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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의 유희-175화 (17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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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위협

바인나웅의 사망 이후 따웅우 왕국은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나가오 가케토라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그리고 사사키 신페이의 군대가 무굴제국군을 밀어냈다. 뒤를 이어서 말라카와 안남의 병력이 정리에 들어갔다.

무굴제국군은 방글라데시 지역까지 밀렸다.

여기서 악바르의 명령이 떨어졌다. 주력부대에는 후퇴를 명령한 것과 동시에 현지부대에는 방어를 하며 시간을 끌 것을 요구한 것.

현지의 백성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싸우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황제폐하께서 전쟁을 끝내자고 했으나 멈추지 않았다. 모두 노예로 만들 생각이다.”

사실과 거짓이 섞였다.

악바르가 전쟁을 멈추자고 한 것은 사실. 하지만 모두 노예로 만드는 것은 거짓이었다. 하지만 제한된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는 백성들에게는 윗사람이 한 말에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지켜야지요! 어딜 가는 겁니까?”

“적의 힘이 너무 커서 힘을 모으려고 한다. 함께 가고 싶은 이들은 받아주겠다.”

주력부대의 움직임을 따라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떠난 것. 반면 터전을 떠날 생각이 없는 노인들과 뜻을 함께하는 남자들이 피난민들이 무사히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뒤에 남아 싸우기로 했다.

한편, 아그라에서는 악바르가 수도를 버릴 준비에 들어갔다.

많은 이들이 불안에 떨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힌두교 출신 신하들은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악바르에게 직접 따지지는 못했다.

악바르는 자신을 거스르는 자에게 잔인한 남자였다.

“적의 장군들을 암살한다.”

후퇴할 땐 하지만 그래도 할 건 해야했다. 적을 좀 더 약화시키기 위한 방법. 그것은 바로 암살이었다.

지휘관이 죽으면 군대는 주춤하기 마련이었다. 신유성에 대한 호위가 너무 철저해 암살은 실패했다. 주변에 침투시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동하는 부대의 지휘관은 표적으로 삼을 수 있었다.

황제인 신유성보다는 좀 더 쉬운 표적이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쉬운 것은 아니다.

암살 대상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힘드니까. 접근하기 전에 발각되어 실패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악바르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암살자들을 대거 이용하기로 했다. 원래는 자신에게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거느린 것이 암살자들이었다.

암살한 뒤 탈출해 돌아올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아사신 한 명을 키우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자원은 상당했다. 이들을 전부 잃게 되면 반란을 일으키는 이들을 응징하기가 점점 어렵게 된다.

하지만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신국의 군대가 계속 압박해오는 위기 속에서 더 막아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이룩한 것이 모두 허사가 될 테니까.

‘난 아버지와 다르다.’

악바르의 아버지, 후마윤은 엄청난 실패를 거듭했었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의 도움이 없었다면 악바르 또한 별 볼 일 없는 군주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타흐마스프 1세의 도움으로 후마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후마윤이 죽자 악바르가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었다.

‘난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후마윤을 떠올린 악바르는 자신의 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을 되새겼다.

전쟁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신유성은 여유가 많이 생겼다. 그러나 여유가 많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었다.

‘답답하네.’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여유는 오히려 고문이었다. 황궁이었다면 나름 자유롭게 행동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말라카였기 때문에 문제였다.

주변에 호위가 있다고 해도 황궁만큼 완벽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과보호가 이루어졌고 신유성도 여기에 따라줄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하는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계속 반복하다보니 슬쩍 지겨워졌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놀 순 없었다. 친정을 하는 상황에서 향락을 즐긴다는 소문이 퍼지면 병사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으니 창문이 없는 방에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마살라를 이용한 닭요리를 가져오라.”

마살라. 향신료의 혼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을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주물을 하자 마살라를 닭에 발라 구운 요리가 나왔다.

통째로 구운 닭에서는 열기와 함께 향신료 향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다리를 잡고 쭉 찢으니 부드럽게 떨어졌다.

겉은 바짝 구워 딱딱했지만 속살은 야들야들한 허벅지살을 한입 가득 물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향신료의 향이 우러나왔다.

