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68 / 0271 ----------------------------------------------
혈전
알렉산드로는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어 가는 노부나가는 알렉산드로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 사람하고 친하게 지내야 해!’
원정군 아래서 공을 세운다면 더 큰 영지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이 아니더라도 모스크바 차르국의 귀족들을 회유해 세력을 이룬 뒤에는 노부나가의 보호가 어느 정도 필요했다.
차르인 이반 4세가 군대를 보내면 맞서 싸워줄 존재가 필요했다. 총사령관인 노부나가의 협조는 필수였다.
한편, 노부나가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공략을 위해선 이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무리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낯선 땅에서는 싸우기가 힘들었다.
“제가 도움이 될 진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스크바의 차르는 모든 것을 바꾸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알렉산드로가 전향하며 차르국의 배치 상황을 전부 까발렸기 때문에 신국은 차르국에 한 방 크게 먹이며 큰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러니 이반 4세가 군 배치를 그대로 놔두었을 확률은 낮았다.
“그래도 사람들을 침투시키려면 귀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기왕이면 원정군에 편성해주었으면 좋겠군요.”
“저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럼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알렉산드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노부나가의 이동은 느렸다. 신형 대포를 상당수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포병부터.
1차 원정군을 불러들이며 2차 원정군으로 대체하는 작업은 한 순간에 할 순 없었다. 워낙에 많은 숫자였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모이는 대로 훈련시키고 순차적으로 교대를 해야만 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때문에 노부나가는 다른 무엇보다 포병부터 교체하길 원했다. 신형 대포를 잔뜩 끌고 가서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해서였다.
총과 대포가 점점 개량되며 노부나가는 화기 신봉자가 되었다. 화약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불리해지지만 화약을 이용한 전투를 하면 병력 충원이 더욱 쉬웠다.
대포의 존재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대포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면 공성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대포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아하는 무기는 바로 신기전이었다.
신기전을 접한 노부나가는 문화 충격을 받았다. 대량의 화살을 쏘아 올리니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때문에 노부나가는 포병을 중시했다.
보병도 중요하지만 기선을 제압하기 좋은 무기는 역시 포병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때문에 포병대가 먼저 움직이게 된 것이었다.
‘포병대를 붙이고 기병을 돌려보내고.’
포병대를 끌고 갔다고 포병대와 교체할 생각은 없었다. 포병대를 더 늘리는 것이었다. 기병은 인근의 영지에서도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포병을 중시한 것이었다.
‘어서 도착했으면 좋겠군.’
노부나가의 목적지는 카자흐를 지나 카스피해를 접한 곳에 세워진 도시였다.
긴 여정이 노부나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랄 산맥.
이정은 부대와 함께 우랄 산맥을 누볐다. 험난한 산맥이었지만 이제는 지형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이정의 부대는 능숙하게 산을 타고 넘었다.
“놈들이 보입니다.”
전선은 오비강이 아닌 우랄 산맥으로 이동했다. 우랄 산맥에는 사냥감 이외에는 딱히 중요하다고 할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군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했다.
중요한 통로에 요새를 건설하기만 하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수시로 정찰하며 적이 요새를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이었다.
“포위한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이미 수도 없이 반복한 전투로 이정이 무엇을 원하는지 병사들은 다 이해했다.
한 줄기 바람처럼 흩어진 병사들은 산맥으로 기어들어온 모스크바 차르국의 병사들을 은밀히 포위했다.
이어서 이정이 활을 쏘자 병사들도 활을 쐈다.
순식간에 이어지는 화살 세례.
모스크바군은 반격을 위해 총을 쏘려 했으나 실패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화승총을 쏘려고 하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에 화살이 가슴에 박혔다.
아직까지는 능숙한 궁수가 화승총을 이용하는 총병보다는 연사가 더 빨랐다.
활에 능한 이정과 그 부하들이 우랄 산맥에서 맹활약 할 수 있는 이유였다.
모스크바군은 결구 도망치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계속 화살이 날아오니 기세가 완전히 꺾였다.
이정의 부대는 끝까지 적을 뒤쫓아 척살했다.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우랄 산맥을 넘어 적들을 위협하기 위해 신국 원정대는 중요한 위치에 요새를 짓고 있었다. 이를 눈치 챈 모스크바군도 견제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몇 개는 위장이었다. 원정대는 계속해서 유격전을 펼치며 적들을 교란하고 맞대응을 펼쳤다.
