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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다
날이 밝았다. 포르투갈 함대는 사라졌다. 며칠 동안 해역을 샅샅이 뒤진 후지바야시 켄은 적이 후퇴했다고 판단했다.
“추격합니까?”
“됐다. 놈들 때문에 일정을 늦출 순 없다. 뭄바이를 점령한다.”
뭄바이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함대의 해병대가 상륙했다. 사략 해적으로 등록된 이들도 해병대와 함께 상륙했다.
뭄바이는 힘없이 무너졌다. 해병대의 움직임을 막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순신 또한 부하들과 함께 포대 공략에 앞장섰다.
“돌격!”
다른 것은 필요 없었다. 포대를 공략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높은 곳에 위치한 포대는 대포의 원래 사정거리보다 더 길었다. 그리고 아래에서는 여간해서는 포대를 포격하기가 어려웠다. 가까이 붙으면 각도가 나오지 않았고 멀면 포탄이 닿질 않았다.
하지만 신국에는 신기전이란 무기가 있었다.
포대 근처로 다가간 이순신의 부대는 개조된 화차를 이용해 포대를 조준했다. 사람이 맞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견제가 중요했다.
“쏴!”
화약의 힘에 의해서 높이 치솟은 신기전이 포대의 병사들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그러는 사이 이순신은 부하들을 이끌고 포대를 향해 돌격했다.
“헉! 헉!”
심장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순신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늦게 도착할수록 피해가 커지니까. 다리를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죽어!”
포대의 포르투갈 병사가 창을 내지르자 잽싸게 검을 창대에 붙였다. 슬쩍 밀어내는 것으로 공격을 피한 이순신은 그대로 앞으로 움직이며 검을 밀었다.
창대를 타고 움직인 검은 포르투갈 병사의 손가락을 순식간에 잘라냈다. 이어서 번뜩이자 병사의 목에서 피가 터져나왔다.
얼굴에 피가 튀었지만 이순신은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적들은 놀라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순신에게는 느리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검을 번뜩이자 병사들은 모두 쓰러졌다. 포대를 점령한 이순신은 그제야 멈춰서 아래로 신호를 보냈다. 점령했다는 소리였다.
이후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거 대장이 다 해서 우린 할 일이 없네요.”
“시체 정리하고 대포 확인해. 그리고 잠깐 쉬었다가 다른 곳으로 간다.”
“알겠습니다.”
잠시 호흡을 고른 이순신은 몸을 일으켰다. 휴식을 취하니 긴장이 풀리며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후우.......”
하지만 아직 쉴 때가 아니었다. 뭄바이를 빨리 점령하고 정리해야만 했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뭄바이는 점령당했다. 버텨보려고 했으나 소용없었다. 지속적으로 신기전과 포탄을 퍼부어대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여기에 쇠뇌를 든 병사들도 무시무시했다. 마주치면 죽음이었다.
“책과 장부를 먼저 챙긴다. 종이는 하나도 버리지 말고 전부 챙겨라.”
발견한 종이의 가치에 따라 배당이 주어진다. 귀중한 지식이라도 담겨있다면 이를 발견한 병사는 땡 잡는 것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항상 종이를 소중하게 여겼다. 물론 모든 종이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종이보다는 귀금속에 집중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종이를 훼손하지는 않았다.
종이는 뭐가 되었든 일단 상관에게 전달하는 것이 신국 군대의 규율이었다.
뭄바이의 책들과 종이는 모두 털어서 빈 보급선에 실었다. 돌아가는 길에 호위함과 함께 보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분석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할 일.
“포로들은 어떻게 할까요?”
“여기 놔둬봐야 소용없으니 모두 후방으로 보낸다. 폐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전쟁 포로가 상당했다. 뭄바이에는 포르투갈 사람만이 아니라 무굴제국의 사람들도 상당했다. 눈치 빠른 이들은 뭄바이를 떠났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모두 사로잡혔다.
“남은 무기는?”
“한 번 정도 전투를 치를 정도는 됩니다.”
“그럼 돌아갔다가 다시 오는 게 좋겠군. 포대를 정리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켄은 1차 약탈을 끝냈다. 포대의 대포를 모두 철거하고 뭄바이 안의 사람들과 귀중품을 모두 털어갔다. 책과 종이도 마찬가지였다.
