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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위협
며칠 함께 지내며 아파치 대족장은 신국에 대해 조금씩 알아갔다. 그리고 빛나는화살과 굉장히 친해졌다.
“마시자!”
연일 술판이 벌어졌다. 술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아파치는 구하기 힘든 귀한 것. 특별한 약초를 이용해야 느낄 수 있는 기분을 술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주술사들이 만들어 낸 것인가?’
어쨌거나 마셨다.
“나는 독수리! 하늘을 나는 구름!”
술에 취한 아파치 전사들은 히죽거리며 가슴에서 올라오는 말을 토해냈다.
‘모두 조상님을 만나고 있군. 그럼 나도.’
술병을 물고 나팔을 불었다. 꿀렁거리며 목으로 넘어간 액체는 몸을 뜨겁게 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분이 알딸딸해진다.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니 별들이 빙글빙글 돈다.
“우아아아아아아!”
별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어디론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에 몸을 맡긴 아파치 대족장은 기분이 몹시 좋아졌다.
술판을 바라보는 빛나는화살은 히죽 웃었다.
“이거 잘 먹히는군.”
“술 좀 더 가져오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많이 받아 내.”
돈 주고 마시는 거라면 이렇게 마구 뿌리진 못한다. 허나, 술은 탐험대의 보급품 중 하나. 요청하면 얼마든지 공짜로 마실 수 있었다. 물론 공짜로 마실 수 있다고 탐험대 전체가 술에 취해 지내진 않았다.
정말 술에 미친 대원은 알래스카 지역을 비롯해 추운 지역에 짱 박혀서 다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추운 지역에 있으면 이유를 불문하고 얼마든지 술을 마시게 해주니까.
처음 술이 마구 보급 될 땐 대원들 모두 좋아했지만 일을 못해서 감봉 처분 받았을 땐 정신 차리고 술을 줄였다.
“그나저나 이들을 전부 데리고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그래도 데려가야지. 여기 놔둘 순 없잖아?”
다른 원주민의 구역이기 때문에 전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지금도 아파치족 전사들 중 반은 경계를 서고 있었다. 술을 마시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그런데 괜찮을까요? 전염병이 돈다는데.”
“최대한 막아봐야지.”
빛나는화살은 신국의 힘을 믿고 있었다.
한편, 박순은 보고를 받았다.
“자리를 잡는다? 좋군.”
배를 타고 이동 중이었지만 전령들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항로가 언제나 일정하기 때문에 어긋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빛나는화살이 정착을 요청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탐험대가 정착을 해주면 그곳이 바로 신국의 땅이 된다. 탐험과 동시에 개척이 이뤄지는 것.
탐험 책임자로 내정된 박순에게는 긍정적인 이야기였다.
그러다 베링해를 건너기 직전, 전염병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의조에 의원과 약을 더 달라고 요청한다.”
많은 약이 필요했다.
‘어쩌면 사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
빛나는화살은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으나 박순은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의학 수준 그리고 전염병의 성향을 고려해보니 재앙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 곳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들이라며 전염병으로 마을이 전멸하더라도 외부로 퍼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과의 접촉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잠복 기간이 길면 길수록 피해는 더욱 커진다.
잠복 기간이 길다는 것은 그 동안에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죽지 않는 동안에는 움직일 수 있고 접촉이 가능해진다. 환자와 접촉한 사람은 자신이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고 또 움직이고 계속 병원균을 퍼트리게 된다.
그러다 잠복기가 끝나는 순간 죽음의 도미노가 시작된다.
잠복기가 길면 전염병은 광범위하게 퍼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는 괜찮을까?’
박순은 살짝 두려움에 떨었다. 전염병은 박순의 전문이 아니었다.
박순의 연락을 받은 이지함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폐하께서 원하시는 땅에 전염병이라니.”
모든 자료를 종합해본 결과 매우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사람들의 이동을 막고 격리를 시키는 것이 우선이었지만 무굴제국과 전쟁 중이었다. 아메리카로 보낼 전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제가 가봐야겠습니다, 형님.”
“아니다. 네가 가면 여긴 어쩌고?”
“다들 잘 하고 있습니다. 제가 없어도 충분합니다.”
