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7 / 0271 ----------------------------------------------
혈전
신페이의 예상대로 무굴제국의 지휘관은 어둠을 틈타 포병을 움직였다. 한밤중에는 감시가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물론 어둠속에서 이동을 하다보면 무굴제국의 병사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어둠은 어느 한쪽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니까. 해가 지기 전에 이미 지형을 살펴두지 않았다면 큰 문제가 터져 나왔을 수도 있었다.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밤은 길었다. 빠르게 이동하다가 노출되기보다는 천천히 적에게 다가가는 것이 더 나았다.
아주 오랫동안 페구에서 반응이 없었기에 무굴제국의 지휘관은 성공을 예감했다.
하지만 모든 예감이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특수부대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원래 닌자 출신이었던 신페이가 만든 조직으로 북해도에서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집단이었다.
최고의 재능과 황제인 신유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숙명으로 여기고 있는 이들이 혹독한 훈련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특수부대의 대원들이었다.
“저쪽입니다.”
사방으로 퍼졌던 특수부대의 대원에게 결국 무굴제국의 포병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공격할까요?”
“기다린다.”
“네?”
“놈들이 공격을 준비할 때까지 기다린다. 우린 대포를 빼앗는다.”
“가능할까요?”
“넌 돌아가서 예상 지점을 보고하고 돌아와라. 수시로 확인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혹시라도 놓친 놈들이 있는지 살핀다.”
특수부대 대원들은 어둠 속에서 빠르게 흩어졌다.
예상 지점을 보고 받은 신국 포병들은 조용히 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행여나 무굴제국군이 눈치 채면 작전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거운 대포를 움직이는데 소리가 나지 않을 순 없었다. 다행인 것은 성벽 근처로 접근한 무굴제국군이 없다는 것.
대포를 옮겨 무굴제국군의 포병이 다가오는 지점을 향해 조준했다.
“그런데 안 보이는데 조준이 제대로 될까요?”
“감으로 쏴야지. 작전이 시작되면 놈들의 위치가 노출될 거다.”
“그런데 왜 더 멀리 조준하는 거죠?”
“그거야 대포를 빼앗아야 하니까.”
대포는 무거우니 빠르게 움직이긴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특수부대가 대포를 옮기는 동안 엄호를 해줘야만 했다.
“그것보다는 그냥 부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뭐, 특수부대가 하겠다고 한 거니까. 우리야 들어줄 수밖에 더 있나?”
신페이의 지휘 하에서는 특수부대는 계급을 뛰어넘어 독립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했다. 다른 영주들이나 신유성의 지휘를 받는 상황이라면 문제가 될 일이지만 신페이가 지휘관으로 있는 이상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신국군 포병들은 요청한대로 움직여주었다. 작전권이 특수부대에게 있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한참 잠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에 꾸물거리며 움직인 무굴제국군의 포병들은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장전! 장전! 장전!”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야간 포격을 시작해 적이 반응하기 전에 성벽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는 제대로 장전할 수 없기에 불을 켜야만 했다.
그래서 포병 몇 명이 화약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불을 피우는 순간이었다.
“헉!”
어느새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특수부대가 보였다.
“적! 커헉!”
특수부대는 그대로 포병들을 쇠뇌의 방아쇠를 당겼다. 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쇠뇌를 쏜 후 내던지고는 바로 검을 뽑아 돌격한 특수부대의 움직임은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포병들을 도륙해버렸다.
“빨리 움직인다.”
특수부대는 불을 끈 뒤 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맨 뒤에 남은 이들은 무굴제국군이 가지고 있던 화약통을 들고 여기저기 세우기 시작했다.
한편, 멀리서 포격이 시작되길 기다리던 무굴제국군 지휘관은 기습당하는 포병들을 보고 외쳤다.
“빨리 가서 도와라!”
서둘러 병력을 보냈다. 하지만 갑자기 불이 꺼지면서 적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지휘관은 그러거나 말거나 병력을 투입했다.
‘대포를 빼앗기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성벽을 공격할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고전적인 방법으로는 사람을 돌격시켜 성벽을 오르게 하거나 공성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하지만 화약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적에게는 쓰기 힘든 방법이었다.
사람을 이용해 적의 화약을 소모시킨다는 방법도 있지만 신국의 화약 보유량이 얼만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쓸 순 없었다.
따라서 성벽을 무너뜨릴 방법으로는 화약, 그것도 대포가 최고였다.
