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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다
포르투갈 선박들은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상선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다른 나라의 선박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투 준비!”
그렇다고 쉽게 항구를 내줄 순 없었다. 시장은 문을 닫았다. 항구를 지키던 치안 병력은 모두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항구의 포대는 배가 가까이 온다면 쏠 준비를 마쳤다.
긴장이 팽팽해졌다.
후지바야시 켄은 작은 배를 내렸다.
“가서 전해라. 포르투갈인들만 넘겨주면 그냥 가겠다고.”
목숨을 건 병사들이 배에 올랐다. 그리고 열심히 항구를 향해 노를 저었다.
항구에서는 작은 배 하나만 다가오니 어떻게 반응하질 못했다. 허나, 포르투갈인들은 의도를 눈치 챘다.
“막아야 합니다.”
“그렇죠. 막아야죠.”
소수의 인원만 먼저 보낸다는 것은 요구 사항이 있다는 것. 무굴제국과 전쟁 중인 신국이 캘리컷에서 요구할 사항이라고 하면 하나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자신들을 신병인도를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 챈 포르투갈인들은 슬쩍 부두를 향해 움직였다.
신국의 사자를 죽이기 위해서.
허나, 시도는 금방 가로막혔다.
“어디로 가는 건가?”
캘리컷 치안대는 자리를 이탈하려는 포르투갈인들을 막았다.
“더 앞에서 싸우려고 합니다.”
“그럴 것 없다.”
치안대에서 일하다보면 눈치가 생긴다. 포르투갈인들의 움직임이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많았다. 신국이 온다고 하니 불안해서 장단에 놀아주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어디서 거짓말을!’
신국이 작은 배를 보낸 것에서 대화의 여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치안대는 포르투갈인들을 막았다. 적어도 얘기나 들어보고 싸울 생각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포르투갈인들은 불안했다. 초조했다.
“그냥 죽여 버리죠. 어차피 전투가 벌어지면 어쩔 겁니까?”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겨도 죽고 져도 죽는 짓을 왜 합니까?”
“끄응.”
무리한 짓을 했다가는 신국을 물리친 뒤에 현지인들에게 탈탈 털리게 된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 하자니 답답했다.
불안과 초조한 시간은 결국 끝을 맞이했다.
“포르투갈인들의 신병과 선박을 인도한다면 공격하지 않겠다.”
“정말인가?”
“믿지 못한다면 협상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그쪽이 더 잘 알지 않나? 보험을 원하는가?”
“그렇다.”
무턱대고 믿어줄 순 없었다. 순순히 상륙을 허락했다가 갑자기 적으로 돌변하면 위험하니까.
“그렇다면 포르투갈인들을 포박해 선박에 태워 바다에서 넘겨주고 돌아가면 될 일 아닌가?”
“괜찮군. 그렇다면 우리가 직접 인도하겠다.”
어차피 선박을 이용한 해상전은 필패였다. 이미 자리를 잡은 신국의 함대가 포문을 열기만 하면 순식간에 해상전은 끝나게 된다.
‘이 녀석들만 넘겨주고 끝난다면 최고다.’
이후 캘리컷 병사들이 포르투갈인들을 마구잡이로 사로잡았다.
“뭐요! 어떻게 이럴 수가!”
“신국과 전쟁을 한 것은 포르투갈이다. 우리가 아니다.”
대신 피를 흘려줄 의무 따윈 없었다. 그저 거래를 했던 상대일 뿐. 오랫동안 거래를 해 친분이 쌓였다고 해도 가족은 아니었다. 동포도 아니었다. 그냥 오랜 거래 상대일 뿐.
함께 죽어야 할 정도의 거래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선동은 성공했지만 단 한 척의 배에 탄 병사들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 말 몇 마디에 포르투갈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모두 사로잡혔다.
포로 인도는 해상에서 이뤄졌다. 캘리컷 치안대는 포르투갈 선박에 포로를 가득 태워 넘겨준 뒤 자신들을 뒤따라온 캘리컷 선박에 타고 무사히 돌아갔다. 긴장이 풀린 것은 신국 함대가 정말 사라진 뒤였다.
“그런데 계속 싸우러 갈 모양입니다.”
“앞으로 신국과 친하게 지내는 게 좋겠어. 포르투갈인들은 이제부터 신국에 넘긴다.”
