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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위협
페구는 잠깐 사이에 살벌한 곳으로 변했다. 신유성이 페구에서 지휘를 한다고 하니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남아 있는 수비 병력은 잔뜩 긴장했다. 조금이라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가둬버렸다. 낯선 이들은 발도 못 붙이게 했다. 낯선 사람과 말을 하는 사람도 조사에 들어갈 정도로 예민하게 굴었다.
밤에는 통행이 금지되었다.
점차 주둔 병력이 늘어나더니 나중에야 신유성이 도착했다.
“좋군.”
한양의 황궁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그래도 역사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살아있었다. 신유성은 조용히 페구에서 가장 큰 건축물로 들어갔다.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초라한 것도 아니었다. 겉으로 볼 땐 높은 급조한 것으로 보이는 높은 벽만 보였다. 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병들이 여기저기 손을 본 것이 드러났다.
최대한 암살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구조를 변경한 것이 보였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조건 병사들의 숙소를 지나쳐야만 했다. 어느 쪽에서든 빠르게 입구를 봉쇄하고 안으로 병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손 본 것이었다.
‘좀 더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겠네.’
많이 신경 쓴 것이 보였다. 한양에서 지낼 때처럼 아니지만 그나마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정원과 넓은 방.
‘이 정도면 사치지.’
맞다. 사치였다. 지금 있는 곳은 점령한지 얼마 안 된 곳이었으니까.
“복구를 위해 이곳에 직물과 종이 공장을 세우도록 하라.”
페구에 도착하자마자 회의를 열고 가장 먼저 내린 명령이었다.
“방어를 더 단단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방어는 군대에서 알아서 하고. 페구에 필요한 생필품을 생산하는 것이 우선이다. 페구를 중심으로 인근의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가장 세우기 쉬운 공장이 바로 면포와 종이 공장이었다. 공장만 지으면 원료 보급이 원활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섬유의 경우에는 상당히 구하기가 쉬웠다. 옷을 만드는 직물도 중요하지만 튼튼한 밧줄이 더 많이 필요했다.
튼튼한 밧줄이 있어야 거중기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밧줄이 있어야 선박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다.
“직물과 종이 공장을 먼저 짓고 이후 벽돌 공장을 만든다. 그 다음은 목재 가공을 위해 목수를 대량으로 교육시키고. 조선소를 마지막에 세운다.”
조선소의 순위가 밀렸지만 제대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선소를 만들어봐야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품을 구하지 못하면 생산이 늦어질 뿐이었다.
신유성의 명령에 페구는 갑자기 활발해졌다. 점령군의 서슬에 기가 죽어있던 주민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구경했다.
신유성이 페구에 정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페르시아 사신들이 도착했다.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그말인가?”
“그렇습니다.”
‘페르시아. 그래. 무굴제국 다음은 페르시아 차례지만.......’
하지만 무굴제국을 꿀꺽한 뒤에는 얼마간 전쟁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호주와 아메리카를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메리카의 경우에는 에스파냐 함대와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포르투갈 함대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에스파냐 함대까지 아메리카에서 상대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때문에 무굴제국과의 전쟁이 끝나면 당분간 경제를 더 발전시켜 전력을 키우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좋은 방파제가 되겠어.’
그런 의미에서 페르시아는 오스만 제국을 대신 견제해주는 방파제가 되어줄 것 같았다.
“고마운 이야기군. 그런데 그대들은 무굴과 가까운 사이 아니었나?”
결정은 내렸지만 순순히 받아줄 생각은 없었다.
‘날 너무 물로 보면 곤란해.’
받을 건 받아야 했다.
“과거에는 손을 잡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닙니다. 무굴이 오스만과 손을 잡는 순간 동맹은 깨졌습니다.”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사실 그리 달갑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오스만 제국과 페르시아는 계속 반목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과거 후마윤을 도와 다 죽어가던 무굴을 살려줬더니 그 아들인 악바르가 배신을 한 형국이 되었다.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항의를 하고 싶었으나 악바르의 무굴제국이 엄청나게 성장한 상황이라 항의도 제대로 못했다. 자칫 잘못해서 양쪽으로 적을 두게 되면 페르시아가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알겠다. 하지만 역시 말만으로 신뢰를 한다는 것은 조금 어렵다.”
