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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위협
아그라.
“지금 뭐라고 했나?”
“실패했습니다. 신국의 함대에 피해를 입힌 것이 전부입니다.”
악바르는 이를 악물었다. 아사신을 이용한 암살까지 실패한 것이었다.
“아사신을 더 양성할 순 없나?”
“약을 사용한다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전사를 만들 수는 있지만 암살자로서의 능력은 떨어집니다.”
아사신을 키우는 데 가장 핵심은 바로 약이었다. 약을 이용해 두려움과 고통을 잊게 만든다. 한 마디로 길들여서 도구로 쓰는 것이었다.
‘약을 쓴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약을 쓰면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를 더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약을 많이 쓰는 병사들은 결국 폐인이 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중독이 심해지면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약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신중해야 했다. 약을 이용해 사람을 길들이며 망가지지 않게 조절해야 했다. 허나, 부대 하나를 전부다 약쟁이 병사로 만들게 되면 통제가 어려웠다.
원래라면 하지 않을 짓이었다. 예전에도 한 번 해보고 많은 병사들이 쓸모없게 변해 폐기했던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 악바르에게 선택의 여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징병한다. 그리고 약을 최대한 많이 모아라.”
“알겠습니다.”
“징병은 최대한 반란의 조짐이 보이는 지역부터 하라.”
신국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권력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었다.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일. 악바르는 사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성전을 위한 전사로 싸우다 죽는다면 신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그냥 되는 대로 갖다 붙이는 변명일 뿐이었다. 그러나 악바르는 진심인 것처럼 속였다.
모두 권력을 위해서였다.
악바르의 징병이 이뤄지는 동안, 이순신은 능숙한 함장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이제는 ‘임시’는 떼도 되겠습니다. 그냥 함장 하시죠?”
“해군으로서 전투를 해보지 않은 이상 그건 모를 일이다.”
기분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칭찬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육군에 미련이 있는 이순신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하, 연습할 때만큼만 해도 보통 함장님들보다는 나으니까 걱정 마시죠.”
좋은 이야기니 그냥 웃어 넘겼다.
훈련이 끝나고 뭄바이에 정박한 이순신은 배를 떠나지 못했다. 암살자들 때문에 모든 함장은 항상 배에서 지내게 되었던 것이었다. 배가 정박하는 순간 갑판에는 호위병들이 순번을 정해 지켰다. 아무리 암살자라고 해도 한 번에 부두에서 뛰어올라 갤리온의 갑판에 오를 순 없었다. 배에 머물게 되면 자연스럽게 작은 성채 안에 있는 효과가 나오는 셈이었다.
악바르는 더 이상 아사신을 보낼 여력이 없었지만 신국의 입장에선 알 길이 없는 일, 때문에 방어에 신경 썼다.
배에 홀로 남게 된 이순신은 배를 한 번 살펴보았다. 이미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살피며 배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갑갑하지 않나?”
“오셨습니까?”
이순신을 찾은 것은 임거정이었다. 한 손에는 술병과 안주를 들고 있었다.
“한 잔 하지.”
조촐한 술판이 벌어졌다. 취하자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마시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안주로 나온 새우소금구이는 먹음직스러웠다.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을 통째로 가져가 으적으적 씹어 먹는 두 사람이었다.
“해군은 어떤가?”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제가 원래 가려던 쪽이 육군이라.......”
“해군이 대우는 더 좋지.”
“그렇긴 합니다.”
해군은 장비도 언제나 최신형이었다. 모든 것이 새것이었다. 육군보다 항상 먼저 보급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인기는 육군이 조금 더 좋았다.
해군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적을 만나지 못해도 폭풍에 휩쓸리면 죽었다. 더구나 좁은 배에서 오랫동안 지내야 하기도 했다. 뱃일은 많이 힘들었다. 음식은 그리 좋지 않았다. 또한 위생 문제로 청소도 자주해야 했고 배에 쥐라도 생기면 모두 잡을 때까지 난리도 아니었다.
쥐는 언제나 적이었다. 병을 옮기는 더러운 존재로 인식되어 항상 경계 대상이었다. 쥐가 먹은 음식을 먹으면 전염병에 걸려 다 죽는다는 이야기에 굉장히 민감하게 굴었다.
