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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72화 (172/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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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다

“한 방 먹었군.”

신페이는 피식 웃었다. 부상병들을 버리고 도망갈 줄은 몰랐다.

“어찌할까요?”

“오히려 잘 됐다.”

“예?”

“신경 쓸 것 없다. 포로들은 모두 치료를 해주고 심한 대우는 하지 마라. 그들은 내가 직접 관리할 것이니.”

신페이의 부하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굴제국군을 추격해서 전부 씹어 먹을 기세였다. 그런데 갑자기 포로들을 치료하고 대우해주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속으로 외친 이들도 있을 정도. 다만 몇몇 심복들만이 신페이의 속셈을 간파했다.

‘저 눈빛, 아예 통으로 씹어 드실 생각이시군.’

‘전쟁. 어쩌면 더 빨리 끝날지도.’

신페이와 심복들이 생각하는 것은 단순했다.

배신당한 이들을 전향시키는 것. 그리고 첩자로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사실 북해도에서는 각지의 전쟁 포로들을 끌어들여 요원으로 키우는 일을 했다. 아무리 북해도의 요원들이 뛰어나다고 해도 피부색이나 외형이 너무 심하게 차이가 나는 곳에는 침투가 거의 불가능했다.

백인들이 우글거리는 곳에 황인이 끼어들면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 정보원으로 활동하게 되면 활동 내역이 전부 까발려질 수준이다. 쉽게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페이는 각지의 포로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최소한 정보원으로 쓰는 것이었다. 어린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자신과 같은 광신도로 만들었다.

‘배신당한 아픔이 있으니 작업은 수월하겠어.’

신페이의 계산 대로였다.

버려진 무굴제국군은 전부 전향하는 것은 물론 개종까지 했다. 자신들을 상처 입힌 신국에 대한 미움보다 자신들을 버린 무굴제국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목숨 걸고 싸웠는데 어려운 상황에 버려진 원한은 뜨거웠다.

독방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난 신유성은 멍한 눈으로 가만히 벽에 기댔다. 서늘한 벽의 느낌에 잠이 조금씩 달아났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종을 울리니 바로 시종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아침으로 국수가 먹고 싶다. 얼큰하고 시원하게.”

“알겠습니다. 마실 것은?”

“음, 망고 우유로 하겠다.”

“금방 대령하겠습니다. 폐하.”

“그래.”

시종이 나간 뒤 알몸으로 일어난 신유성은 운동을 시작했다. 검을 뽑아 방안에서 마구 휘둘렀다. 뛰어다녀도 될 만큼 큰 방이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다.

‘놈의 움직임이 상당했지.’

가상의 적으로 떠올린 것은 바로 아사신이었다. 마약을 한 아사신은 두려움과 고통을 모두 버린 것 같았다.

‘살인 기계.’

팔이 잘렸어도 그대로 덤볐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신유성의 검술은 고통과 두려움을 모르는 이를 상대로 한 방식으로 변했다.

‘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상대를 압도하는 방법 밖에 없다. 호각은 불리해. 차라리 방어적으로 나가서 시간을 끄는 편이 낫다.’

꼭 죽일 필요도 없었다. 시간을 벌기만 하면 신유성의 승리였다. 항상 수많은 친위대가 따라 붙었다. 이들이 달려올 때까지만 버티면 암살자의 패배였다.

방어적으로 나가며 적의 공격을 차단하는 검로를 찾아 움직였다. 여러 가지 경우를 상정하며 최적의 검로를 찾았다.

방어적인 검술 수련이 끝나자 다음은 공격이었다. 방어에서는 검로를 확인했다면 공격에서는 힘을 쏟아내며 최고의 속도로 움직였다.

힘을 아껴선 압도하기 힘들었다.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살벌하게 퍼졌다.

수련이 끝난 것은 음식이 들어온 뒤였다.

매콤한 국물에 잠긴 국수와 망고 우유. 국수를 입에 넣자 화끈함이 퍼졌다. 많은 이들이 고통스러워할 맛이었으나 신유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국수를 후딱 먹어치웠다. 그러면서 중간에 망고 우유를 조금씩 마셔주었다.

‘크하! 이 맛이지.’

우유로 인해 얼얼함이 가시면 다시 국수를 먹었다. 그리고 국수를 다 먹은 뒤에는 망고 우유를 다 마셨다. 달달한 느낌에 시원해지기까지 했다.

국물이 많이 남았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맹물이 아니라 소고기와 각종 해산물을 넣고 끓인 육수로 만든 국물이었다.