뭔가 내놓으란 소리를 은근히 돌려 말했다. 척하면 척이라고 페르시아 사신도 알아들었다.
“교역을 허락해주신다면 군사를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군사를?”
“그렇습니다.”
“하지만 싸워서 땅을 차지하면 그 땅은 페르시아의 것이 되고?”
“그건.......”
“군사보다 다른 것을 원한다. 양은 어떤가?”
“네?”
“나는 양이 갖고 싶다. 양을 많이 주면 친하게 지내도록 하지.”
양이 갖고 싶은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양모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불에서 양복까지!’
양모의 쓰임새는 많았다. 대규모로 양모를 얻게 되면 이것으로 면직물을 만들어내 고급 직물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양에게서 나오는 것은 양모만이 아니었다.
양젖도 나오고 도축하면 양고기도 얻을 수 있었다. 소와 더불어 상당히 경제적인 가축이 바로 양이었다.
신국에도 양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은 더 빠르게 많은 양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양을 요구한 것이었다.
‘특이한 분이시네.’
페르시아 사신은 당연히 허락했다. 페르시아 입장에선 군대를 일으켜 병사를 소모하는 것보다 양을 주는 게 더 싸게 먹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신국과 교역을 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나아질 것도 알고 있었다.
카스피해를 통해 교역을 하게 된다면 정말 여러 방면으로 이득을 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또한 신국과 동맹이라도 맺어서 오스만 제국을 함께 상대하게 된다면 이득이었다.
“양은 얼마나 필요하신지요?”
“한 2천?”
2천 마리의 양. 적지 않은 숫자였다. 하지만 페르시아 사신은 깎지 않았다.
“숫자가 많아서 한꺼번에 드리긴 힘들 것 같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교역을 하면서 최대한 빨리 넘겨준다면 우호를 다지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신유성도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겠지.’
기분이 좋아졌다. 주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양 2천 마리를 꿀꺽하고 입을 닦는다면 악감정이 쌓일 수 있었다. 그러니 적당히 풀어주는 것도 필요했다.
“사신은 신국의 물품을 골라라. 원하는 품목을 양의 숫자에 맞춰 주지.”
신유성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을 늘어놓게 했다. 그러자 페르시아 사신은 꼼꼼히 살피더니 결국 비단을 선택했다.
비단은 ‘실크로드’, 교역로에 비단길이란 이름이 따로 붙을 정도로 동서 교역의 상징적인 상품이었다. 그리고 비단은 지금도 아주 잘 팔리는 직물이었다.
비단 2천필은 신유성에게 그리 큰 부담이 되지도 않았다. 한반도에 이어 중원까지 차지하고 계속해서 비단 생산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2천필의 비단을 넘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걸로 괜찮나?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나?”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식칼에서 눈을 떼지 못했지만 사신은 결국 비단을 선택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럼 비단 2천필을 답례로 보내도록 하지.”
일이 잘 풀리자 사신은 살짝 안도했다.
“그럼 이제 식사나 할까?”
신유성은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다.
아메리카.
남쪽으로 떠났던 탐험대가 돌아왔다. 혼자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한 무리의 원주민, 아파치족과 함께였다.
“이 사람들은 뭐냐?”
“아파치족이라고 하던데요. 자세한 건 말이 안 통해서 잘 모릅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봐.”
돌아온 탐험대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아파치족을 만나고 교류를 하던 도중에 콜레라가 발생한 것이었다. 전염병이 발생한 뒤 치료해주자 아파치족이 따라온 것이었다. 물론 아파치족 전체가 따라온 것은 아니었다. 탐험대가 만난 것은 세력의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교육부터 시켜야겠네. 살 집 만들어주고 위생 교육 철저히 시키고.”
“알겠습니다.”
탐험대의 보고를 받은 빛나는화살은 지급으로 보고를 본국으로 보냈다. 그리고나서 아파치족을 살피기 위해 나왔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이 녀석들이?’
남쪽으로 갔던 탐험대 대원들이 아파치족 처녀를 한 명씩 옆에 끼고 있었다.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이들이 짝이 되었음을 쉽게 알게 해주었다.