어쨌거나 많은 것이 부족했고 까다로운 것이 바로 해상 생활.
한 번 출항하면 한 달도 넘게 배에서 지내기도 하니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었다.
“폐하께서 이런 말을 하신 적이 있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좋은 말씀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해군에겐 자부심이 있지. 폐하의 진정한 선봉장이라는.”
임거정은 영웅 심리를 자극해보려 했으나 실패였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어쩌다 보니 함장이 된 것이지 사실 함장에 욕심은 없는 이순신이었다. 공을 탐한다면 사략 해적으로 있을 때부터 열심히 여기 저기 싸우러 다녔을 것이다.
“그런가? 자네에겐 해군이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임거정은 새우를 하나 입에 넣었다. 와그작 씹히는 소리와 함께 잘 익은 새우의 담백함과 고소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전쟁을 경험하면서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공명심은 내던졌다. 지금은 그저 지키고 싶을 뿐이었다. 이런 저런 복잡한 것은 생각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래, 항상 그렇게 해주면 고마운 일이지.”
“배에는 이제 안타시는 겁니까?”
“나이가 나이인지라. 싸우는 것도 솔직히 좀 힘들어.”
이순신은 피식 웃었다.
“그런 것치고는 너무 정정하신데요.”
“좋게 봐줘서 고맙군. 하지만 사람은 겉만 봐선 모르네. 속은 엉망일 수도 있어.”
“그런 겁니까?”
“나이 들면 알게 되네.”
잡담이 이어졌다. 배에서만 지내는 게 답답했었지만 그래도 임거정과 소소하게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 이순신은 피로를 풀었다.
“출항!”
훈련을 하면서 지내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명령이 내려왔다. 해역 순찰 임무였다.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심심한 임무지만 발견하게 되면 긴장해야만 했다. 때에 따라서는 교전도 불사해야 하는 임무였다.
갤리온이 항구를 떠나 페르시아쪽으로 향했다. 혹시나 포르투갈 선박이 발견된다면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포르투갈 선박은 보이지 않았다. 무굴제국의 배들도 보이지 않았다.
무굴제국의 배들은 이미 후지바야시 켄이 전부 나포하거나 침몰 시킨 뒤였다.
해상에서 무굴제국은 더 이상 경쟁 대상이 아니었다.
덕분에 이순신이 할 일은 없었다.
평화롭게 바다를 떠돌면서 가끔 보이는 사략선을 살피는 게 전부였다.
전쟁을 치르고 있으면서도 바다는 평화로운 상태.
‘이건 정말.’
이순신은 해전을 치르지 못하고 다시 뭄바이로 돌아가게 되었다.
페구.
신유성의 명령으로 공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완성된 것은 바로 벽돌 공장이었다.
“구워라! 더 빨리 구워!”
일정한 크기의 벽돌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벽돌이 만들어지면 인부들이 옮겼다. 그러면 공사장에서 바로 건축에 투입되었다.
커다란 돌을 나르는 것이 아니라 벽돌로 만든 건물은 금방 완성되었다. 그렇게 직물 공장의 외형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이었다.
공장의 외형을 완성하고 난 뒤에도 벽돌은 계속 생산되었다. 성벽을 보수하는 일부터 페구 시내의 주택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었다.
허나, 시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신유성은 볼 수 없었다.
‘내가 참고 말지.’
신유성이 움직이면 근처의 모든 사람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안 그랬지만 최근 들어서 친위대의 행동이 더 심해졌다.
안전에 민감해지다보니 신유성이 근처에 있을 때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는 습관이 생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최전방 방문 같은 것은 꿈도 꾸질 못했다. 친정이라고 하지만 신유성은 최전방에서 지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이나 하자.’
돌아다니질 않다보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무료한 것은 딱 질색이라 결국 일을 택했다.
“응?”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던 신유성은 특이한 보고에 눈을 빛냈다.
그것은 바로 나진에서 올라온 보고서였다. 발전된 금형에 대한.
