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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수 없다
“계속 내버려두다가는 쟤들이 다 먹겠다. 그치?”
“어, 그럼 안 되죠. 여기 마음에 들었는데.”
탐험대에 속한 아이누는 아메리카가 마음에 들었다. 엄청나게 넓은 땅과 풍요로운 자연 때문이었다. 조금만 수고를 하면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우리도 이주 합시다. 언제까지 추운데서만 살 순 없어요.”
사할린과 캄차카 반도에 살던 아이누는 이주에 적극적이었다. 예전에는 그냥 살아갔지만 이제는 더 좋은 곳이 있으니 옮기고 싶은 것이었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풍요롭게 지내는 것을 싫어할 리가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도, 신국을 위해서도 이주는 필수였다.
“그럼 얘기를 해보지.”
빛나는화살은 틀링기트족 족장과 대화를 나눴다. 틀링기트족 족장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라면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남쪽에 좀 사나운 녀석들이 있는데 그 녀석들의 땅으로 간다면 좋겠다.”
“알았다. 그럼 이제부터 남쪽은 우리가 갖겠다.”
틀링기트족의 족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자신들의 땅도 아니었고 사나운 녀석들이라 처치 곤란한 상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이웃의 힘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싸우러 갈 때 우리 전사도 따라가서 보면 안 되나?”
“보고 싶다면 따라와도 된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빛나는화살은 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일단 정찰에 들어갔다. 적의 규모를 살필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심하고.”
“걱정 마시죠.”
정찰은 야인여진 출신의 대원들이 나섰다. 꾸준히 만주벌판에서 신경 써서 데려온 말들의 숫자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말을 타고 정찰을 나가는 모습을 보자 틀링기트족 전사는 감탄했다.
“우리도 말 갖고 싶다.”
“지금은 힘들다. 우리 쓸 말도 별로 없으니까.”
“안타깝다. 말 많이 키워라. 도와준다.”
전사는 말을 타고 다니는 탐험대를 부러워했다. 생전 처음 보는 말들을 타고 질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감탄만 나왔다. 하지만 틀링기트족은 아무도 말을 훔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한 번씩 말을 빌려 타며 감탄만 할 뿐이었다.
정찰은 쉽게 이뤄졌다. 말의 이동속도는 인간의 다리를 한참 초월했다. 드넓은 땅을 질주하는 말들은 신이 났다. 여진 출신 대원들도 신이 났다.
‘갖고 싶다.’
특히 야인 여진 출신들은 가슴에 웅심이 피어올랐다. 해서와 건주에 의해 척박한 곳으로 밀려났던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야, 여기 진짜 좋다. 그냥 사방이 다 먹을 것 천지야.”
“진짜 폐하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 땅이 있는 줄 어떻게 알았겠냐?”
아무도 춥고 거친 땅을 계속 탐험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수의 부족이 이주를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소수.
신유성처럼 징검다리식으로 항구를 만들어 넘어갈 수 있게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게. 하여튼 폐하는 대단한 분이시지.”
“전쟁은 잘 되고 있을까?”
“이길 거다. 폐하라면 분명.”
때문에 아이누와 여진족은 모두 신유성을 신봉했다. 신유성만 잘 따라가면 풍족한 삶이 기다린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랬다.
넓고 넓은 풍요의 땅이 펼쳐져 있었다. 남쪽으로 내려갔다 온 탐험선들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고 할 정도였다.
풍요로운 땅을 보는 탐험대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이 땅에 그 남만 놈들이 발을 뻗었다고 하잖아.”
“맞아. 분명 그랬지.”
“우리가 얼른 놈들을 쫓아내자고. 그놈들한테 줄 순 없잖아.”
“맞아. 줄 수 없지.”
“어라. 시간이 벌써. 불침번 바꾸자.”
수다를 떨던 대원들은 곧 교대했다. 밤하늘의 별들을 이불삼아 노숙하는 대원들은 평원을 질주하는 꿈을 꾸며 웃었다.
한편, 남쪽으로 계속 내려간 탐험선은 한 부족을 만났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
“이거 다시 새로 시작해야 하려나 보다.”
“어쩔 수 없지 뭐.”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다시 처음부터 말을 배우며 거래를 해야 했다. 이때 실수하면 불쾌하게 여기며 공격적으로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긴장해야만 했다.