“어떻게 된 거지?”
“그게, 저 처녀들이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원래 아파치족이었다면 이렇게 호의적이진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죽음의 사신으로부터 구해준 은인들이기에 마음은 활짝 열렸다. 죽다 살아난 여자들에게 탐험대는 든든한 구원자였다.
대원들은 젊었고 아파치 처녀들의 마음은 설레었다. 이쯤 되면 더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이 안 통해도 행동으로 호감은 통했다.
야밤이 되어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으로 마음이 이어졌다. 정이 통하니 결국 함께 하게 된 것. 관계를 맺은 여자를 버릴 순 없었다.
“어휴. 다 책임져야 하는 건 알지?”
“물론입니다.”
“그래, 그럼 니들이 데리고 살아.”
빛나는화살은 보고서를 추가로 작성해서 보냈다.
아파치 청년들은 탐험대와 쉽게 동화되었다. 아이누 출신은 물론 유목 생활에 익숙한 여진족 대원들과는 쉽게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숨을 구해준 자들의 문명은 아파치를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먹는 음식도 엄청났다.
마살라로 양념해 구운 닭을 먹은 뒤에는 까무러칠 뻔했다. 너무나 신비로운 맛이었다.
요리도 그렇지만 도구들은 더욱 대단했다.
특히 반짝이는 손도끼를 엄청나게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나무를 하러 가는데 아무 것도 받지 않고 도끼를 주었다.
공짜였다.
아파치 청년들은 너도나도 나무꾼이 되었다. 도끼를 받기 위해서였다.
같이 살기로 한 이상 빛나는화살은 최대한 편의를 봐주었다. 물론 모든 것이 공짜는 아니었다. 일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을 준 것이었다.
아파치 청년들이 일을 했다면 전사들은 탐험대와 함께 사냥에 나섰다. 그러다 적대적인 세력을 만나면 실력을 발휘했다.
“허허, 정말 무서운 솜씨네.”
“그러게요.”
아파치족 전사의 전투력은 상당했다. 하지만 전투력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위장술이었다.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적은 아파치족 전사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우리 저 사람들 좀 더 있으면 좋지 않겠냐?”
빛나는화살은 아파치족이 마음에 들었다.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아파치족은 바로 사냥을 해왔다. 그리고는 풍산개와 친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탐험대 준비 시켜. 남쪽에 가서 아파치족과 더 교류해보게.”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했었으나 이번에는 이야기가 달랐다.
탐험대는 남쪽을 향해 내려갔다.
한편, 남쪽에서는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 안 돼! 죽음의 신이 우리를 찾아왔다!”
“제길!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저 놈 때문이야! 저 놈이 나타난 이후로 병이 퍼졌어!”
“악마를 끌고 온 놈이다!”
“죽여!”
전염병이 퍼졌다.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낯선 이들에게 좀 더 호전적으로 변해 아예 죽여 버리는 이들도 나타났다.
남부에서 시작된 전염병은 점점 북상했다.
병으로부터 도망가고자 움직이는 이들은 더욱 늘어났다. 이들의 움직임을 따라 전염병은 계속 퍼졌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은 병을 퍼트리는 데 일조했다.
“북쪽으로 가야한다. 북쪽으로 가야 살 수 있어!”
“아닙니다! 동쪽으로 갑시다!”
“서쪽이 좋아!”
살아남은 이들은 땅을 떠나고 싶어 했다. 수많은 이들이 죽은 땅에는 악령이 머문다고 여겼다. 어떤 사악한 것이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는 금방 퍼졌다.
아파치족도 마찬가지였다.
큰 세력을 이룬 아파치족은 결국 여럿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대족장의 세력은 서쪽을 택했다.
남쪽으로 가려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죽음이 다가온 방향이 남쪽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먼저 죽고 사람이 찾아온 뒤 자신들이 죽어 나갔다.
이 때문에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가 굉장히 심해졌다.
“서쪽으로 간다.”
대족장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뒤를 따라나섰다.
목적도 없는 여정이었다. 어디든 적당한 곳에서 쉬면 되지만 이들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남쪽에서 올라온 죽음의 그림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부족의 영역을 지나며 전투를 해야 했다.
죽음의 위협은 쉽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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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