“아니다. 그래도 넌 여기 있어라. 의조를 이끌 책임자가 자리를 비우면 안 된다. 황궁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이지번의 반대에 이지함은 결국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의조는 시끄러워졌다. 아메리카로 갈 지원자를 찾는 공고가 내려왔다.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박지화는 앞으로 나섰다. 지금까지 이지함과 함께 한반도를 비롯해 신국의 의술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었다.
‘폐하의 은혜에 보답해야지.’
서출이라는 이유로 벼슬길은 아예 막혀 있었다. 의원이 되고자 한다면 잡과에 응시할 순 있었으나 그마저 포기하고 백성들을 위해 의술을 펼쳤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등장하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의원들의 관직도 이조나 호조의 관직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 백성들을 위한 의술도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 세계의 의서들을 모아와 더 많은 약재를 발견하고 의술을 접하면서 신국의 의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또한 약재상들이 많아지며 약을 대량 생산했고 이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치료 받을 수 있었다.
신유성이 역관의 자식이었다는 것은 박지화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선을 무너뜨리고 자리를 차지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지금처럼 계속 의술을 발전시켜 백성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신유성을 지옥까지 따라갈 생각이었다.
“무섭지 않으십니까?”
한 의조 관원이 물음을 던졌으나 박지화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목숨은 누구나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탓하긴 어려웠다.
의원이라도 병에 걸리면 죽는다. 의원이라고 목숨이 두 개 세 개인 것은 아니니까.
“나라고 왜 안 무섭겠나? 하지만 폐하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다면 이 한 목숨 아깝지 않네.”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다. 서출로서의 서러움도 씻어낼 수 있었다. 서출의 자식들도 능력만 있다면 총영주가 될 수 있는 세상이었다.
때문에 박지화는 신국을 지키고 싶었다. 목숨을 던져서라도.
“저도 가겠습니다. 스승님.”
“너는 여기 남거라.”
“아닙니다. 저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나선 것은 허준이었다. 허준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결국 최연소 어의라는 명성을 손에 넣었다. 총명한 제자는 이미 박지화와 대등한 곳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너는 남아서 날 대신해야 하지 않겠느냐?”
“스승님과 함께 병마와 싸우며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명의로 통하는 허준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난다면 신의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은 성장 속도였다.
“병마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신의라도 병에 걸리면 죽을 수 있다. 병에 걸리면 가진 능력과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환자일 뿐이다.
결국 허준 또한 스승인 박지화와 함께 아메리카로 향하게 되었다.
나진.
김종수는 금형 기술에 푹 빠져 있었다.
‘이걸 이렇게 누르게 하면!’
아직 다룰 수 있는 것은 무쇠 정도였다. 무쇠가 무른 쇠이긴 하지만 그래도 단단한 것이라 쉽게 다루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증기기관과 선반이 제작되면서 쌓인 지식으로 만든 공장 기계는 이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무쇠로 만든 철판이 눌리며 프라이팬이 되었다.
“으하하! 튀김판 완성이다! 간단하지? 응? 하하하하하!”
참고로 신국에서는 프라이팬을 튀김판이라고도 불렀다.
어쨌거나 간단하게 프라이팬이 하나 완성되었다. 이후 철판을 계속 공급하며 기계로 눌러주니 뚝딱뚝딱 프라이팬이 만들어졌다.
손으로 제작하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였다.
“이 정도면 전국에 튀김판을 공급할 수 있겠습니다!”
“광산에 사람 더 보내! 광석이 모자라다고 해!”
제철소를 더 키울 필요도 있었다.
‘다음에는 또 뭘 만들까?’
금방 만들어진 프라이팬을 깨끗하게 씻은 김종수는 삼겹살을 구해다가 굽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기름이 끓는 소리가 나며 삼겹살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졌다.
“음! 이 맛이야!”
소금을 잔뜩 뿌려서 간을 해놓은 삼겹살이기에 상당히 짭짤했다. 하얀 쌀밥과 함께 먹으니 찰떡궁합이었다.
원래 돼지고기는 조선에서 그리 대접 받는 고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신유성이 조선을 꿀꺽한 뒤에는 적극적으로 돼지를 키웠다. 그리고 돼지 갈비나 삼겹살 같은 것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부자들도 돼지고기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원래 소고기를 많이 먹었지만 소는 일도 하면서 노동력도 제공하는 가축이었다. 반면 돼지는 그저 먹기만 하는 가축. 때문에 돼지를 키우는 것보다 소를 키우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지만 신유성이 정권을 잡으며 변했다.