요새를 하나씩 지어나가다 보면 결국 지역을 장악하게 된다.
“공병들의 피해가 없도록.”
“알겠습니다.”
회의가 계속되는 동안 이황은 한쪽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다 끝나자 기대승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또 큰 전투가 벌어질까요?”
“벌어지겠지. 지금은 그냥 힘을 모으고 있을 뿐이니까.”
힘을 모은 만큼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을 예상하는 이황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평화를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평화란 것은 상대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했다. 원정군 생활을 하며 이반 4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이황은 전쟁을 멈추자는 소릴 할 수 없었다.
‘이쪽이 멈추면 좋다고 쳐들어 올 것이다.’
이반 4세는 잔혹한 폭군이었다. 이황의 입장에선 절대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말이 통하지도 않으며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대로만 하는 군주에게는 자신의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미 기호지세다.’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느 한 쪽이 끝장이 나야만 했다. 그렇기에 이황은 오히려 전력 증강을 위한 방책을 생각했다.
“상인들은 좀 어떻더냐?”
“잘 따르고 있습니다. 건설 회사도 잘 되고 있고요.”
척계광의 명으로 원정대에는 공병들이 많아졌다. 이황은 이렇게 생긴 공병들을 이용해 건설회사를 키우는 데 이용했다.
단순히 건물만 지은다고 팔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병들을 이용해 도로를 만들면 이야기가 달랐다.
원정대는 단단한 도로가 필요했다. 대포를 비롯해 보급을 제대로 하려면 역시 제대로 된 길이 있는 것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흙으로 된 길은 비가 오고 나면 진창이 되어 사용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보급로는 벽돌을 이용한 단단한 도로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벽돌을 생산하는 회사는 돈을 벌었다. 그리고 단단한 도로 근처에는 마을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역참이 있으니 역참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상인들이 이용하면서 많은 이들이 들리기 때문에 장사하기도 좋았다.
이황은 바로 이건 정보를 이용해 상인들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세력을 만들어 성장 방향을 알려주었다. 모두 현지의 생산력을 높여 군대를 더욱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총영주가 된 장거정은 이러한 이황의 행동을 적극 지원해주었다. 주변 영주들도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보고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공병들이 가진 건설 기술을 배우기 위해 건설 회사를 차린 이들은 안간힘을 썼다.
‘한양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
이황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했다.
실론섬.
타밀족은 점점 설 곳을 잃었다. 신국의 함대가 함께하며 빠르게 해안선을 정리하니 섬 안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안쪽에서는 싱할라족이 날뛰었다.
양쪽에서 공격을 당하니 피곤했다. 살기 위해선 뭉쳐야 했기에 타밀족은 계속 이동하며 뭉쳤다. 그리고 문제에 봉착했다.
신국군과 싱할라족을 견제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대규모로 뭉친 결과는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뭉쳤기 때문에 식량 보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대로라면 다 죽습니다. 오래 못 버텨요.”
끝이 보이는 전쟁이었다. 최근에는 공격이 뜸해졌다. 싱할라족은 물론 신국군도 포위만 하고는 공격하지 않았다.
다만 움직이지 못하게 가둬둘 뿐.
처음에는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식량 사정이 빠르게 나빠지자 금방 알게 되었다.
“우린 갇혔어요. 항복해야 합니다.”
“항복하면 다 죽을 거다.”
“살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진짜 다 죽습니다.”
타밀족은 결국 분열되었다. 몰이를 당한 끝에 거대한 병력으로 거듭났지만 결국 모래성이었다.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다. 그리고 주전파는 화평을 반대하며 항복하겠다고 하는 이들을 죽여 버렸다.
이 때문에 결국 집단은 주전파의 뜻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돌파한다. 배신자들이 앞에 서라. 돌파에 성공하면 용서한다.”
항복하려던 이들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주전파가 세력이 더 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두에 서서 죽음의 돌격을 준비해야만 했다.
이순신은 수많은 시체를 보자 이제는 시체 옆에서 밥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 무뎌진 것이었다. 죽어나가는 시체를 볼 때마다 격한 감정에 휩쓸려 아파할 수 없었다. 수없이 전투를 치렀고 시체를 보았다.