“먹고 싶은 건 마음껏 먹으라고 해라. 갖고 싶은 것도 가지라고 해.”
병사들은 먹고 마시고 놀지 않고 약탈에 열을 올렸다.
다음 날, 함대는 유유히 뭄바이를 떠났다.
졸지에 뭄바이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뭄바이의 패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악바르에게 전해졌다.
“뭐라고? 뭄바이가?”
“다음에는 점령될 것으로 보입니다.”
“방법이 없나?”
“없습니다.”
화약을 대량으로 묻은 뒤 날려버리는 방법이 떠올랐지만 그럴만한 양의 화약을 보내기는 힘들었다.
“후우.......”
사방에서 조여드는 신국의 저력에 악바르는 긴장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때였다.
‘더 끌어들여서 피해를 입힐까? 아니면 전선을 유지할까?’
생각해보면 여러 방향으로 분산된 전력도 문제였다. 신국을 압도할 수 있었다면 빠르게 승리를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했다.
‘끌어들인다.’
전선을 고착시켜 시간을 끄는 방법은 아무래도 좋지 않았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간 부대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인나웅은 패했고 라지푸트족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방면에서 패해서 후퇴 중이었다.
그 동안 승리를 거듭하며 자신감에 차있던 악바르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았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군대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전력도 충분했다. 오스만제국의 지원도 있었다.
‘어디서 막아야 할까?’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다.
현재는 아그라를 중심으로 통치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곳을 떠나면 안 되는데.’
무굴제국은 종교적인 문제가 잠재하고 있었다. 많은 힌두교 신자들이 악바르의 지배를 받아들였지만 이를 모두 달가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굴복한 것뿐이었다.
만약 악바르가 후퇴를 하게 된다면 힌두교 신자들이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그라에서 계속 있는 것도 문제였다.
인도 전역을 통치하기에는 적당한 위치일지는 몰라도 뭄바이에 신국이 상륙한 이상 좋은 곳은 아니었다.
‘놈들이 북상하면 곤란해.’
악바르가 태어난 출생지, 파키스탄 지역의 시드를 비롯해 주변을 휘저어버리면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근간이 흔들리면 휘하의 신하들이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경우 허수아비가 된다.
결국 악바르는 후퇴하기로 했다. 힌두교 지역이 반란을 일으키는 한이 있더라도 근간은 지켜야만했다. 하지만 그냥 후퇴할 순 없었다.
“사절을 보낸다. 화평을 맺는다.”
불리함을 느낀 악바르는 시간을 끌기 위해 사신을 보내기로 했다.
사신이 한참 신유성이 있는 말라카로 향하고 있을 때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에야스는 죽어라 바인나웅을 뒤쫓았다. 나가오 가케토라는 서둘러 요새를 완성한 뒤, 병력을 충원 받아 적과의 전투에 나섰다. 처음에는 약간 고전했던 가케토라는 금방 적에게 익숙해져 결국 패배를 안겨주었다.
무굴제국과의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카 진출에 문제가 발생했다.
“이제 그냥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든 남사고는 더 이상 배를 타기 힘든 몸이 되었다. 몸이 약해져서 항해를 버티기 힘들어진 것.
“하지만.”
“쉬셔야 합니다. 이제 배를 타는 건 힘듭니다.”
한양의 병원에 입원하게 된 남사고는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눈을 감으면 바다가 보였다. 거친 바다를 건너 발견한 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새로운 땅과 사람들.
남사고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즐거웠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제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의원이 나가고 홀로 병실에 남겨진 남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부자들만 이용하는 병원이라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보통은 의원들을 집으로 부르지만 의조에서 세운 병원에는 어의가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때문에 몸이 좀 아프다 싶은 부자들은 모두 병원에 입원했다.
허나, 병실의 고급스러움은 새로운 땅의 천막보다 덜 즐거웠다. 안락하긴 하지만 갑갑했다.
매일 새로운 것을 보고 확인하던 즐거움에 빠져있던 남사고에겐 화려한 병실도 갑갑한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음.”
괴로움에 결국 소일거리를 찾아 움직였다. 기력이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아예 몸을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붓하고 종이 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병원에 있는 간호사에게 부탁하니 금방 준비되었다. 입원했다가 심심해진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준비되어 있던 덕분이었다.