엄청난 해상 세력의 등장에 캘리컷은 말을 갈아탔다.
포로를 태운 포르투갈 선박들은 실론섬으로 돌려보내졌다. 이후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는 해안을 따라 계속 북상했다.
이러한 사실은 포르투갈 세력에게도 알려졌다.
“고아는 포기한다!”
“하지만!”
“포기한다! 우린 뭄바이에서 집결한다!”
포르투갈은 위기에 처했다. 뛰어난 무기와 선박 그리고 항해술을 바탕으로 인도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국과 충돌하게 되니 사정없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무기의 질은 물론 숫자에서도 신국이 유리했으니까.
포르투갈 세력은 고아를 떠났다. 한 명도 남김없이.
나중에 고아에 나타난 후지바야시 켄은 포르투갈 선박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래도 공격한다. 저기 배들이 있지 않나?”
“나포할까요? 아니면?”
“부셔. 해안 포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면 배 망가진다.”
배를 파괴하라고 명령을 내린 이유는 간단했다.
고아는 무굴제국의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악바르는 연일 올라오는 보고에 치를 떨었다.
“지독한 놈이군.”
패배의 소식은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만만치 않았다. 풀리는 게 제대로 없으니 똥줄이 탔다.
“병력을 더 투입한다.”
그렇지 않아도 징병을 하고 있었다.
“너무 무리하게 되면 반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반란을 일으킬 것 같은 놈들부터 보내. 그리고 옆에 사람 붙인다.”
암살자를 몰래 붙여놓으면 반란을 일으킬 경우 빠르게 제거가 가능했다.
‘밀리고 있다니.’
처음 전쟁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어느 정도 밀고 들어갈 것을 예상했었다. 신국이 거대하다고는 하지만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형도 자신의 군대가 더 익숙한 곳이었다. 그런데 밀리고 있었다.
‘보통이 아니군.’
화약 무기가 문제였다. 철저히 자신이 유리한 상황에서 싸우고 있었다.
‘허를 찔러야 하는데.’
악바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가 적군의 허를 찌르는 것은 군주인 악바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부대 지휘관의 능력이나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내 장군들이 모자라다는 건가?’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페구.
화약 보급을 받은 신페이는 바로 지휘관들을 소집했다.
“드디어 요청한 화약들이 왔다. 이제부터 섬멸에 들어간다.”
오직 이 날만 기다리고 있던 지휘관들은 흥분한 표정이었다.
“흥분은 금물이다. 진정하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완수하기만 해라.”
이후 페구에 있는 신페이의 부대는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밤이 되자 어둠을 틈다 은밀하게 대량의 화차들이 성밖으로 나갔다.
“어이. 확실히 다 청소했지?”
“했습니다.”
“적 위치는 확인했어?”
“했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좋아.”
특수부대가 대신 정찰을 해주었다. 이후 포병들은 화차를 옮겼다. 나무로 된 화차는 대포보다 끌기가 편했다. 포병들은 적이 있는 위치가 아니라 페구의 성벽을 보며 자신들의 위치를 측량했다.
“여기가 맞습니다.”
“좋아 준비해.”
적의 위치를 보고 어디서 신기전을 쏘면 날아갈지 미리 계산하고 나온 것이었다. 때문에 성벽을 보며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한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는 적을 관측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반면 불빛으로 밝힌 성벽은 확인이 가능했다.
끝없이 늘어선 화차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줄을 섰다.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대열을 갖출 때까지 무굴제국군의 공격은 없었다.
“좋아. 간다.”
1호차에 불이 붙자 다른 화차에도 불이 붙었다. 이후 화약에 불이 붙으며 신기전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밤하늘에 불꽃을 뿌리며 날아오른 신기전이 뜬 것을 본 무굴제국군은 몇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을 본 병사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를 못했다. 하지만 매일 밤 특수부대의 괴롭힘을 받았기에 반응은 빨랐다.
“적이다!”
대기하던 병사들이 즉시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잠을 자던 이들도 밖으로 나오려 했다. 그러는 사이 화살비가 내리꽂혔다.
“아아아아악!”
“화살이다!”
“몸을 숨겨라!”