‘맛있네.’

닭고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식사를 마치자 포만감을 즐겼다. 하지만 다시 밀려오는 무료함에 신유성의 정신은 답답해할 뿐이었다.

‘이 타이밍에 게임을 하면 딱인데.’

기억의 저주는 다시금 신유성을 괴롭혔다. 웬만한 자극은 자극 같지도 않게 만드는 기억이었다.

결국 신유성은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다른 것을 선택해야만 했다.

‘페르시아어나 익히자.’

카자흐 방면으로 갔던 원정군이 카스피해까지 진출한 뒤에 페르시아 선박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이에 아주 간단한 교류가 있었고 이를 보고 받은 신유성은 언제나 그렇듯 언어와 지식을 최대한 흡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덕분에 페르시아어에 관한 교재가 있었다.

신유성은 책을 펼치고 공부를 시작했다.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한 고독한 싸움이 시작됐다.

페르시아.

타흐마스프 1세는 무굴제국과 신국의 전쟁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무굴제국이 불리한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도와야 할까?”

“도와선 안 됩니다.”

신하는 바로 반박했다. 후마윤을 도와 공동 전선을 펼친 적이 있으니 의리를 따진다면 무굴제국을 돕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실리를 따지자면 무굴제국을 버려야 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페르시아와 대립하는 오스만 제국과도 손을 잡은 악바르였다.

“전쟁은 신국의 승리로 끝날 겁니다. 그러니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흐음.”

신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 달갑지 않은 타흐마스프 1세였다. 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탓하진 않았다.

‘확실히 좀 무섭긴 하지.’

타흐마스프 1세가 신국을 주시하게 된 것은 카스피해까지 진출한 것이 계기였다. 머나먼 동쪽의 나라가 자신이 있는 데까지 왔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이후 계속 주시했다. 그랬더니 돌연 아래쪽에서 나타나 무굴제국을 때리고 있었다.

바다와 육지 양면에서 엄청난 기세로 정복을 하고 있었으니 긴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이 우릴 가만히 두겠는가?”

신하의 머릿속에서는 ‘영주’란 단어가 맴돌았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타흐마스프 1세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공존할 수 있을까?’

신국은 무굴제국을 무너뜨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페르시아가 개입한다면 다시 회생의 기회가 생긴다. 정말 살아날지 아니면 멸망의 시간만 지연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으음.......”

신하들의 입장에서는 신국과 손을 잡는 편이 이득이었다. 그러나 왕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자신의 권력을 내어주게 된다면 그것은 이익이 아니라 손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타흐마스프 1세의 고민은 며칠이고 이어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여자를 안으면서도, 심지어 꿈속에서도 이어졌다.

결국 타흐마스프 1세는 신유성에게 사신을 보냈다.

아메리카 틀링기트족 영역의 남쪽.

빛나는화살은 탐험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다. 전쟁 대상은 틀링기트족과 적대하던 부족.

“적의 수는?”

“500명 정도입니다.”

“많지 않군.”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가능성도 있지요.”

빛나는화살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인원이 한 곳에 모여 살기 위해선 그만큼 식량이 생산되어야만 했다.

“상관없다. 놈들을 잡아 우리의 힘을 보여준다.”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적에게도 그리고 아군인 틀링기트족에게도.

탐험대가 다가가자 적들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조준!”

쇠뇌를 든 대원들의 조준이 이어졌다. 이어서 사정거리 안에 적이 들어오자 사격이 시작되었다.

쇠뇌 화살에 맞은 적의 전사들은 그대로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대원들은 쇠뇌를 내려놓고는 방패를 들었다. 그리고는 방패벽을 만들었다.

제대로 된 무기가 없는 원주민 전사는 방패를 두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벽을 뛰어넘어보려 했으나 위로 뛰어오르면 밑에서 칼질을 해서 죽을 뿐이었다.

성질이 난 전사들은 방패벽을 마구 때리고 무너뜨리려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가까이 붙어서 방패를 당기려하면 틈새로 칼날이 튀어나와 찔러대니 함부로 방패를 잡지도 못했다.