신유성이 기억하는 라면과는 격이 틀렸다.

허나, 신유성은 마시지 않고 버렸다.

‘맛있는 국물을 버리는 난 사치스러운 남자.’

별 생각은 없었다.

뜨거운 맛을 본 이후에는 씻기 위해 움직였다.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복도를 거닐었으나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았다.

나무로 만든 욕조에는 시원한 물이 담겨 있었다. 시원하게 몸을 담그고 씻은 뒤에는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폐하, 복속한 곳이 또 있습니다.”

최근 들어 복속하는 곳이 늘어났다. 보르네오 섬을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저마다 복속해왔다. 신유성이 직접 나타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적국을 밀어내는 것에 공포를 느낀 것이었다. 또한 탐험대가 탐험을 한 뒤에는 각 영주의 개척군이 원주민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영주로 만드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급속도로 바다에서 확장을 하니 불안했다. 행여나 시비가 붙어 전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복속을 신청한 것이었다.

“이제 거의 다 끝났군.”

“그렇습니다.”

“모든 지역에 사람을 보내 책과 지식을 받아내라. 알겠지만 식생활과 의학에 대한 것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식문화를 조사하는 이유는 그 곳에 새로운 작물을 발견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의학은 당연히 의학 발전을 위한 것.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약초를 한 가지라도 더 알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어떤 효능이 있는지 판단하는 것은 의조에서 할 일이었다.

‘무굴제국만 처리하면!’

지도를 바라보는 신유성의 눈빛은 불타올랐다. 동남아시아는 이제 손에 들어왔다. 자잘한 섬들이 있으나 이들은 영주들이 알아서 처리하게 되어있었다. 신유성은 그저 세금이나 잘 받아내면 그만. 뉴기니섬과 호주 그리고 그 뒤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뉴질랜드와 여러 섬들은 차차 개척해나가면 그만이었다. 대단한 나라라고 할 것이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무굴제국만 먹으면 북방 원정군하고 이어지겠군.’

무굴 제국 이후에는 조금만 더 가면 아라비아 반도가 나온다. 여기서 더 가면 아프리카였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지중해로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아직은 오스만 제국의 해상 세력이 약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에스파냐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해상 세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지중해에서 서로 싸우게 내버려둬야지. 더 나갈 필요는 없어.’

무굴제국만 무너뜨린 뒤, 신유성은 유럽과 오스만 제국이 싸우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내가 오스만 제국과 싸우게 되면 에스파냐 놈들만 좋은 일이지.’

무굴제국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다.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였으니까. 무엇보다 악바르는 생각대로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이쪽은 정리만 해도 몇 년 걸리겠네. 그래도 재정 문제가 없으니 다행이다.’

전쟁이 길어질 것 같아서 고민이었으나 중원을 비롯해 카자흐 지역이 크게 발전하면서 재정 문제가 크게 해소되었다.

이이와 이황의 활약 덕분이었다.

‘두 사람. 정말 고마워.’

이이는 총영주로 있으면서 북경을 엄청나게 발전시켰다. 북경과 한양을 잇는 해상교역로는 최고의 사치품이 오가는 명품 교역로였다.

북경에도 북경 야구장이 있었으며 백화점이 들어섰다. 또한 엄청나게 큰 경마장까지 지어졌다.

폭발적인 발전으로 세금이 더욱 늘어났다. 하지만 세금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물품 생산능력이었다.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공장에서는 연일 물건을 생산해냈다. 하지만 이를 소비할 집단은 계속 늘어났다. 새롭게 신국의 영주로 합류한 이들은 공장 생산품들을 원했다. 대량의 면포와 생필품이 팔려나가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금속 제품이 팔리면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바로 신유성이었다. 신국의 모든 지하자원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 적당한 가격에 팔아도 많이 남았다.

“전쟁은 앞으로 몇 년 정도 더 할 수 있을 것 같나?”

“지금 추세라면 10년도 가능합니다.”

“좋군.”

“그리고 페구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보고 내용은 간단했다. 무굴제국군이 도망쳤으니 진군을 허락해달란 이야기였다.

‘이 사람이.’

화약을 대량으로 요구할 때부터 알아봤다. 지키라고 했으나 아예 쫓아내버린 것. 하지만 탓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시킨 일은 제대로 해냈으니까. 더구나 버려졌던 부상병들을 이용한 작전 제안은 매우 흥미로웠다.

“신페이에게 독립작전권을 내린다.”