성벽 밑에 화약을 대량으로 묻어버리고 폭발시키는 게 최고긴 하지만 그게 쉬울 리가 없었다. 공사를 하게 내버려둘 신국군이 아니었다.
대충 화약통만 쌓아서 터트려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제대로 터트리지 못하면 화약만 날아갈 뿐이었다.
따라서 선택지는 대포 정도였다. 무굴제국군 지휘관은 대포를 포기할 수 없다고 계속 생각했다.
그때였다.
거대한 폭음이 울리며 비명소리가 밤공기를 진동시켰다.
성벽에서 포격이 시작되었다. 대포를 끌고 가는 특수부대를 잡으려던 무굴제국군은 어둠 속의 포격에 당황했다.
포성이 터진 뒤에는 비명이 울렸다. 제대로 보기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주변에 시체가 생기니 가슴이 벌렁거렸다.
두려움이 치솟았다.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정확히 포격을 날리는 신국 포병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훈련을 거친 숙련된 북해도 포병은 포를 어떻게 조작하고 화약의 양을 조절하는 것에 따라 어디에 포탄이 착탄하게 될지는 계산할 수 있었다.
무굴제국군이 당하는 이유는 어디로 포를 쏘면 되는지 위치를 미리 알려주었기에 가능한 일일 뿐이었다. 북해도 포병이라고 보이지 않는 것을 관측할 재주는 없었으니까.
포성과 비명이 흘렀다. 그래도 무굴제국군의 지휘관은 대포를 포기하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 독전관들은 혹독하게 병사들을 다그쳤다.
“적을 잡아야 한다! 돌격!”
대포를 빼앗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병사들은 쉽게 모이질 못했다. 무엇보다 어둠 속이라 방향을 제대로 지정해주기도 힘들었다.
공포에 질려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칼부림을 하는 병사가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인 상황이었다.
혼란 속에서도 독전관들은 독하게 병사들을 다그쳤다.
“안 되겠다. 버리고 가자.”
“아깝네요.”
“뭐 여기에 두면 알아서 포격을 가하겠지. 불을 밝혀라! 그리고 심지에 불붙여!”
대포 사이에 횃불을 밝혀 던져놓은 뒤, 특수부대 대원 몇 명이 기다란 심지에 불을 붙였다. 기다란 심지는 상당히 길었다. 어디까지 이어졌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심지가 타들어가는 것을 본 대원들은 서둘렀다.
“전력으로 달려라!”
있는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한 대원들은 빠르게 대포로부터 멀어졌다.
심지는 빠르게 타들어갔다.
“저건?”
독전관은 대포의 위치를 찾자 병사를 다그쳐 대포를 향해 움직이게 했다. 대포를 끌고 가던 대원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수상하긴 했지만 따라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친 것으로만 생각했다.
“대포가 우선이다! 대포를 회수해!”
도망치는 적 몇 명을 잡기보다는 대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것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신국 포병대의 포격이 대포 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불이 밝혀진 곳에 대포가 대량으로 모여 있으니 이를 깨기 위해 포격을 계속 날렸다.
비명이 난무하고 대포가 하나둘 깨져나가는 순간에도 무굴제국군은 대포를 포기하지 않았다. 더 많은 수의 병사를 보내 대포를 회수하게 했을 뿐.
허나, 잠시 뒤 재앙이 일어났다.
타들어가던 심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실수였다.
기다란 심지는 결국 다 타버렸고 특수부대가 적당히 뭉쳐놓은 화약통에 불이 붙었다.
발견하기 힘들도록 주변의 풀을 뜯어 가려놓았기에 쉽게 발견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화약통이 일시에 터지자 큰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에 모여 있던 병사들은 폭발에 휘말려 날아갔다.
“아아아아아악!”
죽지 못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완전히 말려들었다!’
뒤늦게 무굴제국군의 지휘관은 상황을 판단했다. 하지만 알면서도 어쩔 순 없었다. 대포를 포기한다면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포위하고 적이 움직이지 못하게 견제하는 게 전부일 뿐이었다.
결국 대포는 하나도 구하지 못했다.
“아군 피해는?”
“경미한 부상을 입은 대원 몇 명 빼면 없습니다.”
한밤중의 전투 결과는 신국의 압승이었다. 특수부대를 이용한 신국의 사망자는 전무했다. 반면 무굴제국군은 상당한 사망자를 냈고 대포가 전부 파괴되었다.
“좋군.”
“그렇습니다. 어찌할까요? 적을 습격할까요?”
“한 번 당했으니 저쪽도 경계하겠지. 대포만 있는지 확인해.”