돼지고기로 만든 수많은 요리들을 신유성은 먹어치웠고 그런 신유성을 따라 영주들과 갑부들이 돼지고기를 맛보았다.
때문에 현재 일시적이지만 돼지고기가 소고기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저도! 저도 한 점만!”
김종수의 조수가 밥그릇을 들고 애원했다.
“넌 다 먹었냐?”
“네.”
“어휴. 그래 한 점 먹어라.”
삼겹살 한 점을 나눠준 김종수는 싱싱한 계란을 밥 위에 깠다. 노른자와 흰자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주니 밥알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것을 삼겹살과 함께 먹으니 또 색다른 맛이 느껴졌다.
“으으음!”
맛있는 식사를 끝내자 김종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는 온통 기계 생각뿐이었다.
‘이걸 이렇게 돌리고 저기에 붙이고.’
증기기관부터 시작해 선반까지. 기계의 효용성을 알게 되자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해졌다. 김종수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좀 더 강한 철로 만들면 더 힘을 낼 수 있다.’
금속 개발에 대한 생각도 멈추지 않았다.
‘무엇을 먼저 할까?’
금속 개발과 기계 개발. 양쪽 사이에서 갈등하던 김종수는 다시 금속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더 뛰어난 금속이 더 강한 기계를 만든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는 필수였다.
“지금부터 연구소에 돌아간다!”
“네! 이것만 먹고요!”
이후 김종수는 또 거금을 벌어들였다. 프라이팬 공장이 세워지고 엄청난 양의 프라이팬이 공급되기 시작하자 공장을 세우고자 하는 상인들이 줄을 선 탓이었다.
돈을 벌게 된 것은 김종수만이 아니었다. 카스피해 인근에 세워진 공장에서는 끊임없이 울이 생산되고 있었다.
카자흐를 비롯한 지역에서는 양을 키웠다. 이렇게 키워진 양들의 털을 모아 공장에서 가공해 울을 생산했다.
울은 잘 팔렸다. 옷감 자체가 흔한 시대가 아니다보니 저렴하게 팔리는 울은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이 때문에 양을 잡아먹기보다는 키우면서 양털을 깎는 자들이 더욱 늘어났다. 공장에서 만든 직물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보다 더 뛰어났다.
영주들은 너도나도 직물 공장을 세우고자 했다. 길을 따라 공장이 세워지면 상인들이 들락거렸다.
많은 이들이 돈을 벌었고 돈을 썼다. 덕분에 세금이 엄청나게 걷혔다.
한호는 각지에서 올라오는 보고를 종합해 기록하며 모든 것을 보게 되었다.
‘참으로 놀랍구나.’
이렇게 벌어들인 세금은 바로 원정군을 위해 쓰였다. 보급품을 사는데 쓰는 것은 물론 병사들의 월급으로도 쓰였다.
월급을 받은 병사들은 가끔 후방의 도시에서 엄청나게 돈을 쓰고 돌아가기도 했다.
목숨 값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특히 배당을 받은 병사들은 부자였다. 이쯤 되니 현지에서도 원정군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신국의 병사가 되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났다.
“나도 받아주십시오.”
“저도요!”
“원정군은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습니까?”
덕분에 후방에서 공사하는 공병들은 질문 세례를 자주 받았다. 이러한 변화는 이황에게도 보고 되었다.
“기병을 현지에서 구할 생각이시라면 딱 좋은 시기입니다.”
조언을 하는 이황을 보며 노부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명불허전이구나.’
자신의 생각을 읽고 있는 느낌에 살짝 등골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허나, 이황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그도 신국의 신하.’
아군이라는 생각에 노부나가는 곧 든든함을 느꼈다. 이후 노부나가는 대대적인 기병 모집을 시작했다.
“신국은 당신이 필요합니다!”
말 좀 탄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모집에 몰려들었다. 1차 모집에서 거르고 걸러서 뽑은 숫자만 5만이었다.
이들 덕분에 많은 기병들이 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은 여전히 돌아가지 않고 전방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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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