“아파치라는데?”
“그래?”
그런데 아파치족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지 말라는 말을 계속했다.
“뭐래?”
“몰라. 뭔가 무서운 게 있나봐.”
“혹시 남만 놈들인가?”
“그렇다면 안 가는 게 좋겠네. 우리 함대가 이곳에 오기 전에 만나봐야 좋을 게 없는데.”
대원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에스파냐인들이 남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파치족이 더 내려가지 말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었다.
천연두를 시작으로 각종 전염병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사신이 휩쓸고 있으니 내려가지 말란 소리였다.
유럽인과 접촉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염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없기에 이들은 병든 자들이 생긴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면 또 접촉이 일어났고 병이 전염되었다.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날벼락.
침략자라면 싸우면 되지만 의술이 뒤떨어지는 원주민은 전염병을 멈추지 못하고 오히려 퍼트리는 중이었다.
어찌되었든 탐험대는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는 않았다. 무굴제국과 전쟁 중이라 탐험대만 가지고 에스파냐 함대와 싸울 순 없기 때문이었다.
‘잡았다! 이놈!’
이에야스는 드디어 웃었다. 후퇴하는 바인나웅의 뒤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허겁지겁 도망치던 바인나웅의 군대는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원래부터 행군이 심하면 낙오자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망치는 와중에 행군 속도가 올라가니 아예 탈영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원래라면 탈영병을 잡아 족쳐야 하지만 도망치는 와중이라 탈영병을 잡는데 시간을 쏟을 순 없었다. 그것이 탈영을 더욱 가속화했다.
바인나웅과 함께 움직이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아울러 바인나웅을 위해 싸워봐야 죽음뿐이라는 생각이 강한 것도 한몫했다.
승리하는 군주에게는 사람이 붙지만 패배하는 군주는 외톨이가 된다.
바인나웅의 군대는 형편없이 줄어든 상태였다. 오직 친위대와 일부 충신들의 병사들만이 바인나웅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화살이 날았다. 신기전이 아닌 쇠뇌의 화살이었다.
한차례 사격이 이뤄지자 바인나웅의 군대는 화들짝 놀랐다.
“후퇴! 후퇴하라!”
이젠 맞서 싸울 생각도 없었다. 공격당하니 그저 후퇴할 뿐.
하지만 후퇴할 때 피해는 더욱 커지는 법.
등을 돌리고 뛰자 사냥이 시작되었다. 싸울 의지가 없는 군대를 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서 피하십시오!”
친위대는 바인나웅만이라도 도망치게 하려 했다. 바인나웅은 이를 악물고 친위대 몇 명만 이끌도 도망쳤다. 나머지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기 위해 뒤에 남았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가자!”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결연한 함성. 죽음을 각오한 충성.
허나, 이 모든 것들은 가까이 다가간 척탄병에 의해 허무하게 박살났다.
척탄병들의 폭탄 투척이 이뤄졌다. 시간을 벌려고 하던 이들은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탄에 쓰러졌다.
혼란이 이어지고 다시 화살이 날아들었다.
제대로 무기를 맞대기도 전에 대부분의 친위대가 쓰러졌다.
“바인나웅을 잡는 자를 가신으로 삼겠다!”
이에야스의 가신이 될 수 있다는 소리에 병사들은 기를 쓰고 달렸다.
‘먼저 잡는 놈이 임자!’
영주의 가신이 되면 많은 특혜가 뒤따른다. 또한 기회도 주어진다. 영주와 함께하다보면 공을 세우게 되고 그것을 통해 영주가 되기도 하는 시대였다.
가신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출세의 지름길.
눈이 뒤집힌 병사들은 바인나웅을 죽어라 뒤쫓았다.
“허억!”
바인나웅은 굴렀다.
‘위험했다!’
화살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뒤돌아볼 틈도 없었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러나 추격자들은 집요했다. 그리고 결국 따라잡혔다.
“이 놈들!”
최후를 직감한 바인나웅은 검을 빼들었다. 그냥 죽어줄 순 없었다.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병사들은 무기를 마주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쇠뇌를 쏴버렸다.
“컥!”
한 발 꽂힌 뒤 잇따라 다른 화살이 몸에 박혔다. 이어서 여기저기서 날아온 화살이 바인나웅의 몸에 박혔다.