신국은 은화를 사용하기 시작한 뒤로 금형을 사용하게 되었다. 동전을 빠르게 찍어내려면 금형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틀에다 동그란 은조각을 넣고 망치로 찍어서 형상을 박아넣는 방식의 금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해 무쇠를 가공하는 금형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무쇠 자체야 강철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공장이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제발 이대로만 가다오!’
현재 상황에서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후장식 소총으로 넘어갈 길이 생기는 것이었다.
‘후장식 소총!’
신유성은 리볼버를 비롯한 수많은 총기를 떠올렸다. 총기에 대한 것은 꽤 상세히 알고 있기도 했다.
기억 속의 신유성은 미국에서 유학했던 몸. 총기의 나라라고 불리던 미국이었다. 유학생으로 있으면서 사격도 해봤고 여러 총을 다뤄봤다.
덕분에 총에 대한 지식은 꽤 있었다.
‘후장식 소총만 생긴다면!’
그렇게 되면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흑색 화약을 쓰는 이상 신유성이 기억하는 그런 총기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무연화약. 어떻게 만들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수많은 착오와 실패를 겪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한다!’
안 할 수 없었다.
한편, 페구의 백성들은 신유성 덕분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두 노예로 만들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아니, 노예가 되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성노예로 만드는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복자인 신국은 절대 주민들에게 손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다.”
“이제부터 난 신국 사람이다. 이 몸과 마음 전부다.”
“어이구. 또 시작이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신국에 호의를 품은 페구 주민이 신나게 찬양했다.
“저 집을 보라고! 얼마나 좋은가? 멋지지 않아?”
“멋지긴.”
벽돌로 지어진 집들은 모두 모양이 똑같았다. 개성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예전에 있던 집들도 개성이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먹을 것들을 보라고! 이게 모두 폐하의 은혜가 아닌가!”
페구는 먹을 것이 풍족해졌다. 신유성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식량이 보급되었다. 신유성은 이것을 아끼지 않고 주민들에게 베풀었다. 그 결과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졌고 찬양이 계속 이어졌다.
신유성의 계획대로 페구를 중심으로 민심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민심의 변화는 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으로 내려갔던 빛나는화살은 또 다른 아파치족과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매우 배타적이었다. 보자마자 공격하려고 달려들었다. 만약 옆에 이제는 동료가 된 아파치족이 없었다면 꼼짝 못하고 전투를 치렀어야만 했다.
하지만 아파치족이 중간에 가교 역할을 해주니 분위기는 금방 좋아졌다.
“정말 병을 고쳤나?”
“그렇다. 고쳤다. 나 조상님 만났다. 그런데 돌아왔다.”
“조상님의 가호다!”
“조상님이 우릴 이끄셨다. 그래서 만나게 되었다.”
전사들은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새로 나타난 아피치족 전사는 존경하는 눈빛으로 빛나는화살과 탐험대를 바라보았다.
“모두 주술사냐?”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러냐?”
“그렇다.”
“잠시 기다려라!”
전사는 뛰어가더니 대족장에게 알렸다. 이야기를 들은 대족장은 살짝 흥분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어서 가자!”
대족장은 곧 빛나는화살과 마주하게 되었다. 대화는 그리 안 통하지만 옆에 있는 아파치족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배? 그 하얀 놈들이 타고 다니던 배?”
“그렇습니다.”
“설마 그 놈들과 한 패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얀 놈들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건 모르는 일 아닌가!”
좋다 말았다고 생각했다. 하얀 놈들, 에스파냐인들은 악마와 같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물어보겠습니다.”
탐험대와 함께 하는 아파치족은 배운 것을 총동원하여 질문을 던졌다. 에스파냐와 친하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손짓 발짓 해가며 뜻을 전하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뭔지 잘 몰랐지만 나중에는 백인을 의미하는 것을 알았다.
“나 그 놈들과 친구 아니다. 그 놈들 신국의 적이다.”
빛나는화살은 용케 알아들었다. 몸으로 하는 대화를 많이 하다보니 눈치가 늘어난 덕분이었다.
“오! 적인가? 그럼 우린 친구다!”
아파치 대족장은 매우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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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