‘덧없구나.’
이순신은 점점 죽음에 대해 초연해졌다. 그리고 앞에 나서는 일이 많아졌다.
지휘관이 죽음을 무릎 쓰고 앞으로 나서는 것은 금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략 해적의 경우에는 큰 집단이 아니었다. 용장이 움직이기에 딱 좋았다.
처음에는 임거정이 선두에 섰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며 선두는 이순신의 차지가 되었다.
무력은 여전히 임거정에게 뒤쳐졌으나 죽음의 공포를 극복한 이순신을 막을 타밀족은 없었다.
“식사 받으시죠.”
병사 하나가 다가와 식사를 주었다. 묽은 카레와 빵이었다. 물을 부어 손을 간단하게 씻고는 자리를 잡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빵을 카레에 찍어 입에 넣었다.
카레향이 가득 퍼졌다. 순간 모든 생각을 멈추고 식사에 열중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엇인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소중했다. 주변에서 식사를 하는 병사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식사는 금방 끝났다. 그릇을 다시 취사병이 일하는 곳에 반납하고는 일어서서 부하들의 상황을 살폈다.
부하들의 상황을 살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뭔가 원하는 거 있나?”
“여자 안고 싶습니다!”
한 병사의 외침에 이순신은 피식 웃었다. 죽음이 가득한 전장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한 일에 동참해주었다.
“그래, 돌아가게 되면 알아보지. 다른 건?”
“저는 폐하가 즐기신다는 매운 통닭을 먹고 싶습니다!”
“그것도 가능할 것 같군. 또 다른 건?”
이순신은 계속 물었다. 병사들은 아무도 우울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우울한 얘기를 꺼내면 이순신이 뒤로 빼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뒤로 빠지게 되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기는 힘들었다.
뒤로 빠진다는 생각 자체가 배신하는 것 같아 어느 누구도 뒤로 빠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함께 싸운 전우가 형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순신은 바로 자신들을 선두에서 이끈 대장이었다.
병사들은 모두 이순신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상태였다.
잡담과도 같았지만 이순신은 모든 요청을 머리에 새겼다. 타밀족과의 전쟁이 끝나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해줄 생각이었다.
대화를 하고 자신의 막사에 들어가게 된 이순신은 조용히 나무토막을 들고 조각을 시작했다. 조각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는 잡념이 없어졌다. 손을 움직이고 오직 조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가만히 쉬다보면 자극적인 전장의 기억이 떠오르기에 차라리 이렇게 뭐라도 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이순신에게는 마음의 평화를 찾는 시간이었다. 허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전투 준비!”
징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외침에 이순신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타밀족은 포위를 뚫기 위해 가장 약해보이는 쪽을 골랐다. 난전으로 들어가면 싱할라족은 이길 수 없었다.
난전 속의 싱할라족은 그야말로 악귀였다. 반면 신국의 병사들은 조금 무른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신국은 원거리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충돌하기도 전에 사상자가 많이 나올 위험이 높았다.
그러다 고민해 선택한 것은 결국 신국군의 방향이었다. 급조한 엉성한 방패를 배신자들에게 들려준 주전파는 명령을 내렸다.
“돌격!”
죽음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신국 병사들은 당연히 응전했다. 신기전을 쏘고 대포를 쏘았다. 그리고 쇠뇌를 날려댔다.
수많은 이들이 쓰러졌다. 그러대 타밀족은 멈추지 않고 돌격했다. 이대로 멈춰도 어차피 다 죽게 될 상황, 목숨을 건 돌격은 멈추지 않았다.
워낙 수가 많았기에 많이 죽였음에도 결국 타밀족은 1열에 도달했다. 그리고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방패를 앞세워 막자 타밀족은 앞사람이 시체가 되면 시체를 들고 함께 밀었다. 더 많은 무게로 눌러 방패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였다.
“열어.”
이순신의 명령에 방패로 막고 있던 이들이 양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며 손에 든 검으로 마구 쑤셨다.
계속 밀던 이들은 안쪽으로 밀고 들어가며 속수무책으로 찔렸다. 이순신도 검을 휘둘렀다.
안쪽으로 파고든 이들은 모두 시체가 되었다.
“닫아.”
이순신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직 전투에만 집중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