결국 전사들은 지쳤다.

그 사이에 방패벽이 열리고 대원들이 날뛰었다. 난전이었지만 체력을 소진한 전사들은 방패벽 뒤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대원들을 상대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너무나 쉽게 적을 상대하는 모습에 틀링기트족의 전사들은 얼굴을 굳혔다.

‘뭔가 비겁해!’

하지만 효율적이었다. 적을 지치게 하고 싸우는 것은 물론 아군을 다치지 않게 보호하는 방법은 틀링기트족이 볼 땐 획기적이었다.

족장을 만난 전사는 강력하게 방패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그랬단 말이지? 우리도 만들어보자.”

탐험대의 방패를 빌려 그대로 본을 떠 방패를 만들었다. 그리고 탐험대가 보여준 전술을 시험해보았다.

“우린 더 강해졌다!”

틀링기트족 족장은 콧대가 높아졌다. 이후 틀링기트족의 영역 확장이 더욱 빨라졌다.

남쪽.

전염병을 피해 도망쳐 온 아파치는 결국 병을 퍼트렸다. 콜레라가 창궐하자 많은 이들이 설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소금과 설탕을! 설탕이 없으면 꿀이라도!”

탐험대에도 문제가 생겼으나 대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의조가 생긴 이후 수많은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탄생했다. 몇 개는 신유성이 알려준 것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콜레라 치료법.

소금과 설탕을 이용해 경구수액을 만들어 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심하게 아픈 경우나 모든 사람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망률을 떨어트리는 치료법이었다.

“이걸 마셔!”

탐험대는 기본적으로 전염병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병을 알아볼 수 있었고 알고 있는 치료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설탕은 정말 약이 되었다.

경구 수액을 지속적으로 마시니 사람들이 죽지 않았다.

‘으으! 죽지 않는 건가?’

아파치족은 자신의 부족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당히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죽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많이 죽었는데 어떻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뭔가 자꾸 마시게 하니 액체가 살아있는 원인이라는 것을 금방 유추해냈다.

1주일 후.

죽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 피해로 콜레라를 이겨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파치족은 놀라운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이건 대체?’

탐험대 덕분에 살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악령의 저주를 이겨낸다!’

콜레라로 인한 소동이 끝난 뒤, 탐험대는 아파치족에게 물을 끓여 마실 것과 먹기 전에 손을 씻을 것을 가르쳤다.

아파치족은 뭔지 몰라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해 탐험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목숨을 살려줬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이후, 탐험대는 아파치족을 배에 태워 북쪽으로 향했다.

빛나는화살과 다른 탐험대가 만든 거점 항구가 목적지였다.

오비강 유역의 요새.

“드디어 우리 차례네요.”

원균은 드디어 자신들이 교체되어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 동안 이정을 따라 싸운 덕분에 원균도 상당한 공을 세웠다. 부하들도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젠 더 싸우고 싶지 않았다.

우랄 산맥을 뒤지고 다니는 일은 정말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난 남을 생각이다.”

정말 기쁜 소식이었으나 원균의 상관인 이정은 전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왜요? 집에서 가족들이 기다릴 텐데.”

“이곳에 형제들이 묻혀있다.”

형제들. 친형제들은 아니었다. 함께 싸운 전우들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잘 살아야죠. 그들 몫만큼.”

“그래. 너도 내 몫까지 잘 살아라.”

이정이 어깨를 두드려주자 원균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한 때는 경쟁자로 여기기도 했고 가끔은 정말 밉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싸운 사이였다.

“남는다고 그 녀석들이 살아돌아오진 않습니다.”

“안다. 하지만 한꺼번에 전부 떠난다면 녀석들이 서운해 할 것 같다. 난 천천히 돌아갈 거니까 넌 먼저가라.”

원균은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귀향길에 올랐다. 반면 이정은 남겠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병들이 대거 투입된 상태에서 적과 마주하게 되면 피해가 커질 것을 우려한 것이었다.

‘내가 지켜야 한다.’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이정은 전방에 계속 남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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