신페이는 대포 이외에는 무서워하지 않았다. 대포만 없다면 성벽을 지켜낼 자신이 있었다.
‘제발 사람을 돌격시켜라. 그럼 폭탄맛을 보여줄 테니.’
보유하고 있던 1만개가 넘는 폭탄을 떠올린 신페이는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전선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다. 허나, 한양은 전쟁하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평화롭기만 했다.
한양 야구장에서는 여전히 시합이 열렸다. 야구 관중은 숫자가 많이 적었다. 그래도 시합은 열렸다. 대신 주점에서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연일 이어졌다.
“이렇게 전쟁을 해도 괜찮을까? 얼마 전에는 또 다른 땅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굳이 싸울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네.”
“개척? 좋지. 그런데 말이야. 놈들이 우릴 업신여기는 걸 어떻게 참아? 폐하께서 참아도 내가 못 참아!”
“이런 멍청한 놈을 봤나. 폐하가 참으면 너도 참아야지. 왜 니가 나서고 그래?”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고 승리를 염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모두 술 한 잔과 안주를 가지고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조용히 이런 모습을 지켜본 피터 슈이스키는 수행원과 함께 청계천에 산 집으로 향했다. 알렉산드로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영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가족은 한양에 남겼다.
볼모의 성격도 있었으나 만약의 경우 차르에 의해 자신이 위기에 처하게 되면 가문은 그래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연고자 하나 없는 곳이었으나 돈이 있다면 살 곳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모스크바 차르국과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이라 차르의 손이 미치지 않았다.
‘역시 신국은 엄청나다.’
한양에 가족과 함께 남게 된 피터는 매일같이 쏘다니며 신국에 대해 배웠다. 배우면 배울수록 모스크바 차르국이 하찮게 여겨졌다.
‘절대 신국을 이기지 못한다.’
영지를 빼앗거나 할 순 있을지 몰라도 신국의 힘이 집중되면 결국 패배는 차르의 것이 될 것 같았다.
신국의 생산능력은 모스크바 차르국을 아득하게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신국에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각지의 영주들이 힘을 합쳐 신유성에게 반기를 든다면 결국 분열하게 되어있었다.
‘그래도 지금 그럴 인간은 없다는 거지.’
신국이 사라지면 상인의 교류가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영지의 사정에 따라 권력 구도가 달라진다. 하지만 계속 신유성 밑에 있으면 얻는 것이 많았다.
자유로운 교류가 가능했다. 더구나 신유성이 투자해서 개발하게 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만약 신유성을 적대한다면 먼저 신국의 장인들에게 원한을 사고 상인들이 등을 돌리게 될 터였다.
얻을 것이 있는 동안에는 신유성을 적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한양에서 지내면서 부자들과 가까워져야 한다.’
한양의 부자들은 단순한 부자들이 아니었다. 기술을 개발한 장인이나 크게 성공한 상인들도 있으나 권력자인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대표적인 부자는 돌쇠였다. 신유성의 여자인 매화의 아버지로 한양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다. 다음으로는 모리 모토나리가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한양에 있었으나 티베트 지역의 총영주가 되어 떠난 호조 우지야스도 빼놓을 수 없었다.
“어머니, 생활은 좀 어떠세요?”
“좋구나.”
피터의 어머니를 비롯한 모든 이들은 한양 생활에 만족했다. 황궁만큼은 아니지만 한양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은 모스크바에서 구하던 것들보다 훨씬 다양했다.
맛있는 음식에 발전한 문화.
동경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으니 행복했다. 무엇보다 한양의 날씨는 모스크바보다 훨씬 좋았다.
“아버지가 한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걱정 마려무나. 나중에 멋진 아가씨 소개해줄 테니 멋진 남자가 되어야 한다.”
“물론이죠.”
피터는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조선어를 열심히 익혔다. 아무리 잘 생겼어도 능력이 없으면 매력은 반감된다.
조선어는 한양에서 능력있는 남자가 되기 위한 필수 항목이었다.
때문에 피터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냥 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업에 대한 것을 중심으로 배웠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은 어선을 늘리는 편이 돈을 벌기 쉽다.’
피터는 알렉산드로가 은행에 넣어준 돈을 이용해 어선을 한 척 샀다. 어선을 사고 어부를 고용했다. 월급을 주는 방식이 아닌 비율로 나누는 것이었다.
이후 피터는 짭짤하게 돈을 벌기 시작하자 조금씩 어선의 수를 늘려갔다.
슈이스키 가문의 한양 정착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