결과를 만들어냈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허락을 한 것이었다. 하나하나 황제가 다 참견하며 지휘를 하다보면 전선에서의 반응이 느려지게 될 수 있었다.

‘지금은 빠르게 몰아쳐야 할 때.’

모든 적들이 후퇴하는 상황이니 빠르게 몰아칠 필요가 있었다. 재정비 할 시간을 주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그러자면 보고를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전선에서 움직여줘야 했다.

신유성은 신페이 외에도 이에야스와 나가오 가케토라에게도 독립작전권을 내렸다.

후지바야시 켄의 함대는 고아의 선박을 모두 침몰 시켰다. 아주 작은 어선까지도 남기지 않았다.

고아의 해안 포대에 있는 대포들은 불을 뿜어보았으나 포탄이 함대에 닿는 일은 없었다.

함대의 대포가 더 월등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선박이 침몰당한 고아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켄은 유유히 함대를 뭄바이로 진격시켰다.

“적들이 보입니다.”

뭄바이에 가까이 다가가자 50척에 달하는 포르투갈 함대가 나타났다.

“꽤 모았군.”

군함의 숫자만 놓고 봐도 신국 함대가 유리했다.

“어떻게 할까요?”

“방심하지 말고 포격전으로 간다. 포위를 시작해라.”

하지만 포르투갈 함대는 켄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는 않았다.

‘바보는 아니란 거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없었다. 포르투갈 함대는 계속 거리를 유지한 상태로 알짱거릴 뿐이었다. 포격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신국이 계속 포탄을 날리다 화약이 다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반나절 가까이 제대로 된 교전이 없었다.

“지치길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 우스운 일이지.”

아무리 함대의 숫자가 많다고 해도 전투를 오래하면 사람은 지친다. 그리고 지치게 되면 판단이 흐려지고 조급해지기도 한다. 피곤해졌을 때 실수도 잘 나온다. 하지만 피곤해지는 것은 양측 다였다.

정신력이 강한 쪽이 유리해지는 것이 장기전.

포르투갈 함대는 요행을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전력에서 뒤지니 실수를 바라는 것이었다.

“20척씩 휴식을 취하라고 해라. 차륜전이 뭔지 보여준다.”

해상 차륜전. 덤벼들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이니 꺼낸 계책이었다. 더구나 20척이 움직이지도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유혹을 느낄 수 있었다. 얼른 다가와 공격하고 도망가고 싶은 욕구.

한 마디로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허나, 포르투갈 함대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밤이 찾아왔다. 밤이 되어도 포르투갈 함대는 항구로 돌아가지 않았다. 신국 함대로 항구로 들어갈 순 없었다.

그렇게 해상에서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오히려 낮보다 더욱 긴장했다.

“이동한다.”

해가 지자 켄은 고아 방면으로 함대를 약간 빼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대해가 있는 서쪽으로 약간 더 움직였다. 행여나 뒤쫓았을 경우를 대비한 움직임이었다.

“적의 함대가 우릴 지나쳐 캘리컷이나 다른 곳으로 향하면 어찌합니까?”

“그건 걱정할 것 없다.”

실론섬에도 함대를 어느 정도 남겨두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포르투갈 함대가 무리하게 말라카 방면으로 움직인다면 모두 전멸하게 될 뿐이었다.

‘적이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겠지.’

켄의 예상대로였다.

포르투갈 함대는 뭄바이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이대로 싸워봐야 승산이 보이질 않습니다.”

켄이 지휘한 함대의 전투 방식에는 허점이 없었다. 계속해서 적의 대포 사정거리를 넘나들며 지치게 만드는 것만이 포르투갈 함대가 펼칠 수 있던 유일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걸려들지 않으니 더 이상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우린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함대의 사령관은 고개를 저었다. 불리하지만 물러나기 힘들었다.

“그래도 함대를 보존해야 합니다. 이대로 계속 싸웠다가 모든 것을 잃으면 그땐 이도저도 아니게 됩니다.”

“으음!”

불쾌한 기분을 숨길 순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말라카를 끈질기게 노렸던 것이 문제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손에 넣었다가 빼앗긴 기분이었으니까.

‘이대로 물러난다면.......’

함대는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의 출세는 끝이었다. 가문의 앞날도 어찌될 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싸우자니 끝이 보였다. 절대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후퇴한다.”

결국 사령관은 후퇴를 명령했다.

‘다시 돌아오겠다!’

사령관은 어떻게 해서든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훗날 포르투갈 함대 사령관은 절대 돌아오지 못하고 자신의 영지에서 조용히 최후를 맞이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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