갑작스러운 화살 공격에 정신이 없었다. 허나 더 이상 공격이 오지 않고 잠잠해지자 몸을 숨겼던 이들은 다시 뭉쳐서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신국 포병들은 조용히 화차를 끌고 페구 안으로 피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매일 밤마다 적의 진영에 신기전이 날아왔다. 처음에는 잘 반응하지 못했지만 이젠 알아차렸다. 적의 공격을 두려워한 무굴제국군 사령관은 급기야 군대를 후퇴시켰다.
허나, 하루거리 정도 후퇴한 것으로 신페이를 멈출 순 없었다.
“드디어 놈들이 물러났다. 이제 우린 폐하의 명령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지금부터 놈들을 전멸시킬 작전을 논한다.”
신페이의 부하들은 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그냥 기병으로 밀어버리죠? 확인된 병력이 이제 삼분의 이로 떨어졌는데.”
“아직 쌩쌩합니다. 그 놈들하고 난전이 벌어지면 힘듭니다.”
“조금씩 죽이는 건 어떻습니까? 제일 안전하고 확실한데.”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신페이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모든 장수들이 말을 끝내자 한 가지 의견을 선택해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조금씩 죽인다. 단, 그들을 몰이한다.”
“몰이요?”
“그래, 우린 무굴제국을 향해 진군하는 것이다.”
화약을 대량으로 주문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럼 역시 기병이?”
“아니다. 기병과 함께 보병이 움직인다.”
“하지만 보병은 느립니다. 만약에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신군은 페구를 떠나 무굴제국군을 잡기 위해 움직였다.
후퇴했던 무굴제국군은 결국 계속 후퇴하게 되었다. 밤이면 특수부대가 쫓아와 괴롭혔다. 낮에는 기병들이 쫓아와 괴롭혔다.
화끈하게 붙는 것도 아니었다.
야금야금 피해를 주고 물러났다. 대량의 큰 피해도 아니고 10명 혹은 20명 이런 식으로 피해를 입힐 뿐이었다.
부상자가 점점 늘어나자 무굴제국군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약이 없습니다.”
“젠장. 다음 보급은?”
“일주일은 기다려야 합니다.”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부상자가 많으니 약의 소모가 빨랐다.
‘이제 난 끝인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임무 완수는커녕 대포를 전부 잃었다. 엄청나게 귀중한 대포를. 여기에 병력도 상당수 잃었다. 여기에 후퇴하는 상황. 이대로 계속 후퇴하면 지휘관은 확실히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병사들을 살려서 돌려보낸다면 자기 하나로 끝날 수 있었다. 최소한 가족들은 살 수 있었다.
‘저들만이라도 무사히 돌려보내야 한다. 그래야 가족이 산다.’
무굴제국군 지휘관은 결국 결심했다. 더 이상 싸우려고 버텨도 추격에 나선 신국군을 잡을 순 없었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기의 문제였다.
사기가 죽은 병력으로는 작전 실행에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완벽한 작전이라도 이것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병사였다.
병사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있다면 작전 중에 어떤 일을 벌일지 몰랐다. 가장 예상하기 쉬운 것은 탈영이었다. 사기가 엄청나게 떨어졌으니 싸우란 말에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싸우면 반드시 죽고 도망가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도망치는 쪽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탈영이 한 번 시작되면 가속화되기도 한다. 이를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군대는 통솔이 되지 않게 된다.
“부상병들을 남기고 간다.”
“설마?”
“멀쩡한 사람들이라도 살아야지. 저들이 악마가 아니라면 부상병들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포로가 많이 생기면 추격이 늦어질 것이라 판단한 것이었다. 그것도 멀쩡한 포로가 아니고 부상병이라면 더욱 더 느릴 수밖에 없었다.
“내겐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너희들은 내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결정이 알려지자 부상병들은 절규했다. 하지만 멀쩡한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지휘관이 자신들이 원하는 결정을 내려주었으니까. 그리고 명령을 내림으로써 병사들은 후퇴할 명분을 얻게 되었다. 그러니 욕하지 않고 계속 지휘에 따랐다.
“몸을 가볍게 하라.”
무거운 무기들은 적이 수거해 쓰지 못하게 파괴했다. 많은 무기를 버리고 오직 식량만 챙긴 무굴제국군은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뒤에 남겨진 것은 절규하는 부상병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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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