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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위협
장거정은 노부나가를 환대했다. 노부나가가 명나라를 멸망시킨 장군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원한은 뒤로 했다.
‘나는 신국의 총영주다.’
척계광 덕분에 단숨에 출세할 수 있었다.
‘나는 신국의 백성이다.’
장거정은 원한을 흘려보내려고 노력했다. 아주 작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만으로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이었다.
총영주에 올라보니 엄청난 수준의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총영주로 다스리는 지역 영주들의 동향은 물론 누구를 만났는지까지 알 수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술자리에서 오간 은밀한 이야기까지도 알아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장거정은 긴장했다.
‘폐하가 보는 정보는 나에 대한 것들도 있겠지.’
총영주인 자신이 영주들을 감시하니 당연히 황제는 총영주들을 감시할 터였다.
‘나는 신국의 백성이다.’
장거정은 다시 한 번 되새기며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환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 자 이리로.”
장거정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했다. 노부나가는 새로운 형태의 요리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모스크바 차르국의 사람들이 주로 먹는 것이라 합니다.”
“국 같군요.”
“그들은 스프라고 하죠. 차르국 사람들의 식사 핵심이라고 합디다.”
“흠.”
빵과 함께 스프를 먹은 뒤, 두 사람은 스테이크를 잘라 먹었다. 빵과 스프는 맛보기로 조금만 나왔기 때문이었다.
“이 양념이 참 걸작이군요.”
“마살라를 이용해 만들어서 향이 조금 강할까 걱정했는데 다행입니다.”
“하하, 마살라라니. 이곳에서는 귀한 것일 텐데. 감사합니다.”
카자흐 지역에서는 정말 귀한 것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면 페르시아나 인도로 갈 수 있었다. 그쪽에서 배를 타고 가면 금방 구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페르시아와 무굴제국은 교역국이 아니었다.
빙 돌아서 향신료가 도착하게 되니 당연히 엄청나게 비쌀 수밖에 없었다.
장거정이 최고의 대우를 해줬다는 생각에 노부나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음식도 맛있었고.’
신국의 영주들 사이에서 이제 식도락은 하나의 유행이었다. 과거에는 다도가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식도락이었다.
신국이 점차 커지고 상인들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가져오는 진귀한 식품들은 영주들이 군침을 흘리는 것들이 많았다. 신유성이 소개하는 음식들도 그렇고 모두 한 번 먹으면 중독될 것들이 많았다.
가장 흔한 예가 바로 튀긴 통닭이라 불리는 치킨이었다. 영주들 사이에서는 치킨의 먹는 방법을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할 정도, 양념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도 했다.
다도 유행은 죽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식도락이 추가되었다. 그만큼 신국이 풍요로워졌다는 의미였다.
“그나저나 전쟁은 어찌 하실 겁니까?”
“일단 모스크바를 산맥에서 밀어내는 것이 우선이겠죠.”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하시지요.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총영주는 얼핏 보면 힘이 없어 보이지만 해당 지역의 영주들은 어지간해서는 총영주의 말을 따른다. 분쟁을 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밉보이면 무슨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니 웬만한 건 다 들어준다. 때문에 장거정은 자신있게 돕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면 포병이 쓸 화약을 더 많이 지원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과를 즐겼다.
다음 날, 노부나가는 이황과 만났다. 현재 이황은 부대의 보급은 물론 행정 전방을 책임지는 책임자로 있었다.
‘이 사람이 이황.’
소문을 떠올린 노부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진 능력의 뛰어남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귀찮을 정도였다. 이황 덕분에 지역 경제가 크게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장거정으로부터 들은 노부나가는 아무리 자신의 하급자라고 해도 이황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이곳의 상황은 좀 어떤가?”
질문을 하자 보고가 이어졌다. 길고 긴 보고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지만 노부나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었다.
‘놈들의 저항이 거세군.’
수시로 여기저기서 싸움을 걸면서 요새를 지으려고 발악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누가 요새를 함락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인가?’
