘불리하다.’
주전력은 도시를 공격하는 상황이었다. 바인나웅을 지키는 친위대는 피해를 입은 상황.
“후퇴!”
바인나웅은 서둘러 퇴각했다. 예비대와 함께.
“정찰대는 바인나웅을 추격하는 척만 하라! 나머지는 아군을 돕는다!”
이에야스는 후퇴하는 바인나웅이 물러났다가 다시 되돌아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정찰대를 추격대로 위장해 바인나웅을 더욱 멀리 도망치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인나웅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뒤에 적이 붙었다는 사실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한편, 왕이 그대로 후퇴하자 싸우고 있던 바인나웅의 군대에서 혼란이 일었다.
후퇴를 하려고 했으나 퇴로를 가로막은 이에야스의 부대를 뚫지 못했다. 그리고 도시를 지키던 수비군은 악착같이 달려들어 동료의 복수를 했다.
바인나웅의 군대는 대패했다.
페구.
한 남자가 성벽에 올랐다. 멀리 자리를 잡은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놓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은 마치 공격해달라고 유인하는 것 같았다.
“유치한 도발이군.”
사사키 신페이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조금 약 오르긴 합니다.”
“그렇겠지.”
방어 입장에서는 약 오르는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 공격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고 있어야 하는데 적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많은 병사들이 분노하기도 하고 맥이 빠져서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기도 했다.
“허나, 우린 폐하의 명을 받았다. 이곳을 내주게 된다면 어찌 얼굴을 들고 폐하를 뵙겠는가?”
“하지만 사기가.......”
“좀 더 수시로 보초들을 살피도록 하라. 경계에 실패할 경우 보초들의 목을 베겠다.”
잔혹한 말이었다. 허나, 신페이의 말이 퍼지자 경계를 서는 보초들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신페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유성이었다.
때문에 신유성이 내린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실수한 부하를 죽여 실패를 막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부하를 벨 남자가 신페이였다.
성벽을 살핀 신페이는 다시 성으로 돌아와 작전 회의를 열었다.
“놈들이 어떤 방법을 쓸 것 같나?”
“아마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닌자들의 보고로는 발견한 바퀴 자국이 꽤 깊었다고 합니다. 대포를 운반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가 수시로 오는 지역이라 땅이 질척한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무거운 것이 지난 자리에 깊은 흔적이 남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
‘대포라. 성벽을 무너뜨리거나 아니면 포병을 미끼로 유인해내려 하는 것이거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신페이가 알기로 무굴제국은 신국보다 더 뛰어난 대포를 가지지 못했다.
‘뭐 그 사이에 개발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신페이는 신국의 무기에 자부심을 가졌다. 지금도 끊임없이 발전하는 신국의 기술은 대포를 계속 새롭게 강화하는 중이었다.
신페이가 페구까지 가져온 대포들도 신국의 최신형 대포였다. 컬버린포보다 내구력이 더 좋기 때문에 더 많은 화약을 사용할 수 있고 이것은 곧 사정거리의 증가로 이어졌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화승총 또한 마찬가지로 사정거리가 늘어났다. 물론 이 때문에 화약 소비량이 늘어났지만 신국의 화약 생산 능력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다.
포병을 준비하고 만약을 대비해 방패병을 성벽위에 대기시키도록.
‘어디 한 번 포격전을 해보자고.’
며칠 뒤, 신페이가 기다리던 포격전이 시작되었다.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한 시각, 아침의 공기는 아직 선선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날씨가 예상되는 시간, 페구는 긴장에 휩싸여있었다.
“적이 움직입니다!”
드디어 무굴제국의 포병들이 움직였다.
“대포 100문! 컬버린으로 예상!”
망원경으로 살펴본 병사의 외침이 들리자 신페이는 웃었다.
“포병 준비!”
“포병 준비!”
컬버린과 비슷하다는 뜻은 신국의 대포가 사정거리가 더 길다는 말과 똑같았다.
성벽 위의 포병들은 천천히 움직이는 무굴제국의 포병대를 겨냥했다.
“이 놈들아! 빗나가는 놈은 내가 연병장 50바퀴다! 내가 다 보고 있을 거니까! 표적 지역 벗어나기만 해봐!”
“걱정 마십시오! 관측이나 제대로 해주십시오!”
포병 대장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포병들은 긴장하지 않았다. 북해도 포병은 언제나 훈련했다.
“적 포병 사정거리 진입!”
“아직 기다린다!”
선두만 겨우 사정거리에 들어온 상황. 무굴제국 포병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대포를 전진시키고 있었다.
“모두 들어왔습니다!”
“쏴!”
관측은 이미 끝났다. 장전 속도는 신국이 압도적으로 빨랐다. 페구의 성벽에 있는 대포는 모두 40문. 대포의 수에서 밀렸다. 하지만 적들은 아직도 이동 중일 뿐이었다.
화약이 폭발하며 공기를 뒤흔들었다. 포성이 퍼지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갑작스러운 포격에 무굴제국의 포병들은 긴장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어떻게?”
페구의 성벽에서 포격이 일어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 뒤 포탄이 무자비하게 떨어졌다.
“아아아아악!”
대포가 깨지기도 하고 사람이 맞고 터져나가기도 했다.
신국의 대포 사정거리가 더 길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휘관은 아주 잠깐 갈등했다.
‘이대로 쏜다면 피해가 더 커진다.’
초탄이 떨어진 피해는 사실 그리 크다고 볼 순 없었다. 아직도 많은 수의 대포들이 살아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정거리가 되는 곳까지 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적어도 5번 정도는 더 떨어지겠지.’
대포는 무거운 물건이었다. 빠르게 옮기는 것은 어려웠다. 대포를 쏠 수 있는 위치에 가져다 놓고 장전을 하는 동안 계속 얻어 맞다보면 결국 피해가 커질 뿐이었다.
“후퇴! 후퇴! 후퇴!”
‘대포를 다 잃어선 안 돼!’
적보다 사정거리가 짧다고 해도 대포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헛되이 잃을 순 없었다.
결국 무굴제국의 포병들은 피해를 입고 물러나야만 했다.
페구를 공격하려던 지휘관은 입술을 깨물었다.
“적의 대포가 어디로 움직이는지 잘 살펴라.”
“네!”
승리를 했지만 신페이는 방심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무굴제국의 대포가 아직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약한 곳을 찾아서 찔러오면 힘들다.’
페구는 도시였다. 때문에 성벽도 길었다. 신페이가 보유한 대포로는 성벽 전체를 방어하긴 어려웠다. 때문에 적의 대포가 이동을 하면 성벽 위에 올린 대포도 같이 움직여야만 했다.
“적은 분명 어둠을 이용할 것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군요.”
“그렇지.”
어둠을 이용하면 은폐물이 없어도 모습을 감추는 것이 가능했다. 대포를 어둠 속에서 움직여 사정거리까지 도달한 뒤 먼저 쏘기 시작한다면 방어하는 신페이가 더 불리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은 허락할 수 없지.’
신페이는 특수부대를 성 밖으로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