남사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해 글로 남기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아메리카에서 만난 사람들의 종교와 풍습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글로 남겼다.
한편, 남사고가 병원에 입원하자 아메리카 진출의 책임자가 부재인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할까요?”
“일단 임시로 빛나는화살을 책임자로 임명하고 그를 도와줄 사람을 보내라. 그리고 사람을 찾아봐야겠지.”
이지번과 이지함은 머리를 맞대고 적당한 사람을 물색해보려 했다. 하지만 적당한 사람이 떠오르질 않았다.
학식과 인품을 갖춰야 하는 것은 물론 야심이 그리 크지 않아야만 했다. 만약 야심이 큰 인물을 앉혀놓게 되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렇게 인물을 물색하는데 한 사람이 찾아왔다. 공조에서 일하고 있던 박순이었다.
박순은 서경덕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고정관념에 구애 받지 않으며 항상 탐구하는 마음을 잃지 않던 박순은 공조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얼굴이 굳으셨습니까?”
“신대륙 진출 책임자가 드러누웠으니 어찌 근심이 없겠는가?”
“아, 그건 큰일이군요.”
신유성이 맡긴 일이 지연되게 생겼으니 다들 걱정했다. 아메리카 진출은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더디긴 하지만 신유성이 굉장히 관심이 많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얘기를 다 들은 박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차라리 제가 갈까요?”
“자네가?”
“네, 어차피 적당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면 누군가 보내야하지 않습니까? 다음 책임자를 찾을 때까지 제가 임시로 하죠.”
“고맙네.”
결국 남사고의 후임으로 박순이 나서게 되었다.
신국과 거래를 하기 시작한 틀링기트족은 번창했다. 특히 의조의 의원 몇 명이 지원을 나온 이후 틀링기트족의 사망률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이쯤 되니 틀링기트족은 다들 신국이 엄청난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주술사보다 더 뛰어난 거 같다.”
“그러게. 우리 주술사 이제 뭐하나.”
“난 이제 기도나 할 거다. 술이나 줘라.”
족장과 전사의 놀림에 주술사는 피식 웃으며 술병을 낚아챘다. 신국 의원들의 등장으로 자신의 역할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주술사는 그런 의원들을 질투하지 않았다.
의원들 덕분에 틀링기트족이 많이 살아남았으니까.
오히려 주술사는 강한 의문을 느꼈다. 강렬한 호기심은 신국의 의원들이 알고 있는 의술로 쏠렸다.
“나도 좀 가르쳐줬으면 한다.”
“그럼 그쪽이 알고 있는 것도 알려줘야 한다.”
“좋다. 가르쳐준다.”
주술사는 자신이 아는 약초들과 이를 쓰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원래는 다음 주술사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었으나 틀링기트족 주술사는 숨기거나 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지식을 공유하니 신국의 의원들도 하나씩 알려주었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의학서적이지만 글자를 모르면 읽을 수 없으니 나중에 문자를 배워 읽는 것으로 하고 다른 걸 가르쳐 주겠다.”
의원의 교육이 시작되자 주술사는 열심히 배웠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팽창을 하게 되면 영역이 겹치게 된다. 틀링기트족은 신국과의 거래로 생필품이 풍족해졌다. 그리고 더 뛰어난 무기를 얻을 수 있었다.
신국의 검은 상당히 매력적인 물건이었다.
발달한 무기를 갖게 되자 전사들은 빠르게 영역을 넓혀나갔다. 더 넓은 영역을 가지고 있으면 더 많은 자원을 얻을 수 있고 이것으로 신국과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웃 부족들과 전쟁이 일어났다.
영역을 침범했으니 당연한 일. 허나, 틀링기트족은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계속 승리하다보니 신국에 대한 친밀감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신국의 무기 덕분에 이긴 것이기 때문이었다.
빛나는화살은 모든 것을 확실히 기록해 신국으로 보냈다. 그리고 고향을 생각했다.
‘우리 부족도 여기로 부를까?’
북해도에 비하면 상당히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 남쪽을 오가는 탐험대는 엄청나게 큰 땅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저 녀석들도 참.”
멀리서는 김백구의 후손들이 늑대를 거느리고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이러한 움직임에 틀링기트족들은 풍산개를 신성한 동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풍산개를 불러 밥을 준 빛나는화살은 점점 가족이 보고 싶어졌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