적의 요새는 모두 요지에 건설되었다. 철통같은 방어였다. 요새를 무시하고 우회하는 것은 이제 어려웠다. 상황은 모스크바 차르국도 마찬가지였다. 신국의 요새가 계속 생겨나 양쪽 다 우회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힘으로 전면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이동도 힘들고. 결국 누가 더 좋은 무기를 가졌느냐가 관건.’
노부나가는 지도를 보며 빈틈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포기하고는 한 인물을 떠올렸다.
‘꼭 총과 대포로만 전쟁하란 법은 없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신유성이 포섭한 인물, 알렉산드로 고이바티 슈이스키가 있었다.
‘빈틈이 없다면 만들면 돼.’
전국시대를 살았던 노부나가에게 상대에게 배신을 권하는 것은 그리 낯선 일은 아니었다.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은 알렉산드로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가 활약할 때가 왔군.’
영지는 아주 잘 돌아가고 있었다. 이황이 길을 내준 덕분에 엄청나게 발전했다. 과거보다는 훨씬 발전한 영지였다. 고마운 일이었다.
‘그나저나 얼른 공을 세워 폐하의 곁으로 가야 할 텐데.’
몸은 영지에 있었으나 마음은 신유성의 곁에 가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양이었다.
한양을 한 번 경험했던 알렉산드로는 자신의 영지가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많이 발전했고 과거에 자신이 가졌던 영지보다 훨씬 잘 살게 되었으나 한양 생활은 알렉산드로의 기준을 확 올려버렸다.
한 마디로 눈만 높아진 상태였다.
‘어떻게 해서든 공을 세운다.’
허나, 다시 돌아갈 기회가 있으니 이를 놓칠 순 없었다.
“너희들이 해줄 일이 있다.”
알렉산드로는 자신의 부하들을 모스크바 차르국에 침투시켰다.
신국, 오비강 유역 요새.
이정은 신병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전부 포병이네.’
앞으로 요새에 배치해야 될 이들이었다.
“너무 한숨 쉬지 마시죠.”
“알겠습니다.”
이정은 수색부대에 속해 있기 때문에 포병들과는 인연이 거의 없었다. 원균을 비롯한 부하들은 이제 돌아간 상황. 이정은 부하도 없이 홀로 붕 떠버린 격이었다.
나중에 신병들이 배치될 때까지는 부하도 없이 혼자 있어야 했다.
‘일이 편하게 되긴 했지만.......’
하지만 뒤에 남은 이유는 싸우기 위해서였다. 신병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해서였다.
포병을 이끌고 온 포병대 대장은 웃으며 이정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쨌거나 이곳 사정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 잘 부탁합니다.”
“저야말로.”
부하가 도착할 때까지는 포병 대장을 도와 적응에 도움을 주는 것. 이것이 현재 이정의 임무였다.
우랄산맥, 신국 요새.
“크아! 좋다!”
또 하나의 요새 공사가 끝났다. 공사가 끝나자 공병들은 모여서 술판을 벌였다.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독한 술이 나눠졌다.
모두 먹고 마시고 정신이 없었다. 군기가 빠진 모습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공병들을 탓하지 않았다.
빠르게 요새를 만드는 동안 고생을 한 것으로 공병들은 임무를 완수한 것이었다.
“적당히 마셔라.”
유성룡은 술병을 들고 나팔을 부는 권율을 말렸다.
“이거 왜 이래? 오늘은 마시고 죽어야지. 안 그러냐?”
“그러믄요!”
공병들은 권율의 말에 입을 모아 외쳤다. 그리고 권율은 정말 엉망으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녀석도.’
원래 권율과 유성룡은 보급대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이황이 공병들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보직을 공병대로 옮긴 것이었다. 신유성에 대한 반감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신국에 대한 불만은 점점 희미해졌다.
군대에서 함께 구르면서 병사들과 유대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함께 싸우는 병사들이 조금이라도 덜 죽기를 원했다.
신유성에 대한 원한은 북풍과 함께 날려 보냈다.
이후 권율은 병사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렸다. 유성룡도 어울리긴 했지만 권율만큼은 아니었다.
‘저 꼴을 아저씨가 봐야 하는데.’