고슴도치가 된 바인나웅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끝인가?’
울창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너무나 푸르렀다.
‘난.......’
생각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하늘을 담은 눈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병사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 쐈다며 바인나웅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싸움이 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에야스가 모든 논란을 종식시켰다.
“이곳에 있는 자들을 모두 무사로 삼겠다. 그러니 싸우지 마라.”
그제야 병사들은 조용히 물러났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악바르!’
바인나웅의 군대를 박살낸 이에야스는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목을 벴다. 바인나웅의 목을 위로 들자 피가 뚝뚝 떨어졌다.
“잘 보관하도록.”
부하에게 머리를 건넨 이에야스는 다시 말에 올라 외쳤다.
“하루 휴식 후 우리는 진군한다! 목표는 아그라다!”
하루 빨리 악바르의 목을 치지 않고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에야스의 군대는 휴식을 취하며 다시 천천히 진군하기 시작했다.
이에야스의 군대가 진군하는 것과 같이 신페이의 군대도 계속 위로 향하며 만나는 적들을 박살냈다. 주력 부대가 박살난 무굴제국군은 계속 뒤로 밀리는 상황이었다. 이때, 황제인 악바르의 전령이 모든 병력을 뒤로 물러나도록 했다. 그리고 신유성에게는 사신이 도착했다.
“의도치 않게 전쟁을 치르게 되었으나 더 이상 피를 흘리는 일은 멈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신은 교묘한 말을 사용했다. 이야기를 듣던 신유성은 피식 웃었다.
“난 더 싸워도 괜찮다.”
“하지만 양국 간에 우호를 다진다면 더욱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패배를 인정하고 내 밑으로 들어오면 된다. 그러면 전쟁을 멈추겠다.”
유리한 상황에서 전쟁을 멈춰야 할 이유 따윈 없었다. 그냥 계속 싸우면 모두 신유성의 것이 된다. 악바르와 나눌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사신은 이런 저런 화려한 언변으로 신유성을 설득하려 했으나 신유성은 요지부동이었다. 유리한 상황을 점하고도 오히려 물러난다면 그게 신유성에게는 더 문제였다.
‘멈출 수 없다.’
원정군을 일으키며 막대한 재화를 소모했다. 영주들도 원하는 것이 있으니 원정에 참여했다. 이에 대한 보상을 해줘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점령한 땅을 원정에 참여한 이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악바르가 아예 신유성의 밑으로 들어온다면 어느 정도 명분은 생기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화평이고 뭐고 할 단계가 아니었다.
결국 사신은 그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뭄바이를 점령한 후지바야시 켄은 주변의 약탈을 명령한 것과 동시에 뭄바이의 방어를 강화했다. 해상으로부터의 공격은 걱정할 것도 없었다. 문제는 바로 육상 공격.
“해자를 파고 벽을 쌓는다. 그리고 포대를 만든다.”
대포는 많았다. 공병들이 움직이자 공사가 척척 진행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뭄바이는 사략 해적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주변에 약탈할 곳이 많으니 모두 달려들었다. 이순신과 임거정도 다시 사략 활동에 들어갔다.
“너무 험하게 대하지 마라.”
노예로 사로잡은 이들을 보며 이순신은 부하들에게 충고했다.
“걱정 마십시오.”
“그래.”
마을 하나를 점령한 뒤 마을의 모든 것을 약탈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순신에 손에 들린 검을 보며 감탄했다.
‘어떻게 이런 검을 만든 걸까?’
손에 들린 것은 다마스커스강으로 만든 검이었다. 특유의 물결무늬가 아름다워보였다.
검을 휘두르자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쓸 일이 없어야겠지만.’
이순신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한쪽에 치웠다.
“왜 그러나? 검이 마음에 안 드나?”
“마음에 듭니다. 하지만 이제 저런 걸 쓸 일은 없어야겠죠.”
“그건 그렇지.”
신국의 전투 방식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었다. 냉병기를 아주 안 쓸 순 없지만 점점 화기와 원거리 무기로 대체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투는 원거리 무기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 뒤 접근해 정리하는 식이었다.
‘좀 더 공부해야 해.’
이순신은 새로운 전투 방식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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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