웃통을 벗어 던지고 근육 자랑을 하는 모습에서 양반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안 드십니까?”
“저 녀석이 내 몫까지 다 먹고 있거든.”
“하하하, 대장님도 참. 여기 고기라도 더 드시죠.”
“고맙다.”
적당히 식은 고기는 입안에서 요동쳤다. 맛의 폭풍에 입안은 어지러웠다.
맛을 음미하며 유성룡도 결국 병사들과 어울렸다. 하지만 권율과는 다르게 조용히 술병을 돌리는 정도였다.
다음 날.
유성룡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는 끙끙거렸다. 독한 럼주를 병째로 돌려 마셨더니 얼마나 마셨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병들이 속을 비운 상태로 나뒹굴었다.
“으.......”
“일어나셨습니까?”
병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취사병을 찾아가자 웃으며 반겨주었다.
“지금 때가 어떻게 됐지?”
“아직 정오는 안 됐습니다. 안심하시죠.”
“그래.”
“여기 이걸로 해장이라도 하시죠.”
병사는 말린 생선으로 끓인 국을 한 그릇 떠주었다. 후루룩 마시자 뜨거운 느낌이 몸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해장국 정도로 술기운이 다 달아나는 것은 아니었다.
“으.......”
다시 자리에 누운 유성룡은 잠을 청할까 했지만 잠은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보았다.
‘전쟁은 어떻게 되려나?’
바로 코앞에 있는 모스크바 차르국과의 전쟁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국과 무굴제국과의 전쟁이었다.
너무나 멀기 때문에 전쟁 소식은 쉽게 접할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나도 유성룡이 있는 곳까지 소식이 전달되려면 몇 개월 지난 후가 될 수도 있었다.
‘길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할 텐데.’
유성룡은 이황이 길을 만드는 데 일부 공병들을 빼서 공사에 들어간 것을 이해했다. 길이 좀 더 좋아져야 소식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알 수 있으니까.
신국이 망하길 바랐다면 오히려 길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신유성이 나이가 들어 죽는다면 소식이 빨리 접하지 못하는 영주들은 결국 독립을 외치고 분열할 테니까.
그렇게 황실의 힘이 약해지면 결국 불만이 있는 자들은 황실을 칠 것이고 신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신국 제일의 보물이니 잃고 싶지는 않겠지.’
하지만 현재의 영주들은 신유성을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신국 최고의 보물은 바로 신유성이란 황제였다.
부와 승리를 가져다주는 군주. 신으로 모시는 광신도들도 여럿 있었다.
적이라면 몰라도 신국의 영주가 신유성을 공격하는 일은 여간해서는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러나 천수를 다하고 죽을 때까지 신국이 분열할 일은 별로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쨌거나 이황이 신국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길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길만 가지고 될까?’
유성룡은 고개를 저었다. 길이 있으면 조금 더 빨리 소식을 전할 순 있지만 신유성 사후 신국이 분열될 위험은 여전히 있었으니까.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유성룡은 가만히 상념에 빠져들었다.
공병들이 모두 일어나자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 요새 공사가 끝나자 후방에서 도로 공사를 하게 된 것이었다.
우랄산맥을 넘어 이동하다가 도착한 곳은 오비강 유역의 요새 중 하나였다.
“장전!”
요새에서는 포병들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쏴!”
포성이 울리고 포탄이 하늘을 날았다.
“이 놈의 자식들아! 왜 이렇게 굼떠! 다시!”
요새에 들어온 권율과 유성룡은 포병들의 훈련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래가지고 싸울 수 있을까?’
전방 요새에 있는 포병들은 듬직했다. 하지만 신참 포병들은 뭔가 어설퍼 보였다. 하지만 권율과 유성룡이 나설 일은 없었다.
‘할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잠시 요새에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이동해야 했다.
“식사 하십쇼.”
부하의 말에 따라 식사를 하기 위해 간 곳에서 두 사람은 이질적인 남자를 보았다. 포병도 아니고 공병도 아닌데 혼자 뚝 떨어져서 식사를 하고 있는 남자였다.
“응?”
호기심이 생긴 두 사람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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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